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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군사전략: '스타'와 'LOL'의 안개

조회수 2018. 12. 13. 07: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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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이론가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을 크게 ‘절대전쟁’과 ‘현실전쟁’으로 나눠 생각합니다. 승패 예측이 가능한 절대전쟁과 달리, 현실의 전쟁은 불확실한 요소들로 가득합니다. 클라우제비츠는 이 불확실한 요소로 ‘공포’ ‘피로’ ‘불확실성’ ‘마찰’ 네 가지를 꼽습니다. 이 중 ‘불확실성’은 ‘안개(fog)’로 표현하는데 이것이 우리가 ‘전장의 안개’로 부르는 용어입니다. ‘전장의 안개’는 의외로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데, 바로 게임에서 자주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FOW(Fog of War)’로 불리는 ‘전장의 안개’는 전략 게임에서 지형과 적 상태를 보여주지 않는 기능을 가리키는 말로 널리 쓰입니다. ‘스타크래프트(이하 스타)’나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LOL)’에서 보이지 않는 지역을 덮은 어둠을 ‘안개’로 생각하면 편합니다. 전장 상황은 불확실하게 흘러갑니다. 시야를 확보하려고 치열하게 정찰하고 확보되지 않은 시야에서 불쑥 들어오는 기습 공격에 승패가 좌우되기도 합니다. ‘스타’에서 정찰이나 ‘LOL’에서 시야 와드의 의미가 두드러지는 것도 전장의 안개에서 비롯되는 문제입니다. 

출처: 필자제공
고전 전략시뮬레이션게임 ‘듄2’ 화면. 검은 안개는 한 번 유닛이 방문하면 사라지고, 그 뒤로는 적의 활동도 계속 보이게 되는 방식을 채택했다.

그런데 이 개념이 처음부터 전략 게임에서 보편적이진 않았습니다. 몇 번의 발전을 거쳐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로 자리잡았습니다. 예를 들면, 초창기 게임에서 안개 개념은 단순히 지형을 드러내는 정도의 역할이었습니다. ‘듄2’같은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이때 안개는 일단 한 번 방문한 곳의 시야는 계속 열린 상태로 유지됩니다. 지형이 밝혀진 뒤로는 적이 나타나면 지도에서 바로 확인 가능했죠. 별도 노력 없이도 일단 오픈된 지도에선 모두 시야가 확보되기 때문에 기습 공격은 쉽지 않았습니다. 

1995년의 ‘워크래프트2’는 좀 더 진보된 안개를 도입합니다. 한번 다녀온 지형은 계속 보여주되, 그 지역에 아군 유닛이 없으면 시야는 회색으로 처리됩니다. 지형은 알 수 있지만, 그 안에 적군이 움직이는지, 적 건물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다는 겁니다. 전술적 측면에서 ‘워크래프트2’는 기존 게임과 큰 차이를 보였고 이제 시야 확보가 전술의 하나로 자리 잡습니다.

출처: 필자제공
‘스타크래프트’ 의 미니맵은 완전히 까만 영역, 회색으로 밝혀진 영역, 아군 건물과 유닛의 시야 영역 3단계로 구분된다.

이후 ‘스타’가 흥행하면서 검은 안개와 회색 안개는 플레이어에게 정찰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동시에 멀티플레이 대전에서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을 만드는 전술요소로 자리 잡습니다. 시작하자마자 일꾼 한 마리를 빼내 보내는 정찰로 적 위치를 파악하고, 이후 정찰을 통해 상대 전략을 확인하려는 움직임이 게임 초반을 지배하기 시작합니다. 


한순간의 정찰 미스로 전략 싸움에서 밀리기도 하고, 적 시야의 빈틈을 파고드는 기습공격이 게임을 뒤집기도 했습니다. 위성 스캔(테란), 투명 옵저버(프로토스), 거대한 오버로드(저그) 등 다채로운 시야 확보 수단은 이후 투명 유닛의 등장과 어우러지면서 시야와 정찰의 중요성을 게임 안에 깊숙하게 다뤄내는 효과를 만들어냈습니다. 

최근 인기인 이른바 AOS(Aeon of Strife)류 게임에 이르면 고전적 의미의 검은 안개는 사실상 무의미해집니다. ‘LOL’ 시작 화면을 잘 보면, ‘소환사의 협곡’이라는 맵 전체가 회색 안개로 덮인 것을 볼 있습니다. 이는 랜덤하게 생성되는 지형에서 플레이하는 경우가 많았던 초창기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맵과 달리 최근 게임은 고정된 한두 개 지형 안에서 플레이하는 형태로 자리 잡았기 때문입니다. 랜덤한 지형일 경우에는 애초에 지형을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검은 안개의 의미가 적지 않았습니다만, 이제는 어지간한 플레이어들에겐 자주 사용하는 고정 맵이 익숙해져 검은 안개의 의미는 다소 줄어든 상태입니다. 

출처: 필자제공
‘문명 6’의 시작 화면은 온통 그림으로 덮여 있는 검은 안개에서 시작하고, 유닛의 움직임에 따라 점차 지형을 밝혀 나간다. 적의 움직임 뿐 아니라 지형도 랜덤인 게임에서 검은 안개는 여전히 유효하다.

지금도 검은 안개가 유용한 게임이라면 ‘시드마이어의 문명’ 시리즈일 것입니다. 이 게임은 여전히 대부분 랜덤하게 지형이 생성되고 싱글플레이에서도 초반에 주변 지형을 확보하고 자원 위치를 알아내는 일이 매우 중요한 게임이기에 검은 안개를 빠르게 걷어내는 일이 무척 중요한 전략활동입니다. 

지상전에서 고지가 주는 의미 중 감제(瞰制·내려다 보며 제어함)가 쉬운 건 언제나 첫손에 꼽는 장점입니다. 열기구·비행기 같은 공중자원의 군사적 활용이 처음 시작된 목적도 정찰과 시야 확보였다는 점 또한 의미깊습니다. 


나를 감추고 적의 의도를 알아채 대응하는 것의 중요성은 게임이나 전쟁이나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한 번 ‘LOL’ 플레이어들에게는 잔소리 같은 이야기가 강조될 필요가 있습니다. 시야 와드는 언제나 아이템보다 중요합니다! 

글=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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