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속 군사전략] 나폴레옹을 되살린 게임 '랑펠로'와 '나폴레옹 토탈 워'

조회수 2018. 10. 17. 12:4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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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이후 전쟁사에서 ‘나폴레옹’이라는 전략가를 빼놓기는 어려울 겁니다. 막 대량 운용을 시작한 머스킷총을 중심으로 한 전열보병과 기병, 거기에 근대 전장의 새로운 화력 개념으로 등장한 포병을 유기적으로 엮어낸 나폴레옹의 전술은 유럽 전역을 뒤흔들었습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전술적 우위를 담보할 전략적 배경을 만들어 놓고 싸워 ‘군략의 천재’로 불리는 그의 작전술은 손자가 그토록 추구했던, ‘이겨 놓고 싸운다’는 명확한 승리의 법칙에 가장 가까웠습니다. 


그렇기에 전략 게임들 또한 나폴레옹과 그의 군대를 중심으로 한 묘사를 적잖게 선보이곤 합니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두 게임, ‘랑펠로’ 와 ‘나폴레옹 토탈 워’를 살펴봅니다. 


출처: 국방일보 DB
'군략의 천재'로 불리는 나폴레옹.

어느새 출시 30년을 바라보며 고전 반열에 올라선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랑펠로(프랑스어로 '황제'라는 뜻)’는 ‘삼국지’ 시리즈로 유명한 일본의 코에이 사가 ‘삼국지’의 기본 컨셉에 나폴레옹 전쟁 시대를 그려냅니다. 


턴 방식으로 진행되는 게임은 ‘전략 모드’에서는 나폴레옹 전쟁기 유럽 전역의 지도를 놓고 외교와 생산, 부대 배치를 결정하며, 각 지역 내에서 부대의 진군과 세부 작전을 세울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제공합니다.  

출처: 필자제공
'삼국지' 시리즈로 유명한 코에이 사가 제작한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 '랑펠로'.

부대는 ‘전술 모드’에서 본격적인 전투에 돌입합니다. 보병·기병·포병의 세 병과는 육각형 모양의 지형 위에서 각 부대 지휘관의 능력치와 사기에 따라 전투력을 펼치며 당시 전장을 재현합니다. 


턴 방식이라는 안정적인 전개는 박진감 넘치는 스펙터클 대신 전장의 상황을 면밀하게 살피며 최적의 전술을 수행하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빠르게 고지를 점령해 포격을 퍼붓고 기병으로 적진을 흔들고 보병으로 점령하는 기본 컨셉은 턴제 전술에 실리며 나폴레옹 군의 운용을 체험케 합니다.

출처: 필자제공
코에이 사가 제작한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 '랑펠로'.

‘랑펠로’는 전술 모드도 훌륭하지만, 전략 모드에서 좀 더 빛을 발합니다. 게임은 나폴레옹이 일개 장교에서 시작해 이탈리아 방면 사령관을 거쳐 제1통령, 황제에 이르는 과정들을 전략 모드 속 이벤트를 통해 충실하게 재현합니다. 영국 해군의 압도적 제해권이나 러시아 겨울의 혹한과 코사크 기병대의 약탈, 스페인 게릴라 등 실제 나폴레옹이 겪었던 많은 장애물 또한 플레이어를 괴롭히는 요소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실제 동시대 전장을 누볐던 유명 지휘관과 정치가의 등장과 함께 맞물리는 턴제 시뮬레이션으로 ‘랑펠로’는 무려 출시 30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올드 게이머들이 나폴레옹 게임 중 첫 손에 꼽을 정도로 높은 지명도를 자랑합니다. 


현대의 고차원 그래픽과 방대한 데이터 처리에 비하면 초라해 보일 수 있지만, 게임의 규칙이란 단지 방대한 데이터량 만으로 의미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현대 게임에 비해 작은 용량이면서도 근대 여명기 전장의 특징들을 뚜렷하게 게임 안에 나타나면서 ‘랑펠로’는 나폴레옹 게임의 대표작으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출처: 크리에이티브 어셈블리
전략 시뮬레이션 시리즈 '토탈 워'의 계보 안에 있는 '나폴레옹 토탈 워'.

고전 게임에서 ‘랑펠로’가 나폴레옹의 대명사였다면, 2010년 출시된 ‘나폴레옹 토탈 워’는 최근작 중 대명사로 불릴 만합니다. ‘토탈 워’라는 전략 시뮬레이션 시리즈 계보 안에서 나폴레옹 전쟁을 한 차원 높아진 연산능력과 그래픽으로 좀 더 세밀하고 스펙터클하게 그려냅니다. 


시리즈인 ‘토탈 워’가 늘 표방하던 것은 전장의 실시간 스펙터클이었습니다. 방대한 평원이 3차원 그래픽으로 그려지고, 개별 병사의 얼굴까지 묘사되는 가운데 플레이어는 3차원 가상공간인 전장을 자유로운 카메라 워크에 따라 살피며 실시간 명령을 내릴 수 있습니다.


‘실시간 전술’이라는 ‘토탈 워’의 강점은 나폴레옹이 수행했던 병과들의 유기적 운용을 실제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줍니다. 기병이 적의 측면과 배후를 치고 빠진 후 나타난 혼란과 사기 저하의 틈 사이로 전열보병의 화망이 치고 들어갑니다. 나폴레옹의 주력 병과인 포병은 원거리에서 강력한 타격력을 선보입니다. 

출처: 필자제공
'나폴레옹 토탈 워'의 한 장면.

다양한 병과들이 체계적으로 맞물리도록 운영하는 것이 ‘나폴레옹 토탈 워’의 승리 전제입니다. 포병의 사전 타격은 기병 돌격 전 멈춰야 아군의 피해를 막을 수 있고, 기병을 빠르게 움직여 적 전열보병의 취약점을 노릴 때 돌아서는 보병의 측면을 아군 전열보병으로 노릴 수 있습니다. 


공격의 법칙은 수비에도 동시에 적용됩니다. 아군 포병을 보호하고 적보다 사기에서 앞설 수 있는 진형과 지휘관의 배치를 끊임없이 신경쓰도록 ‘나폴레옹 토탈 워’는 플레이어를 시험의 장에 놓습니다.

실시간 전술이라는 좀처럼 구현하기 쉽지 않은 전장의 구현은 전략 모드에서의 생산과 부대 배치, 외교와 맞물리면서 큰 그림을 완성합니다. 제한된 병력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배치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한 재정과 내정의 밑바탕을 끊임없이 신경 써야 합니다. 


실제 나폴레옹 시대 속으로 플레이어는 들어가 동시대의 참모이자 사령관으로서 ‘유럽 제패’라는 목표를 위한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합니다. 때로는 야전에서, 때로는 거대한 전략 지도 앞에서 말입니다. 

출처: 필자 제공
'나폴레옹 토탈 워'의 초기 야포.

현대 전장은 나폴레옹 시대와는 사뭇 다른 교리에 의해 움직이기 마련입니다. 이른바 ‘넘사벽’을 만드는 화력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냉병기 시대에 존재했던, 집단을 이뤄 움직이며 사기와 대형을 보존하던 전투 방식은 아직도 낯선 방식은 아닐 것입니다. 


나폴레옹 전쟁 시대는 그 냉병기와 화약병기의 가운데 어디쯤 존재했던 찰나의 순간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 시절 전장은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독특한 느낌을 자아냅니다. 사거리와 명중률 제한으로 밀집 대형으로 사격체제를 유지하며 화약병기를 활용하면서도 냉병기 교리와 동떨어지지 않았던 독특한 전장의 중심에 서 있던 나폴레옹이라는 인물은 그래서 더 독보적인 전략가로 이름을 빛내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랑펠로’와 ‘나폴레옹 토탈 워’는 마치 한 곡을 두 개의 악기가 각자의 방식으로 연주하는 듯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같은 시대의 전장과 인물을 재현합니다. 이 때문에 어느 하나가 ‘이것이 바로 나폴레옹 전쟁!’이라고 마냥 우위를 주장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앞으로도 어떤 게임이, 어떤 방식으로 나폴레옹 전쟁을 재연할 지 예측하기 어렵지만, 두 게임만으로도 이미 우리는 나폴레옹 전쟁의 국면을 사뭇 다른 감각으로 체험해볼 수 있습니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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