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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몰장병을 추모하는 특별한 방법

조회수 2018. 6. 12. 09: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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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 국 공군의 추모비행

미국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면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바로 영웅의 죽음을 추모하는 장면에서 공군 전투기들이 등장해 장례식장 상공을 통과하는 것. 그러나 이러한 장면이 영화적 연출이 아닌, 실제 대다수 선진국에서 전몰장병을 추모하는 하나의 예식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미싱 맨 포메이션’(Missing Man Formation) 또는 ‘로스트 맨 포메이션‘(Lost Man Formation) 등으로 불리는 세계 각국 공군의 추모비행을 소개한다. 

전몰장병의 희생을 추모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공군 전투기에 의한 추모비행은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공군 전투기가 갖는 상징성 못잖게 여러 가지 현실적인 이유로 공군 전투기가 장례식장이나 추모행사장 상공을 통과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축하비행과는 그 의미가 달라서 추모비행 승인에 대한 기준 역시 매우 까다롭다. 또 이러한 이유로 공군에 의한 추모비행은 평소에는 접하기 쉽지 않다는 특징이 있다. '영웅의 나라' 미국에서조차도 공군에 의한 추모비행은 엄격한 기준을 충족하는 경우에만 이루어지며 미국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관객의 감동을 극대화하는 장면에 사용될 정도다. 흥미로운 사실은 추모비행이 단순히 상공을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규정과 절차에 의해 이뤄진다는 것이다. 

추모비행의 기원과 A to Z


장례식장 상공에 4대의 전투기가 진입한다. 편대를 이뤄 진입하던 전투기 중 1대가 기수를 들고 하늘 높이 상승하고 나머지 3대의 전투기는 빈자리를 그대로 내버려둔 채 장례식장 상공을 통과한다.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라 미국공군이 ‘미싱 맨 포메이션’ 또는 ‘로스트 맨 포메이션‘ 등으로 부르는 추모비행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최초 추모비행은 전투 중 전사한 조종사 또는 사고로 순직한 조종사를 추모하기 위한 공중경례 예식으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에서 시작됐다.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가설이 있으나 전투 후 귀환하는 아군 편대의 손실을 지상에서 확인하기 위해 편대의 빈자리를 두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1차 대전 당시 통신장비가 크고 무거웠기 때문에 대형 폭격기나 비행선조차도 무전기를 탑재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고 아예 통신장비가 없었던 전투기와는 지상에서 교신할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러한 비행 대형을 영국 공군은 ‘플라이 패스트’(flypast), 프랑스와 미국·캐나다 등 다른 나라 공군은 ‘미싱 맨 플라이 바이’(missing man flyby)라고 불렀으며 점차 전사자를 추모하는 장례예식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출처: 위키미디어(https://en.wikipedia.org/)
미국의 민간 비행클럽 회원들이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추모비행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최초의 공식적인 추모비행은 1936년 영국 조지 5세의 장례식에서 이뤄졌다. 미국의 경우 1938년 오스카 웨스트 오어 장군의 장례식 당시 50대의 항공기가 1대의 빈자리가 있는 대규모 편대를 이루며 추모비행을 했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그 범위가 확장돼 순국선열이나 존경받을 만한 영웅의 죽음을 추모하는, 군 장례예식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출처: 위키미디어(https://en.wikipedia.org/)
지난 2012년 8월, 닐 암스트롱 추모식에서 추모비행을 하고 있는 미 해군 F/A-18 전투기들.

추모비행에는 여러 가지 대형이 있지만, 보통 4대의 전투기가 쐐기 형태로 하나의 편대를 이루며 장례식장 상공을 통과하는 것과 편대를 이룬 4대의 전투기 중 1대가 수직으로 상승하고 나머지 3대는 1대의 빈자리를 남겨 놓은 채 그대로 상공을 통과하는 대형이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된다. 


이 외에 편대를 이룬 4대 중 1대만 흰색 연기를 내뿜으며 상공을 통과하거나 아예 1대의 자리를 비워 놓은 채 나머지 3대가 상공을 통과하는 대형도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단독 혹은 4대 이상, 수 십 대의 전투기로 편대를 이루는 경우도 있으며 JFK 기념관 상공을 미국공군 전투기 50여 대가 3개의 편대로 나눠 추모비행 한 사례도 있다.

전사자에 대한 최고의 예우


추모비행은 전사자 혹은 사망자에 대한 최고 예우 중 하나로 세계 각국의 공군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먼저 미국의 경우 우리의 현충일에 해당하는 ‘메모리얼 데이’ 행사에 미국 공군과 해군·해병대 전투기가 곳곳에서 추모비행을 하고 참전용사 전우회가 보유한 자체 항공기로도 추모비행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영웅의 나라'답게 에어쇼, 미군의 주요 기지 개방행사, 주요 스포츠경기 등에서도 추모비행이 이뤄진다. 비용을 낼 경우 추모비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민간회사도 존재한다. 

출처: 위키미디어
미국 오시코쉬 에어쇼 행사장에서 참전용사 전우회 소속 항공기들이 추모비행을 선보이고 있다.

미 공군과 해군, 해병대의 경우 부대 단위 제대에서 전사자 혹은 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있으면 부대장 재량으로 자체적인 추모비행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는 지난 2011년 11월 8일, 미 해군 원자력추진항공모함 USS 해리 트루먼(CVN-75) 함장으로 근무 중 갑작스럽게 사망한 투셔 탬비 대령의 추모 비행이다. 


당시 그의 추모비행은 미 해군 원자력추진항공모함 USS 조지 부시(CVN-77)에 배치된 미 해군 87공격비행대대장 권한으로 이뤄진 것이 특징이다. 고인이 된 투셔 대령이 87공격비행대대장을 역임했기 때문이었다.

출처: 미 해군 홈페이지(http://www.navy.mil/viewGallery.asp)
미 해군 원자력추진항공모함 USS 조지 부시 소속 미 해군 87공격비행대대 F/A-18 편대의 투셔 탬비 대령 추모비행 장면.

참고로 미국의 현충일은 1866년 뉴욕주가 남북전쟁 당시 전사한 군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참전용사들의 무덤을 꽃으로 단장한 ‘데코레이션 데이’가 그 기원이며 매년 5월 넷째 주 월요일로 정하고 있다.


미국만큼 빈번하지는 않지만, 유럽과 인도 등에서도 추모비행은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네덜란드 공군의 경우 지난 2004년 12월, 베른하르트 왕자의 장례식에서 3대의 F-16 전투기와 2차 대전 당시 사용한 스핏파이어 전투기 1대로 추모비행을 실시했다. 노르웨이 공군 역시 2012년 5월, 2차 대전 당시 노르웨이 레지스탕스 운동을 주도했던 권나 손스트비 장례식에서 추모비행을 했다.


호주 공군은 지난 2014년 11월, 2차 대전 참전 용사이자 전 호주 총리인 가프 휠럼의 장례식에서 F/A-18 전투기 4대로 추모비행을 실시했다. 2017년 9월 인도 공군은 인도-파키스탄 전쟁의 영웅이자 인도 공군 원수인 알잔 싱하 장례식에서 4대의 Su-30MKI 전투기로 추모비행을 선보였했다. 스페인 공군은 2017년 10월, 각각 별개의 사고로 사망한 두 명의 조종사를 추모하는 의미로 추모비행을 실시했다.

출처: PSYWAR.ORG(https://www.psywar.org/images/poppysalute.jpg)
영국 본토항공전 추모행사에서 붉은 양귀비 꽃잎을 뿌리고 있는 랭카스터 폭격기.

영국 공군과 개양귀비 꽃잎


영국 공군은 미국 공·해군 혹은 다른 나라 공군과는 조금 다른 형태의 추모비행으로 유명하다. 바로 주요 기념일 행사에 개양귀비 꽃잎을 하늘에서 뿌리는 것. 하늘에서 뿌려지는 개양귀비 꽃잎은 마치 붉은 비가 내리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데 붉은 꽃잎 하나하나가 전몰장병의 희생을 상징하기에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일례로 지난 2012년 6월 28일 영국 본토 항공전 추모행사 당시 영국 공군은 2차 대전 당시 사용된 랭카스터 폭격기로 무려 5만 5,000송이의 개양귀비 꽃잎을 하늘에서 뿌리기도 했다. 이 외에도 주요 전승행사 혹은 추모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가해 개양귀비 꽃잎을 뿌리고 있다. 

참고로 영국과 영연방 국가들의 현충일은 11월 11일이다. 1차 대전이 끝난 1918년 11월 11일을 기념해 이날을 ‘리멤버런스 데이’로 정한 것. 이날이 되면 영국인들은 가슴에 ‘포피’(poppy)라고 불리는 종이로 만든 개양귀비 꽃을 단다. 전몰장병들의 희생을 추모하고 잊지 않겠다는 의미다.  

출처: 위키미디어(https://commons.wikimedia.org/wiki/)
종이로 만든 개양귀비꽃. '포피'로 불린다.

영국을 비롯한 영연방국가에서 개양귀비가 전몰장병의 희생을 추모하는 상징으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배경에는 존 맥크래의 ‘플란더스의 들판에서’라는 추모시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1차 대전 당시 캐나다군 군의관으로 참전한 존 맥크래 중령은 그의 친구 알렉시스 헬머 중위가 전사한 후 그의 무덤 주변에 핀 개양귀비를 보고 이 시를 지었다고 한다.  


이후 시가 유명해지면서 개양귀비는 1차 대전에 참전한 영국 군인들의 희생을 의미하는 뜻으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한편 개양귀비 꽃잎은 영국 공군의 상징으로도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2차 대전 영국 본토 항공전 당시 공군 비행장 근처에서 흔히 볼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출처: PSYWAR.ORG
개양귀비꽃이 흐드러지게 핀 들판 위를 비행하는 영국 공군.

우리나라에서는 개양귀비, 중국에서는 우미인초(虞美人草)로 불리는 이 꽃은 들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한해살이 풀이이며 ‘양귀비’라는 이름 때문에 오해 아닌 오해를 받지만, 마약의 일종인 아편과는 연관이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름다운 붉은 꽃잎 때문에 관상용으로 많이 키우지만, 유럽에서는 오래전부터 농작물의 하나로 재배해 왔다.

출처: 위키미디어(https://commons.wikimedia.org/wiki/)
개양귀비꽃.

우리나라에서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추모 비행을 볼 수 있다. 과거에는 공군 전투기가 장례식장이나 추모행사장 상공을 통과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최근에는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이 전담하고 있다. 


가장 최근의 추모비행은 지난 2017년 6월, 유치곤 장군 순직 52주기 추모행사에서 공군 KT-1 훈련기가 추모비행을 한 것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추모비행은 지난 2012년 10월 24일 ‘제67회 유엔의 날’ 기념식에서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이 약 2분여 동안 추모비행을 실시한 것이다. 

출처: 항공기 사진가 이장수
지난해 열린 ‘턴투워드부산 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식’ 행사장 상공에서 블랙이글이 추모비행을 하고 있다.

추모비행은 평소 블랙이글의 화려한 공중기동과 역동적인 음악, 블랙이글 담당 장교의 안내방송 없이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는 것이 특징이다. 


참고로 매년 10월 24일은 국제연합창설일, 유엔의 날이며 우리나라의 경우 매년 유엔의 날에 한국전 참전 유엔군 전몰장병을 추모하고 자유와 평화 수호의 유엔 정신을 기리는 행사를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에서 갖고 있다.


글=계동혁 전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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