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과학수사의 본산, 과학수사연구소 '유전자감식 현장'을 가다
출입부터 달랐다. 영화에서나 보던 실험 가운과 마스크는 기본이었다. 덧신과 헤어캡, 장갑으로 중무장한 후 겨우 출입을 허가받았다. 방문 장소는 국방부조사본부 과학수사연구소 유전자과의 유전자감식연구소. 과학수사연구소는 최근 국방일보에 유전자감식 현장을 특별 공개했다.
유전자감식연구소는 우리 군의 유전자감식을 책임지는 과학수사의 본산과 같은 현장으로, 박성재(해군대령) 과학수사연구소장은 “현재 연구소의 감정시스템은 국제적으로 공인된 시스템으로 국내외적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으며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감정서비스로 안전한 국방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장 방문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사항은 오염 방지에 대한 주의였다. 유전자감정 시 가장 중요한 것은 증거 능력으로, 외부요인으로 인한 훼손 방지가 필수라는 신신당부였다. 기자가 연구소 관계자와 달리 별도의 덧신과 헤어캡 등을 착용한 이유다.
유해감정팀의 박정현 팀장은 “연구소 관계자와 달리 외부인은 DNA 등록이 돼 있지 않기 때문에 철저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양해를 구했다.
DNA 감식은 크게 ‘감정물 보관’→‘시료 채취’→‘DNA 추출’→‘유전자 증폭’→‘유전자형 분석’→‘유전자DB 검색’의 6가지 단계를 거쳐 이뤄진다. 각 단계마다 첨단 장비와 국내 최고수준의 연구원 노하우가 더해져 최상의 결과를 빚어내고 있다.
시료 채취는 의뢰된 감정서의 공문서 목록과 감정물의 일치 여부를 확인하고 최초 시료 상태를 기록, 저장하는 단계다. 이 때문에 24시간 내·외부의 압력 차를 이용한 양압시스템은 물론 클린룸 공조시설, 25도 전후 온도와 50% 전후 습도를 유지하는 항온·항습 시스템으로 감정물의 오염을 철저하게 차단하고 있었다. 현장 증거물을 보고 싶다는 요청도 단호히 거절됐다.
군범죄 분석팀 김지영 팀장은 “범죄 사건 증거물은 무결성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관계자 외 접근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천장엔 CCTV가 가동되며 내부 상황을 녹화하고 있었다.
현대 범죄수사에선 눈으로 보이지 않는 미세한 타액조차도 범죄 검거의 결정적 증거가 된다. DNA 분리와 확인을 통해서다. DNA 추출은 주로 화학·물리적 방법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미세 증거물과, 확보가 용이한 대량 시료의 방법에는 차이가 있다. 미세한 증거물은 수작업으로 진행되지만 대량 시료는 추출실부속실에 설치된 자동화 장비로 이뤄진다.
DNA 추출은 6·25 전사자의 신원 확인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전사자 유골에서의 추출은 고난도 작업이다. 손상된 상태로 발굴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유전자과 이주영 과장은 “오래된 유골이라 하더라도 보관 상태가 좋으면 추출이 크게 어렵지 않지만 6·25 전사자 유골 대부분은 정상 매장이 아니고 손상돼 있기 때문에 작업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추출 DNA는 농도가 낮기 때문에 ‘증폭실’에서 복제가 이뤄진다. 이는 유전자 분석을 위해 추출 DNA를 대량으로 증폭해 주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효소와 DNA 구성요소를 투입해 진행된다. 이론적으로 약 10억 배까지 증폭할 수 있다.
박정현 팀장은 “유전자 감정은 증폭기술 발견 이전과 이후로 구분된다”며 “증폭기술 개발 후 미세증거물 감정이 가능해졌다”고 밝혔다.
증폭된 유전자는 유전자형 분석기를 이용해 유전자형을 분석하고 그 결과를 해석한다. 6·25 전사자의 경우 최종 검사결과를 의뢰기관인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에 통보한다.
과학수사연구소 유전자과의 감정능력은 세계적 수준이다. 범죄사건의 경우 약 2주일이 소요되지만 긴급 사안일 경우 3일 이내로 처리하기도 한다.
김지영 팀장은 “이슈가 되는 사건의 경우 긴급대응 TF를 구성해 지문과 유전자 등 감정 기일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2008년 3월 네팔에서 발생한 유엔네팔임무단 소속 헬기 사고의 경우 고(故) 박형진 중령의 시신을 헬기 추락사고 일주일, 유전자 시료가 확보된 지 불과 사흘 만에 감식해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박정현 팀장은 “당시 네팔은 유전자 감정기술이 없어 인접국인 인도에서 감정할 경우 신원 확인에만 3개월이 걸렸다”고 말했다.
6·25 전사자 신원확인에도 탁월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2000년 신원확인 사업 이후 모두 77구의 신원을 확인했다.
지난해에는 사업 이후 처음으로 비군인 신분의 고(故) 김아귀 씨의 신원을 확인해 우수한 감정능력을 다시 한 번 인정받았다. 고 김아귀 씨는 ‘한국노무단’ 소속으로 전쟁 당시 보급운반과 부상자 후송 등 전투에 필수적인 지원임무를 수행했다.
이러한 6·25 전사자 신원 확인의 경우 유가족의 시료 채취와 분석을 통한 비교·대조 등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만 가능하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를 지닌다.
이를 위해 ‘유전자DB검색실’에 보관 중인 DB도 현재 전사자 1만여 명, 유가족 3만9000여 명에 달한다. 이주영 과장은 “매년 새로 등록되는 자료도 전사자 800여 구와 유가족 3000여 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국방일보 이영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