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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홍보원

3인의 해병이 말하는 7년 전 그날!

[연평도 포격도발 7주년 특별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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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우리는 최고였고,
진짜 해병이었다

23일은 포항 지진으로 일주일 연기됐던 2018학년도 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는 날이다. 동시에 2010년 연평도에 대한 북한의 포격 도발이 일어난 날이기도 하다. 세월의 흐름에 수능 열기까지 겹쳐 잊혀 가는 연평도 포격 도발을 망각의 강에서 건져내기 위해 당시 참전했던 3인의 해병이 모였다. 지난 21일 서울 용산 해병대기념관에서 만난 해병대2사단 포병연대 포8대대 작전지원담당관 추윤도(43) 상사, 이제는 직장인이 된 정병문(28·해병 1087기)·조영길(26·해병 1096기) 예비역 해병 병장이 주인공. 당시 K-9 자주포 6문으로 월례 사격훈련을 했던 연평부대 포 7중대 소속인 이들은 그날을 함께 회상했다.

"잘 지냈어? 오랜만이다. 그대론데." (추윤도 상사·이하 추) "이게 몇 년 만입니까. 상사님도 여전하신데요." (정명문 예비역 병장·이하 정)

 

"잘 지내셨습니까? 지금은 어디 계세요?" (조영길 예비역 병장·이하 조)


해병대기념관 정문에서 만난 세 사람은 악수와 함께 깊은 포옹을 나눴다. 부둥켜안은 뒷모습에서 생사의 갈림길에서 함께 싸웠던 전우에 대한 반가움이 듬뿍 묻어났다.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 34분. 정기 사격훈련 중 정비시간을 갖던 해병대 연평부대 포 7중대에 적 포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를 피해 K-9 자주포가 2시 36분 2초에 포문을 닫으며 반격을 준비하는 극적인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출처국방일보DB

기념관으로 들어간 세 사람은 한 장의 사진을 발견하고 멈춰 섰다. 3포반 K-9 자주포가 적 포격에 파편이 튀고 불길이 번지는 상황에서 대응사격을 준비하는 사진이었다. 사진 앞에서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날의 긴박했던 순간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 사진 생각나? 그날 나는 하나(1)포에서 안전통제를 하고 있었어. 둘(2)포에서 정비요청이 와서 확인하러 가던 도중에 어디선가 휘파람 소리가 나더니 갑작스럽게 포탄이 떨어졌지. 뒤를 돌아보는 순간 삼(3)포에 포탄이 떨어져 불이 난 게 보였어. 순간적으로 두려웠지만, 저 화재를 진압하지 않으면 2차 인명피해가 발생하겠다는 생각에 소화기로 불을 끄기 시작했지." (추)


"당시 삼포 사수였던 제가 그 안에 있었잖아요. 사격을 마무리하는데 갑자기 칠판 긁는 소리보다 10배쯤 크고 기분 나쁜 소리가 나고 쇠 찢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거예요. 그저 물속에서 누가 물장구치는 소리를 듣는 것처럼 ‘동동’ 소리만 났어요. 지금 생각하면 궤도 바로 옆에 포탄이 떨어지면서 일시적으로 청각이 마비된 것 같아요. 아무리 악을 써도 상대방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상태에서 포문이 열려 있다 보니 불이 안으로 다 들어오는 거예요. 저 사진은 당시 제일 선임병이었던 제가 부사수에게 포문을 닫고 들어오라고 할 때 찍힌 겁니다." (정)


"네가 삼포에 있었어? 포탄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저렇게 나와 있는 모습이 대단하지. 난 삼포에 있던 너희들이 다 죽은 줄 알았어. 불은 껐지만, 사람이 한 명도 안보였으니까." (추)


"저도 통신병으로 사격훈련을 지원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포탄이 떨어지더니 통신이 끊긴 겁니다. 겨우 유선으로 지휘통제실과 각 포반을 연결했습니다." (조)

연평도 포격도발 당시 연평부대 포7중대 3포 사수였던 정병문 예비역 해병 병장.

출처이상신PD

자연스레 대화의 주제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발휘됐던 해병의 투혼으로 옮겨갔다.


"영화 같은 거 보면 전투에서 다들 무서워하고 숨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무서운 순간은 딱 1초뿐이었습니다. 대신 화가 났어요. 한솥밥을 먹던 포반장님이 관자놀이 쪽에 파편을 맞아 피를 흘리는 모습을 보니 복수하고 싶은 생각뿐이었지요. 우리 포는 사격통제기가 포탄 파편에 맞아 자동사격이 안 되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위에서는 대기하라고 하셨는데 다들 싸울 의지가 불타올랐죠. 그때 중대장님과 반장님 목소리가 평소와 똑같이 차분해서 놀랐습니다. 리더의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때 알았습니다. 그분들까지 흥분했으면 저희도 덩달아 흥분했을텐데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거든요. 반장님을 대신해 제가 통신으로 자동사격이 안 되니 수동으로라도 사격하겠다고 보고드렸죠. 그리고 잠시 소강상태 때 사격을 위해 다들 포 밖으로 뛰어나가 미친 듯이 각자 할 일을 했습니다. 극한 상황에서 초인적인 힘이 나온다잖아요. 한 개 20kg이 넘는 포탄은 평소에 하나 들기도 힘든데 그땐 다들 양손에 하나씩 들고 오더군요. 그걸 보며 강하게 훈련받은 해병대가 실전에서 강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날 우리는 최고였고 누가 뭐래도 진짜 해병이었습니다." (정)

연평도 포격도발 당시 연평부대 포7중대 정비담당이었던 추윤도 상사.

출처이상신PD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어. 삼포에 난 불을 끄고 넷(4)포를 거쳐 둘(2)포로 가려는데 넷포에서 대응사격을 하고 있더라고. 한 포반원이 포 내부 포탄을 다 쓰고 외부 포탄을 자주포로 옮기는 걸 보고 나도 도왔지. 6~7발쯤 나르다 포탄을 발에 떨어트렸는데 하나도 안 아픈 거야. 오후 2시 30분쯤 포격도발이 일어나고 대여섯 시쯤 처음 휴식 시간을 갖는데 그제야 갑자기 발이 아프더라고. 전투화를 벗어보니 발등이 엄청나게 부어 있더군. 압박붕대로 묶고 다시 일하다 다음 날 X-레이를 찍어보고서야 골절이란 걸 알았지." (추)


"상황이 발생하니까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 몸에 밴 동작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후임들에게 항상 훈련은 실전처럼 하라고 얘기해주고 싶습니다. 나중에 어떤 상황이 발생하면 그 훈련이 가장 큰 힘이 되니까요." (조)

연평도 포격도발 당시 연평부대 포7중대 통신병이었던 조영길 예비역 해병 병장.

출처이상신PD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에는 예비역들의 대화에서 흔히 배어있는 들뜬 마음 대신 아쉬움과 슬픔이 느껴졌다. 당시 해병대의 대응을 둘러싼 차가운 여론과 무관심 때문이리라. 세 사람이 이날 모인 것도 그런 무관심과 망각에 맞서기 위해서였다.


"전역을 2주 앞두고 포격전이 일어났고 제가 포격전 후 가장 먼저 전역한 병사라 인터뷰 요청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다 거절했죠. 당시 전사한 고 서정우 하사가 부대에서 친하게 지냈던 고향 친구였거든요. 용감하게 싸운 기억은 자부심이 됐지만, 친구의 전사는 아픈 상처였습니다. 사회에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을 텐데 그걸 못하고 먼저 갔다는 게 믿기지 않고 안타까웠습니다. 그런데 맘이 아프다고 피하니까 사람들이 잊더라고요. 역사란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모여 만들어지는 거니까 이제부터는 계속 얘기하려 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싸웠는지를요." (정)


"당시 언론에는 ‘실패한 작전이었다’, ‘장비가 고장났다’ 등의 보도가 났지. 이 때문에 사기가 많이 떨어졌지만 근무 부대를 옮겨달라기는커녕 억울함을 토로하며 한 번만 더 기회를 주면 적을 박살내겠다고 말하는 대원이 많았어. 그 후 포 안에서 한 달 넘도록 먹고 자면서 한 번 더 싸울 기회를 기다리기도 했지." (추)


"매년 11월 23일만 되면 그날의 일이 생각나요. 하지만 그날을 기억하는 국민이 적으니 아쉽고 섭섭하죠." (조)


"전역하고 처음 화낸 일이 기억나요. 택시 기사님께서 절 보더니 어느 부대에서 근무했냐고 물으셨죠. 연평부대라고 답했더니 ‘아! 우리가 또 당한거지?’ 이러시는 거예요. 그 순간이 울분이 터졌습니다. 아니라고, 우리는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고 소리쳤던 일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정) 

해병대기념관 연평도 포격전 전시관 앞에 선 3인의 해병. 왼쪽부터 조영길 예)병장, 추윤도 상사, 정병문 예)병장.

출처이상신PD

짧아서 더욱 아쉬운 만남을 마치고 각자의 일터로 돌아가는 세 사람은 우리 국민을 향한 북한군의 무차별 포격으로 병사 2명과 민간인 2명이 숨진 7년 전 그날을 기억해 달라고 당부했다.


"당시 북한군은 연평도를 향해 170여 발을 기습적으로 발사했고 우리 중대는 80여 발을 대응사격했습니다. 당시 상황은 절박했고,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는 것, 그것만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고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추)

군사전문기자 김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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