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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혈할 피, 처음으로 데워서 투여했던 6·25전쟁

국방홍보원 작성일자2017.08.03. | 247,016  view

독자 중에는 본인 혹은 가족 중에 수액 치료, 혹은 수혈을 받은 분이 계실 것이다. 보통 ‘링거(Ringer’s lactate solution)’라고 불리는 500㏄ 혹은 1000㏄ 비닐백을 폴대에 걸어 놓으면 주사침이 연결된 관과 수액 백 사이에 있는 손가락같이 길쭉한 용기 안으로 물방울이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똑, 똑 떨어지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담당 간호사는 회진 때마다 밀대로 떨어지는 속도를 조절한다. 이 용기가 공기필터다.

source : 삽화=김성욱

1900년 카를 란트슈타이너(Karl Landsteiner)가 사람의 피에는 세 가지의 동종응집소(isoagglutinin)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규명해 A형, B형, C형(O형)의 세 가지로 혈액형을 분류했다. 1916년 로우스(Rous)와 툼(Tum)이 소금(salt), 동위구연산염(isocitrate)과 포도당(glucose)을 섞어 항응고 보존제를 만들었는데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때 수혈에 이용됐다. 제2차 세계대전부터 6·25전쟁 직전까지의 수혈은 환자의 침상 옆에서 헌혈자에게서 50~100mL 정도의 혈액을 직접 채혈해 즉시 수혈해주는 직접 수혈 방법이었다.


6·25전쟁 때는 미국 본토에서부터 항응고제 ACD에 보관되어 공수한 전혈(Whole blood)로 미군 의료진을 통해 전상자들에게 수혈이 시행돼 우리나라에서도 수혈이 보편화됐다.

공기필터가 없는 유리 수혈병.

이동외과병원(MASH: Mobile Army Surgical Hospital)의 군의관들은 그들의 경험을 토대로 여러 후향적 연구를 시행해 외상 치료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중 하나가 수혈 기법의 발전이다. 하버드 대학의 생리학자 월터 캐넌(Walter Cannon·1871~1945)은 클라우드 베르나르(Claude Bernard·1813~1878)가 처음 말한 내환경(milieu interieur, the environment within)을 확대해 사람의 몸은 늘 일정한 상태를 유지한다는(항상성·homeostasis) 학설을 1932년 그의 유명한 책 『몸의 지혜(Wisdom of the body)』에서 밝혔다.


캐넌은 자신의 학설에 따라 수혈하는 피도 데워서 투여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었으나, 정작 이것이 실행된 것은 6·25전쟁의 군의관들에 의해서다. 그들은 냉장 보관된 혈액을 수혈 직전에 데워서 ‘더운 피’를 수혈했다. 군의관들은 수술 전후에 환자의 혈압을 유지하려고 사용하는 혈관 수축제의 효과가 수혈보다 못하다는 것도 경험으로 밝혀냈다.

수액 치료 시 사용하는 공기필터.

6·25전쟁 초기에 혈액이나 수액을 투여할 때는 공기여과기 없이 유리병에 담긴 액체를 직접 투여했고 그 결과 공기색전증이 몇 사례 발생했다. 이런 사례보고의 결과로 수액병에는 꼭 공기필터를 사용하게 됐다.


우리나라에서의 수혈은 6·25전쟁 중 미군을 통해 수혈 방법을 배운 한국 군의관들에 의해 수혈의 필요성이 강조됐다. 민간보다 군에 의해 먼저 도입된 것이다. 1952년 해군에 ‘혈액고(혈액은행)’가 최초로 설치됐고 이후 육군·공군에 혈액은행이 설립됐다.


『손자병법』의 저자 손무가 “장수는 전장에 나오면 비록 군주의 명령이라도 거부해야 한다”라고 한 말이 생각난다. 전장의 군의관들은 기존의 치료법을 답습하지 않고 실전에서 얻은 지혜를 바로 실전에 사용해 많은 목숨을 구한 것이다.

<황건 인하대 성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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