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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땅굴 발견 42주년 특집] 북한의 끊임없는 야욕 '땅굴'

조회수 2017. 4. 19. 14:0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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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땅굴 발견 42주년 특집

북한의 끊임없는 야욕 ‘땅굴’


적화통일을 향한 보이지 않는 도발,

북의 끊임없는 야욕을 그대로 전해주는 충격과 공포의 현장,

북의 화전양면전술 대표 사례, 

지금 누리는 평화의 역설을 각인시키는 곳,

북한의 침략의도를 눈으로 확인시켜주는 ‘남침용 땅굴’을 묘사하는 문구들이다. 

북한은 1971년 9월 25일 김일성의 명령에 따라 땅굴작전을 개시했다. 이른바 ‘9·25교시’라 일컬어지는 명령에서 김일성은 “남조선을 해방하기 위한 속전속결 전법을 도입해 기습전을 감행할 수 있게 하라.”고 지시했다.

현재까지 발견된 북한의 남침용 땅굴은 총 4개.


제1땅굴은 1974년 11월 경기도 연천에서, 제2땅굴은 1975년 3월 강원도 철원에서, 제3땅굴은 1978년 10월 경기도 파주에서, 제4땅굴은 1990년 3월 강원도 양구에서 발견됐다. 

오는 19일은 제2땅굴이 발견된 지 42년이 되는 날이다. 

국방누리는 제2땅굴 발견 42주년을 맞아, 남침용 땅굴의 실체를 알아보고 북한의 끊임없는 야욕의 전말을 파헤쳐 보고자 한다.

● 제1땅굴

북한의 남침용 땅굴의 존재가 처음으로 드러난 것은 1974년 9월. 귀순자 김부성에 의해서다. 땅굴 탐사 끝에 군사분계선 남방 약 1.2km 지점에서 땅굴이 발견되면서 그의 진술은 사실로 밝혀졌다. 땅굴이 발견된 1970년대 초반은 남북 적십자예비회담과 7.4남북공동성명의 발표로 남북관계가 우호적인 분위기였기 때문에 땅굴 발견에 따른 충격은 더욱 컸다. 그 이후에도 제2땅굴, 제3땅굴, 제4땅굴이 끊임없이 발견되면서 적화통일을 향한 북한의 행실이 여실히 드러났다. 북한의 남침용 땅굴 발견은 북한이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어떠한 속임수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 계기가 됐다. 

제1땅굴은 1974년 11월 15일 오전 7시 35분에 비무장지대를 수색하던 육군25사단 수색대에 의해 발견됐다. 수색임무를 수행하던 중 땅 밑에서 수증기가 올라오는 것을 포착한 수색대는 지표에서 약 46㎝ 아래에 터널이 있음을 발견하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흙을 파다가 군사분계선 북쪽으로부터 약 3분간에 걸쳐 300발 가량의 기관총 사격을 받았다. 이 사격으로 3명이 전사하고 5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 날 밤 주한유엔군사령부는 대변인 성명을 통해서 북한의 정전협정 위반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군사정전위원회에 정식 제기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제1땅굴의 전모가 드러났다. 

땅굴이 발견된 장소는 경기도 연천군 고랑포 동북쪽 8㎞ 지점으로 군사분계선에서 남쪽으로 약 1.2㎞ 지점이었다. 땅굴은 폭 1m, 높이 1.2m의 조립식 콘크리트 벽과 콘크리트 슬래브 천장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지표에서 250∼450㎝ 깊이로 얕게 파져 있었다. 220V·60W의 전선, 전등시설이 되어 있었으며, 전체 길이 3.5㎞의 땅굴 안에는 레일이 깔리고 궤도차가 놓여 있었다. 또한 땅굴에는 우회통로와 궤도차를 돌리는 지점 및 취침장소와 배수시설도 갖춰져 있었다. 유사시 전술능력은 1시간에 1개 연대 이상의 무장병력을 통과시킬 수 있었다. 궤도차를 이용할 경우 포신과 중화기 운반도 가능했다. 땅굴이 발견된 후 우리 정부는 군사정전위원회를 통해 북한측에 땅굴현장의 공동조사를 제의했으나 북한측은 이를 거부했다. 이에 땅굴이 발견된 지 5일 후인 11월 20일 한미 공동조사반이 수색에 나섰는데, 북한이 매설한 폭발물에 의해 국군장교 1명과 미군장교 1명이 순직하고 6명이 부상당하는 참변을 겪기도 했다. 

● 제2땅굴

제2땅굴은 제1땅굴이 발견된 지 4개월 뒤인 1975년 3월 19일, 철원 동북쪽 13㎞지점이자 군사분계선 남쪽 800m지점에서 발견됐다. 제 1땅굴이 비교적 얕게 굴착돼 있어 발굴이 용이했던 반면, 그 보다 훨씬 아래에서 소리가 들렸던 제 2땅굴은 그 실체를 확인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항공사진 등을 근거로한 시추탐사에 의해 발견됐다. 땅굴을 조사한 결과 규모는 폭이 2.1m, 높이 2m, 전체 길이 3.5㎞로 군사분계선 남쪽 1.1㎞지점까지 굴착되어 있었다. 

깊이는 지표에서 50∼160m이었으며, 남방한계선 남쪽에 여러 개의 출구를 만들어 유사시에 한꺼번에 출구를 헤치고 나올 수 있도록 설계됐다. 지하수가 땅굴 속에 차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약간의 경사를 이루는 기술공법을 쓴 흔적이 역력하고, 많은 병력이 집결할 수 있는 광장이 마련돼 있었다.

군의 실험결과 이 땅굴은 시간당 구보 24,000, 속보 20,000, 도보 18,000명의 병력이 통과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정규전에서 땅굴을 통해 시간당 1개 사단 병력을 후방으로 침투시켜 군사적 요충지를 점령함으로써 전방부대를 일거에 고립시켜 전선을 붕괴시킬 수 있고, 비정규전에서는 대남공작원의 침투는 물론 후방교란을 위한 경보병 1개 여단 병력을 은밀하게 후방으로 침투시킬 수 있는 것이었다

또 야포와 차량의 통과는 물론, 땅굴의 마무리공사가 이루어졌을 경우에는 전차의 침투도 가능했다. 제2땅굴 발굴 과정에서 북한군이 설치한 지뢰와 부비트랩에 의해 8명이 전사했다.

● 제3땅굴

3땅굴은 19781017일 판문점에서 4, 군사분계선 남방 435m 지점에서 땅굴수색 시추공사를 하던 중, 한 시추공에 박혀 있던 PVC파이프가 튀어나오고 지하수가 공중으로 12m 가량 솟아오르면서 발견됐다

땅굴이 발견된 지점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군사정전위원회를 지원하는 유엔군 전진기지로부터 2㎞ 떨어진 곳으로 임진각에서 서북쪽으로 4㎞지점에 위치했다. 이 땅굴은 임진강 하구에서 판문점을 향하여 남북으로 그어진 군사분계선의 서쪽 1,200m지점으로 추정되는 북한측 지역의 입구에서부터 지하평균 73m의 암석층을 굴착하여 1,635m가량 남쪽으로 내려온 것이었다. 

폭 2m, 높이 2m로 제2땅굴과 같은 구조인 아치형이었으며, 전술능력은 1시간에 3만 명의 병력과 야포 등 중화기를 통과시킬 수 있었다.

● 제4땅굴

제4땅굴은 1990년 3월 3일 강원도 양구 북동쪽 26㎞지점에서 발견됐다. 폭 1.7m, 높이 1.7m, 지하 145m 깊이에 길이는 약 2㎞에 달하는 암석층 굴진 구조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땅굴은 동부전선에서 발견된 최초의 땅굴로 북한이 전 전선에 걸쳐 남침용 땅굴을 굴착하였음을 입증해 주고 있다.

북한은 전면전을 전개할 때 대량병력의 신속한 이동으로 중요 전략지역을 점령하고, 사회혼란이나 무장폭동이 일어났을 경우 게릴라부대인 ‘특수8군단’과 ‘경보병부대’를 침투시켜 후방을 교란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땅굴을 설계했다.

4땅굴 발견 이후 27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군은 ‘GOP를 통과하는 땅굴은 100% 탐지한다’는 신념으로 북한의 남침 땅굴 탐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 군은 이들 4개 땅굴 외에도 땅굴이 더 존재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탐지작전을 지속 실시하고 있다. 탐지 과정은 시추작전과 탐사작전, 청음작전 순으로 이뤄지며, 귀순자의 진술과 위성영상을 종합 분석해 선정된 27개의 예상 축선에서 매년 400여 공을 시추탐사하고 있다. 

이를 위해 군은 최대 1500m까지 시추가 가능한 첨단 시추장비 4종 16대와 탐사장비 8종 12대, 청음장비 34대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 세계 최고 수준의 장비로 전방사단 9300여 공을 24시간 청음하며 수위변화를 감시하고 있다.


또한 국방부는 ‘장거리 땅굴 괴담’과 같이 안보 불안감을 조장하고 군 작전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는 차원의 민원이나 민간단체의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바로잡기 위해서도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질자원연구원·광물자원공사와 같은 전문 자문기관과 타당성 검토를 통한 시추·탐사를 실시하고, 남침 땅굴 주장의 허구성에 대한 정책설명회를 개최하기도 한다.


국가 안보에 있어 적당한 긴장과 경계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정확하지 않는 정보에 대한 지나친 걱정과 확대 해석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우리 군에 대한 신뢰가 우선될 때 우리의 안보도 더욱 굳건해질 것이다.

<글 : 국방홍보원 뉴미디어팀 김보람>

<사진 : 국방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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