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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미카제와 델타항공의 실패, 공통점? 사람의 소중함 잊었다

사람이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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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사례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이 실시한 가미카제(神風) 공격의 성과는 일본 군부의 당초 기대에 훨씬 못 미쳤음. 자살 공격에 투입된 병력 중 단 14%만이 실제 적군 함정에 돌격할 수 있었음. 전세가 기울자 일본군 수뇌부는 군수공장에서 일하던 기술자와 숙련공들을 빼내 전투병으로 전장에 무작위 투입. 그 결과 항공기 품질이 갈수록 떨어져 적탄에 떨어지는 비행기보다 기체 결함으로 떨어지는 비행기 수가 훨씬 많아지는 일까지 발생, 패전의 주요 빌미가 됨.
경영 사례
델타항공은 1990년 이후 불황과 고유가의 이중고로 적자가 지속되자 대대적 인력 감축과 임금 삭감 등 구조조정을 실시. 이후 1990년대 중·후반 외부 여건이 좋아지자 임금 인상과 복지 확충을 꾀하다 2004년 또다시 대대적 구조조정을 단행. 이 과정에서 수많은 숙련 조종사와 승무원들이 회사를 떠나 2005년 파산 보호 신청을 내는 지경에 이름. 2007년 파산 보호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델타는 노스웨스트항공과 합병 후 감원을 최소화하고 임금을 인상하는 등의 조건을 내걸며 다시금 재도약의 계기를 마련.
전쟁 사례: 일본의 패전 원인과 가미카제

태평양전쟁 중이던 1944년 9∼10월경 일본은 패색이 짙어가고 있었다. 미국 함대가 남태평양의 섬을 하나하나 점령해 가면서 북상해 오고 있었지만 몇 번의 큰 해전에서 패한 일본 해군은 항공모함이나 전함이 별로 남아 있지 않아 변변한 반격조차 꾀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궁지에 몰린 일본군 수뇌부는 폭탄을 실은 비행기를 직접 적함에 돌진시키는 자살 공격을 생각해냈다.

‘가미카제(神風)’란 1274년에서 1281년 사이에 몇 차례 일본을 정벌하러 온 고려, 몽골의 연합군이 탄 함대를 그때마다 수장시켜 쿠빌라이의 일본 정복을 좌절시킨 태풍을 가리키는 말이다. 일본 해군은 이런 자살공격을 수행할 부대에 ‘가미카제 특별 공격대’라는 이름을 붙여줬고, 이후 일본 내에서는 모든 형태의 자살 공격을 가미카제라고 통칭하게 됐다.

첫 번째 공식적인 가미카제 부대는 1944년 10월19일 조직됐고 세키 유키오(關行男) 대위가 지휘를 맡았다. 그가 이끄는 5대의 제로센 전투기는 10월25일 오전 미 해병대의 필리핀 레이테 섬(Leyte Island) 상륙을 엄호하던 미 함대에 공격을 가해 호위 항공모함 ‘세인트 로(St. Lo)’를 격침하고 다른 함정 몇 척도 손상을 입혔다.


처음에는 제로센 같은 전투기에 250㎏짜리 폭탄을 두 개 달고서 조종사가 자신의 비행기와 함께 적의 함정에 돌진하는 게 일반적인 형태였다. 연료도 적진에 도달할 만큼만 주어졌다. 돌아올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가미카제 공격의 성과는 일본 군부의 당초 기대보다는 훨씬 못 미쳤다. 가미카제 공격을 시도하러 온 비행기 중 중간에 미 해군기에 의한 요격 및 미 함정의 대공포화로 대부분이 격추되고 단 14%만이 이를 뚫고 해군 함정에 실제 돌격을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 자살공격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일본군의 최고 고급 인력인 조종사가 4000명 이상 목숨을 잃었다.

일본군의 인명 경시풍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전세가 기울기 시작한 이후부터 일본군 수뇌부는 군수공장에서 일하던 기술자, 숙련공들을 빼내 전투병으로 전장에 보내기를 서슴지 않았다. 이는 일본의 항공기 생산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숙련공이 없는 공장은 비숙련 부녀자가 채웠고 이를 감독해 품질을 유지해줘야 할 기술자마저 없으니 전투기 등 항공기의 품질은 갈수록 떨어졌다.

최전선에서도 일선 정비병들에게 총을 들려 전장에 투입시키다 보니 종국에는 적탄에 떨어지는 비행기보다 기체 결함으로 떨어지는 비행기 수가 훨씬 많아지는 일도 생겼다.


결국 종전 무렵 일본군은 미군의 공격보다 더 심각한 자멸의 길을 걸어갔다. 총 60기 이상의 적기를 격추하며 일본군 조종사 중 최고의 격추왕으로 꼽히던 사카이 사부로(坂 井三郞)라는 사람은 전후에 한 인터뷰에서

“일본이 패전한 원인은 좋은 기술 인력과 숙련된 전사를 가볍게 여긴 탓”이라고 단언했다.

미국의 항공운항산업은 1938년 설립된 민간항공위원회(Civil Aeronautics Board)가 항공사들의 노선과 운임, 신규 진입을 결정하는 규제 환경하에서 1970년대까지 꾸준한 성장을 지속해왔다. 그런데 카터 행정부 시기인 1978년 새 법이 통과되면서 이 산업은 구조적인 변화를 맞이했다. 이 법으로 노선, 운임, 신규 진입에 관한 규제가 없어지면서 저비용 항공사들이 대거 진입하는 등의 압력으로 항공사 간 가격경쟁이 격화됐다.


이에 따라 여객 운임이 크게 떨어졌고, 이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항공사들이 인수되거나 도태되기 시작했다. 이미 1980년대 초에 15개의 기존 항공사들이 한계 상황으로 몰리거나 인수되는 상황이 전개됐다.

설상가상, 1990년대 초 걸프전 발발로 유가가 폭등해 미국 경제가 큰 불황에 빠지면서 고(高)유가와 수요 감소라는 이중고가 항공운항산업을 엄습했다. 그 결과 1980년대 이미 부실화가 지속적으로 진행되던 팬앰(Pan Am), 이스턴(Eastern) 등 대형 항공사들이 파산하면서 업계의 구조재편이 다시 한번 진행됐다.


항공운항 산업이 이렇듯 큰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 기존 업체 중 대형 업체인 델타항공(Delta Air Lines)과 규제완화 이후의 신생 항공사 중 두각을 나타내던 사우스웨스트항공(Southwest Airlines)의 엇갈린 행보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두 회사 모두 똑같은 어려움에 직면했지만 인력 관리 측면에서 상반된 전략을 취한 결과, 이후 10년간 상반된 성과를 보였기 때문이다.

출처@Hiljon

항공운항 산업은 특히 사람이 중요한 산업이다. 가령 조종사의 숙련도에 따라 안정적인 비행 환경과 편안한 이착륙 여부가 결정된다. 고객 접점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승무원의 마음가짐과 태도는 정시 이착륙 여부 및 전반적인 서비스 품질을 결정한다. 이러한 서비스 품질은 그대로 항공 운항사의 평판으로 돌아와 매출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1970년대 말 항공운항 산업의 규제완화가 시작될 때, 델타항공은 메이저 항공운항 회사로서 단단한 입지를 굳히고 있었다. 이 회사도 ‘사람이 비즈니스의 기본’이라는 인식하에 우수한 인재를 붙들고 서비스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과 고용안정을 제공했다.


이렇게 좋은 대우는 노선 및 요금 규제로 인해 창출되는 수익으로 뒷받침할 수 있었다.


1980년대 초 규제완화의 파고로 업계가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과 임금삭감을 단행할 때에도 이 회사는 정리해고를 전혀 하지 않았고 오히려 당시 상대적으로 양호했던 경영실적에 근거해 상당히 높은 수준의 임금인상을 단행했다. 이에 종업원들은 우수한 고객 서비스로 회사에 보답했고 이는 다시 회사 성장의 큰 동력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1990년 이후 불황과 고유가의 이중고로 인해 4년간 적자가 지속되자 당시 최고경영진은 기존 인력관리 정책을 바꿔 약 1만5000명(당시 전체 직원의 약 17%)을 정리해고 했고 임금까지 삭감했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델타항공의 서비스 질은 크게 악화됐고 고객불만도 산업 평균 이상으로 증가했다.


그 후 1990년대 중·후반 세계 경제의 호황에 따라 흑자로 전환된 이 회사는 예전의 인력관리 정책 기조로 회귀해 임금 인상과 복지 확충을 꾀했다. 그러나 2001년 9·11 테러 사태 후 항공산업이 다시 침체에 빠지자 델타항공 경영진은 2004년 또다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한다.

무려 30% 이상 임금을 삭감했고, 퇴직연금 및 복지혜택 축소 등을 통해 총 10억 달러 상당의 인건비를 감축했다. 그러나 이런 과감한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경영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악화일로를 걸었다.


결국 델타는 2005년 3월 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을 냈다. 이는 두 차례에 걸친 인력 구조조정의 과정에서 수많은 숙련된 조종사와 승무원들이 회사를 떠난 결과 그들에게 체화돼 있던 기술, 지식, 세부적인 업무 노하우 등 무형의 자원까지 회사를 떠나게 됐기 때문이다.

파산의 길목에 서 있던 델타항공이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계기 역시 ‘사람’이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2007년 파산보호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델타항공은 이듬해 대형 항공사인 노스웨스트항공(Northwest Airlines)과 합병한다.

위기가 닥쳤을 때 인력 감축과 임금 삭감 등의 악수를 둬 우수 인재가 유출하고 고객 이탈로 한때 곤욕을 치렀던 델타와 달리 사우스웨스트항공은 초지일관 사람을 중시하는 인사 정책 기조를 유지했다.

출처https://www.freeenterprise.com

켈러는 추수감사절이 오면 직원들과 함께 수하물 적재를 하거나 직원들과 파티를 함께 즐기는 등 권위의식을 버리고 ‘직원도 즐겁고, 고객도 즐거운 회사’를 만드는 데 솔선수범했다.


이러한 창업주의 의지에 따라 자연스럽게 임직원들은 목표와 지식을 공유하고 긴밀한 의사소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며 서비스 품질과 효율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

실제로 사우스웨스트항공은 델타항공 등 타 항공사들이 어려움을 겪던 2000년대 중반에 승객이 다음 비행기를 기다려야 되는 시간인 ‘비행기 운항 간격’이 가장 짧고, 항공기 한 대당 종사하는 종업원 수도 업계 최저 수준이었다.


이로 인해 고객 서비스 분야에서도 미국 항공업계의 품질대상인 ‘트리플 크라운(Triple Crown, 운항지연, 고객 불만, 수하물 분실률을 최저로 달성하는 항공사 선정)’을 가장 많이 수상했으며 항공안전에 있어서도 최소의 노선이탈률을 기록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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