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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의 비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파도

조회수 2021. 2. 3. 08:1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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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주의 탄생에 영향을 끼친 자포니즘

날카롭게 발톱을 세우고 있는 파도

그 밑에 거대한 파도에 휘말리고 있는 배와

살기위해 매달린 사람들


그 광경 너머 작지만 

굳건하게 버티고 선 후지산까지


귓가에 파도의 거대한 포효가 들리는 듯

생동감이 넘치는 이 그림


일본의 예술가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입니다.

이 작품은 강렬한 파도만큼이나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전해줍니다


특유의 색감과

힘이 넘치는 묘사는 

보는 사람들에 기억 속에 

강하게 각인되죠


실제로 아주 많은 곳에서 

이 작품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옷, 이모티콘, 맥주에 이르기까지

‘파도’의 강렬함이 수놓이며 

청량함과 강인함을 담고 있죠


현재까지도 일본을 대표하는 그림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이 작품은 예술가들에게도 

큰 영감을 준 작품입니다


인상파의 창시자라 불리는 

클로드 모네도


또 인상파의 대표 화가로 알려진 

빈센트 반 고흐도


이 작품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특히 고흐는 호쿠사이의 파도에 

완전히 빠져버렸습니다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에서

직접 호쿠사이의 작품에 대한 감상을 

언급하기도 했죠


"

파도의 발톱들...

배들은 거기에 걸려든 거야

난 그게 다 느껴져

"



이 그림은 사실 화가가 

붓으로 그린 그림이 아니라

목각 판화입니다


나무틀에 그림 모양을 새겨넣고

잉크를 발라 찍어낸 인쇄물이라는 건데요


이렇게 일본의 일상적인 모습을 담은 

판화를 ‘우키요에’라고 부릅니다


한 번 틀을 만들면 

계속해서 찍어낼 수 있었기 때문에

이런 판화의 값은 아주 쌌는데요


1700년대 일본에서 우키요에는

보통 우동 한 그릇 값이면 

구매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때문에 당시만 하더라도

일본 내에서 고급예술로 취급받진 못했죠


‘우키요에’라는 말은

‘부유하는 세상을 그린 그림’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는 짧은 인생을 들뜬 기분으로 

살아가자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죠


때문에 우키요에의 작품 속에는

현재 세상과 풍류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담겨 있습니다


서민들이 즐기고 있는 일상의 즐거움들이 

작품 속에 담겨있죠


고급문화로 취급받지 못하던 우키요에는

붓으로 그린 그림과 차별화된 선명한 선,

밝은 색감과 서민의 관심사를 다루며 

일본의 민중 사이에서 유행하기 시작합니다


이 그림을 그린 호쿠사이는

이런 우키요에 화풍이 일본에 

유행하던 시점에 태어났죠


호쿠사이는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어느날 그의 손재주를 알아본 

판각공의 조수로

우키요에에 입문하게 되는데요


어릴적부터 뛰어난 관찰력으로 

능력을 인정받던 호쿠사이는

19살이 되던 해 당대 최고 우키요에 화가였던

가츠카와 순쇼의 제자가 됩니다


호쿠사이의 데뷔작으로 알려진 

이 그림을 스승의 화풍과 비교하면 

어딘가 비슷한 구석이 있죠

그리고 이시기부터 어린 호쿠사이가 그린
파도의 초기 형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순간도 똑같지 않게 
변화하는 파도는
어릴적부터 호쿠사이의 
큰 관심사였습니다

호쿠사이는 스승님을 
존경했습니다

때문에 자신의 화풍 속에
스승님의 화풍을  담으려 노력했죠

하지만 호쿠사이에겐 
남들과는 다른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는 욕구 
또한 있었습니다

이 그림은 호쿠사이가 

처음으로 돈을 받고 그린 

그림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의뢰받았던 대로 

아이의 초상화를 마무리하던 

호쿠사이는 순간 즉흥적으로 

‘이것’을 그려넣습니다


바로 기둥 뒤에서 아이를 

주시하고 있는 이 붉은 존재


악마를 잡고 액운을 막는 신,

‘쇼키’였죠


스승님의 가르침을 벗어나

자신만의 색깔 

한 방울 더한 시도였습니다


호쿠사이의 센스에

아주 만족한 의뢰인은

그림값을 후하게 치렀고

호쿠사이는 자신의 그림에

자신감을 얻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호쿠사이는 스승님으로부터

파문을 당하게 되는데요


스승의 화풍 뿐만 아니라

여러 화풍을 섞어 따라 그리는 모습이

미움을 샀기 때문이죠


그는 결국 스승을 따라 쓰던

이름을 버리고 독립해

자신만의 화풍을 개발하기 시작합니다

이후 그는 새로운 화풍을 만들 때마다

이름을 계속 바꿨다고 하는데요


현재까지 확인된 필명만 

서른 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한 곳에 메여있기보다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찾던 호쿠사이


그는 작품활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특히나 이 시기 당대 일본의 

최고 인기 소설가였던 

바킨과 만나면서 

그의 명성이 꽃피우게 되는데요


바킨은 사무라이의 아들로 태어나

중국과 일본 무사들의 

흥미진진한 무용담을

수십 권의 소설로 썼던 사람입니다


페이지 밖으로 

쏟아져 나올 것 같은 

호쿠사이의 삽화와 

바킨의 무용담이 만나자

책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기 시작하죠


이토록 생동감 넘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건

호쿠사이의 집요한 

관찰력 덕분이었습니다



그는 아주 어릴 때부터

동물과 식물

사람들의 생활이나 도구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그렸습니다


그러니 평면 위에 선으로 

그린 그림들이지만

순간적인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었죠


그의 그림이 하도 유명해지다 보니

그의 스케치들만 모아 

책으로 내기도 했는데


이것이 바로 

<호쿠사이 만화>입니다


그 권수만 15권에 달하고

그 안에 실린 그림은 

4,000여 점이 넘는다고 하네요


실제로 일본 ‘만화’의 기원을

<호쿠사이 만화>에서 찾기도 합니다



호쿠사이가 다양한 

표정을 연구하면서


실제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콧김을 그리거나 과장된 표현으로

익살스러움을 살린 기법이

지금의 만화와 아주 비슷하기 때문이죠


그는 70살이 될 때까지,

정말 쉬지 않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호쿠사이의 아내가 죽고

그마저 건강이 나빠지면서

생애 처음으로 붓을 

내려두게 되는데요


여유로운 노후를 즐길 틈도 없이,

손자의 막대한 도박 빚에 쫓겨

늙은 호쿠사이는 한순간에 

거리에 나앉는 신세가 됩니다


그는 손자의 도박빚을 청산하기 위한

야심찬 프로젝트를 생각해내죠


그는 후지산의 36가지 

절경을 담은 시리즈,

<후지산 36경>을 만들기로 합니다



19세기 초 일본에서는 

여행 붐이 일어나던 시기였습니다


바닷길은 닫혀있었기 때문에

주로 일본 곳곳의 성지를 

순례하는 코스가 인기 있었다는데요


그중에서도 빠질 수 없는 곳이 

바로 후지산이었다고 합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활화산으로서

두려운 존재이지만

후지산에 내린 눈은 봄이 되면 녹아

주민들에게 물을 공급하는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죠


때문에 후지산은 오랜 세월 동안 

신성한 곳으로 여겨졌습니다


호쿠사이는 그 흐름을 읽고,

이 산을 여행하고 

동경하는 이들에게

기념 포스터를 만들어 

팔려고 했던 거죠


그리고 그의 경쟁자들과 

차별화를 두기 위해

그는 후지산의 모습뿐 아니라

후지산을 배경으로 한 

서민들의 일상을 담아냅니다


어떤 그림들은 후지산보다 노동자들이 

더 주인공처럼 보이기도 하죠


그 그림들과 같은 

맥락에서 바라본다면

이 파도 그림의 주인공은 

파도가 아닐 수 있습니다


실제 이 그림의 배경으로
추정되는 곳은 도쿄만 근처
바다 위입니다

이곳에서는 호쿠사이의 그림과 같은
거대한 파도가 자주 목격되기도 하죠

그 파도를 항해하기 위해서
특수한 형태의 배가 생겨났는데요

바로 호쿠사이의 그림 속에 있는 
이 배입니다

이 배는 어선임과 동시에
바다 위 물건을 실어나르는 
화물선이기도 했습니다

그림에서 알 수 있듯,
이 배 위의 사람들은 지금 
낚시 중이 아닙니다

주로 네 명이 정원인 이 배 위에
여덟 명이 타고 있는 것도 
눈여겨볼 지점이죠

이런 점으로 유추해보자면,
이 사공들은 배에 실린 물건을
최대한 빨리 어디론가 
옮기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 거대한 파도를 
뚫고 가야 할 만큼  급히 옮겨야 하는 
물건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여기 후지산 위 눈의 양을 보면

지금 그림 속 계절은 

막 눈이 녹기 시작한 봄입니다


일본에서는 새해 가장 

처음 잡힌 참치를

아주 귀하게 여겨 부르는 게 

값일 정도라고 합니다


이는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전통으로

2019년에 거래된 새해 첫 참치 

한 마리의 최고 낙찰가는

34억 원에 달했죠


그러니 어부들은 

얼른 새해 첫 수확을

경매장으로 가져가기 위해 

마음이 급해졌을 겁니다


그러니 이들에게

거대한 파도쯤이야 

문제도 아니었을 테죠


여기까지 생각이 닿는다면

그림의 주인공은 파도에서 

노동자로 옮겨 갑니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 듯 

보였던 이들은 갑자기 더 비장하고 

용맹해 보이기까지 하죠


호쿠사이는 이 그림이 삽십육경 중

가장 주목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예견했던 것일까요?


이 거대한 파도 아래에는 

세 척의 배가 보입니다


그리고 저 멀리 파도의 

일부처럼 보이지만 후지산도 있죠

처음 이 그림이 

서양에 소개되었을 땐

무자비한 자연의 

모습으로 해석되었습니다



마치 재난 영화의 

클라이맥스 장면처럼

인간은 그 사나운 힘 아래

쉽게 부서지는 

나약한 존재인 거죠


하지만 이 그림은 일본인들에게

전혀 다른 의미로 읽히는데요


그림 속 어부들은 

파도 앞에서 혼비백산해

성난 파도에게 목숨을 

구걸하고 있지 않습니다


일사불란하게 몸을 낮게 숙이고

함께 이 파도를 

넘어설 준비가 되어있죠


파도의 관점이 아닌

배 위 어부들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 그림은 인간의 용기와 

끈기를 상징하게 됩니다


호쿠사이가 파도 작품을 

내놓았던 1830년대는

일본이 강력한 쇄국정책을 

실시하던 때입니다


일본에서 외국인이 

들어올 수 있는 항구는

딱 한 곳, 나가사키였는데요


이곳에는 주로 

네덜란드 상인들이 드나들었죠


네덜란드의 상인을 통해 

유럽의 화풍이 일본 화가들 사이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호쿠사이도 그중 한명이었죠

호쿠사이는 특히나 

이 시기 파도에서 영감을 받아

파도 연작을 그리기 시작하는데요


이 작품에도 서양의 기법들이

곳곳에 묻어있습니다


멀리 있는 것은 작게 보이는 

원근법이 적용되어 있고

그리고 마치 서양화의 액자처럼

그림의 경계를 장식한 것을 

발견할 수 있죠


이 작품이 유독 돋보일 수 

있었던 데에는 또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바다의 색을 

표현하기 위한 쓰인

이 독특한 청색 원료 때문인데요


이 원료의 이름은 

프러시안 블루입니다


인간이 만든 최초의 합성 안료로

1704년 프러시아에서 

발명된 인공 원료죠


서양에서 온 이 강렬할 푸른색은

파도의 시작이 그랬듯,


호쿠사이의 작품 속 

서양화의 영향을 증명합니다


그 영향은 원근법이 적용된

입체적인 구조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죠


호쿠사이가 9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의 수문이 열리게 됩니다


그리고 일본 문물은 빠르게

서구 사회로 흘러 들어가게 되죠


그중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이

바로 우키요에였습니다


오랫동안 유럽 미술계에서는

그림이란 사실에 가장 

가깝게 그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왔었습니다


하지만 사진기의 발명으로

화가들은 갈 곳을 잃고 있었는데요


그런 이들에게 동양에서 온 

우키요에는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화가가 자기 마음이 

닿는대로 그린 그림


사실과 동떨어져있지만 

개성이 넘치는 그림


특히나 현실을 떠나 완전히 

평면적인 인상의 우키요에 작품들은

서양의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충격을 가져다 좋습니다


유럽 예술가들은 너도나도

우키요에를 손에 

넣기 위해 혈안이 되었고,


자신들의 작품 속에 자랑하듯 

그려넣었습니다


똑같이 따라그리기도 했죠



유럽을 강타한 

일본 예술의 열풍을

‘자포니즘’이라고 불렀습니다


호쿠사이의 작품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를 비롯한 

수많은 예술가들이

이 파도에 빠져들었고


이는 또다른 화풍의 

탄생으로 이어졌습니다


바로 ‘인상주의’였죠


이들이 예술로 표현하고 

싶은 세상은 더 이상 사실에 

가까운 모습일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화가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인상’이었고


그 움직임의 중심에는 

호쿠사이가 있었죠


하지만 호쿠사이의 그림은

정통 우키요에도,

정통 일본 회화도 

아니었습니다


<가나가와의 거대한 파도>는

동양과 서양의 요소들을

자신만이 예술 언어로 

통역한 결과물이었습니다


서양 예술계를 강타했던

호쿠사이의 파도는 

다른 우키요에의 그림들과 함께

세계 회화역사의 

새로운 조류를 만들어냈습니다


예술계를 한차례 강타했던 파도는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영감이 되며 사랑받고 있는데요


여러분은 이 파도 아래 

어떤 것이 느껴지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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