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 속 '진짜' 주인공은 누구일까? |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조회수 2020. 4. 13. 10: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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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스케스의 작품 속 숨겨진 이야기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는 '이 작품'만을 위한 방이 따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어두컴컴한 방에 작품 한 점만이 특별한 조명을 받으며 놓여 있죠.
17세기 스페인 화가 벨라스케스의 걸작, 〈시녀들〉입니다.
〈시녀들〉은 왜 특별할까요?

이 그림이 특별해지는 순간 중 하나는, 가까이 가서 자세히 살펴볼 때입니다.

이 그림은 당시의 일반적인 방식으로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당시는 대상의 형태를 정확하게 데생한 뒤, 정성스럽게 색을 칠하는 게 일반적이었는데요.
이 그림을 다가가서 보면, 소매에 달린 레이스 장식이나 금발머리는 물감을 그냥 쓱쓱 발라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조금 떨어져서 보면 그 물감자국들은 신기하게도 레이스 장식이 되고, 금발머리가 되죠.
따라서 이 그림은 19세기 프랑스에서 등장한 인상주의의 예고편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밑그림 없이 몇 번의 붓질로 대상을 표현하는 기법은, 훗날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었죠.
마네뿐만이 아닙니다.

1957년 피카소는 무려 58점의 패러디를 그려 존경의 마음을 드러냈고,
살바도르 달리는 작품 속 인물을 숫자로 대체한 유머러스한 작품을 그려내기도 합니다.

〈시녀들〉의 어떤 특별함이 사람들의 시선을 이렇게 붙잡는 걸까요?

벨라스케스의 이 걸작은 어떤 비밀을 품고 있을까요?
이 그림을 그린 벨라스케스는 1599년 스페인 세비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예술에 대한 재능을 보여주었고, 1623년 스물넷의 나이에 스페인의 궁정화가가 되죠.
이후 30년 동안 궁정화가로 일하면서 수많은 왕실 초상화를 남겼습니다.

특히 국왕인 펠리페 4세와 강한 친분을 쌓는데요.
왕의 총애가 얼마나 대단했냐면, 왕자 카를로스가 죽자 그의 방을 벨라스케스의 화실로 내어줄 정도였습니다.

〈시녀들〉의 배경이 되는 공간이죠.
그는 자신의 화실을 직접 고른 작품들로 채웠습니다.
루벤스의 〈아라크네를 벌주는 팔라스 아테나〉와 요르단스의 〈아폴로와 판〉이 걸려 있는데요.

이 작품들은 벨라스케스의 속마음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두 그림은 모두 신에게 도전했다가, 벌을 받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판은 음악의 신 아폴론과 연주 대결을 벌이고, 아라크네는 직조의 신 아테나와 직조 대결을 벌이죠.
17세기에 그림은 시나 음악처럼 예술로서 대접받지 못했습니다.

화가는 예술가가 아니라 기술자 취급을 받았죠.
하지만 벨라스케스는 신에게 도전하는 그림을 걸어놓고 캔버스 앞에 서서 우리를 바라봅니다.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지켜보라는 듯 말이죠.

그림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예술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고 선언하는 것 같습니다.

그의 가슴에 그려진 붉은 십자가는, 그 결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이건 스페인 산티아고 기사단의 상징인데요.

1658년 30년 넘게 궁정화가로 일한 공로를 인정받아 기사 작위를 받았음을 드러내고 있죠.

당시 화가의 사회적 지위를 고려하면, 그건 매우 파격적인 조치였습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이 십자가는 그림을 완성하고 난 뒤 훗날 덧그려진 것일 수 있다는 건데요.

그가 기사 작위를 받은 건 〈시녀들〉을 완성하고 2년이 지나서기 때문입니다.
처음 이 그림을 그릴 때 십자가는 없었을 겁니다.

그는 왜 십자가를 나중에 그려넣었을까요?
자신이 이룬 사회적 성공을 과시하고 싶었던 걸까요?
벨라스케스는 국왕 펠리페 4세를 비롯, 왕실 구성원들에 대한 수많은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그의 초상화는 사실적인 묘사가 뛰어나 높은 평가를 받았는데요.
벨라스케스가 스페인 궁정에 있는 한,
유럽의 어느 왕도 스페인 왕보다 뛰어난 초상화를 가질 수 없다는 말이 돌기도 했을 정도입니다.
1650년대부터 벨라스케스는 마르가리타 공주의 초상화를 자주 그렸습니다.

마르가리타는 오스트리아 왕실의 레오폴트 1세와 결혼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는데요.
때문에 벨라스케스는 오스트리아 왕실에 보내기 위한 마르가리타의 초상화를 여러 점 그려야 했죠.
〈시녀들〉은 마르가리타가 다섯 살일 때 그려진 초상화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벨라스케스가 이전에 그렸던 마르가리타의 초상화와는 달랐습니다.
인물만 11명이 등장하는 거대한 집단 초상화였죠.
조금 멀찍이 떨어져 이 작품을 보면, 큰 네모와 그보다 작은 세모 두 개가 눈에 들어옵니다.

오른쪽의 기둥과 천장, 왼쪽의 캔버스에 이르는 큰 테두리가 주요 인물들을 감싸고, 정중앙에는 사랑스러운 드레스를 입은 마르가리타가 서 있죠.
그는 그 자체로 작은 세모이고, 양옆의 시녀들이 이루는 더 큰 세모 안에 들어 있습니다.

때문에 마르가리타가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듯 보입니다.

오른쪽에는 조용히 엎드린 큰 개와 두 명의 왜소증 환자가 서 있습니다.
이들은 물이나 음식 같은 필수품들을 갖고 다니며, 언제나 공주를 동행하던 이들이죠.
그 뒤로는 수녀복을 입은 여자가 경호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벨라스케스는 빛을 사용해 대상에게 부피감을 주는 동시에 우리가 누구에게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를 드러내고 있는데요.

오른쪽에서 들어오는 빛은 마르가리타를 밝게 비춥니다.
마르가리타의 얼굴도 빛이 들어오는 쪽을 향하고 있죠.

때문에 우리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마르가리타에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이 그림에 활용된 빛은 또 있는데요.
바로 뒤쪽 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입니다.

한 남자가 문을 열고 있기 때문에 바깥의 빛이 안으로 쏟아지고, 어두운 배경과 선명하게 대비를 이루죠.

이는 마르가리타에게 붙잡혀 있던 시선을 끌어내 뒤쪽에 초점을 맞추도록 합니다.

이를 통해 화면에 거리감을 주고 있죠.
그리고 시선을 왼쪽으로 조금 더 옮기면, 거울에 반사된 국왕 부부의 모습이 보입니다.

국왕 부부에게로 시선이 옮겨가면 이윽고 수많은 의문들이 쏟아지게 됩니다.

왜 국왕 부부가 거울에 비치고 있는 걸까요?
거울이긴 한 걸까요?
단순한 초상화는 아닐까요?

많은 학자들은 이 그림을 벨라스케스가 국왕 부부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 장면으로 봅니다.
그렇다면 국왕 부부는 지금 여러분이 있는 바로 그 위치에 있었을 겁니다.
포즈를 취하고 있는 국왕 부부가 정면의 거울에 비치고 있는 것이죠.

마르가리타 공주와 시녀들은 작업을 구경하려고 화실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학자들은 벨라스케스가 그리고 있는 건 국왕 부부가 아니라, 마르가리타 공주라고 보기도 합니다.
이 설명에 따르면 그림 자체가 거울에 반사된 이미지일 수도 있습니다.

벨라스케스는 거울에 비친 마르가리타를 그리고 있고, 마르가리타는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겁니다.
오랫동안 포즈를 취하느라 짜증이 났는지 옆의 시녀가 달래려는 듯 음료수를 건네고 있습니다,

국왕 부부는 거울 속 거울에 이중으로 반사되고 있는 게 되죠.
〈시녀들〉은 이처럼 시선을 붙잡는 요소들이 많기 때문에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줍니다.

큰 네모와 두 개의 작은 세모라는 안정적인 구도 속, 우리의 시선은 역삼각형을 그리며 바쁘게 움직이죠.

그만큼 각자의 감상 포인트도 다르고 해석도 다릅니다.
이 작품은 원래 〈시녀들과 여자 난쟁이와 함께 있는 마르가리타 공주의 초상화〉라는 긴 이름으로 불렸어요.

혹은 〈펠리페 4세의 가족〉이라는 제목이 붙기도 했죠.
1843년 프라도 미술관에서 〈시녀들〉이라는 이름을 붙였고,이후 〈시녀들〉이 일반적인 명칭이 되었습니다.

이 작품의 제목이 이렇게 다양했다는 건, 사람들이 이 작품 앞에서 얼마나 혼란스러워했는지를 드러냅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마르가리타 공주일까요?
국왕 부부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벨라스케스 자신일까요?

무엇이 맞는지 여전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시녀들〉은 오랜 시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흥미로운 작품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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