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쾌한 골짜기'는 왜 불쾌할까?

조회수 2020. 4. 3. 14:5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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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캐니에 대하여
사람을 쏙 빼다 닮은 로봇과 캐릭터
그리고 어딘가 느껴지는 불쾌함

우리는 종종 우리와 닮은 것으로부터 미묘한 불쾌함을 느끼곤 합니다.

이러한 현상을 바로 "불쾌한 골짜기"라고 하죠.
‘불쾌한 골짜기’ 현상은 로봇공학에 의해 처음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1970년 일본의 로봇공학자 모리 마사히로는 자신의 책을 통해 처음 이 개념을 선보였는데요.

인간이 로봇이나 인간이 아닌 것에 대해 느끼는 감정에 대한 이론이었죠.
이 이론에 따르면 로봇이나 사물이 사람의 모습과 비슷할수록 인간의 호감도도 증가합니다.

하지만 닮은 정도가 어느 지점에 도달하면, 강한 거부감을 유발했는데요.

그러다가 더욱더 사람과 비슷해지면 부정반응이 어느순간 다시 긍정 반응으로 바뀐다는 이론이었죠.
이렇듯 사람의 호감도가 긍정과 부정을 오가는 사이 생기는 깊은 굴곡을 ‘불쾌한 골짜기’라 불렀죠.

이러한 현상이 세상에 드러나자, 사람들은 구체적인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인간 공통으로 느끼는 감정이니 만큼 ‘불쾌함’의 원인이 후천적인지 선천적인지 연구할 수 있는 좋은 소재였기 때문이죠.
그 결과 현상을 뒷받침할만한 근거들도 나타났는데요.

대상이 인간과 아예 닮지 않은 경우, 인간은 심리적으로 공통점을 찾으며 호감을 찾습니다.

예를 들어 산업용 로봇을 떠올리면 사람의 팔처럼 물건을 집는 모습을 보며 ‘사람 같다’는 호감을 느끼게 되죠.

하지만 대상이 인간과 많이 닮은 경우, 반대 심리가 작용하는데요.
정말 비슷하게 생겼지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떠올리는 인간과 다를 경우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을 찾게 된다는 것이었죠.

그리고 이 차이점은 부정 반응을 촉발했습니다.

인간과 정말 똑같이 닮은 로봇이지만 아주 제한적이거나, 부자연스러운 행동을 할 경우 ‘이건 사람이 아니다’ 생각하는 것이죠.
프리스턴 대학의 연구진들은 원숭이를 대상으로도 이 현상을 관측했는데요.

실제로 원숭이들도 자신과 닮은 인형을 마주할 때 불쾌함을 드러낸다는 결과를 확인했습니다.

이를 토대로 몇몇 학자들은 ‘불쾌한 골짜기’가 인지능력을 갖춘 동물들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라 관측했습니다.
과거부터 인류를 비롯한 고등동물은 생존을 위해 건강한 개체와 그렇지 않은 개체를 구분하는 인지능력이 발달했는데요.

‘불쾌한 골짜기’ 현상은 이러한 인지 발달 과정에서 본능적으로 발생했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에 대한 강한 비판도 있습니다.
우선 기존 개념과 달리 ‘불쾌한 골짜기’ 현상은 굳이 사람을 닮은 모양새가 아니더라도 언제든 등장할 수 있다는 점.

또한 디지털이나 로봇에 친숙한 어린 세대일수록 불쾌한 골짜기 현상이 감소하는 모양새를 보인다는 점.

또한 로봇공학에서 출발한 개념인 만큼, 인형, 그림 등 다른 소재들로 확장하기엔 근거연구가 부족하다는 것이었죠.
카네기 멜론대학의 사라 키슬러 교수는 ‘불쾌한 골짜기가 참이라는 증거를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참이 아니라는 증거도 가지고 있다’ 말했습니다.

불쾌한 골짜기의 과학적 위치에 의문을 던진 것이었죠.

여전히 많은 학자들은 불쾌한 골짜기 현상과 그 원인을 연구하며 불쾌함에 대한 인간의 심리를 추론하고 있습니다.
불쾌한 골짜기는 영어로 'Uncanny Valley'라고 하는데요.

사실 언캐니는 심리학 용어입니다.

1906년 심리학자 에른스튼 옌치는 논문을 통해
이 개념을 처음 소개했습니다.

옌치는 기본적으로 사람이 각각의 방향을 설정하며 그것의 기반이 되는 상태를 유지하려 한다고 보았는데요.

살아가며 이따금 그 방향성을 잃는 상황을 마주한다고 보았죠.

여기서 나타난 ‘불안하고 낯선 기분’을 언캐니라 불렀습니다.
이어서 옌치는 마네킹, 밀랍인형 등 사람을 닮은 소재들을 이야기했는데요.

꼭 살아 있는 것만 같아서 혹시 영혼을 갖고 있지 않나 의심이 드는 경우.

혹은 반대로 살아있는 생물이 아님에도 우연히 영혼을 잃어버려서 영혼을 가진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는 경우.

그런 불확실성을 마주한다 보았죠.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 개념을 확장했습니다. 옌치의 생각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달랐죠.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독일어로 ‘운하임리히’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요.

독일어로 하임리히는 안락함과 친숙함을 의미합니다.

여기에 ‘Un’을 붙임으로써 의미를 바꿨는데요.

평범하고 안락한 것으로부터 느껴지는 이상함이란 뜻을 담았습니다.

일상 속에서 종종 마주하는 이상한 기운을 의미했죠.
프랑스의 자크 라캉 또한 이 개념에 빠져 연구했고, 의미를 확장했는데요.

라캉은 언캐니가 우리를 ‘좋은 것과 나쁨’을, ‘불쾌함과 즐거움’을 구분할 수 없는 곳으로 이끈다고 표현했습니다.

일상 속으로서부터 느껴지는 이상함이 종종 사람의 도덕 또는 인지체계를 시험할 수 있다는 뜻이었죠.

이러한 모호함은 예술가들을 자극했습니다.
많은 예술가들은 ‘언캐니’를 표현하는 작품들을 만들었는데요.

그 결과 익숙한 소재를 활용하면서도, 낯섦이 느껴지는 작품들이 탄생했죠.

이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름다움과 추함, 익숙함과 낯섦의 경계를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에게 ‘아름답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반추하게 만들었죠.
히치콕 같은 영화 감독들도 이러한 개념에 매료돼 일상적인 것으로부터 생소함을 만드는 시도들을 많이 선보였습니다.

여전히 언캐니 미학은 많은 창작자들 사이 연구되며, 새로운 작품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익숙한 것으로부터 낯선 것들을 끄집어 내 우리에게 새로운 생각을 열어주는 작품들.

일상 속의 불쾌함은 여러분에게 어떤 영감이 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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