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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메티의 작품들은 왜 앙상할까?

피카소가 질투한 재능을 가진 예술가, '알베르토 자코메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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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토 자코메티'

피카소가 질투한 재능
조각 속에 생명을 불어넣은 조각가

은과 동으로 이뤄진 색감과 앙상한 몸
그리고 어딘가를 향하는 눈

기존의 조각 흐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조각을 만든 자코메티는 20세기 조각 역사상 가장 중요한 예술가로 평가받습니다.

특히나 손자국이 그대로 드러난 질감과 가녀린 몸체는
조각 하나로 많은 이야기를 상상하게 하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데요.

그런데 자코메티의 조각상들을 보다보면,
이런 궁금증이 떠오릅니다.

자코메티의 조각은 왜
왜 이렇게 앙상할까요?


자코메티의 조각은 특이합니다.

자코메티 대표작들은 보통 사람을 소재로 삼고 있는데요.
우리가 사람을 조각한 작품들을 떠올릴 때의 흔한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죠.

흔히 인체조각하면 떠오르는 근육도, 역동적인 모습도 자코메티의 작품에선 나타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흔히 조소라고 하면, 찰흙과 같은 매체를 안에서 밖으로 붙여가는 '소조' 방식과 단단한 재료를 밖에서 안으로 깎아서 만드는 '조각' 방식으로 나뉘는데요.

자코메티의 작품들은 이 중간 선상의 독특한 방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찰흙과 같은 매체를 활용해 소조의 형식을 띄면서도, 살을 밖에서부터 조금씩 떼는 '살떼임 기법'을 활용했죠.

이 덕분에 자코메티의 작품은 어떤 조소 작품이나 조각 작품과도 다른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살점이 떼어진 흔적들을 보면서 우리는 예술가의 손길이 어떻게 닿았는지 고스란히 느낄 수 있죠.

사실 자코메티는 처음부터 조각을 만든 건 아니었습니다.

자코메티의 아버지는 스위스에서 유명한 후기인상주의 작가였는데요.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 가족을 그리거나, 풍경을 그리는 일이 많았습니다.

가족들 모두가 그랬죠.

자코메티는 커서 제네바 스쿨의 순수미술전공으로 들어가는데요.
그의 형제 디에고와 브루노 모두 같이 갔죠.
한마디로 예술가 집안인 셈이었습니다.

이 시기 자코메티는 주로 자신이나 지인들을 화풍에 담았는데요.
아버지는 자코메티에게 항상 ‘보이는대로 그릴 것’을 강조했습니다.

초기 자코메티의 작품들은 아버지의 화풍처럼
‘후기 인상주의’ 느낌이 강하죠.

1921년 19살이 되던 해, 자코메티는 기차여행을 하던 중 한 노인을 만납니다.

네덜란드 출신의 판 뫼르소였죠.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영향으로 예술을 비롯해 지식이 많았던 자코메티는 금세 뫼르소를 매료시켰습니다.

기차여행이 곧 끝나고 서로 헤어졌지만,

뫼르소는 어느날 자코메티가 떠올라 신문에 자코메티를 찾는 광고를 냈죠.

뫼르소는 자코메티를 찾게되자, 자신이 모든 경비를 다 대줄테니 한동안 같이 여행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합니다.

그리고 둘은 이탈리아 여행길에 오르죠.

하지만 여행이 시작되고 하루도 안돼 뫼르소의 건강이 악화됩니다.
고령의 뫼르소에게 큰 여행은 무리였던 것이죠.

자코메티와 같이 앉은 칸에서 뫼르소는 고열에 시달리게 됩니다.

‘내일은 좀 낫겠지’란 말을 남기고
뫼르소는 다음 날 생을 마감하고 말죠.

어린나이의 자코메티는 가까운 이의 허망한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하고 충격에 빠집니다.

‘죽음’은 이후 자코메티 작품 세계의 중요한 영감이 됐죠.

이듬해 자코메티는 파리로 건너가, 앙투안 브루델 밑에서 조각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브루델은 현대 조각의 아버지라 불리는 '로댕'의 조수였죠.

이 시기 자코메티는 신진 예술가들과도 친분을 쌓기 시작하는데요.

호안 미로나 피카소같은 예술가들이었죠.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자코메티는 당대 유행하던 입체파와 초현실주의 화법에 매료됩니다.

그리곤 이러한 화풍을 조각 속에 담기 위해 계속해서 실험했죠.
이 시기 자코메티의 작품들은 각종 기호와 형체를 활용한
독특한 모습을 띄고 있습니다.

북적거리는 파리의 삶은 자코메티에게 새로운 영감을 줬습니다.
거리의 사람들은 자코메티의 관심사가 됐죠.

매일 바쁘게 걷는 사람들을 보며 활발한 ‘생명력’을 느꼈죠.

1930년대에 들어서며 자코메티는 본격적으로 사람을 자신의 주요 작품 소재로 삼습니다.
특히나 사람의 머리, 즉 두상을 많이 조각했는데요.

자코메티는 어린 시절 뫼르소를 비롯해, 여러 죽음을 목격했습니다.

1차 세계대전 또한 자코메티에게 중요한 전환점이었죠
그는 죽은 사람과 잠들어 있는 사람을 구분하는 것이 가능한지 의심했습니다.

다시 말해 사람의 ‘생명’이란 것은 어디에 존재하는지 고민했죠.

수많은 탐구를 통해 작품을 만들고 모델을 접하면서 죽은 이와 산 사람을 구분할 수 있는 것은 ‘눈’이라는 생각에 도달합니다.

다시 말해 생명이란 ‘눈빛’에 담겨 있다는 것이죠.

이때부터 자코메티는 작품 속에 '영원한 생명'을 담는 도전을 시작합니다.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유럽을 강타합니다.

자코메티는 프랑스와 스위스를 넘나들며, 전쟁의 고통 속에 신음하는 인간을 목격합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전쟁’ 속에 인간이 만들어낸 ‘무기’로 죽어가는 인간들.

사람들이 만들어낸 시스템은 부조리한 현실을 만들었고, 인간은 그 안에서 고뇌했습니다.

자코메티는 이러한 아이러니 속에서 생명을 잃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게 되죠.

전쟁이 끝나고 자코메티는 자신의 작품 속, 사람들의 살들을 벗겨내기 시작합니다.

자코메티의 작품은 점차 사람의 형상을 벗어나 철사처럼 가늘어졌죠.

모든 것을 벗어던진 인간.

뒤덮고 있는 모든 무게를 벗어던지고, 가볍게 선 인간.
자코메티는 이를 통해 인간의 원형, 본질을 고민했습니다.

그러한 고민 속에 인간을 둘러싼 시스템과, 외면을 벗겨냈고, 고독하고 고독한 실존만이 남아있었죠.

존재와 허무 사이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
고통스럽지만 너무나도 가벼웠습니다.

1960년 자코메티는 거리를 빠른 속도로 거니는 사람들을 보며 ‘가벼움’을 생각합니다.

죽은 이들은 가질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그러한 고민을 작품 속에 담으며 가볍게 걷는 인간의 모습을 조각한 ‘걷는 인간’을 세상에 내놓죠.

가벼운 형체와 어디론가 향하는 인간
자코메티는 작품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1960년대에 들어서며 자코메티의 건강은 급격하게 나빠지기 시작합니다.

자코메티는 그럼에도 작품 활동을 지속했죠.

이 시기 자코메티는 ‘엘리 로타르’라는 모델을 자신의 작업실로 데려와 계속해서 조각했습니다.

1964~65년까지 로타르는 약 400번이나 자코메티의 모델을 섰죠.

1965년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지자, 자코메티는 스위스 병원으로 떠나야만 했습니다.

병원으로 떠나기 전 파리의 작업실에서 자신의 조각을 매만지며 동생 디에고에게 아직 미완성된 작품이라며 전하죠.

병원으로 떠나던 날 자코메티는 그 점토 조각을 젖은 천으로 덮어놓은 채 파리의 작업실을 떠납니다.

그리곤 다시 돌아오지 못했죠.

자코메티가 세상을 떠나자 동생 디에고는 파리의 작업실로 뛰어옵니다.

그리고 천으로 뒤덮힌 점토를 보존하기 위해 주조를 뜨게 되죠.

이렇게 자코메티의 마지막 작품이 탄생합니다.
‘로타르’

꿇어 앉은 자세와 수많은 살떼임의 흔적
그리고 어딘가를 응시하는 눈빛

구도의 자세로 끊임없이 무언가를 바라보는 로타르의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도 깊은 명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작품을 보며 자코메티가 결국 작품 속에 영원한 생명을 조각하는 데 성공했다 평가하기도 합니다.

자코메티는 자신의 작품에 거의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가끔은 자신이 거의 다 완성한 작품을 자주 부숴버리곤 헀죠.
자코메티는 죽는 그 순간까지도 삶과 죽음의 경계를 고민하며 작품 활동을 계속했습니다.

마침내 나는 일어섰다.
그리고 한 발을 내디뎌 걷는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리고 그 끝이 어딘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러나 나는 걷는다.
그렇다. 나는 걸어야만 한다.

작품 속에 생명을 담으려 한 자코메티.
여러분의 눈에는 어떤 것이 비춰지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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