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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가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대처하는 법

스위스의 예술가 페르디낭 호들러의 연인 발렌틴 고데 다렐 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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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신가요?


엄마? 아빠?

딸이나 아들일 수도 있고

친구나 연인일 수도 있겠죠.


그런데 그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다면 어떨 것 같나요?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이별을 담담히 준비할 수 있으신가요?

상상하기도 싫은 생각인데요.


19세기 스위스 화가,
페르디낭 호들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모두가 곤히 자고 있는 밤.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그림자가
한 남자의 몸 위에 앉아 있습니다.
남자가 소스라치게 놀라 눈이 휘둥그레지는데요.
그는 이 그림을 그린 사람, 호들럽니다.

한밤중에 잠에서 깰 정도로
호들러가 공포에 떨었던 대상은 무엇이었을까요?
'죽음'이었습니다.

호들러가 살았던 19세기는
결핵이 불치병이었던 시대였어요.
결핵은 호들러로부터
사랑하는 사람들을 계속 앗아갔습니다.

어렸을 때 엄마아빠와 두 동생이 모두 결핵으로 죽었고,
열일곱 살에는 양아버지마저 결핵으로 떠나보내야 했죠.
호들러의 어린시절은
사랑하는 이들과의 이별로 촘촘이 채워졌습니다.
그러면서 삶과 죽음이 등을 맞대고 붙어 있는 것임을
자연스럽게 깨달았죠.

인간은 누구나 반드시 죽고
그게 10년 후가 될 수도 있지만
운이 나쁠 경우 1초 뒤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호들러를 두렵게 만들었습니다.

이 그림(<밤>)에서 죽음은 검은색으로 그려져 있는데요.
다른 이들이 덮고 있는 이불 역시 검은색으로 그려져
마치 죽음을 덮고 자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별일 없다면 이들은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깰 겁니다.
하지만 운이 나쁘다면 긴잠을 자게 되는 사람도 있겠죠.
검은 이불은 죽음에 대한 호들러의 공포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불운했던 개인사 때문인지
호들러의 작품들에는
전반적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가 짙게 깔려 있는데요.

호들러의 작품들을 보면
인물들이 정확한 간격을 두고 서서
서로 대칭을 이루고 있는 걸 자주 보게 됩니다.
또 작품 전체는 수직선과 수평선이 서로 교차하고 있죠.

살아있는 인간은 수직선,
잠들거나 죽은 인간은 수평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병들거나 노쇠한 인간은 수직과 수평 사이
어딘가에 있죠.

그리고, 자연도 수평선입니다.
수직으로 섰던 인간이 서서히 수평을 향해 가는 것,
그래서 영원한 죽음인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
호들러는 그게 삶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죽음은 한 존재가 갑자기 중단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라는 거대한 사이클 안으로 돌아가
계속 이어지는 것으로 보았죠.

가을에 낙엽이 지고 봄에 새 잎이 돋는 것처럼
한 존재의 죽음은 다른 존재의 삶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죽음이 좀 견딜만한 게 되었죠.

말년에 호들러는 또 한 번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발렌틴 고데-다렐(Valentine Godé-Darel).
호들러의 연인이었는데요.
1914년 11월부터 1915년 1월까지
난소암으로 투병하다 숨을 거뒀죠.

호들러는 발렌틴이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그녀를 극진히 간호했습니다.
그러면서 죽어가는 그녀의 순간순간을 직면하고
수많은 스케치와 초상화 속에 담아냈죠.
그의 발렌틴 연작에는 수직으로 섰던 발렌틴이
수평으로 서서히 나아가는 변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발병 초기. 발렌틴의 얼굴은 아직 밝고,
침대 머리맡이나 머리카락, 손, 침대보 등에는
빨간색이 부분부분 칠해져 있습니다.
발렌틴이 아직 생명력을 잃지 않았음을 드러내죠.

그런데 다음 그림.
발렌틴은 수직을 잃고 비스듬하게 기울어져 있습니다.
얼굴은 그녀 자신만이 이해할 수 있는
고통 속에 깊이 빠져 있죠.

병이 깊어갈수록 발렌틴은 짙은 녹색으로 묘사됩니다.
죽음이 엄습해오고 있는 건데요.
이 그림에서 발렌틴의 몸은 침대에 착 달라붙어
완전한 수평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모습은 병실 창밖으로 내다보이던
제네바 호수를 닮아 있죠.
발렌틴은 영원한 죽음인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좀처럼 죽음을 직면하지 못합니다.
언젠가 내 삶이 끝나고,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떠나고,
어찌해볼 도리도 없는 그 고통 속에서
서서히 수평으로 눕게 된다는 것은요.
의식적으로 생각해볼 만큼
유쾌한 경험이 아니기 때문이죠.

죽음을 어렴풋하게 인식하고만 있다가
자신이나 사랑하는 이의
죽음의 형태로 또렷하게 나타나면
그제야 당황하고 두려워하고 슬픔에 빠집니다.
호들러도 그랬습니다.
어렸을 때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내며
공포를 느꼈고 자주 좌절했습니다.

호들러의 삶은, 그리고 그의 작품활동은
죽음을 외면하지 않고 조금씩 직면해가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럼으로써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려 했죠.
호들러는 발렌틴의 마지막을 직면했습니다.

그의 그림 속에서 발렌틴의 얼굴은
고통에 일그러져 있습니다.
건강했던 발렌틴을 기억하며 낭만적으로 그리기보다는
차분하고 냉정하게,
발렌틴의 현재를 살피고 기록했던 겁니다.

과거의 추억이나 미래의 불안에 사로잡히기보다
지금 여기에서의 삶을 충실히 함께하는 것.
호들러가 남은 삶 동안 발렌틴을 사랑하는 방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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