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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위한 문화예술

바스키아의 작품엔 왜 왕관이 많을까?

널 위한 문화예술 예술가의 이유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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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미셸 바스키아

검은 피카소
비운의 천재
현대예술계의 악동
 
낙서를 휘갈긴 듯한 정리되지 않은 선과
강하고 분명한 색

스물 일곱이란 짧은 나이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무려 2500점에 달하는 작품들을 선보이며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한 아티스트
 
바스키아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화풍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그리고 바스키아의 작품 속엔
특유의 상징과 기호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요.
 
바스키아는 왜 이런 상징들을 그려넣었을까요?


바스키아의 작품 창작은
마치 힙합뮤지션들의 작곡과 비슷했습니다.
끊임없이 작품의 소재를 찾고 만들며
자신만의 소스를 만들었고,
 
이전 작품에서 자신이 참고했던 것,
그렸던 것들을 재활용해
다시 새 이미지와 결합시켜 새로운 작품을 창조했죠.

일종의 '리믹스'였던 셈인데요
 
그러다보니 바스키아의 작품 속엔
반복되는 이미지들이 자주 등장했습니다
 
갖가지 기호와 단어들
 
이러한 바스키아 특유의 이미지들은
바스키아의 삶과도 밀접하게 관련돼 있죠

바스키아 작품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해골인데요.
 
뉴욕 브루클린의 중산층 가정에서
비교적 평화롭게 보내던 유년시절,
바스키아에게 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차에 치이는 사고였죠.

이 사고로 인해 바스키아는 병원 신세를 지게 되는데요.
 
어머니는 바스키아가 심심하지 않도록 책을 가져다 줍니다.
 
바로, 해부학 책이었죠.
 
8살의 바스키아는 책 속에 그려진
인체 장기와 뼈들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리고 이는 전생애에 걸쳐
바스키아 작품의 중요한 소재가 되죠.

바스키아는 작품 속에 해골이나 장기를 많이 그려넣었는데요,
 
해골과 장기들이 가진 특유의 토속적인 느낌을 활용했죠.
 
이를 통해 죽음이라는 무거운 키워드를 다루면서도,
조금은 경쾌한 느낌으로 풀어내는 게 가능했습니다.
 
나아가 어른이 된 바스키아는
다빈치의 인체해부도를 포함해 역사 속에 활용된
다양한 해부와 신체, 뼈 그림에 매료됩니다.

바스키아는 그 작품들을 종종 오마주했는데요.
때문에 바스키아의 작품 속에서 해부된 인체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죠.

바스키아는 또 어렸을 때 만화를 즐겨봤습니다.
한때는 만화가가 되기를 꿈꿨죠.
 
학교에서 틈이 날 때마다
책이나 공책에 끊임없이 만화를 그렸는데요.
 
이러한 경험들은 후에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을 때도
고스란히 유지됩니다.

바스키아의 작품 속엔 낙서와 단어들이
뒤죽박죽된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는데요.
 
그림과 글이 혼재된 만화적인 느낌과 닮아있죠.
 
특히나 작품 속엔 미국 사회를 표현하는 단어들이 자주 적혔는데요.
 
사회의 문제를 직시하며 시대에 대한 저항과 분노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삼았죠
“이 글자는 어디에서 따온 겁니까?”

17살이 되던 해 바스키아는 다니던 학교를 자퇴합니다
그리곤 예술을 좋아하는 학생들이 많은 대안학교에 입학하는데요
 
아버지는 학교를 자퇴한 것에 분노해
바스키아를 집에서 내쫓아 버렸죠
 
이 시기 바스키아는 친구들과 지내며
티셔츠와 엽서를 만들어 팔면서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그러던 중 한 친구를 사귀게 되는데요.
 
알 디아스라는 낙서화가였죠.
 
둘은 서로의 작품 세계에 공감하며
SAMO라는 크루를 결성합니다.
 
세이모는 Same Old Shit의 줄임말인데요,
우리나라 말로 치면 ‘그게 그거’ 또는
‘흔해빠진 것’이라는 의미였죠.

이는 바스키아와 친구들이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인 셈이었습니다.
 
세이모는 뉴욕 소호거리를 캔버스 삼아
스프레이로 담벼락에 반항적인 문구와 그림들을 새겨넣습니다.
 
이들이 활동하던 197-80년대는 더군다나
비주류 정서가 유행하던 시기였는데요.

덕분에 반항적인 이미지의 SAMO는
뉴욕 시민들 사이 유명세를 타기 시작헀죠
 
이 시기 바스키아는 특히나 자신의 글과 그림 속에
저작권을 뜻하는 Copyright 기호를 적어 넣었습니다
 
이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소유권과 권위
다시 말해 작품에 대한 자부심을 뜻했죠
 
바스키아 작품에선 이 기호를 뺴놓지 않고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자신의 작품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하지만 세이모는 결국 오래가지 못하고 갈라서게 됩니다.
 
바스키아는 활동을 통해 더 유명해지길 바랐지만,
디아즈는 영원히 익명의 화가로 남고 싶어했죠.
 
둘은 결국 ‘세이모는 죽었다’는 낙서와 함께 활동을 중단합니다.

바스키아는 정식 미술교육을 받은 적은 없었지만,
예술가들에게 인정을 받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예술가 친구들을 사귀게 됐죠.
 
바로 키스 해링이나 케니샤프 같은 팝아티스트들이었는데요.
 
모두들 길거리로부터 작품활동을 시작한 예술가들이었죠.

여기에 더해 1980년엔 바스키아의 인생을 뒤바꾼 운명적인 만남이 이뤄집니다.

바스키아는 당대 가장 유명한 예술가,
팝아트의 거장 앤디워홀을 만나죠.
 
바스키아의 천재성을 단번에 알아본 워홀은
자신의 재력과 타고난 마케팅 실력을 바탕으로
바스키아를 금세 유명해지게 만들었습니다.
 
바스키아는 덕분에 유명한 화가라는 목표에 한층 더 다가서게 됐죠.

세계적인 미술시장이었던 뉴욕에서 독창적인 화풍으로
바스키아는 어느덧 예술계의 스타로 자리잡게 됩니다.
 
바스키아는 이 시기 인물을 담는 초상화 작품들을 많이 그렸습니다.
 
특히나 당시 인종차별적인 사회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는데요.
바스키아는 주류 예술계에 처음 등장한 흑인 예술가이기도 헀습니다.

이를 잘 알았던 바스키아는 작품 속에 
불평등한 사회분위기 속에서도
자신만의 길을 개척한 흑인, 히스패닉 영웅들을 그려넣습니다
 
재즈 아티스트들
인권운동가들
복싱 선수들이 그 대상이었죠

그러면서 영웅들의 머리 위에 왕관을 그려넣곤 헀습니다.
왕관은 카피라이트 표시와 함께 바스키아의 작품 속에 아주 자주 등장했는데요.
 
자신이 담는 인물에 대한 존경과 찬미의 의미를 담았죠.
동시에 카피라이트 표시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작품의 권위를 나타내는 표현이기도 했습니다.

바스키아는 이러한 다양한 기호와 상징들을 엮어
마치 낙서 같은 작품들을 그려냈습니다.

그러면서 작품 속에 자신의 이야기,
영웅,
죽음 등을 담아냈죠.
 
사람들은 그의 독특한 화풍에 매료됐고
1980년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로 자리잡게 됩니다.
 
유명한 화가가 꿈이었던 바스키아는 워홀을 통해 그 꿈을 이루게 됩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유명세로 인해 고통받게 되죠.

언론은 바스키아와 워홀을 관계를 의심했고,
좋지 않은 소문을 퍼트리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 워홀과 바스키아 공동으로 기획했던 전시가 실패로 끝나며
바스키아는 워홀과 멀어지게 되는데요.
 
1987년 워홀이 심장발작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소식을 들은 바스키아는 아주 큰 상실감에 빠집니다
그리고 극심한 약물중독에 빠지게 되죠.

워홀이 사망한지 1년뒤인 1988년.


바스키아는 약물중독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사람들은 종종 바스키아의 작품을
순수함을 담은 폭력,
죽음을 담은 생명이라 표현하기도 합니다.
 
바스키아는 
비극의 냄새가 만연한 가운데
유머를 잃지 않으며 독특한 기운을 그려나갔죠.

바스키아가 작품 속에 남긴 다양한 기호들은 그러한 고민 속에 탄생했습니다.
 
삶과 사회에 대한 고민을 나타내면서,
동시에 바스키아만의 유머러스한 화풍을 완성시키는 중요한 원동력이었는데요.
 
지금까지도 바스키아가 남긴 수많은 상징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패션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고 있습니다.

“바스키아는 불꽃처럼 살았다
그는 진정으로 밝게 타올랐다”

여러분은 이 그림 속에서 
어떤 상징들이 보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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