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물과 예술 사이: 공공미술의 함정

조회수 2019. 8. 26. 1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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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옆 미술작품들 속 숨겨진 진실

1981년 뉴욕

맨하튼의 중심지에 광장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벽이 세워집니다.

높이 3.7미터 길이 37M의 거대한 크기
그리고 부분부분 녹이 슨 흔적들
 
미국의 조각가 리처드 세라의
<기울어진 호>라는 작품이었죠.
세라는 미국 연방 조달청의 의뢰를 받아
맨해튼 중앙에 거대한 조각을 설치한 것인데요.
 
하지만 <기울어진 호>는 얼마되지 않아
비판에 휩싸였죠.
누구를 위한 작품인가?
탁트인 광장을 가로 막은 작품.
작품은 미관상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통행에도 불편함을 줬습니다.
 
시민들의 불만이 이어지자
작가 세라는 "조각의 수축과 확장은 움직임의 결과"라며
작품의 의미를 설명했는데요.
계속된 비판에
결국 1985년 3월 조각을 둘러싼 공청회가 열립니다.
 
180명의 참석자
이중엔 키스 해링, 필립 그래스를 비롯한 유명 예술가들도 있었죠.
 
그리고 이어진 투표
122명은 작품의 존치를,
58명은 철거를 주장했는데요.
하지만 배심원단은 철거를 요구하는 시민의 손을 들어줬죠.
고철이 된 작품은 3조각으로 절단됐습니다.
그 이후로 <기울어진 호>는 창고로 갇히게 되죠.

사실 예술에서 공공성을 논할 때
반드시 맞닥뜨리는 문제가 있습니다.
개인의 주관적 해석을 중시하는 예술이
공공성과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
다시 말해 개인의 주관과 공공이 추구하는 공공성이
서로 충돌할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가 공공성이라 말할 때 주의해야할 것은,
공동체의 이익이 항상 공공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공동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담합과 독점
그리고 많은 집단이기주의의 사례들이 그러한 예죠.
 
따라서 공공성이란 단순히 다수의 요구도
단순히 개인과 다른 개인의 이익이 일치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회철학자 하버마스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공공성’은 서로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며
일치하지 않는 의견을 조절함으로써 도달하는 것
 
그리고 이러한 양보와 이해의 장소를 '공론장',
그 대화와 과정을 '공공 담론'이라고 했죠.
공공미술은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다양한 공공담론들이 교차하는 공론장인 셈입니다.
 
다시 말해 공공성을 위한 공공미술은
다수의 요구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작품이 아니라,
이해관계가 다른 개개인들이
작품을 통해 서로 다른 생각을 꺼내놓는 데서 탄생하는 것입니다.
최근 국내에는 공공미술작품을 둘러싸고 여러 논쟁이 있습니다.

“나무가 왠만한 조각상보다 낫다”
 
공공미술 작품들이 주변의 분위기와 맞지 않거나
시민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면서
흉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타나고 있죠.
한국에선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하여
환경 미화 차원에서 소위 1%법이 제정됐습니다.
 
이는 해외에서 유행하던 공공미술 ‘퍼센트 제도’를 빌린 것이었는데요.
 
‘건축물 미술 장식법’
 
일정 규모 이상의 건물에 대해
건축 비용의 1% 이상 미술장식에 사용하기로 하는 것
이를 통해 작가들의 창작기회를 확대하고
문화예술 진흥과 도시환경 개선을 꾀하려 했죠.
 
하지만 해외의 퍼센트제도는 
공공건물과 기관에 주로 이용된 데 반해,
 
우리나라는 건축물의 규모에 따라
규정하다보니 주로 민간 건축물에도 시행됐습니다.
더불어 법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미술품을 하나의 ‘장식’으로 한정하면서
‘꾸밈’에 더 초점을 맞추게 됐죠.
 
그렇기에 공공성에 대한 고민이 결여된 채 
작품의 수는 늘어만 갔습니다.
 
행정적 구색을 맞춰야하는 건축주의 불만과
환경에 맞지 않는 작품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도 커졌죠.
 
2011년 대한민국 정부는
건축물 미술작품법으로 이름을 바꾸고 세부내용을 변경했는데요.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이미 그간 제도 아래
우후죽순처럼 불어난 공공미술작품들이
전체의 질을 저하시키고 시민의 공감을 얻는 데도 실패헀다 비판합니다.
 
해외에선 공공미술에 대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이뤄져 왔습니다.
초기엔 물론 우리나라처럼
건축 속의 미술, 공공장소 속의 미술로서 공공미술을 바라봤죠.
하지만 이후 공공미술은 도시계획 속의 미술로 확장됩니다.
이 단계의 공공미술은 단순히 장식이 아니라,
도시와 사회발전을 위해 예술이 어떤 기능을 할 수 있는가 집중했는데요.
 
이는 더 나아가 새로운 장르로서의 공공미술을 탄생시켰습니다.
단순히 작품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예술에 대한 참여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이를 통해 공공의 문제를 해결한 것.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충분한 논의가 부족한 상황에서
제도적 의무로 공공미술을 진행하면서
결국 새로운 장르로서의 공공미술로의 도약이 미흡했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던 중 최근 흉물논란이 짙어지면서
공공미술의 공공성 논란이 수면위로 올라오게 된 것이죠

2017년 기준 전국에 설치된 공공미술 작품은
총 1만 6000여점
근래에는 국내에서도 예술 참여를 통해
공공성을 추구하는 다양한 예술 프로젝트들이
진행되고있습니다.
 
흉물논란으로부터 촉발된 작품의 공공성 문제는
단순히 작품이 옳고 그르다 차원을 넘어
새로운 장르로서의 공공미술로 도약하는
중요한 질문일 수 있습니다.
‘누구를 위한 공공미술인가’
 
우리는 이 질문들에 어떻게 답하며
어떤 공론장을 만들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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