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이 '죽음'을 표현했던 방법

조회수 2019. 8. 17. 1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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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니타스, 죽음을 그린 예술가들
여러분 혹시 유명한 그림 작품!하면
어떤 게 떠오르세요?
막 이쁘게 핀 꽃과
화려한 야경.
아니면 편안한 정물이나
정교한 인물화.
때론 웅장하게,
또 때론 고급스런 느낌들의 작품이 떠오르잖아요?
그런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에요.

이런 그림들과는 사뭇 다르게,
조금은 어둡고 음산한 분위기의 그림들도 있죠!
 
특히나 그중에서도 그림 속에 이렇게 해골이 그려진 작품들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는데요.
 
예술 작품 속엔 해골이 왜 이렇게 많을까요?

예술 속에 작가의 의도나
의미를 담는 것은 흔한 일이었어요.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연관성이 있는 소재를
작품 속에 그려내 '상징'하거나,
 
또는 메시지를 우회적으로 다른 소재로 활용해 빗대곤 했죠.
 
이런 경우를 보통 "알레고리"라 표현하는데요.
이 내용도 사실 되게 재밌거든요?
이건 나중에 저희가 또 다뤄볼게요!
해골은 그중에서도 "죽음"의 상징물이었어요.
 
사실 죽음은 철학자, 과학자, 그리고 일반 대중할 것 없이
인류 전체의 고민거리였죠.
 
예술가들도 예술가만의 방식대로 "죽음"을 고민했는데요.
 
16-17세기 네덜란드
이 시기 이 지역에선 정물화가 유행하기 시작했어요.
 
신화나 종교를 다루는 게 아니라, 
실생활에 존재하는 현상들을 담았죠!
그런데 이 시기 유럽사회는 30년 전쟁이라는 큰 전쟁을 겪은 시기였어요.
 
이 전쟁은 종교개혁과도 관련이 깊은 전쟁이었는데요.
 
전쟁의 큰 틀에선 가톨릭 구교파와 
마틴루터의 교리를 기반으로 한 신교의 대립이 있었죠.
 
전쟁의 결과는 신교의 승리
이 승리로 당시 네덜란드는 에스파냐로부터 독립하게 됐는데요.
 
에스파냐는 원래 네덜란드 개신교를 탄압했어요.
그런데 에스파냐로부터 독립이 되면서,
네덜란드에도 종교적인 자유가 생겼죠!
그러면서 칼뱅파의 교리가 네덜란드 사회에 급속하게 전파되기 시작하는데요.
 
칼뱅의 교리는 검소함과 금욕을 강조했어요
그러면서 당시 종교화는 우상숭배라 생각해 성상파괴운동과
종교화 제작을 금지했는데요.
 
더 이상 종교화를 그릴 수 없게 된 화가들은
초상화나 정물화로 새로운 수입원을 찾게 되죠.
 
더불어 이시기
네덜란드는 활발한 해상 무역을 통해 경제적 황금기를 맞게 되는데요.
그림을 주문한 사람들은 자신의 진귀한 보물들이 담기길 바랐지만
검소함을 요구하는 칼뱅의 교리와는 상충했죠.
 
화가들은 딜레마에 빠지는데요.
고민 끝에 내놓은 절충안!
 
물질적 풍요와 아름다움을 그리면서도
동시에 물질의 덧없음을 담기 시작했죠.
 
"부는 영원하지 않다
그러니 검소하게 살라"는 의미였죠.
'바니타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허무를 뜻하는 '바니타스'는 이후 정물화에서 유행하기 시작해요.
 
작가들은 작품 속에 '덧없음'을 담기 위해
시간의 무상함,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담으려 헀죠.
 
결국 삶은 죽음으로 끝을 맞이하니,
부귀영화는 부질없단 의미를 담았죠.
 
죽음의 필연성을 나타내기 위해
해골 뿐만 아니라, 썩은 과일, 거품,
연기나 시계 등을 담았는데요
묘하게 퇴폐적인 분위기로 인기를 끌면서
많은 예술가들이 이 바니타스 정물을 그리기 시작했죠.
 
풍요한 삶 속에서도
자신의 한계를 직시해야한다는 의미를 담은 바니타스 화풍은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으로 이어졌어요.

때론 죽음에 대한 진지한 고찰과
또 떄론 죽음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을
담아내며 다양한 작품들이 나타났는데요.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여러분은 이 해골 그림속에서 어떤 것이 느껴지시나요?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