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만의 관계맺는 방법이 있다?

조회수 2019. 4. 11. 1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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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의 연인, 라이벌, 친구 관계
때로는 친구로서, 또 때로는 라이벌로.
예술가들이 교류하는 방식은 정말 다양해요!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강력한 건 역시 '사랑'이죠.
우리도 사랑에 빠지거나 실연의 아픔을 겪을 땐, 막 안 하던 카톡도 보내고싶고 뭔가 창작욕에 빠지잖아요.
예술가들도 마찬가지에요! 사랑에 빠지면 뭔갈 막 창조해내죠.
일례로 전세계를 뒤집어놓은 밴드, 비틀즈의 존 레논은 한창 전성기 때 한 미술 전시장을 찾게 되는데요, 그 전시 말미엔 못이 박힌 캔버스가 있었죠.
존은 작가 오노 요코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해요.
"내가 여기다 못을 박아도 될까요?" 그러자 오노 요코는,
"5실링을 내면 못을 박을 수 있어요." 라고 대답했대요.
그러자 존은 웃으면서
"그럼, 내가 상상 속의 5실링을 낼테니 상상 속의 못을 박도록 허락해주세요"라고 말했다고 해요.
이후 존 레논과 오노 요코는 사랑에 빠졌고, 예술적 동반자로서 다양한 활동들을 이어나갔죠.
하루는 둘이 꼭 껴안고 포대자루에 들어가 기자들을 불러모았는데요.
이를 인종, 성별 등 외적 편견을 없애자는 운동, '배기즘'이라 불렀죠.
말 그대로 가방 '백'으로 만들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에요.
이후로도 존 레논이 괴한의 총에 암살되기 전까지 둘은 평화, 반전 운동을 활발히 펼쳤어요.
이와 반대로 비극적인 사랑도 있죠.
멕시코의 대표 화가 프리다 칼로는 어릴 적 소아마비를 겪고 큰 교통사고를 당해 30여 번의 수술을 받았죠.
결국 그 후유증으로 평생 휠체어를 이용해야했어요.
하지만, 프리다는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예술활동을 이어나갔죠.
그러던 중 당대 멕시코에서 가장 유명한 벽화 화가 디에고 리베라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돼요.
둘은 서로의 매력에 빠져 곧바로 결혼에 골-인!
결혼 생활을 시작하고 벽화 속에 멕시코 전통을 그리던 디에고의 영향을 받아, 프리다도 새로운 화풍을 형성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디에고는 여성 편력이 아주 강했죠. 심지어는 프리다 칼로의 여동생, 크리스티나 칼로와도 사귀었다고 해요.
프리다도 이에 응수해 맞바람을 피우고, 사고의 후유증으로 그렇게 원하던 아이를 갖지 못하는 등, 디에고와 프리다는 이혼과 재혼을 거듭하며 순탄치 못한 결혼 생활을 보냈는데요.
이는 프리다의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반영되었죠. 사람들은 프리다를 초현실주의 화가로 분류하지만, 프리다 본인은 자신을 누구보다 '현실을 그리는 작가'라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불같은 사랑 말고, 불같은 라이벌 관계를 맺는 예술가도 있었는데요. 피카소와 마티스가 가장 대표적이죠.
이들의 앞선 선배인 세잔은 사과를 하나 그렸는데, 사람들이 이 작품을 보고 완전 경악했어요. 이게 기존의 그림들과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죠.
마티스와 피카소는 각각 이 작품의 색과 형태에 빠져들기 시작했어요.
마티스는 "어떻게 색을 표현하지?"
피카소는 "어떻게 형태를 표현하지?"
각각 고민에 빠진 거죠.
결국 이런 고민은 색을 통해 감정을 담아내는 '야수파'화풍과
형태를 통해 다양한 시점을 담아내는 '입체파'화풍을 탄생시켰죠.
둘은 서로의 작품을 맞받아치면서 또 각자 새로운 영감을 얻었어요.
예술가들은 때론 다같이 모여 이야기 나누면서 교류하기도 해요.
대표적으로 살롱 문화가 있죠!
20세기 초반 미국의 뛰어난 소설가이자 아트 콜렉터였던 거트루드 스타인은 프랑스로 넘어와 자신이 수집한 작품을 한 공간에 모았어요.
그리고 여러 예술가들을 초대했죠.
그렇게 여러 예술가들이 그 공간에서 예술작품을 감상하면서 동시에 교류하게 만들었어요. 여기엔 마티스와 피카소를 포함해, 헤밍웨이나 스콧피츠제럴드 등 다양한 예술가들이 모여들었고, 서로 이야기 나누고 때론 스타인의 후원을 받으며 새로운 영감을 얻었죠.
이 공간은 후에 '스타인 살롱'으로 불리며 창작자들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가치관을 교류하는 예술 살롱 문화의 기틀이 되었어요.
현대에 들어서면서는 예술가들이 교류를 통해 새로운 예술이 만들어지는 경우를 더 자주 찾아볼 수 있는데요!
예술가들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편지를 주고받는 과정 속에서 메일 자체가 예술로 만들어지며 '메일 아트'라는 새로운 장르가 탄생하기도 하고, 팝아트가 성행하면서는 작가가 밴드의 앨범 커버를 그리는 등, 예술가들의 콜라보도 많아졌죠.
그리고 이런 예술가들의 긴밀한 네트워크 중에서도 그 특유의 인
싸력으로 이름을 알린 작가가 있는데요,
바로 키스 해링이죠!
키스 해링은 슬럼가였던 뉴욕 맨해튼 이스트 빌리지에 교회 지하실을 개조해 클럽 57을 만들었죠. 그리고 케니 샤프, 바스키아를 비롯한 젊은 예술가들을 모았어요.
이 곳에서 각각의 예술가들은 자유롭게 실험적인 예술을 펼치며 자기만의 예술 세계를 만들어갔는데요. 이후 키스 해링, 케니 샤프, 바스키아 모두 팝아트를 대표하는 예술가로 성장했어요.
키스 해링은 길거리 낙서로 시작해 대중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예술계의 중심으로 들어왔는데요. 앤디 워홀같은 팝 아티스트는 물론이고 마돈나, 마이클 잭슨 같은 팝 가수와 할리우드 스타들과도 가깝게 지냈죠.
해링은 짧은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정말 다양한 콜라보 작품을 남겼고, 현재까지도 사랑받고 있죠.
이렇듯 예술가들은 교류를 통해 새로운 영감을 얻고, 새로운 작품들을 탄생시켜왔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예술가, 
크리에이터들은 서로 교류하고 있어요.

앞으로는 어떤 예술가들이 서로의 영감이 되고
그 안에서 새로운 작품들이 탄생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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