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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것만이 예술이 될 수 있을까?

'추'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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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비율과 섬세한 색감, 범접하기 힘든 정교한 표현들로
최상의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예술작품들!
그런데, 예술작품은 꼭 아름답기만 할까요?

실제로 미술관에 가면, 이따금 우리를 불쾌하게 만드는 작품들이 존재합니다.

어딘가 혐오스럽고 또 보기 불편한 작품들.
현대미술에선 이런 불쾌한 이미지들이 작품 속에 거리낌 없이 등장하면서, 불만을 토로하는 관람객들도 생겨났죠.

그런데 왜 예술가들은 이런 불쾌한 작품을 만드는 걸까요?

사실 예술의 역사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발전해왔습니다.
고대의 예술가들은 그 어느 것보다 완벽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려 노력했죠.
과거 유물들을 보면 고대인들이 얼마나 이상적인 '미'를 추구했는 지 알 수 있습니다.

이 시기엔 아름다움에 대한 엄격한 기준이 있었고, 그런 비례를 어긋나는 것은 모두 '추한 것' 취급을 받았죠.
고대의 신화들을 살펴보면, 아름답고 완벽한 것과 그 아름다움에 반하는 악, 그리고 그 악에 대한 공포를 담은 이야기를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중세에 들어서도 이러한 인식은 이어졌습니다. 당대 사회에서도 종교적 교리로 인해 선과 악의 대립은 강했고, 악한 것은 추한 것으로 여겨지며 선의 반대 개념으로서 ‘추함’이 자주 사용되곤 했죠.

하지만 18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풍자문학과 캐리커쳐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추한 것들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갖기 시작한 것이죠!
추는 여전히 두렵고 공포스러운 것인 반면에, 뭔가 계속 끌리는 매력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시기에는 추가 악과 분리되기 시작했는데요.
추함이 단순히 기피하고 지양해야할 것이 아니라, 감상자의 입장에서 기존의 아름다운 것과는 다른, 독특한 쾌감을 주는 것으로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19세기 이후로는 아름다움, 미 라는 것이 절대적인 것이 아닌, '주관적인 것'이라는 인식이 커져나갔습니다.
다시 말해, 사람마다 생각하는 아름다움이 다르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추의 존재는 점점 더 커져나갔습니다.

추를 보다 개념적으로 풀어내려는 시도도 있었는데요.
희극적인 것과 숭고한 것의 중간, 아름다움과 코믹함의 중간 개념으로 해석하기 시작했죠.

이 시기에 들어서며 추는 더 이상 수단이나 보조적인 존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닌 주체적인 위상을 갖게 된 것입니다.

현대 예술로 들어서면서는 '아름다움이란 개념이 무엇인가', '아름다움은 존재하는가' 등 미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던져지며, 추함과 아름다움의 경계도 점점 사라지고있고, 그 결과, 미술관 곳곳에서 우리는 다양한 형태의 추함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아름다움을 고민해온 예술의 역사 속, 추 역시 어떤 형태로든 존재해왔습니다.
예술이 변화해왔듯, 추함 또한 시대에 따라 다채로운 양상을 띄며 발전해온 것이죠!

20세기 인문학 거장 움베르토 에코는, “아름다운 코는 어떤 일정한 기준을 갖지만, 취한 코는 주정뱅이, 피노키오의 코 등 어마어마하게 풍부하다”며 추함은 아름다움보다 훨씬 더 다양하다고 말했습니다.

현대의 많은 예술가들도 이러한 추의 다양성을 활용하며, 동시에 추한 이미지가 주는 불쾌함과 호기심이라는 양면성을 통해 다양한 작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추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 시대의 '추'는 후대에
어떤 평가를 받게될까요?

문화예술 매니아들을 위한 놀이터,
널 위한 문화예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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