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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집 - 목조주택 설계

조회수 2020. 3. 22. 09: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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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흐르며 하나둘 사라지는 기억의 잔재에서 오히려 또렷해지는 것이 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연상하게 하는 이 집은 어느 중년 신사의 13년 전 기억 속에서 나왔다. ‘지혜의 집’이라고 명명한 조그마한 집. 다리가 달려 있어 어디라도 걸어갈 것 같은 이 집은 도심보다 한적한 숲과 어울린다. 겁 많은 고라니조차 경계심을 풀고 다가올 것만 같다.

글·디자인 김동희 건축사사무소케이디디에치(KDDH)

                http://kddh.kr

찬바람이 스산하게 부는 늦가을 오후. 낮에 통화했던 중년 신사가 논현동 사무실로 찾아왔다. 은빛 고운 머리칼이 5할을 넘긴 신사였다. 스스로 57세라고 조심스레 입을 뗀다. 한 켜 한 켜 쌓인 이마의 주름은 고단한 삶의 흔적이 되어 마음 한구석을 파고든다.


그는 급하게 커피 한 모금을 들이켜며 짤막하게 소개를 마치고는 연신 커피만 마신다. 사연을 가득 머금은 입은 엉킨 실타래를 풀기라도 하듯 한참을 멈춘다. 기다리는 내내 거울 속의 나를 마주 보고 있는 느낌이다.


중년 신사가 《메롱》이라는 제목의 낡은 소설책 한 권을 꺼낸다. 족히 10년은 넘어 보인다. 천천히 펼치는 책 안에 한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지혜가 있는 곳이라면….’

골 파인 볼펜 글씨 한 줄이 뚜렷하다. 그리고 책 사이사이에는 그림 몇 장이 끼워져 있다.


“오래전에 선물 받은 《메롱》을 즐겁게 읽었다”는 형식적인 말투가 그의 무거워 보이는 입을 비집고 나온다. 누가 엿들을세라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풀어낸 이야기가 두 시간을 넘긴다. 기나긴 사연이 끝나고 나는 시선을 그림에 고정한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문득 그림 속의 집을 그대로 작업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자, 그제야 용도가 궁금하다.


“어떤 집인가요?”


“글 쓰는 이가 머무는 집이며 동시에 방이다”며, “숲 속의 집처럼 작은 휴식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인다.


제아무리 특별했던 것도 시간이 흐르면 일상화되고 남는 것은 아쉬움 혹은 무관심뿐인 경우가 많다. 집은 특별하기도 하지만 일상적인 공간이다. 그림 속의 집은 특별함이 강하다. 이 집을 짓는 건 중년의 노신사가 13년 전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새로운 시작과도 같은 것이다.


‘지혜의 집’은 방과 집의 경계가 모호하다. 지혜롭게 공간을 활용하려는 사용자의 의도가 중요하게 적용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해된다. 거추장스러움을 걷어낸 집은 책 읽기에 좋은 고요한 공간이며, 글 쓰는 고뇌의 장소다. 또, 묵상이 필요하면 조용한 수도원 역할도 한다.


중년 신사는 “설령 숲에서 곰이 다가온다 해도 태연하게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숲과 일체 된 집이길 바란다”며, “자연과 함께하는 공간, 자연의 지혜를 얻는 공간이 되기를 희망한다"는 당부의 말을 남기고 이내 사무실을 나섰다.

정면 모형
배면 모양
좌측면 모형과 좌측 사선 모형
우측면 모형과 우측 사선 모형
평면 모형과 지붕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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