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의 집 이야기 7편 '내 집을 내가 지으면 안되나 2'

조회수 2019. 10. 26. 09: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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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사의 집 이야기

양성필 건축사(건축사사무소 아키제주 대표)

      064-751-9151 www.archijeju.com

어떤 방식을 선택하건 공사 전체를 도급계약하지 않으면 현장관리뿐만 아니라 매 순간 결정해야 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때 건축주의 역할이 가장 중요합니다. 아무리 건축적 지식이 풍부한 기술자도 결국 비용이 드는 문제는 건축주의 결정이 없이는 진행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결정이 늦어지면 시간이 지체되고, 그러면 인건비가 상승하기 때문에 현장에서 판단을 빨리 그리고 후회 없이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현장에서 판단을 빠르고 후회 없이 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일까요. 바로 설계도면을 자신의 구미에 맞게 잘 준비하는 것입니다. 설계도면이란 건축 계획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당연히 계획이 잘 준비돼 있으면 일할 때 혼선이 적겠지요.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건축 설계도면의 중요성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전체 공사비의 4%도 안 되는 보수율도 설계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현실적으로 건축사사무소에서 생산한 설계도면엔 현장에서 그대로 적용하기에 미흡한 부분이 많을 수 있습니다. 의뢰인은 설계도면에 모든 것이 다 결정되고 표현돼 있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모든 시공 과정을 표현하려면 재료와 공법의 결정권에 대한 법적인 보호, 건축사의 저작권에 대한 의뢰인의 이해, 또한 그 정도 분량의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적정한 설계비의 책정이 필요합니다.


왜, 설계도면에 시공에 관한 모든 사항을 표현하기 어려운지 기본적인 사항부터 생각해봅시다. 건축사사무소의 설계도면에서 기본적인 건축물의 디자인을 보여주지만, 원래 가지고 있던 가구와 새로 구입할 가구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도배지 마감을 지정하지만, 그 색상을 지정하지 못합니다. 욕실 마감을 타일로 지정하지만, 어느 회사의 어떤 제품인지 구분하지 못합니다. 게다가 두세 가지 패턴을 섞어서 멋을 내고자 할 때 더욱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아니 불가능하다고 봐야지요. 대개 이러한 사항은 인테리어에서 처리할 부분이라면서 넘겨버립니다. 인테리어 설계는 행정적인 규제 대상이 아니라고 생략한 채 넘어가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면 현장에서 설계도면을 던져버리고 그때그때 무엇으로 마감할지 고민합니다. 설계도면으로 모든 사항을 다 표현한다는 것은 희망 사항일 뿐입니다. 따라서 설계도면에서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처리할지 준비해야 합니다.


자신의 구미에 맞는 설계도면이란, 그러한 사항을 세세하고 꼼꼼하게 챙겨서 준비한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설계도면과 별도로 자신만의 공사 메모 수첩을 준비하기 바랍니다. 공사를 한참 진행한 뒤에 싱크대를 어떤 제품으로 할지, 에어컨을 어떤 타입으로 할지 하는 고민은 준비가 늦은 것이고, 공사할 때 기술자들의 판단을 어렵게 만들 수 있습니다. 공사를 총괄로 맡기지 않았다면 공사 관리자를 선임해 현장을 지휘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공사만 관리하는 전문 인력이 없기에 그 방법도 수월하지 않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건축주가 직접 공사를 지휘할 때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설계도면에서 정하지 못한 부분은 시공자와 원활하게 협의하기 위해 메모와 사진이나 제품 카탈로그 등 시각적인 자료를 준비해야 합니다.


흔히 건축물의 구조를 골조와 마감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골조는 철근콘크리트, 목구조, 철골조, 조적조 등 건물의 형태를 유지하게 하는 부분입니다. 사람에 비유하자면 뼈대에 해당합니다. 건축주가 직접 집을 지을 때 경험 없이 안 되는 것이 뼈대를 만드는 부분입니다. 마감 부분은 시공을 잘 못 했을 경우 비용상의 손해는 볼 수 있지만, 교체 또는 수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골조 부분은 교체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만약, 골조 부분에서 하자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어떤 공정의 하자보다도 훨씬 심각하고 위험합니다. 골조를 교체한다는 것은 집을 새로 짓는 것과 거의 다름없는 행위이기 때문에 절대 쉽게 보면 안 됩니다. 건축사인 저도 골조공사만큼은 전문 업체를 통해서 진행하라고 권유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건축물의 골조와 마감 공사 사이에 방수와 단열 공정이 있습니다. 건축공사에서 시공을 잘했는지, 못했는지 하는 기술적인 판단은 이 두 가지 공정에서 판가름이 납니다. 방수와 단열은 조언을 충분히 듣고, 아주 안전한 방법을 선택해야 합니다. 특히, 건축주가 직접 집을 지을 때 주위에서 들은 특이한 공법이 아닌 많은 사람이 해온 검증된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많은 사람이 오랫동안 선택한 방법이라면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건축주 자신이 공정별로 직접 발주하면서 집을 지을 때 염두에 둘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공사기간을 전문 시공자가 하는 것보다 더 길게 잡아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시공자의 공사 기간이란 공사에만 집중하고 전념하는 기간입니다. 대개 일반인은 그런 식으로 공사하지 못합니다. 수익을 위한 업業으로 자기 집을 짓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공사 기간을 여유롭게 잡지 못할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결코 직접 집을 지으면 안 됩니다. 둘째는 공정을 한 가지씩 적용해야 합니다. 한쪽에서 창호를 설치하는데 다른 곳에서 방수공사를, 또 다른 곳에서 타일 공사를 하는 등 여러 팀의 기술자를 한 번에 현장에 투입하지 말아야 합니다. 공사 기간이 다소 길어지는 단점이 있지만, 작은 공사 현장의 경우 한번 시작한 공정은 마무리될 때까지 연속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해당 단종업체는 집중해서 일하기 좋고, 건축주는 비용과 공사 관리 면에서 좋습니다. 두세 공정이 같이 움직이다 보면 현장에서 발생한 문제를 서로의 탓으로 돌리기도 합니다. 공사 기간은 좀 길어지겠지만, 그래도 현장을 안정적으로 운용하는 것이 낫겠지요.


건축주가 자기 집을 직접 짓겠다는 경우, 두 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공사비를 아낄 수 있을 것이란 유혹입니다. 실제 주위에서 직접 집을 지었더니 공사비가 통상적인 비용보다 적게 들었다는 말을 듣습니다. 하지만, 그 말만으로 쉽게 접근할 순 없습니다. 왜냐하면 공사 중 실수로 비용을 더 들인 속 쓰린 경험은 잘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공사를 맡기는 것보다 더 비용이 많이 든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시공 경험이 풍부하고 믿을 만한 시공자가 있다면, 그 시공자에게 최대한 많은 공정을 맡기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둘째, 내 집을 내 손으로 짓고픈 욕구 때문입니다. 물론, 자기 집을 직접 짓는다는 것은 정말 흥미로운 경험입니다. 하지만, 낭만적이거나 녹록한 일은 아닙니다. 건축주는 벽돌을 나르고 시멘트를 비비면서 보람을 느끼는 것보다 집 안을 어떤 분위기로 꾸밀지 고민하고 위생기기와 벽지, 마루 등 마감재를 고르면서 보람을 느끼는 것이 마땅합니다. 때문에 가급적 공종별 좋은 시공자를 선택하고, 지정하기 어려운 재료비는 공사비에서 제외하고 공사 계약하는 것이 적절한 자기 참여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건축사의 집 이야기'기사는 연재 시리즈로 매주 토요일에 업로드 됩니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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