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의 집 이야기 6편 '내 집을 내가 지으면 안되나'

조회수 2019. 10. 19. 09: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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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사의 집 이야기

양성필 건축사(건축사사무소 아키제주 대표)

      064-751-9151 www.archijeju.com

내 집을 내가 지으면 안 되나

건축설계하면서 가장 어려운 순간은 ‘믿을 수 있는 시공자를 추천해 달라’는 경우입니다. 의뢰인 대부분은 건축사는 좋은 시공자를 많이 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공자 소개는 마치 선남선녀를 만나게 하는 것 이상으로 어렵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저의 양심과 소신에 따라서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점점 시공자와 건축주의 만남을 주선하는 것이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로 다가왔습니다.


실상 건축사가 믿고 소개할 만한 시공자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소규모 민간 공사의 경우, 대개 종합건설사가 아닌 개인업자에게 맡깁니다. 그런데 이들 중 일부는 사업장 없이 활동하기에 핸드폰만 바꿔도 연락할 방법이 없습니다. 하긴 사업장이 있더라도 임대료가 연 500~600만 원에 불과하니, 그것만으로 신용이 확실해지는 것은 아니지요. 실제로 ‘의뢰인이 원해서 시공자를 소개했다가 공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서 의뢰인에게 원망을 들었다’는 동료 건축사의 말을 몇 번 들었습니다. 한번 불신이 생기기 시작하면 혹시 ‘건축사가 시공자를 소개하고 따로 이익을 챙기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심까지 받습니다. 그런 말까지 듣고 나면 ‘절대로 시공자를 소개하면 안 되겠구나’하고 생각합니다.


직접 그런 일을 당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의뢰인이 필요해서 요청한 것이고, 그에 따라서 소신껏 소개한 것뿐인데 무슨 문제냐?’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시공자에게 실망한 의뢰인이 그를 소개한 건축사를 원망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집을 짓는 일이 보통 신경 쓰이는 과정이 아니거든요. 게다가 아주 드물게 시공자가 잠적하기도 합니다. 그럴 땐 사라진 시공자를 대신해 건축사에게 책임지라고 할 판입니다. 시공은 설계와 달리 엄청나게 많은 자금이 들어갑니다. ‘잘못되면 내가 책임집니다’라고 결코 호언장담할 상황이 아니지요. 한편, 시공자를 잘못 소개했다고 원망을 듣는 공사 현장에선 시공자도 대개 이익을 보지 못했다고 원망합니다.


거리를 걷다 보면 무슨 사연인지 공사하다가 멈춘 현장을 간혹 봅니다. 그런 곳을 지나칠 때면 ‘분명 저기에 많은 사연이 있을 텐데 참으로 걱정이다’라는 안타까움이 절로 듭니다. 시공 도중 멈추면 단순히 그 공사에 들어간 비용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일단 그 현장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빈 토지보다도 못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현장을 시공자만의 잘못으로 생각하지 않고, 다른 시공자도 건축주가 공사비를 제때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오해해 꺼립니다. 더욱이 건축주는 공사비를 시공자에게 지급했음에도 시공자가 잠적한 경우, 대부분 시공자가 하청업체에게 공사비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기에 그 원망까지 듣게 됩니다. 잘못하면 이미 지급한 공사비를 또 지급해야 하는 상황까지 벌어집니다. 이러니 그런 시공자를 소개한 건축사를 원망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현실 속에서 저 역시 스스로 시공자를 선정하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집을 직접 짓는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지만, 대개의 공정에서 전문가의 힘을 빌어야 하며 건축주는 참여 수준을 고민해야 한다.

집을 짓는 과정이 중요한 까닭은 설계보다 더 현실적인 문제들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공사비 부담 문제이지요. 자본주의사회에서 돈은 곧 현실이라고 할 만큼 공사비가 중요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두 번째는 안전 문제가 따릅니다. 현장에서 안전사고는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작은 집을 지을 때 안전관리비 부담을 정상적으로 지우지 못해 사고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곤 합니다. 세 번째는 기술 문제입니다. 집을 짓는 과정은 다양한 기술자가 모여서 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공자가 기술이 없어서 비가 새고 결로와 곰팡이가 집 안 구석구석 생겨난다면 난감한 일입니다. 이 세 가지 이유는 설계하면서 꾸었던 꿈들을 잔인하게 포기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집을 짓는 과정을 간략하게 언급할까 합니다. 앞에서 언급한 세 가지 문제를 가장 바람직하게 대처하는 방법은 시공 등급이 높은 건설사를 시공자로 선정하는 것이겠지요. 그런 시공자를 선정해 표준도급계약하고 감리자 외에 감독관을 선임해 현장을 관리하면 문제들이 많이 줄어들 것입니다. 정상적인 공사 현장이라면 건설회사, 감리자, 감독관이란 세 가지 전문 직업군이 투입됩니다. 하지만 이런 인프라를 구성하려면 현장관리비나 시공 이윤 등을 높게 고려해야 합니다. 문제는 단독주택과 같은 소규모 현장에서 이러한 구성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현행 법규상 공사 규모가 500㎡(151.25평) 이하면 직영공사가 가능합니다. 대부분 소규모 단독주택 현장은 직영공사 현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규모가 작아도 종합건설사와 계약해서 시공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종합건설사와 계약하면 필수적으로 세금과 안전관리비 등이 추가돼 공사비 상승이 불가피하기에 직영공사를 선택합니다.


직영공사는 글자 그대로 건축주가 직접 시공 기술자를 데리고 집을 짓는 것입니다. 하지만 건축주가 시공에 관한 기술과 지식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 한 사람과 일괄 공사 계약합니다. 서류상 직영공사인데, 그 형태는 건설사와 도급계약하듯이 개인업자에게 맡기는 것이지요. 소위 김 목수에게 맡겼다느니, 박 아무개와 계약했다는 등의 이야기가 이러한 직영공사 형태입니다. 공사 전체를 박 아무개와 계약했더라도 법적으로 그 현장의 시공책임자는 건축주 자신입니다.

건축은 모든 공정을 개인이 이해하기엔 쉽지 않은 지식이 요구됩니다.
건축사인 저도 마찬가지지만, 건설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도 모든 공정을 스스로 해결할 순 없습니다.

직영공사는 현장관리비, 부가가치세, 안전관리비 등 이점이 많아 보이지만, 현장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 책임을 시공자에게 묻기 어려운 골치 아픈 방식입니다. 건축설계에서 ‘신고제도’와 건설현장에서 ‘직영공사’와 같은 불합리한 제도를 방치하는 것은 매우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건설사가 소규모 건축을 시공하더라도 면세 혜택을 주는 것이 낫지, 하자보수 책임을 묻기 어렵고 안전사고도 건축주에게 책임지게 하는 제도를 비용 절감이라는 이유로 용인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비용을 아끼면서 현장관리와 하자에 대한 책임을 시공자에게 물을 수 있는 안전한 방법이 없는 것일까요.


간혹 의뢰인에게 공사를 맡긴 김모 씨 혹은 박모 씨가 연락되지 않는다는 하소연을 듣습니다. 또는 총액 계약으로 일을 착수했는데 공사비를 올려주지 않아서 더 일할 수 없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한 시공자를 소개한 건축사는 그 원망의 불똥이 튈까 봐 마음을 졸이기 마련입니다. 좋은 시공자를 소개할 수 없지만, 그래도 덜 위험한 시공자를 선택하는 방법을 나름대로 일러볼까 합니다.


첫 번째, 그래도 회사로 등록된 시공자입니다. 종합건설이 아니라면 인테리어, 창호, 철골 등 단종업체로 등록되고 사무실이 있는 경우가 좋습니다. 또한, 회사로 등록된 경우에도 단순히 명의를 빌려서 시공하는 시공자는 피해야 합니다.


두 번째, 공종별 내역을 잘 뽑는 행정 능력이 있는 시공자입니다. 공사 과정에 계획 변경 등을 비롯한 내역을 정리할 경우, 그런 작업이 불확실한 시공자는 공사비 변경의 근거를 따지지 못해 애를 먹는 수가 많습니다.


세 번째, 건축을 전공한 시공자입니다. 아마도 깜짝 놀랄 일이지만, 시공자 대다수가 건축 비전공자입니다. 건축 전공자가 비전공자보다 설계도면의 내용을 잘 이해하고 반영할 수 있습니다.


네 번째, 인적 사항이 분명한 시공자입니다. 잘못될 경우 비용 출혈이 적지 않은 것이 공사계약이므로 인적 사항이 불명하면 반드시 피해야 합니다. 다른 지역에서 공사하기 위해 왔다는 등 거주지가 불명확한 경우, 아예 시공 예정자에서 제외하기를 권유할 만큼 문제가 발생하면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항들을 모두 고려해 시공자를 선택했는데도 문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좋은 공사평을 듣는 시공자가 어느 날 부도를 내고 잠적했다는 소문을 듣기도 합니다. 의도적인 불성실함이 아닌 시공자 개인의 어려움으로 공사를 마무리하지 않고 잠적하는 상황까지 모두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이와 같은 어려움 때문에 차라리 직접 공사하겠다고 결심하는 경우도 소규모 현장에서 종종 봅니다. 또는 모든 재료비는 건축주가 계산하고 시공자는 인건비만 지급하도록 계약하는 방식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건축주가 직접 집을 짓겠다고 마음을 먹어도, 그 모든 기술적인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에 결국 인건비 계약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겠지요.

일전에 방송에서 몇 년에 걸쳐 자신의 집은 직접 짓겠다면서 벽돌을 나르고 쌓는 일을 하는 기인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저도 주변에서 그런 경우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고요. 하지만 건축주 자신의 노동력을 동원해 집을 짓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쉽지 않은 선택입니다. 차마 그런 방식은 만류하고 싶네요. 건축은 모든 공정을 개인이 이해하기엔 쉽지 않은 지식이 요구됩니다. 건축사인 저도 마찬가지지만, 건설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도 모든 공정을 스스로 해결할 순 없습니다.

'건축사의 집 이야기'기사는 연재 시리즈로 매주 토요일에 업로드 됩니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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