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잣나무 숲을 짊어진, '부메랑' 주택

조회수 2019. 5. 16. 07: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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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전원주택

지하층을 포함한 이 집의 기초는 철근콘크리트이며, 그 이외의 부분은 경량목구조이고, 데크 부분은 경량목구조에 쓰이는 부재를 활용해 중목구조 형식으로 살짝 변형한 구조다. 이 집은 외벽 마감재와 내장재가 모두 목재다. 구성하기 나름이지만 목재 마감은 사람을 정서적으로 편하게 한다. 외벽재인 적삼목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목재 특유의 나이 들어감을 보여줄 것이고, 내장재인 레드파인도 시간이 가며 그 특유의 붉은색이 점점 짙어져 중후한 공간을 만들어 갈 것이다.


마치 사람얼굴에 조금씩 주름이 생기듯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변화하면서, 유행에 따라 자본으로 손쉽게 바꿀 수 있는 재료가 갖지 못하는 근사하게 나이 들어감을 보여줄 것이다. 집값이 오르건 말건, 오직 시간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치들이 이 집에 축적될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이 집의 구성원이 달라질 수도 있고 세상이 변해 담아내야 할 것들의 종류와 크기가 변할 수도 있고, 그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집의 구성이 바뀌어야 할 시점이 올 것이다.


원계연 | 사진 박완순

HOUSE NOTE

DATA

위치 경기도 광주시 도척면 상림리

대지면적 660.00㎡(200.00평)

건축면적 157.60㎡(50.84평)

건폐율 23.9%

연면적 195.20㎡(59.15평)

용적률 23.0%

규모 지하 1층, 지상 1층

높이 5.5m

주차 1대

건축구조 경량 목구조(지하 철근콘크리트)

설계기간 2014년 9월~2015년 3월

시공기간 2015년 4월~2015년 10월


MATERIAL

외부마감

  지붕-0.7t 알루미늄

  벽-적삼목+콘크리트노출+청고벽돌

내부마감 12t 레드파인+타일+스프러스

설계 스튜디오더원 070-4416-1005

시공 건축주 직영

단면도
부메랑과 같은 운명적 귀향

“고향 언저리에 집지을 땅을 알아보느라 수년을 헤맸는데, 이 땅을 보자마자 그 자리에서 결정했다. 도로가 가로지르게 되어 하루아침에 사라진 고향집을 떠나 50년 세월 타향을 전전하다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생각을 하니 무어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감회가 남다르다.”


상량식 날 건축주의 이야기다. 스스로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재된 에너지에 따라 출발 지점으로 돌아오는 부메랑Boomerang처럼 건축주 부부의 운명은 이미 이곳으로 돌아오도록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누가 봐도 한눈에 반할 만큼 훌륭한 땅이, 그것도 지척에 남아 있었다는 것은 이들 부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 이외엔 설명할 길이 없다.

길게 늘어뜨린 배치와 건축물 전체의 50%나 되는 반외부의 지붕 아래 공간들이 주변의 자연을 집으로 끌어들이고 실내를 외부로 확장해 풍부한 공간을 만들어낸다. 채광과 환기도 유리해지고. 그것이 이 집을 구성하는 가장 큰 장점이다.

건축하는 사람의 역할은 건축주 부부가 운명의 터에 무사히 안착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들의 여생을 잘 보듬을 수 있다면 무사한 안착이 되는 것이고, 나아가 그들의 자제들이 날개를 펴고 비상할 수 있는 밑거름을 만들어 주어 부부가 세상에 다녀가는 생물학적 이유에도 한 몫 할 수 있다면 이 집은 제 역할을 충분히 하게 되는 것이다.


집이라는 하드웨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한계가 있음은 분명하지만,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미 땅이 훌륭한 밑거름을 갖고 있으니, 그것을 잘 활용해 풍부한 가능성을 제시하면 된다. 견고하면서도 유연한 집으로…….

구들방 덕에 자연스럽게 생긴 굴뚝 역시 이 집을 상징하는 하나의 아이콘이 됐다.

집이 들어서면서 발생하는 어쩔 수 없는 훼손을 최소화하고 원시림에 가까운 대지 옆의 잣나무숲과 훌륭한 조망을 집 안으로 끌어들이며 이웃집들과 적절한 관계를 맺도록 하고, 이곳의 기후에 적당히 대응하게 그래서 이 땅의 장점을 충분히 살리도록 구성한다. 대지의 형상을 유지하면서 경사면에 집을 슬쩍 끼워 넣으니 태화산(메)자락의 잣나무숲을 어깨 위에 지게(負) 된다. 숲의 초입에 들어서서 마치 이 숲을 지키는 정령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이 숲을 누리고 있는 최대의 수혜자다.

지하, 다락 평면도
1층 평면도
반외부 지붕 아래 공간이 50%

둘이 사니 20평이면 충분하다 생각했는데, 다니러올 자제들과 손님을 생각하면 여분의 방이 더 필요할듯하니 방 3개짜리 2층집이면 어떨까 한다. 초기 설계 단계에서 나온 이야기다.


집을 짓는다는 것을 땅 위에 건축물을 세워 실내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면적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경우를 종종 접한다.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시대 대부분의 주거 형식인 아파트에 익숙해짐과 자본의 논리를 활용하는 집장사들의 ‘면적’ 내세우기 때문일 것이다.


땅 위에 솟아오르는 건축물과 함께 마당도 집의 일부고 집으로 가는 골목길도 집의 일부가 되고 멀리 혹은 가까이 보이는 조망도 집의 일부이며, 햇볕 조절용으로 빗물 조절용으로 설치된 처마 아래의 반외부 공간도 집의 일부임은 물론이다. 대부분 면적과는 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즉, 집이라는 것이 실내 공간과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설명하고 건축주로부터 이 부분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 설계의 시작이다.

거실에서 바라본 주방과 식당, 이곳에서 동선은 다락과 현관으로 이어진다.
다락. 주말과 방학이면 건축주 3세들이 찾아와 다락으로 툇마루로 데크로 마당으로 텃밭으로 산으로 숨바꼭질 하며 건축주 부부의 혼을 빼놓으며 성장할 것이다.

이 집의 지붕이 덮고 있는 실제 면적은 70평이다. 그중 창고와 간헐적으로 사용되는 사랑방을 포함한 실내 공간은 35평이며, 그중 주생활 공간인 본채는 24평이다. 즉, 출입구와 처마, 데크 등 지붕이 있는 반외부 공간이 건축물의 절반인 것이다. 단독주택 중에서도 특히 전원에 있는 단독주택은 내부와 외부가 어떻게 만나느냐가 중요하다. 설계하는 동안 다락이 추가되긴 했지만, 주생활 공간인 본채 규모는 방 1개에 24평으로 정리됐다. 채광, 환기 등 쾌적함의 정도는 아파트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하다.


본채 규모를 24평으로 정리하되 손님이 사용할 사랑방 한 칸을 직접 불을 때는 구들방으로 마련했다. 구들의 구조에 따라 낮아지는 아궁이에 유리로 된 불문을 설치해 외부용 벽난로로 활용, 둘러앉을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해 전원 속 단독주택의 장점을 살렸다. 자본의 논리로 따지자면 비효율적인 구들방이 ‘불’과 직접 대면할 수 있는, 그래서 시각을 포함한 여러 감각을 자극할 수 있는 훌륭한 장치가 됐다.


전원생활이란 여러 가지 낭만을 즐길 수 있음과 동시에 불편함을 감내하는 일이다. 아파트관리사무소와 동사무소 등 공공의 영역에서 처리해 주던 일들과 가까운 곳에서 누리던 편의시설의 일부를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 그중의 하나다.


이 집은 상수도가 공급되지 않아 지하수를 활용해야 하고 지하수를 저장할 물탱크실도 마련해야 했다. 또 공공의 영역에서 처리해 주던 여러 가지를 해결하기 위한 도구를 보관해야 하고 사계절을 즐기기 위한 여러 가지 장치와 도구를 보관할 창고도 필요하다. 본채와 사랑방, 창고를 길게 늘어뜨리고 맞닿는 벽이 없도록 서로 떼어서 구성하되 이동하는 동안 비가림을 하도록 한 지붕 아래에 구성해 처마와 지붕을 통해 집 전체를 이동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했다(廊).

안방. 구성하기 나름이지만 목재 마감은 사람을 정서적으로 편하게 한다.
자연에 순응한 경사면 배치

길게 늘어뜨린 배치와 건축물 전체의 50%나 되는 반외부의 지붕 아래 공간들이 주변의 자연을 집으로 끌어들이고 실내를 외부로 확장해 풍부한 공간을 만들어낸다. 채광과 환기도 유리해지고. 그것이 이 집을 구성하는 가장 큰 장점이라 하겠다. 전원 속 단독주택이기에 발생하는 불편함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의 긍정적인 불편함으로 구성해, 불편함 덕에 얻을 수 있는 훌륭한 가치와 익숙한 편리함을 교환하도록 하는 것. 그래서 풍부한 공간을 활용해 거주자를 집밖(실외)으로 내보내는 것 등이 이 집의 거주자가 스스로 이 땅에 안착하도록 도와주는 전략 중의 하나다.


선순위에서 우위를 차지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한눈에 보이는 가장 그럴듯한 풍경을 받아들이려고 불필요한 부분을 열지 않고 외부에서 조망하도록 구성해 거주자를 집 밖으로 내보내는 일. 현대를 살고 있는 대부분의 우리에게 적용 가능한 이야기일 수 있는, 시각으로 많은 것을 받아들이는 데 점점 익숙해져 무뎌지는 나머지 감각들을 되살릴 수 있는 기회가 이 땅에 있으니 그것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게 자칫 염려되는 전원에서의 무료함을 달램과 동시에 건축하는 사람의 도리라 생각한다.


물론 이 부분에 있어 거주자뿐 아니라 다니러 오는 사람, 즉 이집에 오는 모든 사람의 무뎌진 감각을 자극하는 것이 가능하리라 본다. 그것들을 자연스럽게 가장 오랜 기간 누리며, 세상에 나가는 밑거름으로 축척하고 오감을 균형 있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발달시킬 이 집의 최대 수혜자(?)는 건축주의 3세들이 될 것이다. 주말과 방학이면 찾아와 다락으로 툇마루로 데크로 마당으로 텃밭으로 산으로 숨바꼭질 하며 건축주 부부의 혼을 빼놓으며 성장할 것이다.

데크에서 바라본 손님방 아궁이

마당의 지하수 관정은 현대적인 방식의 우물이며 집에 들어서며 한눈에 들어오는 마당을 더욱 정감 있게 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구들방 덕에 자연스럽게 생긴 굴뚝 역시 이 집을 상징하는 하나의 아이콘이 됐다. 재료 선정과 사이즈 이외의 특별한 디자인 없이 동네 어르신들의 손에 맡겨져 쌓아올린 굴뚝은 여성들에게 반응이 좋다.


이 프로젝트에 파묻혀 살아서 집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는 나에게 굴뚝에 대한 여성들의 반응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부분 중의 하나다. 단순히 보기 좋아서일까, 유전자의 반응일까. 일반화시킬 수 없겠으나 밥 짓는 역할을 하는 아궁이에 딸린 굴뚝 그리고 이와 관련해 오랜 기간 전통사회에서 여성의 역할과 관련해 내재된 유전자의 반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시 스친다.

출입구와 처마, 데크 등 지붕이 있는 반외부 공간이 건축물의 절반이다.

대지 내의 경사면은 건축주가 이웃을 대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일조를 확보할 수 있는 향과 대지 경사면의 방향이 상당히 틀어져 있어 200평의 땅을 평탄화했다면 지형을 망가뜨림은 물론이고 이웃집 마당의 일조는 상당히 불리해진다. 이러한 이유를 바탕으로 건축주가 대지 내의 경사면을 수용해준 덕에 이웃집의 일조 확보는 물론 시각적으로도 너른 마당을 공유하게 됐으며 원지반의 훼손도 최소화하게 됐다. 개발업자의 손에 의해 훼손되기 전에 건축설계를 먼저 의뢰한 건축주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대지의 형상을 유지하면서 경사면에 집을 슬쩍 끼워 넣으니 태화산(메)자락의 잣나무숲을 어깨 위에 지게(負) 된다.

밭을 갈려면 7일이 걸린다 하여 이레가리골이라 불리던 이 동네는 본래 산중의 경사지 밭이었던 땅을 15년 전부터 주택지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대지는 운 좋게도 잣나무숲을 마주하고 있는 몇 남지 않은 땅 중의 하나다. 대지면적 200평이 작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집이 다 지어진 후 사그라졌다. 200평이란 평면적인 한계와 대지 경계선은 인간이 만들어낸 것일 뿐 원래 존재하지 않았으며, 건축주가 이웃을 대하는 태도와 여러 가지 노력으로 인해 이제 무의미해진 것이다.


‘이 집은 땅이 꽤 넓은 것 같아요.’ 집이 다 지어진 후 방문한 사람들의 반응이다. 전망 좋은 쪽으로 집을 앉히지 그랬냐는 집짓는 과정 동안 심심치 않게 들렸던 핀잔 섞인 목소리도 집을 다 지은 후 사그라들었다.

주택 위에서 바라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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