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대에 걸친 원(願)을 푼, 한옥집 '진여재'

조회수 2019. 1. 11. 07: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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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현대식 한옥

삼대(三代)에 걸친 간절한 원(願)을 푼 사람이 있다.


경남 양산시 원동면 내포리 늘밭마을에 34평 전통 한옥을 지은 이용문씨다. 건축주는 한국전쟁이 한창일 때 충남 서천의 빈농(貧農)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의 허름한 초가집 옆에는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덩그렇게 높고 큰 기와집이 있었다. 끼니조차 때우기 버거웠던 때, 삼시(三時) 기와집 굴뚝에서는 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당시 ‘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을 짓고 살아야지!’ 하는 할아버지의 한숨 섞인 소리는 어린 맘에도 사무쳤다.


글·사진 윤홍로 기자

건축 정보

위치 경남 양산시 원동면 내포리

건축형태 단층 전통 목구조 흙집(한옥)

부지면적 300평

건축면적 34평

평면구조 ‘ㄱ’자 형

벽체구조 심벽치기

외벽마감 황토 맞벽 후 회벽처리

내벽마감 황토 맞벽 후 황토미장

창호재 2중 목창

바닥재 황토, 운모, 참숯가루, 송진가루, 백모래

지붕마감 토기와

난방시설 기름보일러 및 전통구들

건축비용 평당 600만 원

설계 및 기술지도 한국전통초가연구소 052-263-3007 

전통미와 실용성의 조화

고향 서천을 맨주먹으로 떠나와 양산에서 기반을 닦고 자녀들도 성장하자, 어릴 적 할아버지께서 되뇌시던 말이 맴돌았다. ‘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을 짓고 살아야지!’ 하지만 양산에서 삶의 뿌리를 너무 깊숙이 내렸기에 귀향해 기와집을 지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도심 한가운데 기와집을 짓기도 뭣해 90년대 중반 전원행을 결심했다. 그 후 안동 하회마을을 비롯해 전국의 이름난 전통 한옥을 두루 답사했다.

우진각지붕의 처마선이 외벌 기단 앞까지 뻗어 있어 벽체에 빗물이 들이치거나 튀는 것을 막아준다
토담회 회원들과 손수 지은 ‘진여재(眞如齋)’

이용문 씨의 집은 안채인 기와집과 사랑채인 초가집 두 채가 마을을 굽어보는 자리에 다소곳하게 앉혀져 있다. 전통 흙집 기술인 양성자 과정을 이수한 이용문 씨와 동기생 8명이 모여 지은 집이다. 이들은 수료 후에도 ‘토담회’를 만들어 친목을 유지하고 있는데 저마다 제집을 지을 만한 능력의 보유자들이다.


건축주는 “8명의 대목(?)이 한데 어우러져 지은 집인 만큼 완성도는 더할 나위가 없이 좋다"라고 한다. 울산 울주군 한국전통초가연구소에서부터 제자에게 줄 100여 년 된 항아리를 손수 싣고 온 윤 소장도 곳곳을 둘러보고는 흡족해하는 눈치다. 그리곤 자수성가하여 삼대에 걸친 원을 푼 이용문 씨에게 ‘진여재(眞如齋)’라는 당호(堂號)를 써주었다.

늘밭마을을 한 눈에 내려보는 누마루에는 '진여재'라는 당호堂號가 걸렸다.
안방과 건너방, 부엌,화장실 등 각각의 실을 연결하는 툇마루 튓간 기둥 사이애 분합문을 달았다.
황토를 짚과 반죽해 심벽치기한 벽체

이렇듯 겉모습만 보면 전통 가옥이란 느낌이 든다. 하지만 댓돌에 신을 벗고 분합문(分閤門 : 대청과 방 사이나 대청 전면에 다는 문)을 열고 들어서면 툇마루를 통해 현대식 안방과 건너방, 욕실, 주방, 구들방이 연결된다. 퇴칸 기둥 칸살(間─) 사이에 분합문을 단 것도 현대적이다. 여름에는 문을 활짝 열고 툇마루에 걸터앉아 시원한 바람을 쐴 수 있으며, 겨울에는 문을 닫아 햇볕은 받아들이고 바람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


또한 천장에 대들보와 도리, 서까래가 노출된 안방과 대청 사이에는 뗐다 달았다 할 수 있는 4짝 불발기분합문(두꺼운 창호지를 발라 빛이 통과하지 못하도록 함)을 달아 필요시 공간을 넓게 사용하도록 했다.

가구와 함께 전통미를 살린 대청

취사 공간인 입식부엌은 가구를 ‘ㄱ’ 자로 배치했으며 여기에 잇대어 다용도실과 장독대로 통하는 문을 내 전통가옥의 단점인 긴 동선(動線)을 단축시켰다. 한편 기본공간인 화장실과 욕실, 보일러실을 우측 끝부분에 두어 생활의 편리성을 더했다. 한국의 전통 가옥에다 현대 주거생활의 편리함을 접목시킨 보기 드문 주택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뼈대는 전통 방식인 목구조로 결구(結構) 했다. 기둥머리를 사개맞춤으로 하고 보아지(기둥머리에 끼워 보의 짜임새를 보강하는 짧은 부재)와 주두(柱頭)를 얹어 보와 도리를 더욱 안정감 있게 받쳐주고 있다. 또 도리 받침 장여 밑에 사방으로 소로를 넣어 건축미를 한층 더 높였다. 목재와 흙을 주재료로 한 심벽구조(心壁構造)로 지은 한옥은 단열성은 우수하지만 상대적으로 기밀성(氣密性)이 떨어진다고 한다.

기밀성은 창문과 문의 틈새, 벽의 틈새가 얼마나 많은가에 따라 좌우된다. 하지만 이 집은 기름보일러를 땐다는 것을 차치(且置) 하고 창문이 많음에도 따뜻한 기운이 감돈다. 또한 기밀성이 높으면 실내가 탁해지기 쉬운데, 벽체가 황토라 물 흐르듯이 공기가 순환해 맑고 깨끗하다.


이는 전통적 가옥구조에다 현대적 기술을 응용한 한국전통초가연구소의 목구조 흙집 시스템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윤 소장은 “내력벽과 비내력벽 모두 질이 좋은 황토를 짚과 함께 반죽해 18㎝ 두께로 심벽치기함으로써 축열 효과를 높였다”라고 한다.


목구조의 취약점은 습기다. 살아 있는 나무에게 물은 생명과 같지만, 목재로 사용될 때는 습기에 섞고 벌레가 꾀므로 치명적이다. 때문에 하인방(下引枋 : 벽 아래쪽 기둥 사이에 가로지른 인방) 아래 40㎝ 지점에 벌레를 방지하려고 소금을 뿌린 후, 그 위에 항균과 습기 제거용 참나무 숯을 10㎝ 정도 깔고 다시 마사토를 덮고 황토로 마감했다.

전통미와 현대적 실용성이 돋보이는 이용문 씨의 한옥. 건축주가 전통 목구조 흙집 건축 기술을 배운 토담회 회원들과 5개월 동안 함께 지은 집이다. 더욱이 할아버지, 아버지도 뜻을 이루지 못한 원을 이뤘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남다르다. 마을을 굽어보는 누마루에 걸린 ‘진여재’란 당호처럼 이용문 씨의 집에선 건축주의 삶이 배어 나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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