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의 계절, 전통 한옥에 취하다 '청록당'

조회수 2018. 11. 12. 07: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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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 한옥 펜션

화개산을 배경으로 득량만을 바라보는 보성 삼정 한옥마을에 들어선 한옥 펜션 ‘청록당’. 이름 그대로 수백 년 수령의 소나무 숲과 차밭으로 둘러싸인 한옥 화개루, 청록당, 이향헌이 청아하고 고풍스러운 운치를 자아낸다.


신록의 계절에 툇마루에 턱하니 걸터앉아 솔숲을 헤치고 내려온 산들바람에 몸을 맡긴 채 주인장이 정성스레 내어준 녹차 향에 흠뻑 취하는 건 어떨까. 밤하늘의 밝은 달빛과 별빛, 수풀 사이에서 유영하는 반딧불이 그리고 맹꽁이와 풀벌레 우는소리는 덤이다.


글·사진 윤홍로 기자

취재협조 청록당 010-3626-1259 http://blog.naver.com/ysl1259

청록당은 마을 한가운데 정자나무 세 그루가 있다 하여 삼정三亭이란 이름이 붙은 전남 보성군 조성면 축내리 삼정 한옥마을에 자리한다. 청록당엔 현대 한옥이니 신新한옥이니 하는 수식어 대신 전통 내지 정통 한옥이란 수식어가 잘 어울린다.


비단 기둥과 도리와 보를 사개맞춤으로 짠 뼈대, 살포시 들어 올린 처마 선, 반자 구들방과 오량 대청, 누마루와 툇마루, 머름과 세살 창호 때문만은 아니다. 이를 기본으로 평면 구조가 칸 개념으로 부엌, 방, 대청, 방을 옆으로 늘어뜨려 무더운 여름 바람이 잘 통하게 잡은 남부 지방 전형의 일자형 한옥이며, 외진주外陣柱(안둘렛기둥) 밖에다 딴 기둥을 세워 만든 툇간退間(전퇴前退)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청록당 주인장 임흔기·여순임부부가 한옥 건축에 얼마나 정성을 쏟았는지 가히 짐작할 만하다. 임흔기 씨가 전통 한옥을 고집한 이유는 명료하다.

하늘과 산을 살포시 받아 안은 듯한 지붕선이 저 멀리 득량만을 바라본다.
솔숲 사이를 헤집고 내려온 계곡물과 덱과 대청이 조우하는 화개루. / 낮은 굴뚝에서 남도 지방 한옥임을 알 수 있다. 굴뚝 연기는 모깃불 역할도 한다.

“옛날 우리네 살림집인 한옥엔 대청이 있어요. 여름 나기, 또는 의례라는 용도보다 나무로 짠 집을 보존하려면 환기 때문에 꼭 필요했거든요. 그런데 요즘 편리성만 강조하다 보니 개량 한옥이란 이름으로 한옥의 대청이 아파트 거실로 전락했어요. 또한, 한옥은 전퇴가 있어야 한복에 동정을 단 것 같이 들어가고 나오는 멋이 있어요. 전퇴가 없으면 한옥은 창고가 되어 버려요.


그리고 한옥엔 구들을 드려야 목재에 영향을 미치는 습기를 제거해 내구성을 유지해요. 그뿐만 아니라 요즘 난방비가 장난이 아니잖아요. 우리 집은 화개루, 청록당, 이향헌 모두 330㎡(100평) 정도인데, 만약 기름보일러를 땠다면 겨울철 한 달 난방비가 3백만 원은 족히 나왔을 거예요.”

청록당이 자리한 터는 임흔기 씨의 선조가 대대로 살아온 곳으로, 화개루 우측에 12대 조상 24분을 모신 사당이 있다. 그는 이곳에서 나서 초등학교까지 보내고 도시로 나갔다 10년 전에 귀향했다고.


“도시로 나가 학업을 마치고 서울 등지에서 40여 년 금융업에 종사했는데 젊어서부터 줄곧 ‘나는 언젠가 꼭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1980년도부터 도시의 아파트에서 살았지만, 아무리 아파트 평수가 커도 마음이 부초浮草같아서인지 내 집처럼 느껴지지 않았어요. 예전에도 이곳에 전통 한옥인 안채, 사랑채, 행랑채 등이 있었어요. 10년 전 퇴직 후에 이곳 고향에 돌아와 ‘화개산 다원’을 운영하다 3년 전에 한옥을 다시 지은 거예요.”

다실로 사용하는 청록당 누마루. 선자연 서까래, 인방, 머름 그리고 한지를 바른 세살 목창이 고풍스럽다.
진경산수화 속의 한옥 펜션, 청록당

임흔기·여순임 부부는 아파트에서만 30여 년 살았는데 왜 춥고 불편하다는 한옥을 지은 것일까. 임흔기 씨는 한옥이 춥고 불편하다는 것은 고정관념에 불과하다고.


“주택 관련 서적에서 양옥도 많이 봤지만, 내가 한옥에서 나고 자라서인지 썩 맘에 와 닿지 않았어요. 약간의 불편함을 각오하고 신경 써서 한옥을 지었는데, 막상 살아 보니 그리 불편하지 않아요. 귀향해 차밭과 한옥에만 12억 원 정도 들어갔지만, 나는 그것을 재화 개념으로 보지 않아요. 조상 대대로 내려온 터전을 잘 보전해 후손에게 남긴다고나 할까요. 차밭이 약 19만 8천㎡(6만 평)으로 아마도 개인으로는 전국에서 제일 넓은 편이라 노동량이 많아 몸은 고단하지만, 음식이 맛있고 잠자리가 편안하고 자고 일어나면 몸이 가볍고 머리가 맑아요. 몸무게가 82㎏ 일 때 왔는데 지금 72㎏이에요.”

청록당. 넓은 대청마루 곳곳에 차와 관련한 골동품들이 한옥과 어우러져 정취를 자아낸다. 한옥의 운치에 취하고 녹차 향에 취하고 소나무 향에 취하고 주인장의 마음 씀씀이에 취하고… 한옥 펜션 청록당의 매력이다.
구들장이 있는 방, 머름대에 누워 팔을 괴고 내다보는 밖이 한가로이 보인다.

청록당은 화개 산자락에 자연 경사면을 살려 주변 환경과 일조日照, 전망을 고려해 게스트 룸인 화개루, 다실茶室인 청록당, 사랑채인 이향헌으로 채를 나눠 배치한 형태다. 청록당과 이향헌 사이에 궁궐처럼 둔 회랑回廊은 이동할 때 눈비를 피할뿐더러 적당한 차폐 역할도 한다.


여순임 씨는 청록당에 대해 “마을 뒷산 모습과 비슷한 지붕선, 흙과 나무와 돌 등 자연 속에서 얻은 재료로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우리 고유의 정서와 한옥의 미를 가장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곳이고, 뒷산·둘레길·폭포 등 자연 그대로를 읽고 만지고 느낄 수 있는 곳이며, 소나무 그늘 아래 차밭은 삶의 여유를 찾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이다”고 한다.

가족 단위 손님이 주로 찾는 화개루 게스트 룸. 한옥 때문일까, 녹차 때문일까. 아토피를 심하게 앓는 아이들도 편안하게 잘 잔다고.

4백여 년 내려온 집터에 고풍스럽게 들어선 한옥 펜션 청록당. 이곳에선 자연과 한옥과 사람이 하나가 되어 느림과 비움의 미학을 실천하게 한다. 퇴계 선생이 즐거움이란 자연을 매개媒介하여 얻어진다고 했던가. 즉, 자연을 매개함으로써 도의 道義를 기뻐하고 성정性情을 바르게 할 수 있다는 상자연賞自然이다. 도시생활에 지친 심신을 청록당에서 치유하는 것은 어떨까.

전원 속에서의 삶

새벽 5시쯤 일과가 시작이다. 바구니를 옆에 끼고 녹차밭에 도착해 100그램의 녹차를 만들기 위해 4시간 정도 한 잎 한 잎 찻잎을 따서 3시간 정도 덖고 비비고 해야 수제 차가 만들어진다. 하루 중 제일 내 마음에 드는 시간은 다 만들고 나서 분위기 잡고 시음하는 때다. 색깔과 향에 취하면서 또 하루를 접는다.


풀과의 전쟁 시작! 5월이면 우리 집 차밭은 풀과의 전쟁이 시작된다. 오만 가지 풀들이 차밭 사이에 무성하게 자란다. 자기 나름대로 삶의 터전을 마련하지만, 우리에겐 필요하지 않은 불청객들... 그러나 군데군데 취나물이 자리 잡고 있어 인정상 예초기도 조심조심 피해 간다. 우리 남편은 취미·특기가 풀베기다. 하루에 차밭 천 평 정도 풀베기는 기본이다. 그런데 보조인 나는 금방 갖고 있던 농기구도 어디에 뒀는지 모른다. 내일은 찾는데 시간은 또 얼마나... 오늘도 몸은 피곤하지만, 이렇게 사는 게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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