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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 한옥 리모델링】 1억으로 땅과 집 모두 장만한, 군위 전통 한옥 승혜원

조회수 2017. 10. 4. 07: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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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 보, 도리, 인방, 서까래 등 어느 것 하나 반듯하게 생긴 부재部材라곤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군위 한옥 ‘승혜원丞惠園’이 더 자연스럽고 정겹게 다가오는지도 모른다. 부엌과 방을 합쳐 모두 네 칸 반뿐인, 심지어 남녘 주거의 상징격인 마루조차 없는 초가임에도 초라함보다는 단아함과 정갈함이 배어 나온다. 아름드리 소나무 숲에 아늑하게 둘러싸인 승혜원의 짚을 이은 우진각지붕, 처마 끝으로 미끄러져 내리는 빗줄기,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자연석 기단을 따라 쭉 놓인 쪽마루 그리고 인기척을 앞선 산새와 풀벌레 소리는 삼복더위에 청량감마저 들게 한다.


가느다란 마룻대의 상량문엔 ‘丁卯 二月 二十一日’이라고 쓰여 있다. 최근 정묘년이 1987년이니 육십갑자로 여기에서 60년을 빼면 1927년에 지어진 90년 된 초가임을 알 수 있다. 이 초가는 40여 년 빈집으로 남아있던 것을 최문규(57) 씨가 땅값 2천만 원만 주고 매입해 5천만 원 정도를 들여 리모델링을 하고 사별한 아내의 이름을 따서 승혜원이라고 당호堂號를 붙인 곳이다. 자신이 거처하는 방이나 집에 특정한 뜻을 담아 이름을 붙이는 당호, 승혜원에는 어떤 사연이 깃든 것일까.


윤홍로 기자 사진 이상현 기자

HOUSE NOTE

DATA

위치 경북 군위군 효령면 오천리

건축구조 전통 가구식 목구조

대지면적 280.99㎡(85.00평)

건축면적 33.05㎡(10.00평)

건폐율 11.76%

연면적 33.05㎡(10.00평)

용적률 11.76%

건축연대 1927년 2월 21일

리모델링 2015년

시공 건축주 직영


MATERIAL

외부마감 지붕 - 인조 짚

            외벽 - 외대 엮은 후 흙벽(후면 흙과 돌 사용)

내부마감 천장 - 황토

            내벽 - 황토 미장 위 한지 벽지

            바닥 - 황토 구들방, 엑셀 파이프

창호 전통 세살 목창

평면도

“3년 전, 아버지께서 어머니랑 갑작스레 사별하시고 난 뒤 어머니를 떠나보낸 슬픔과 잘해주지 못한 아쉬움을 미련 삼아 어머니랑 노후생활을 보내시려고 생각하셨던, 군위 언저리에 있는 작은 초가집 하나를 리모델링하셨습니다. 이름은 어머니의 이름을 따서 ‘승혜원’이라 지으셨고요. 옆에 쉴 수 있는 작은 정자 하나도 같이 만드셨어요. 당시 저는 군 복무 중이었습니다. 간간이 편지와 전화로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었는데요. 아버지께서 손수 하나하나 정성을 들여 작업하셨고, 주위 전원 풍경과 잘 녹아내리게 시공하셨습니다. <전원주택라이프>의 글을 읽다 한번 소개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으로 몇 자 올립니다.”

경북 군위군에 자리한 초가 승혜원의 건축주 최문규 씨의 큰아들 민기(23) 씨가 <전원주택라이프>에 남긴 애잔함이 묻어나는 글이다. 민기 씨에게 연락해 사진 속의 승혜원을 보면서 남녘 특유의 ‘一’자형 전통 한옥으로 근래 보기 드물게 지붕에 짚을 이은 초가라는 점에 놀랐다. 그리고 승혜원을 방문해선 지붕에 이은 짚을 손으로 만져본 후에야 그것이 인조라는 사실에, 또한 1억 원으로 땅과 집(리모델링), 조경까지 모두 해결했다는 점에 다시 한번 놀랐다.

승혜원은 두툼한 구들로 깐 답석을 따라 마당 안으로 들어서자 육중하고 울퉁불퉁한 소나무 숲을 배경으로 자연석 외벌 기단 위에 초가가 다소곳하게 앉혀져 있다.

판장문을 열고 부엌으로 들어서면 솥단지를 건 부뚜막만 황토에서 시멘트로 바뀌었을 뿐 불을 때는 아궁이와 채광과 환기를 위한 살창 심지어 천장에 그을음까지 옛 모습 그대로다. 

90년 된 근대 한옥의 재탄생

승혜원의 초입은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산자락 끝이라 마치 외딴 암자로 향하는 것 같다. 주택 입지 하면 으레 사회 기반시설이니 생활 편의시설이니 하는 것만 주판알 튕기듯 따져서일까. 반신반의하며 갈지자로 난 오솔길로 접어들어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초가지붕이 모습을 빼꼼 드러낸다. 두툼한 구들로 깐 답석을 따라 마당 안으로 들어서자 육중하고 울퉁불퉁한 소나무 숲을 배경으로 자연석 외벌 기단 위에 초가가 다소곳하게 앉혀져 있다. 예전 이발소 한쪽 벽면에 걸린 액자 속에서나 볼법한 정겨운 시골집 풍경이다.


건축주 최문규 씨가 세속의 티라곤 한 점 찾아볼 수 없는 이곳에 초가를 마련한 것은 3년 전 사별한 아내를 그리워하는 마음에서다.

천장 서까래 사이로 보이는 개판을 대신한 나뭇가지를 통해 흙과 나무와 돌 등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로 지은 한옥임을 알 수 있다.

“저는 32살에 교사인 아내와 결혼해 경남 창원에 신혼집을 마련하고서도 서울 신림동에서 고시를 준비하다가 늦게야 생업에 뛰어들었어요. 어느덧 두 아들이 성장하고 삶의 재미를 느낄 즈음 아내가 암에 걸려 5년간 투병 끝에 완치됐지요. 그때 저는 아내하고 ‘우리 퇴직하면 전원에서 건강하게 살자’고 약속했어요. 그랬는데 아내가 3년 전 동료들과 차를 마시다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거예요. 그때의 충격과 미안함이란… 그로부터 1년간 저는 아무 생각 없이 살다가 전원에서 생활하자던 아내와의 약속을 떠올리며 이곳에 소박한 집을 장만한 거예요.”

구들방엔 부엌의 부뚜막 위로 벽장이 있으며, 쪽마루에서 여닫이문으로 바라보이는 벽면엔 나무막대 두 개를 걸쳐 놓은 시렁이 있다.

승혜원이 있는 곳은 경북 군위군 효령면 오천리 문화 류씨 집성촌의 외곽에 속한다. 최문규 씨는 대구에 있는 집과 회사에서 가까운 팔공산자락을 샅샅이 훑은 끝에 이곳을 찾아냈다고 한다.


“수양하는 마음으로 팔공산자락을 뒤져서 찾아낸 이곳은 군위I.C에서 가깝고, 집성촌의 변두리라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으며, 지방도로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소나무 숲이라 산새와 풀벌레 소리밖에 들리지 않아요. 어찌나 터가 마음에 와 안기던지…, ‘땅도 얼마 되지 않고 문중회의다 뭐다 절차만 번거로워서 팔지 않겠다’던 문장門長 어른을 6개월간 따라다닌 끝에 겨우 터를 마련했어요. 등기부상 면적은 85평으로 평당 20만 원씩 1,700만 원인데, 점유한 토지의 경계가 불분명하기에 낡은 한옥 10평을 포함해 2천만 원을 주고 샀지요.”

구들방과 거실 겸 주방은 창호를 열면 하나의 공간이 된다.    

최문규 씨는 애초 낡은 한옥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 오두막을 지으려고 했다. 하지만 오두막은 주변 분위기에 비해 너무 격이 떨어진다는 생각에 90년 된 한옥의 리모델링을 결정한다. 한옥의 뼈대를 살린다, 벽체를 전통 방식의 흙벽으로 구성한다, 지붕은 슬레이트를 걷어내고 단열을 보강해 볏짚을 얹는다, 우측의 방 두 개를 하나로 터서 난방용 엑셀 파이프를 깐다, 우측 방 옆에 화장실 반 칸을 덧댄다. 이것이 한옥의 리모델링 계획인데, ‘지붕에 얹을 볏짚을 어디서 구하고, 또 누가 이느냐’ 하는 것이 문제였다.


“한옥 지붕재 하면 대개 기와 아니면 볏짚인데, 기와는 재목材木에 비해 버겁기에 볏짚으로 선택했어요. 그리고 ‘볏짚은 몇 년에 한 번씩 갈아주지’하고 걱정하고 있는데, 주위에서 요즘 벼는 개량종이라 길이가 너무 짧아 지붕을 이기에 부적합하다는 거예요. 그러면 용인 민속촌과 안동 하회마을 등의 초가는 어떻게 유지 관리하는 걸까. 그 궁금함과 조급함에 가까운 하회마을을 찾으니 다들 요즘에는 인조 짚을 쓴다는 거예요. 인조 짚은 볏짚과 모양이 비슷하면서 부스러지지도 않고 불도 안 붙고 반영구적이라면서요. 그래서 우리 집은 지붕에 황토 알매를 올리고 합판을 치고 단열재를 깔고 방·투습지를 대고 볏짚 대신 인조 짚을 올렸어요.”


리모델링을 한 승혜원은 폐가 상태에 가까웠던 예전 한옥에 비하면 새 건물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자연석 기단 위에 올라서서 세살 창호 여닫이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봐야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부재들을 통해 리모델링을 한 근대 한옥임을 알 수 있다.

창살문

기둥, 보, 도리, 인방, 서까래 그리고 창호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반듯하게 생긴 부재部材라곤 찾아볼 수 없다.

가느다란 마룻대의 상량문엔 ‘丁卯 二月 二十一日’이라고 쓰여 있으니, 1927년에 지어진 90년 된 초가임을 알 수 있다.

초가에 울려 퍼지는 청산별곡

승혜원은 ‘一’자형 홑집으로 좌측에서 우측으로 1칸 입식 부엌, 1칸 구들방, 2칸 거실, 반 칸 화장실로 구성돼 있다. 리모델링을 했다지만, 구조나 형태, 평면 등은 근대 한옥의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이 점에서 가까운 곳에 시멘트를 처바른 지정 문화재인 전통 한옥보다 나은 편이다.


판장문을 열고 부엌으로 들어서면 솥단지를 건 부뚜막만 황토에서 시멘트로 바뀌었을 뿐 불을 때는 아궁이와 채광과 환기를 위한 살창 심지어 천장에 그을음까지 옛 모습 그대로이다. 천장 서까래 사이로 보이는 개판을 대신한 나뭇가지를 통해 흙과 나무와 돌 등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로 지은 한옥임을 알 수 있다.


부엌과 구들방 사이엔 사람이 드나들기보다 작은 상 하나를 들이기에 알맞은 쪽문이 있다. 구들방엔 부엌의 부뚜막 위로 벽장이 있으며, 쪽마루에서 여닫이문으로 바라보이는 벽면엔 나무막대 두 개를 걸쳐 놓은 시렁이 있다. 다른 방에 비해 공간 활용도가 높고 드물게 장식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예전의 안방인 듯싶다. 최문규 씨는 “이 방을 침실로 사용하는데, 주말이면 으레 지인들이 찜질방으로 차지한다”면서, “벽체와 창호 주변을 요즘 말하는 기밀하게 시공하지 않은 까닭은 구들 난방이라 혹여 스며든 연기가 빠져나갈 구멍이 필요했기 때문”이란다.

승혜원 좌측에 정덕정姃德亭이란 정자를 앉혔다.

구들방 옆의 두 칸 방은 원래 각각 한 칸짜리였던 방 두 개를 하나로 합친 것이다. 리모델링 과정에서 구들을 걷어내 대문에서 마당 사이의 경사로에 깔고, 그 자리에 순간 온수 가스보일러용 엑셀 파이프를 깔았다. 현재는 거실 겸 입식 주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 옆에 반 칸을 덧달아 화장실을 설치했다.


최문규 씨는 근대 한옥을 리모델링한 후 사별한 아내의 이름을 따서 당호堂號를 승혜원이라 붙이고, 그 좌측에 정덕정姃德亭이란 정자를 앉혔다.


“단정할 정에 어질 덕, 처제의 이름으로 뜻이 참 좋죠. 자매가 3살 차가 나는데, 아내는 결혼할 때까지 처제하고 단 둘이 대구에서 살았어요. 자매가 함께하라고 승혜원에서 잘 보이는 자리에 정덕정이란 정자를 지은 거예요.”

승혜원 좌측 흙벽에 걸린 농기구들이 초가에 운치를 더한다.

자연석 기단을 따라 쭉 놓인 쪽마루 그리고 인기척을 앞선 산새와 풀벌레 소리는 삼복더위에 청량감마저 들게 한다.

주위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로 지은 초가임에도 초라함보다는 단아함과 정갈함이 배어 나온다.

최문규 씨는 승혜원을 ‘복집[福家]’이라고 말한다. 승혜원을 장만하려는 취지를 안 일꾼을 비롯한 주변의 여러 사람이 복스러운 마음으로 도와줬기 때문에 복집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가 승혜원을 장만하는 데 든 비용은 땅 구입 2천만 원, 리모델링 공사 6천만 원(인조 짚 자재 및 시공 1천만 원 포함), 정자 및 조경 2천만 원, 가재도구 6백만 원을 합해 총 1억 6백만 원이다. 전세가격도 안 되는 비용으로 전원에 주택을, 더욱이 아름드리 소나무 숲까지 정원으로 두었으니 승혜원이야 말로 복집이 아닐 수 없다.

“승혜원을 장만하려는 취지를 안 일꾼을 비롯한 주변의 여러 사람이 복스러운 마음으로 도와줬기에 승혜원은 복집일 수밖에 없다”는 최문규 씨.

슬레이트를 걷어낸 모습

황토 반죽을 위한 해초 끓이는 모습

서까래 위에 황토 알매 올리는 과정

지붕에 황토 알매를 올리고 합판을 치고 단열재를 깔고 방·투습지를 대기

주말이면 승혜원 마당은 콘도처럼 찾아드는 지인들로 활기를 띤다. 특히 어둠이 깔리기 시작할 무렵이면 바비큐에 와인은 기본이고 흑백 영화와 올드 팝 등 과거 속에서 추억을 하나하나 꺼내느라 최문규 씨의 움직임은 분주해진다. 군복무 후 서울에서 행정고시를 준비 중인 큰아들에 이어 미대입시를 준비 중인 작은아들(민준)까지 대구에서 외지로 나가면 승혜원에 안주하겠다는 최문규 씨. 속된 티라곤 한 점 찾아볼 수 없는 승혜원에서 그가 부르는 청산별곡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Before] 리모델링 전 90년 된 한옥. 예전에도 초가는 관리가 어려워 지붕에 슬레이트를 올린 듯하다.

[After] 공사비 6천만 원(인조 짚 자재 및 시공 1천만 원 포함)을 들여 리모델링을 한 한옥

승혜원 대문

주택 배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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