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체질 아냐" 30대 대기업 직장인의 충격 근황

조회수 2020. 12. 23. 12:0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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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만 해도 서메리에게 특별한 수식어는 없었다. ‘문과 출신’, ‘평범한 직장인’, ‘사무직 5년차’가 그녀를 표현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랬던 그녀가 출판번역가의 꿈을 가지고 퇴사했다. 3년이 지난 지금은, 프리랜서가 된 서메리를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없다.


서메리는 <나는 내 나이가 참 좋다>, <태도의 품격>, <인듀어>, <행복을 잘라드립니다> 등을 옮긴 출판번역가다.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 <나와 작은 아씨들>, <오늘을 버텨내는데 때로 한 문장이면 충분하니까>를 출간한 작가다. 


구독자 7만명이 넘는 채널 ‘서메리MerrySeo’을 운영하는 유튜버다. 온오프라인에서 출판번역가, 프리랜서 관련 강의를 하는 강사다. 경찰서 인트라넷의 웹툰을 연재한 일러스트레이터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자신을 ‘대범한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덧붙여 ‘프리랜서의 삶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특별하지도 않고, 대단하지도 않다’ 라고 말했다. 


서메리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녀의 삶은 예상했던 것보다 평범했고, 그래서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인터뷰가 진실되게 느껴졌던 이유다.

수년간의 회사 생활이 준 교훈... '나는 회사 자체가 안 맞는 사람이구나'

출처: 유튜브 채널 '머니 by 클래스101'

퇴사를 결심한 계기가 있나


하나의 큰 사건이 있진 않았다. 마지막으로 일했던 회사에서 정규직으로 5년을 근무했었다. 그전에는 몇몇 회사들에서 아르바이트, 인턴으로 몇 개월 근무를 했다. 


임직원이 5명도 안 되는 중소기업부터 3천 명이 넘는 중견기업까지 다녔다. 업계로 구분해도 법조계, 패션계, 광고계를 다녀봤다. 


그 결과로 느낀 건 ‘나는 특정한 업계나 조직이 아니라 회사 자체가 안 맞는 사람이구나’ 결론을 내렸다. 회사 밖에서 먹고사는 사람에 도전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다들 직장생활 잘하는데 왜 나만 회사에 적응을 못하지’ 자책도 했을 것 같다


굉장히 많이 했다. 그 부분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 출간 후 욕도 많이 먹었다. 욕을 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한 말은 “세상에 회사 체질인 사람이 어디 있냐” 였다. 


물론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했는지 안다. ‘부모님도 맞벌이로 회사 생활을 하면서 나를 키우셨는데, 왜 나는 그걸 못하지’ 라는 자괴감이 굉장히 많이 들었다. 처음부터 회사 체질이 아니었는데 5년 이상을 버텼던 이유가 어떻게 보면 그 자책감 때문이었다. 버텨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서.



부모님의 반응은 어땠나


반대를 많이 하셨다. 오히려 부모님이 더 걱정하셨던 것 같다. 한번 끊긴 경력을 다시 있는 건 너무 힘들기 때문에 하지 말라고, 버텨보라고 하셨다. 


경력단절, 경단녀라는 단어도 있지않나. 그런데 그때는 결심이 확고하게 서 있었을 때라서 포기하지 않았다.


지금은 자랑스러워하시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인정해주시는 편이다. ‘회사 밖에서 먹고 살 수 있는 능력이 없을 줄 알았는데 아예 없지는 않았구나 하시면서(웃음).



사업이 아니라 프리랜서를 생각했던 이유는


자본금이 없으니까. 돈 문제가 가장 컸고, 성격 자체가 한 번에 뭔가를 많이 투자해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에 도전할 수 있는 성격도 아니다. 


돈이 넉넉하게 있었더라도 성격상 사업은 못했을 것 같다. 사업을 하지 않더라도, 회사를 다니지 않으면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 월세, 휴대폰 요금, 공과금을 내다보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빤히 보인다. 


만약에 1천만 원을 투자를 해서 어떤 사업을 했는데 망하면 바로 회사를 다시 들어가야 하는 최악의 상황으로 빠질 수 있다. 더 심한 최악이 있을 수도 있다. 빚을 진다든지.. 그런 게 무서워서 사업은 생각도 못했다.


프리랜서의 삶은 예상치 못한 감정들의 연속이었다

퇴사한 바로 다음 날 아침의 기분은 어땠나


퇴사 전에는 좋은 식으로든 나쁜 식으로든 엄청난 감정이 느껴질 줄 알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담담해서 놀랐다. 진짜 고요하고. 


‘내가 회사를 안 가도 되는구나’ 휴가나 주말이랑 다르게 내일도 모레도 다음 달에도 안 가는구나. 이런 느낌들이 한번에 밀려왔다고 해야 하나. 사람이 너무 큰 사건을 만나면 오히려 이성적으로 된다고 하지 않나. 그런 게 아니었나 싶다.



삶이 크게 바뀐 게 있다면


일하는 모습 자체는 생각보다 안 바뀌었다. 직장인도 주어진 일을 하는 거고, 프리랜서도 결국 일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일할 때의 모습은 배경만 바뀌었지 똑같다. 


일 외의 시간과 일상은, 일단 출퇴근을 안 하는 것부터 바뀌었다. 회사 다닐 때는 아침에 일어나면 씻고 화장하고 머리 말리고 ‘어떤 정장을 입지’ 고민했다. 이런 모습들이 일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프리랜서와 직장인의 가장 큰 차이점은, 프리랜서는 내 시간을 내가 원하는 대로 내 속도대로 쓸 수가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착각하면 안 되는 것이 있다. 


내 시간을 내가 원하는 대로 쓴다고 하면 뭔가 느긋하고 여유롭다는 상상을 하는데… 물론 그럴 때도 있지만 더 바쁠 때도 있다. 직장인보다 더 바쁘고, 더 오래 일해야 될 때도 있다. 


단, 조절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는 것뿐이다. 예를 들면 점심 먹고 날씨가 너무 좋아. 그러면 한 시간 정도 산책하고 일을 해도 된다. 대신에 그날 저녁은 1시간 더 일을 해야 한다.



생각했던 것과 달랐던 부분은


직업을 고를 때 혼자 일하는 직업 위주로 골랐다. 인간관계에 지쳐 있어서 웬만하면 사람 안 만나고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그래서 출판 번역이라는 일을 하게 됐다.


출판 번역은 책 한 권 주어지면 2~3개월 동안 누구와도 연락할 필요가 없다. 아무도 만날 필요 없고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다. 


이렇게 평생 살 줄 알았는데 어쩌다보니 유튜브도 시작하고, 강연과 인터뷰가 들어오면서 직장 다닐 때보다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고, 외향적인 활동들을 하게 된 거예요. 이렇게 살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이렇게 돌아다니면서 사람 만나는 건 좋다. 만약 회사 다닐 때 이런 일을 하라고 했으면 싫다고 했을 것 같다. 그런데 혼자 일하는 시간을 겪어보고, 그 뒤로 자연스럽게 내가 선택해서 사람 만나는 일을 하니까 지금은 만족하고 있다.


1년 간의 프리랜서 존버기... "아무도 나를 써주지 않았다"

수익이 없었던 1년 동안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는데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 5년 동안 일한 직장이 법률사무소였다. 사무직으로 일하다가 퇴사를 했는데, 변호사 2명과 사무장 1명이 있는 작은 법률사무소를 시작하는 단계에서 도와달라는 요청이 왔다. 


그때는 근 1년 동안 수입이 하나도 없었던 시기라서 엄청 고민을 했다. 결과적으로는 타협을 했다. 아예 거절은 하지 못하고, ‘파트타임으로 근무를 해보면 어떻겠냐’ 라고 하셔서 일주일에 이틀씩 출근하는 계약직으로 타협을 했다.



프리랜서에서 파트타임 직장인이 됐는데, 그 때의 심정은 어땠나


괜찮은 상황이었다. 많은 프리랜서들이 이런 환경을 원할 거라고 생각한다. 일주일에 2, 3일 정도는 조직에 소속돼서 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환경. 파트타임 일을 할 때 굉장히 안정적이라고 느꼈다. 당연히 월급이 많진 않았다. 


일주일에 2일 일하는 만큼만 받았는데, 가능한 한 오랫동안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몇 개월 동안 일을 잘하고 있었는데, 회사가 자리를 잡으면서 압박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이틀만 출근할래. 풀타임으로 나와야지’ 끝까지 고민하다가 결국 회사를 그만뒀다.

대범한 선택을 했다.


사실 일주일에 2일은 회사 일을 하고, 나머지 3일은 계속 프리랜서 시도를 하고 있었다. 최종 선택을 내려야 했을 시점에는 프리랜서 번역가로서 일이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에 확실히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출처: 유튜브 채널 '서메리MerrySeo'
1년간의 '프리랜서 지망생 '기간 동안 서메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 닦았다. 출판번역가의 꿈을 꾸며 퇴사했지만, 삶은 불예측의 연속이었다. 그녀에게 첫번째 주어진 의뢰는 번역이 아닌 일러스트였다.

1년 동안 심리적으로 잘 버텨낼 수 있었던 노하우는


사실 쉬는 기간 없이 공부하고, 회사 생활하다가 딱 1년간 휴식기가 온 거다. 이런 시간에 세계여행을 가는 사람들도 계신데 성격이 너무 소심하다보니 무서웠다. 가만히 쉬고 있으면 망할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다. ‘뭐라도 생각나는 걸 다 해보자’ 이러면서 보냈다.


번역일을 못 받았다는 건 출판사에서 번역일을 안 맡겨줬다는 뜻이다. 이력서도 돌리고, 출판 쪽에서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이름과 얼굴을 알리려고 노력했는데 아무도 나를 써주지 않았다. 검증된 경력이 하나도 없으니까. 


부족한 경력을 극복하려고 출판사를 직접 차렸다. 메리북스라는 출판사를 차려서 직접 책을 번역하고, 전자책으로 판매했다. 


돈은 벌리지 않았지만 결론적으로 일석이조였다. 경력도 쌓고, 불안함도 극복하고. 번역 의뢰가 들어오길 마냥 기다리고 있었다면 온갖 안 좋은 생각과 함께 불안감이 찾아왔을 거다. 


‘적어도 책을 내기 전의 나보다는 번역가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거야’ 라고 생각하면서 블로그, 유튜브도 하고 손에 잡히는 일들을 다 하면서 극복했던 것 같다


1년 후 찾아온 프리랜서 성수기, '유일한 결재 라인은 나의 결정'

1년 후에는 거절해야 할 정도로 번역 의뢰가 많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때 당시는 실감하지 못했다. 1년이 지난 어느 순간부터는 쉴 새 없이 번역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일부는 ‘일이 너무 많아서 죄송하지만 어려울 것 같다’고 거절해야 했다. 


하나하나 들어오는 일들을 처리하기에 바빠서 성수기가 왔다는 사실도 몰랐다. 처음에는 ‘잠깐 이러다가 말겠지. 또 비수기가 오겠구나’ 생각했는데 쭉 성수기더라(웃음).


프리랜서의 길이 항상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가장 힘들 때는


일감이 없을 때의 불안함이 가장 크다. 그 다음은 책임이 너무 크다는 게 가장 큰 고충이다. 책임져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휴가철에 가족들이랑 여행을 가더라도, 마음 한구석에는 ‘지금 이렇게 놀고 있으면 나는 돈을 못 버는데’ 라는 생각이 든다. 


가족들은 다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가족들은 유급휴가지만, 나는 아니다’ 라는 생각에서 오는 불안함이 있다. 요즘은 심리적인 불안감 뿐만 아니라 실제로 경제적 안정을 갖기 위해 노력 중이다. 작더라도 안정적인 수입이 생기는 일들을 만들어 놓으려 한다.



‘프리랜서라서 행복하다’ 라고 느낄 때


꽤 많다. 특히 먹는 거를 좋아한다. 유명한 맛집에 줄 안 서고 먹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점심, 저녁 피크타임을 피해서 간다. 어떤 유명한 맛집도 나한테는 문이 다 열려 있다. 맛집 프리패스다.


‘업무적으로’ 행복하다 느낄 때


회사 체질이 아닌 면이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그중 가장 큰 하나는, 직접 일을 처리해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이 보기에 답답하고, 과장님이 하는 일이 내 스타일이 아닐 때가 많았다. 


‘저 사람 나름의 생각이 있겠지’ 라고 믿고 지켜볼 줄 알아야 되는데, 그런 성격이 못됐다. 회사에서는 결재라인도 길다. 그냥 처리하면 될 것 같은데 과장님, 차장님, 부장님, 이사님 결재를 다 받아야 한다. 속이 터질 것 같았다.


프리랜서로 일할 때는 내가 유일한 결재 라인이다. 나 혼자 결정하면 그대로 실행이 된다는 거. 개인적으로 가장 행복하다.


평범했던 사무직 직장인, 출판 번역가가 되기로 결심하다

출판 번역가의 길을 선택한 이유


많은 후보군 중에서 지웠다 추가했다 하면서 고른 직업이다.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나라는 사람에 대해 많이 고려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냥 남들이랑 똑같이 ‘내가 들어갈 수 있는 회사인가’, ‘내 스펙으로 갈 수 있는 회사인가’, ‘연봉이 어떻게 되나’, ‘복지가 어떻게 되나’ 만 생각했다. 


‘나는 이런 성향인데, 이 회사에 가면 이런 게 잘 맞을까’ 라는 생각을 전혀 못했다. 그럴 여유도 없었고, 남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에만 집착하고 있었다.


프리랜서 직업을 고를 때는 다른 무엇보다 ‘나’를 보려고 많이 노력했다. 책을 좋아하고, 조용히 혼자 하는 일을 좋아하고, 외국어 공부를 좋아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쭉 적어 놓고, 이런 성향들을 종합했을 때 출판번역가라는 직업이 떠올랐다.



해외에 살았던 적도 없는데, 어렸을 때부터 영어를 잘한 편인가


시험을 위한 영어 공부는 못하지 않았지만, 출판번역가는 프로로서 영어를 다뤄야 하는 직업이다. 그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실력이었다. 


한국에서 살면서 영어를 쓸 기회 자체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영어를 잘하는지 못하는지도 몰랐다. 그냥 주어진 교육 제도 안에서 답 맞추는 훈련만 했다. 


번역 아카데미에 등록을 했을 때 중급 클래스도 떨어지고, 입문 반으로 들어갔다. 번역가 공부와 함께 영어 공부도 병행해야 했다. 


이때가 객관적인 영어실력을 평가해볼 수 있었던 첫번째 계기였다. 솔직히 중급반은 붙을 줄 알았다. ‘내가 영문과 출신에 토익이 몇 점인데’ 하면서.



거의 1년간 학원을 다녔다. 취업, 입시 공부를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맞다. 학창시절에도 딱히 성실하게 공부하진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건 했지만 스스로 뭘 찾아서 공부하진 않았다. 그런데 ‘출판번역가가 돼서 책을 읽고 영어를 다루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라는 강한 꿈이 생긴 후에는 능동적으로 바뀌었다. 


번역, 영어 공부를 하는 기간에는 안 시킨 것도 했다. 학원 수업, 과제가 아닌 것도 스스로 공부했다. 열심히 질문하는 타입도 아닌데 하나라도 배우고 싶어서 질문도 열심히 했다. 나도 나에게 그런 면이 있는 줄 몰랐다.


누구나 출판 번역가가 될 수 있다... "욕심 부리지 않는 것이 중요"

영어를 손 놓은 사람도 번역가가 될 수 있을까


영어를 공부하는 초반 단계에서 욕심을 안 부리는 게 중요하다. 토익 성적을 말하면서 ‘여기서 어느 정도로 공부해야 될까요’ 라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다. 


시험 점수로는 절대 평가를 할 수가 없다. 토익 만점인데 영어 실력은 모자란 사람들이 많다. 반대로 토익 점수는 낮은데 텍스트를 읽는 능력은 탁월한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나는 토익이 900점대니까 금방 하겠지’ 이런 마음을 내려놓고, 겸허한 마음으로 시작해야 한다. 


반대로 ‘나는 토익점수나 수능점수가 낮으니까 시작도 못하겠지’ 이런 마음도 내려놓아야 한다. 자만심을 가질 필요도, 자괴감을 느낄 필요도 없다. 


일단 번역하고 싶은 책이나 영화를 보면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지 실력 파악을 해야 한다. 부족한 점이 파악되면, 당장 원어민 수준으로 끌어올리려고 생각하지 말고 지금의 수준보다 딱 한 걸음씩 높이는 걸 목표로 하면 된다.



소설, 에세이, 경제/경영서, 실용서 등 번역가의 전문 분야가 정해져 있나


번역가마다 다르다. 특정 분야만 번역을 하시는 분들도 있다. 나는 제너럴리스트에 가깝다. 소설, 자기개발, 경제경영서, 에세이, 인문서, 잡지, 철학서 모두 해봤다.


출판번역을 하다가 영상번역, 기술번역으로 전환할 수도 있나


물론이다. 그 반대에서 출판 번역으로 들어오는 사람들도 많다. 병행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도 출판번역, 기술번역, 영상번역을 다 해봤다. 출판번역이 메인 업무지만 기술번역, 영상번역도 한다. 생계형 프로N잡러지 않나(웃음).


출판번역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조언한다면


성향만 맞는다면 좋은 직업이다. 지금은 번역가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일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번역가의 일이 가장 좋다. 책과 영어를 좋아하고, 시간을 내 속도대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영어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고 시작조차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두려움보다 자신감을 갖고 꼭 한 번 도전을 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마음만 먹는다면 기회는 점점 넓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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