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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트럼프 통역.. 영어로 최고가 되기까지

조회수 2020. 12. 2. 11:4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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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이 아니면 안될 것 같아', 내가 사랑하는 일을 찾은 방법


2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뒤 전문직의 꿈을 품고 25살에 통번역 대학원에 도전해, 국제회의 통역가로서는 최고의 커리어라 할 수 있는 대통령 통역까지 담당한 최현진 통역사.

‘통역이 좋아’가 아니라 ‘통역이 아니면 안 되겠어’라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한 도전이 어느덧 통역 11년 차, 영어 공부는 30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그는 ‘통역’이라는 일이 설렌다고 한다.


대통령 문재인, 오바마, 트럼프, 힐러리 등 국제 정상들이 자리하는 국제회의에서 VIP 통역을 담당하며 대한민국의 입과 귀가 되기도 하고, 문화/경제/과학/사법/의학/IT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번역하며 사람들의 롤 모델이 되고 있는 최현진 통역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인생 첫 통역을 하던 날

처음 통역을 접했던 것은 중학생 때였어요. 캐나다에서 유학을 하던 중, 엄마가 학교에 상담을 하러 오셔서 선생님과의 소통을 도와드렸죠. 두 분이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셨지만, 제가 있었기에 마치 한 언어를 사용하듯이 대화를 나눴던 날이 인상 깊게 남아있었어요. 그때는 그게 ‘통역'인 줄도 몰랐었죠!


한국에 돌아와 대학에 진학한 이후, 우연히 통번역 대학원 출신의 통역사셨던 교수님을 만나 면담을 하게 되었어요. ‘너는 뭐가 되고 싶으냐’라는 교수님의 질문에 어린 마음에 당차게 ‘저는 영어로 최고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했죠. 그랬더니 교수님께서 영어가 빼곡하게 적혀 있는 통번역 대학원 입학시험 문제집을 주시더라고요. 매일 하던 영어공부인데 너무 낯설었죠. 새로운 표현, 어려운 단어들을 접하면서 새로운 자극을 받았어요.



대학생 때는 아직 어리고, 앞으로의 미래도 유망할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인지 ‘완성되기까지 오래 걸리는 꿈’을 갖고 싶었어요. 그런데 막상 준비를 시작해보니 나의 부족함도 느껴지고, 앞으로 공부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는 벽을 느꼈죠. 그런 혼란스러움 속에서 통번역 대학원이라는 꿈은 잠시 접어두고, 일단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죠.

25살, 퇴사 후 통역에 도전하다

어린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 좋은 경험도 많이 쌓았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20대 여성으로서 사회생활을 한다는 게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죠. 일을 하다 보니 오히려 전문직에 대한 목마름이 더 커졌어요. 앞으로 정말 오랫동안 일을 하고 커리어를 쌓아갈 텐데, 젊은 여성으로서 더 존중받고 대체될 수 없는 일을 하고 싶었던 거죠.


2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입시생으로 돌아가겠다고 했을 때, 가족들이나 주변 분들께서 많이 걱정하시기도 했어요. 하지만 오히려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 제로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비워지면서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어요. ‘백지상태이기 때문에 그림을 잘 그리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믿음을 스스로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통역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

통번역 대학원에서는 흔히 ‘잠자는 시간 빼고 공부하고 훈련해야 한다’고들 하는데, 학교와 집을 오가는 시간만 줄여도 영어공부를 2~3시간 더 하지 않을까 싶은 거예요. 그래서 과감하게 집을 나와 폐소공포증이 있는 제가 학교 앞 작은 고시원에서 1년 동안 공부했어요.


몸과 마음은 힘들었지만, 학교에 제일 먼저 가고, 학교에서 제일 늦게 나왔다는 안도감이랄까요. 이보다 더 열심히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후회 없이 공부했어요.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싶기도 한데 (웃음), 그만큼 이 일이 너무 좋았고 다른 건 몰라도 통역만큼은 최고로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거든요.


지금까지 ‘통역이 너무 좋아’라는 마음이 아니라 ‘통역이 아니면 안 돼’라는 마음으로 공부하고 일했어요. 저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이 사람이 너무 좋아’가 아니라 ‘이 사람이 없으면 안 돼'라는 느낌이 들 때 그 사람을 정말 사랑한다고 느꼈는데, 통역이나 번역을 할 때에도 같은 마음이 들었거든요. 그 마음 덕분에 더욱 절실하게 공부하고 커리어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달콤 살벌한 국제회의 동시통역의 현장

통번역 자격증을 따고, 대학원을 졸업하고 커리어를 시작하는 데 성공해도 필드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였어요. 현장에서는 통역사가 신입인지, 5년 차인지, 10년 차인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아요. 오로지 완벽에 가까운 통역을 해주기만을 바라거든요. 통역사라는 꿈을 이뤄서 정말 행복했지만, 그 뒤에도 당연히 쉽지만은 않았어요.


매일 새로운 주제를 접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으면서도, 항상 돌발 상황이 발생하기 마련이어서 늘 긴장하고 살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 또한 그냥 제 직업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여요. 그 과정에서 제 자신이 발전하고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는 재미에 흠뻑 빠져서, 힘든 줄도 모르고 했던 것 같아요.

프리랜서이자 육아맘으로 살아간다는 것

저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후에 일을 하지 않을 거라는 상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당장 1~2년 뒤처진다 해도 불안해하지 말고 멀리, 길게 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물론 저도 사람이기 때문에 버거울 때도 있어요. 저를 기다리는 아이와의 시간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함께 보내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렇다고 해서 일을 소홀히 할 수도 없거든요. 그런데 ‘일하는 나와 아이 엄마로서의 나를 굳이 분리해서 보지 않고, 자유롭게 오가면서 해보자’고 결심한 뒤로는 마음이 더 편해졌어요.


일정 자격을 갖춘 전문직이되, 제가 자유롭게 일정을 조절하는 프리랜서로 일도 육아도 멋지게 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프리랜서를 해보니 ‘프리랜서는 프리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고, 육아도 시작해보니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절대 아니란 걸 깨달아가는 중이에요. (웃음) 그래도 후회하지 않아요.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많은 분들이 저한테 롤 모델이라고 얘기를 해주세요. 그게 처음에는 조금 쑥스러웠는데, 한 여성 리더분의 통역 자리에서 ‘롤 모델이 될 수 있다면 되어서, 먼저 길을 간 다음에, 꿈을 꾸는 사람들이 그 길을 따라가게 하거나 그보다 더 멀리 더 좋은 길로 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역할을 해야만 한다.’는 말씀을 듣고 새로운 목표가 생겼어요. 


아직 저도 부족하지만 그래도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지금까지 제가 이루었던 것들을 보여드리고 나눠드려서 도움을 드리고 싶어요. 막연히 꿈꾸던 그 길을 먼저 걸어간 현직 통역사분들을 만났을 때, 제게는 굉장한 영향력과 영감이 되었거든요. 하지만 현직에서 일하는 분들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잖아요. 이 커리어를 꿈꾸시는 분들께 제가 그런 역할이 되어드릴 수 있다면, 기꺼이 그런 역할을 해드리고 싶어요. 

통번역, 동시통역사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저에게는 이 통역사라는 커리어가 아직도 가슴 설레고, 사랑하는 대상이에요. 지금까지 수많은 시행착오와 경험을 쌓았지만, 이 일을 하면서 제 인생에 새로운 길들이 많이 열렸기 때문에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일이기도 하고요. 이 길을 꿈꾸는 분들이 그런 가능성을 직접 느껴보셨으면 좋겠어요.


통번역은 국내파, 해외파에 상관없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에는 실력 있는 국내파 통역사님들도 더 많고요. 대신 그렇게 되기까지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너무 걱정만 하거나 망설이지만 마시고, 저와 함께 슬쩍 이 세계를 엿보시는 것도 좋은 시작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쉽지 않은 길이고, 가끔은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고, 많은 책임감이 따르고 공부와 노력이 필요한 일임에는 분명하지만, 저도 했기 때문에 여러분 모두 충분히 하실 수 있을 거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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