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관 감독이 말하는 아이유는 어떤 배우?

조회수 2021. 4. 6.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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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유은진 기자 / 사진제공 엣나인필름

어떤 대화는 삶을 바꾼다. <최악의 하루> <더 테이블>, <페르소나>의 단편 <밤을 걷다>, <조제>까지 섬세하지만 힘이 실린 대사들로 관객의 마음을 움직여왔던 김종관 감독이 더 성숙해진 대화의 기술로 관객을 찾았다. 신작 <아무도 없는 곳>은 아내가 있는 영국을 떠나 7년 만에 서울로 돌아온 소설가 창석(연우진)의 이야기다. 차례로 미스터리한 미영(이지은), 편집자 유진(윤혜리), 사진가 성하(김상호), 바텐더 주은(이주영)을 만난 창석은 그들로부터 각자 삶의 흔적이 묻은 다양한 이야기를 듣는다. 이들과 마음에 드리워진 그늘을 공유한 창석은 아무도 없는 공중전화부스의 수화기를 들어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무도 없는 곳>은 김종관 감독의 이전작과 완전히 다른 결을 지녔다. 빛보단 어둠에 주목했고, 청량함보단 묵직한 쓸쓸함의 정서가 극 전반을 지배한다. 대화 내내 아득하고 무거운 침잠이 유지되지만, 그 끝엔 작은 희망이 살아 숨 쉰다. “어둠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삶에 대한 긍정을 느낄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김종관 감독을 만나 <아무도 없는 곳>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와 꼭 닮은 그의 사근사근한 말투가 인상 깊었다.


<조제> 개봉 이후 3개월 만에 다시 신작으로 스크린을 찾았다.


<아무도 없는 곳>은 <조제>와 같은 해에 만든 영화다. <아무도 없는 곳>을 먼저 촬영하고 이후 <조제>를 연이어 촬영했다. <조제>의 시나리오가 먼저 완성되었기 때문에, <조제>가 개봉한 뒤 <아무도 없는 곳>이 개봉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없는 곳>은 2019년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관객에게 소개됐다. 첫 공개 이후 2년 만의 개봉인데, 소감이 어떤가.


나름 형식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한 작품이기 때문에 빨리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코로나 시기에 영화 두 편이 연달아 개봉하니 감회가 남다르다. 의미도 있다고 생각하고.

<최악의 하루> <더 테이블> 등 김종관 감독 특유의 산뜻하고 청량한 분위기의 작품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아무도 없는 곳>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어둠과 그림자의 영역을 관찰하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는데, 그 시작점은 어디였나.


만드는 작품들이 다 이전 작품과 연관되어 있다. 작업을 하다 보면 그다음 물음이 생겨서 그를 다음 작품에 반영하는 식이다. 대화라는 형식에 무궁무진하게 많은 변주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악의 하루> <더 테이블> 모두 다양한 대화로 이뤄진 영화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그 작업을 계속하며 형식적인 탐구를 해보고 싶은 게 있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다루는 죽음의 테마, 그 톤 앤 매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페르소나>의 단편 <밤을 걷다>에서 연결됐다.


안 그래도 <아무도 없는 곳>의 창석을 보며 <밤을 걷다>의 K가 떠올랐다. 창석은 K를 변주한 캐릭터로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밤을 걷다>(죽은 지은(이지은)이 연인 K(정준원)의 꿈에 나타나 함께 밤 산책을 하며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이야기를 담은 단편 영화)는 양면의 입장에서 해석할 수 있는 영화다. 지은의 입장에 서면 죽음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고, K의 입장에 서면 꿈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다. <아무도 없는 곳>에도 그런 식의 경계가 있었으면 했다. 창석은 <밤을 걷다> 속 지은과 K의 관점이 고루 녹아든 캐릭터 같다.

삶과 죽음, 절망과 기적 등 <아무도 없는 곳> 속 대화는 극과 극의 경계를 넘나든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를 스크린 안에 담아낼 때 고민했던 부분도 많았을 것 같다.


공간이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했다. 창석과 미영이 대화를 나누는 ‘시티커피’라는 공간도 외부와 내부에서 느껴지는 시간의 속도가 다르다. 일상에 분명히 존재하는 공간인데 그 공간만이 지닌 비일상적인 요소가 있고. 공중전화부스도 그렇지 않나. 어떤 면에선 <아무도 없는 곳>이란 제목과 잘 어울리는 공간이다. 아직 남아있지만 사용하는 사람도 드물고, 그래도 누군가는 필요로 하는. 이처럼 가느다란 선 타기를 하는 듯한 공간들을 들여다보고 이야기를 만들었다.


최근에 눈여겨본 또 다른 장소가 있나.


아주 최근은 아니지만, <조제>를 촬영하며 헌팅 때문에 빈 집을 자주 보러 다녔다. 그 빈 집에도 누군가의 자취가 있지 않나. 많은 사람들의 자취가 남은 좋은 공간들이다. 로케이션 헌팅을 다니면서도 문득문득 새로운 사연을 만나는 기분이다. 그런 감흥을 기록해놓진 않지만, 이야기를 쓰고자 하면 겪은 것들을 떠올리게 된다. 창석이 본인이 겪은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쓰는 것처럼.

그러고 보면 <아무도 없는 곳>은 창작자로서 창작자의 창작 과정을 창작한 영화다.(웃음) 어떤 경험이었나.


만약 내게 어떤 고통이 있다면, 다른 사람의 고통도 알아볼 수 있다. 그렇게 사람에 대한 이해가 쌓인다. 그 이해를 통해 만들어진 이야기가 좀 의미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창석도 그렇게 변화하지 않나. 타인과의 대화와 이해를 통해 자신의 고통과 닮아있는 이야기를 낳게 되는. 그런 과정을 겪은 것 같다.


<아무도 없는 곳>을 작업하며 극 중 창석처럼 변화, 성장을 느낀 부분이 있나.


개인적으로는 이전에 안 해본 다양한 것들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이런 도전적인 시도를 언제 해볼 수 있을까, 하고. 창작적으로 한 수 한 수를 놔야 10년, 20년 후에도 창작을 할 수 있을 테니까. 나중에 또 운이 좋아서 이런 도전적인 작품을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이번엔 순수하게 ‘이런 도전적인 작품을 해봤다’라는 데에서 오는 만족도가 있다.


촬영에서 특히 도전적인 시도가 돋보였던 것 같다.


영화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빛이 생기는 순간, 빛이 소멸하고 어둠에 잠기는 순간의 묘사를 통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이야기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소공녀> <사바하> 등의 카메라를 맡은 김태수 감독이 촬영을 맡았다. 전작을 보며 음영을 잘 다루는 촬영 감독이라고 생각했다. 과감한 촬영도 열린 마음으로 함께 작업해 줬다.


촬영을 10회차 안에 완성했다는 점이 놀랍다.


전 작품을 통해 한정적인 공간에서 효율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습관이 들어있었다. 그래도 이번 촬영의 밀도감은 굉장히 높았다. 그래서 잘하는 배우들이 필요했고. 제가 아는 연우진 배우는 그런 면에서 굉장히 훌륭한 배우였다. 유진과 해 질 녘에 대화를 나누는 신, 후반부 공중전화에서 통화하는 신 모두 힘든 장면이었다. 배우의 힘을 믿고 간 부분이 있다.

어떤 장면의 촬영이 가장 기억에 남나.


창석과 유진이 담배를 피우는 장면. 해 질 녘에 담배를 피우는 신은 원테이크, 하루에 한 번 찍을 수 있는 장면이었다. 끝내는 어둠에 잠겨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형체까지 가야 하지 않나. 그 장면이 중요했다. 어둠의 편안함을 극장이란 공간에서 가슴으로 느끼는 시네마틱한 순간이 있을 테니까. 극장에서만 경험하고 볼 수 있는 것들을 고민했으니 큰 스크린으로 봐주셨으면 좋겠다. (웃음)


맞다. 많은 관객에게 오래 기억될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담배가 타들어가는 소리도 인상 깊었다.


그 담배에 대한 개인적인 추억이 있다. 인도네시아 친구가 있었다. 겨울에 한국에 온 바람에 늘 추워하며 담배를 피웠는데, 그 친구의 담배에서 늘 ‘따닥 따닥’ 소리가 났다. 그 친구도 영화감독인데, 언젠가 인도네시아 영화제에 초청을 해줬다. 인도네시아에 갔더니 그 담배 냄새가 가득하더라. 일반 담배 냄새가 아니라 낙엽 타는 냄새가 나는데. 당시 인도네시아에서 가져온 담배로 영화를 촬영했다.

아까 “배우의 힘을 믿고 간 부분이 있다”고 했다. 연우진 배우의 캐스팅에 대해서도 듣고 싶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연우진 배우가 하면 참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을 했다. <더 테이블>을 함께하며 연우진 배우의 연기에 크게 반했다. 작고 섬세하게 표정과 반응을 만들어내는 연기가 새롭더라. <아무도 없는 곳>에서 연우진 배우가 연기한 창석은 상대방의 말을 듣고 리액션을 해야 하는 캐릭터다. 실제로 음성도 온화하지만, 이 배우에겐 부드럽고 물 같은 느낌의 섬세함이 있다.


물 같은 느낌이라는 표현이 정말 와닿는다. 상대 배우의 연기, 그 틀에 제 자신을 맞추는 유연한 연기를 펼친다.


다양한 에너지의 배우와 어우러지면 그 장점이 부각될 거라고 생각했다.


창석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캐릭터들도 저마다 개성이 뚜렷하다. 어떻게 만들어갔나.


시나리오를 쓰며 성하는 김상호 배우 같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좋은 선택을 해주셔서 기뻤다. 유진은 만나는 배우에 따라 톤이 확연하게 달라질 것 같은 캐릭터였다. 윤혜리 배우의 어투가 무척 재미있더라. 톡 쏘는 것 같으면서도 내면에 쓸쓸함이 붙어있는, 유진만의 느낌을 윤혜리 배우가 잘 만들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주은은 특유의 천진난만함을 지녔다. 창석에게 예상치 않은 위로를 전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사석에서 이주영 배우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주은 역을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람의 매력과 같이 붙어야 캐릭터가 매력 있어 보이니까.(웃음)

<밤을 걷다>에 이어 또다시 이지은 배우와 만났다는 점도 재미있다. 벌써 두 번째 작업인데, 이지은 배우는 어떤 배우인가.


시나리오를 깊게 읽어주는 사람. 캐릭터에 대해 정확히 접근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의 핵심을 잘 알고 있는 배우이자 아티스트다. 예를 들어 <밤을 걷다> 속 지은의 대사는 문어체다. 누군가는 이를 아주 일상적으로 소화한다. 이지은 배우는 시어처럼 대사를 던지며 자신만의 느낌을 만들어내더라. 이번 작품에선 연우진 배우와 촬영 전 리딩 할 때 너무 재미있었다. 두 배우가 대본을 천천히 읽는데, 그 자체가 영화 한 편을 보는 느낌이더라. 그를 보며 이 장면을 어떻게 시각적으로 담아내야 할지, 표현해야 할지에 대한 감을 잡았다.


감독님의 영화는 대부분 대화로 이루어져 있고, 그래서 배우들의 어투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연우진 배우 역시 목소리가 좋지 않나. 팟캐스트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더라.


ASMR, ASMR (웃음)


특히 첫 파트, 미영과의 대화 신이 인상 깊었다. 본격적으로 관객을 스크린에 빠져들게 하는, 묶어두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그때 반했다.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이렇게 보게 되더라. 어떻게 이야기를 저렇게 말맛 있게 하지? 그게 대화 신을 찍을 때 재미인 것 같다. 그렇게 잘 소화해 주는 배우들을 볼 때.


갑자기 <최악의 하루> 속 운철(이희준)이 떠오른다. 촬영 때 무척 재미있었을 것 같다.


이번 영화에 위스키가 많이 나와서 연우진 배우와 위스키 바에 자주 갔다. 이희준 배우와는 막걸리 집에 많이 갔지. (일동 웃음) 전혀 다른 톤의. <최악의 하루> 속 대화 신 촬영도 무척 재미있었다. 한예리 배우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지 않나. 그 장면 꽤 길다. 16분 정도 되는데, 그걸 하루에 찍었던 것 같다. 그 현장에서 <더 테이블>을 떠올렸다. 둘만의 대화로만 이어지는 장편 영화를 만들자 생각했고. 그렇게 흘러 흘러 이 작품까지 오게 됐다.(웃음)

그다음엔 어떤 작품이 있을까. 구상 중인 차기작이 있나.


전시 공간에서 상영하고 싶어 만든 단편 <만들어진 이야기>를 촬영했다. <아무도 없는 곳>과 닮아있는, 그다음 물음에서 시작된 이야기다. 또 다른 대화 형식의 작품도 있다. 시나리오를 완성한 상태다. 사람의 감정을 관찰할 수 있는 영화를 좋아하는데, 범죄 드라마도 그런 성격을 지니고 있지 않나. 범죄 관련한 장르 영화도 연출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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