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의 감성 장인이라 불리는 '이 감독'의 작품들

조회수 2020. 12. 22.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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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인턴기자 유정아

김종관 감독이 영화 <조제>로 관객들을 찾았다. 한국 관객들에게도 잘 알려진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조제(한지민)와 영석(남주혁)의 세계를 보다 진중하고 내밀하게 그려내 호평을 받고 있다. 다만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가 개봉일과 맞물리며 <조제>는 안타까운 상황과 직면하게 됐다.

이와 관련해 김종관 감독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절망"스러우면서도 진실한 속내를 밝혀 화제를 모았다. "느리지만 좋은 여행"이 될 것이라며 <조제>를 개봉하는 소감을 밝혔고, 책과 위스키와 스팸과 구멍 뚫린 담이 있는 '조제의 집'으로 관객들을 초대했다. <조제>를 향해 걸어오기까지 김종관 감독은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선명하게 펼치며 영화 팬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의 이름이 새겨진 5편의 작품을 통해 감독 김종관의 세계를 짧게나마 들여다본다.

▼ <조제>의 개봉을 맞이하며 진실한 속내을 밝힌 김종관 감독. 그가 올린 인스타그램 게시글 전문.

평일 저녁 9시면 닫히는 극장을 두고 결국 개봉을 하게 되었다. 적잖이 절망스럽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만든 영화의 길이 있다고 믿는다.

며칠전 언론시사가 끝났다. 그리고 며칠동안 비대면 인터뷰라는 재밌는 형식의 인터뷰도 해보고 있다. 스크린앞에 내 얼굴을 두고 여러 매체의 기자님들과 이야기를 한다. 낯설고 어색할거라 생각했지만 그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게 되고 내가 만든 영화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되고 여러 의견을 듣게 된다. 그리고 어느때보다도 소통이 되는 즐거운 인터뷰가 되기도 한다.

사실 언론시사 후 엄청난 긴장감을 느꼈다. 부담감 있는 리메이크였고 우리가 찾은 길, 우리가 제시하는 영화가 어느정도의소통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반의 호의라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영화는 대중영화로서 조금은 다른 호흡을 지녔다는 생각도 들고 내 믿음으로 밀어붙였지만 그 확신이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물론 여러의견들이 있지만 우리의 예상을 넘어 우리가 만든 영화를 깊게 이해하고 소통해주는 이들이 많았다. 어느때보다 리뷰들을 꼼꼼하게 읽었고 여러분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어느때보다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가 쌓아올린 것들을 진중하게 봐주는 시선들 속에서 우리가 간 길을 내 스스로를 믿을 수 있게 되었고 하나의 큰 고비를 넘긴 것에 안도했다.

물론 절망스런 코스가 남았다. 그래도 그 어려움을 뚫고 영화를 만나러 오는 관객이 있을 것이다. 조금은 스스로를 믿어볼 수 있는 지금, 기대의 마음으로 그 귀중한 관객을 기다려보고 있다.

김종관 감독 인스타그램 / @monologue707

<폴라로이드 작동법>(2004)

김종관 감독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이름은 역시 정유미다. 김종관 감독에게 있어 정유미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하나의 수식어다. 김종관 감독은 단편영화 <폴라로이드 작동법>을 통해 정유미라는 새로운 얼굴을 관객들에게 알렸다. 좋아하는 사람으로부터 폴라로이드 작동법을 배우는 한 소녀를 연기한 정유미는 6분 30초라는 짧은 러닝타임 동안 요동치는 짝사랑의 감정을 온전히 표현해 평단의 호평을 끌어냈다. 김종관 감독은 독립 영화계 '독보적 감성지기'라 불릴 만큼 수많은 단편 영화들을 통해 사랑이란 감정에 집중해왔다. 연인 사이에서 발생하는 찌질하고, 치사하고,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작품 속에 녹여내며 사랑의 민낯을 내밀하게 그린 것. 그는 한 인터뷰에서 "스스로의 정의만을 가지고 외부의 적을 찾는 사회적인 태도들만 넘치는 요즘, 가장 사적인 이야기와 개인의 욕망을 표현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며 작은 이야기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이후 <조제>를 포함한 총 4편의 장편영화 연출작에서도 김종관 감독은 사랑이라는 키워드를 놓지 않았다.


<조금만 더 가까이>(2010)

김종관 감독이 처음으로 장편 영화의 연출을 맡았다. <조금만 더 가까이> 역시 그가 여러차 례 단편 영화를 통해 그려온 사적인 영역, 보편적 사랑에 대한 영화다. 다섯 종류의 사랑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엮어낸 작품. 그중에서도 단연 인상적인 에피소드는 정유미와 윤계상이 연기한 '은희'와 '현오'의 이야기다. <폴라로이드 작동법>에 이어 다시 한번 김종관 감독을 만난 정유미는 고장난 사랑 때문에 연애 불구가 된 '은희'를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연기해 관객들의 공감을 샀다. 물론 이는 김종관 감독 특유의 연출 스타일 덕분이기도 하다. 멀리서 지켜보는 듯한, 특유의 롱테이크 호흡을 통해 김종관 감독은 헤어진 연인 간 쌉쌀한 감정을 배가했다. <조금만 더 가까이> 개봉 당시 김종관 감독이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김종관 감독은, 그동안 장편 영화를 왜 찍지 않았냐는 질문에 아래와 같이 답했다. 1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그의 말을 돌아보면, 차곡차곡 쌓아온 김종관만의 뚝심 있는 작품 세계가 조금은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나는 평생 영화를 만들 사람이라 한편 만들고 영화 인생 끝낼 것처럼 일희일비하고 싶진 않다. 항상 다음을 생각하고, 한편 찍을 때마다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계속 발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번 영화 만들 때도 사람들이 좀더 일반적인 장편을 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고, 나도 어느 정도 걱정이 되기는 했다. 하지만 멀리 보면 지금 내가 가는 방향이 맞는 것 같다. 언젠가는 단편을 찍어도 쟤가 또 단편 찍었어? 작은 영화 찍었어? 할 게 아니라, 김종관이라는 이름만 듣고도 기대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는데.

- <조금만 더 가까이> 당시 '씨네21'과의 인터뷰 중

<최악의 하루>(2016)

김종관 감독은 <조금만 더 가까이> 이후 무려 6년 만에 장편영화로 관객들을 찾았다. <최악의 하루>를 통해서다. <최악의 하루>는 은희의 이야기다. 하루 동안 만난 세 명의 남자(료헤이, 현오, 운철)를 바라보는 은희의 시선과 감정으로 영화는 진행된다. 서촌에서부터 남산까지. 걷고, 걷고, 뛰고, 또 걷는 동적인 호흡을 통해 '애인들'과 마주하는 은희의 복잡성과 모순성을 유쾌하게 그려낸 작품. <최악의 하루>에서 단연 빛나는 건 공간의 아름다움이다. 서촌의 골목길과 남산의 구석구석을 담아내며 '최악의 하루'를 마주한 은희의 불쾌함을 해소했다. "나무를 심듯 소소하게 시작한 이야기가 나중에 보면 숲이 되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는 김종관 감독은, 소동극 형식을 통해 인간의 찌질한 내면, 이별 후에 남은 벌거벗은 감정들을 조명해 호평을 얻었다. '은희'를 연기한 한예리의 연기가 빛난 작품이기도 하다.


<더 테이블>(2017)

김종관 감독의 페르소나는? 정유미도 한예리도 아니다. 바로 '은희'다. 김종관 감독의 작품 속엔 빠지지 않고 '은희'가 등장한다. <조금만 더 가까이>의 '은희'는 정유미였고, <최악의 하루>의 '은희'는 한예리, 김종관 감독이 각본을 쓴 <사랑의 가위바위보>에선 박신혜가 '은희'로 분했다. 그리고 <더 테이블>에선 다시 한번 한예리가 '은희'를 맡았다. <더 테이블>은 오전, 오후, 늦은 오후, 저녁으로 하루를 쪼개 하나의 테이블에서 이야기를 나눴던 여덟 명의 이야기를 그린다. <최악의 하루>가 서촌과 남산이라는 공간을 조명했다면, <더 테이블>에서 김종관 감독은 제한된 공간을 선택했다. 카페에서 오가는 온갖 사연을 통해 인간 삶의 단면을 다루고 싶었다는 그는 늘 그렇듯 제 감수성을 살려 따뜻한 영화를 완성했다.


<페르소나: 밤을 걷다>(2019)

김종관 감독의 영화를 향해 사람들은 '걷고 싶어지는 영화'라 칭한다. 넷플릭스표 단편 영화 <페르소나: 밤을 걷다> 역시 그렇다. 김종관 감독 특유의 밤공기가 담겨있는 작품. 꿈속을 걷는 두 남녀가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한다. "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부 다 사라져버리기 전에 너를 찾아오고 싶었어." 남자는 눈물을 터뜨린다. 떠난 이와 남겨진 자가 나누는 내밀하고 몽환적인 대사가 이어지며 영화는 끝이 난다. 김종관 감독이 만든 모든 영화의 공통점이라면 낭만이 있다는 것, 무거운 소재일지라도 담담한 전개를 통해 여운을 남긴다는 것. 또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 혼자, 혹은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게 하는 힘과 매력이 있다는 거다. <페르소나>의 시리즈들이 호불호가 극명히 갈린 평가를 받았을 때도, 김종관 감독의 <페르소나: 밤을 걷다>는 대다수 관객들의 호평을 받은 점 역시 김종관만의 보편적 감성 덕분이다. 작은 이야기의 소중함을 아는, 대사보다는 “행간의 중요성”을 아는 김종관 감독. 우리가 그의 작품들을 사랑하는 이유다.

죽어서도 끝없이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이 있어.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
그것뿐이야.

알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여름이었네. 그날 여름 밤이었네.

꿈도 죽음도 정처가 없네.
가는 데 없이 잊혀질 거야.

우리는 여기에 있는데 아무도 기억하지 못해.
다 사라지고 밤 뿐이네.

안녕.

<페르소나:밤을 걷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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