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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스위트홈> 스태프가 이진욱을 못 알아보고 지나친 이유

조회수 2020. 12. 20.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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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이지연 기자

말을 주고받는 내내 그는 웃음기 어린 얼굴로 일관했다. <스위트홈> 편상욱(이진욱)에게서는 볼 수 없던 표정이었다. 멸망의 근원은 인간의 욕망. 욕망을 제어하지 못한 인간은 괴물이 된다. 불안감만이 감도는 이 낯선 세상에 이미 초연한 인물이 있다. 상욱이다. 상욱의 대사는 긴 문장으로 끝나는 법이 없다. 단어로 뚝뚝 잘리는 말마디가 그의 공허한 마음을 대변하는 듯하다. 언어와 행동으로 가시화된 감정이 아닌, '분위기'라는 그 모호하고도 미묘한 것만으로 상욱을 표현해낼 수 있는 배우. 이진욱이 편상욱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지난 12월 16일 이진욱을 만났다. 보통 같았으면 직접 만나 보다 생생하게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겠지만, 팬데믹 상황에서 달리 방법이 없었다. 화상 인터뷰를 통해 그에게서 들은 <스위트홈>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한다.


원작 웹툰을 어떻게 봤는지 궁금하다.

인간의 욕망이 괴물이 된다는 설정이 신선했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설정이어서. 괴물과 생존자가 제각각 욕망에 관한 사연을 가지고 있고, 그게 표현되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주인공 현수(송강)가 초능력 아닌 초능력을 갖게 되는데, 그 능력을 선하게 활용한다는 점도 좋았다. 내가 연기한 편상욱도 부정적인 활동을 하는 인물이었지만 내재된 인간성을 회복하는데, 그런 스토리라인도 마음에 들었다.


원작에서 상욱은 전직 형사다. 제작보고회 때 본인이 연기한 상욱을 전직 살인청부업자라고 소개했는데. 원작과 설정이 바뀐 것인가?

설정이 달라진 것이 맞다. 웹툰에서 상욱은 형사로 나오는데, 드라마에서는 설정이 조금 바뀌었다. 조금 더 어둡고, 깊은 사연이 있는 캐릭터로.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을 연출한 이응복 감독과 함께했다. 이응복 감독과의 호흡은 어땠나.

계획이 철저한 리더, 해법을 가지고 있는 리더와 일하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감독님은 그런 분이다. 왜, 찍다 보면 새롭게 발견되는 것들이 있지 않은가. 그런 몇몇 상황을 빼고는 고민 없이 일했다. 정확한 해답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디렉팅 주시는 대로만 하면 되니까. 정말 고민 없이 일했다.


크리처와 대면하는 장면을 연기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상상하면서 연기해야 했을 텐데.

허공에다 연기해야 하는 상황은 만들지 않겠다고 감독님이 모든 배우에게 사전에 약속하셨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셨다. 완벽하게 모습을 갖추지 않은 괴물의 형상일지라도, 어떠한 대상이 확실히 있었다. 내가 만난 괴물의 경우 완성형에 가까웠는데. 재미있게 촬영했다. 괴물들 때려 부수는 것, 재미있더라. (웃음)

친구 배우들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며 자랑했을 정도로, 정교하게 구현된 세트에서 촬영했다.

정말 깜-짝 놀랐다. 밖에서 보면 여느 세트장과 다를 것이 없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차원을 통과하기라도 한 것처럼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더라. 극적으로 중요한 장소만 디테일하게 꾸며놓기 마련인데, 그린홈 세트에는 빈틈이 없었다. 101호, 102호, 103호, 104호가 있다고 치자. 촬영하는 곳이 101호라면 보통 그곳만 세팅되어있는데, 102호, 103호, 104호가 다 세팅이 되어있는 식이었다. 덕분에 현장에서 훨씬 자유롭게 촬영할 수 있었다. 제약에 구애받지 않고.

그린홈 세트에서 어떤 공간이 가장 마음에 들었나.

인물들이 메인으로 활동하는 공간이 있다. 아파트의 로비. 로비에 경비실, 유치원, 슈퍼마켓 등 시설이 있는데, 디테일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았다. 주 활동 공간이기도 하고 많은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고, 그래서 가장 애착이 가는 공간이다.


이응복 감독이 캐릭터에 대해 많은 의견을 줬다고. 참고 작품을 추천한 것이 있는지.

감독님께서 원래 그런 식의 디렉팅을 하시는 스타일은 아니다. 참고 작품을 지정해 주신다기보다는,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 몇 마디씩 던져주신다. 상욱이가 “고통에 익숙한 사람일 것”이라는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드라마에 미처 드러나지 못한 부분이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상욱이는 고통에 무딜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온 인물이다. 신체적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과는 또 다르다. 정신적 고통에 무딘 캐릭터라고 접근했다.


상욱의 대사는 몇 마디 안 된다. 내지르는 연기보다 함축된 언어로 형용하는 것이 더 어려웠을 것 같은데.

보통 작품을 할 때 이미지적으로 참고할 만한 것을 마음속에 그리는데. 좋아하는 책 중에 ‘야성의 부름’(편집자-1903년 잭 런던의 소설, 살아남기 위해 혹독한 대자연 앞에 맨몸으로 맞서야 했던 늑대개 이야기)이라는 책이 있다. ‘벅’이라는 이름을 가진 개가 주인공인데, 벅이 사랑받으며 살다가 들개가 되고 늑대의 우두머리가 되는 과정을 그린 책이다. 상욱이 벅의 마지막 모습 정도를 닮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벅이 대자연에 우뚝 서 있는 장면을 상상하며 캐릭터를 빌드업했다.

<스위트홈>

상욱은 침착하다. 마치 일이 이렇게 되리라는 걸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상욱 앞에 나타난 괴물을 차분하게 처리한다.

왜, 싸울 때 잘 싸워서 이기는 게 아니라 그냥 이기는 캐릭터가 있다. “내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내가 너보다는 늦게 죽는다.” 상욱은 그런 인간이다. 끝까지 다시 일어나는 인간. 침착하게 행동하면 살 확률이 훨씬 높다. 상욱에게는 괴물이 나타나서 공격한다고 해도 반격할 수 있는 깜냥이 있다. 고통에 무디고 감정적이지 않은 것이 그렇게 담긴 것 같다.


상욱의 얼굴은 화상 흉터로 뒤덮였다. 다른 인물보다 분장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을 것 같은데. 고충은 없었나.

고충 많았다. (웃음) 초반에는 시간이 꽤 걸렸다. 1시간 반? 나중에는 좀 익숙해져서 2~30분 단축하기는 했다. 그런데 분장이라는 게 하는 것보다 지울 때가 더 힘들더라. 아파서. 피를 뒤집어쓴 장면을 촬영한 다음 멀쩡한 모습을 찍는 스케줄이면, 하루에 분장을 두 번 지워야 했다. 연기하면서 또 떨어지면 안 되니까 분장팀에서 단단하게 붙여주셨는데. 아팠다. (웃음)

청테이프도 어깨 살 위에 직접 붙였더라. 뗄 때 아팠을 것 같다.

그것은 뭐 어떻게 가짜로 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했다. (웃음)


상욱은 내내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등장하는데, 그를 전직 형사로 알고 있었을 때는 왜 하와이안 셔츠여야 했을지 궁금했다. 캐릭터와 어떠한 연결점이 있는 의상인지. 전직 살인청부업자라고 하니 어느 정도 납득이 된다.

상욱은 세상을 등진 인물이다. 눈 마주치기도 꺼려지고 옆에도 가기 싫은 사람. 누구라도 질색할 모습이었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에서 만들어진 의상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헤어스타일도 그렇고. 일화가 하나 있는데. 의상 미팅 날이었다. 준비된 의상을 갖춰 입고 각자 캐릭터로 분장한 후 제작사 사옥에 모이기로 되어있었다. 제작사 직원들이 배우들이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회의실이 있는 층으로 내려와 나를 찾았다고 한다. 나중에 듣기로는 웬 무섭게 생긴 사람이 복도에 서 있길래 그냥 지나갔다더라. 그 무섭게 생긴 사람은 나였다. 나를 몰라봤던 거다. 저 멀리 사람들이 몰려와 웅성웅성, 숙덕숙덕하더니 가길래 나도 ‘뭐지’ 했는데, 알고 보니 그런 일화가 있었더라.

제작보고회 때 “사람들이 <스위트홈>을 보고 나를 못 알아 봤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이미 어느 정도 이룬 셈이다.

성공했다.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조연마저도 캐릭터가 선명했다. 현장에서 동료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땠나.

한 명 한 명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 현장에 배우들이 모여있는 것만 봐도, 감독님이 캐스팅을 진짜 잘하셨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그리고 도현이 같은 경우, 초반에 도현이가 ‘우리를 싫어하나’ 혹은 ‘나를 별로 안 좋아하나’ 싶을 정도로 내외한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웃음) 알고 보니 캐릭터에 집중하려고 거리를 뒀다더라. 아무래도 친하게 지내다 보면 은연중에 티가 날 수 있으니까. 혹시라도 그런 실수를 할까 봐 거리를 두고 지냈던 거다. 본인도 친하게 지내고 싶었는데, 못 그래서 아쉬웠다는 얘기를 나중에 하더라. 사실 상욱이가 은혁이(이도현)보다 더 외톨이 캐릭터였기 때문에 다른 배우들과 거리를 뒀어도 내가 더 뒀어야 했는데, 나는 그냥 친하게 지냈다. (웃음) 이게 뭐, 연륜이랄까. 연기는 연기고, 실제로는 가깝게 지냈다. (웃음)

제일 친하게 지낸 배우가 있다. 영수와 수영을 연기한 꼬마 배우들이다. 우리 현장 분위기가 정말 엄격하다. 촬영에 집중하는 분위기인데. 나는 그런 분위기를 깨는 걸 좋아한다. (웃음) 물론 집중해야 할 때 집중하지만. 그런 에피소드가 있다. 영수가 들고 다니는 공룡 장난감이 있다. 버튼을 누르면 ‘쿠우아아아’, 뭐 이런 소리를 낸다. 현장이 조용한데, 내가 버튼을 누르고 “야 영수야 인마, (웃음x10) 너 현장에서 누가 그렇게 떠드니!”라고 하고 자리를 뜨면 (웃음x10) 영수는 얼굴이 빨개져서는 나를 쳐다본다. “삼촌 제발 그러지 좀 말라”며. 그래서 영수가 혼난 적이 있다. 평소에는 진짜 잘해줬다. 영수도 나를 좋아할 거다. (웃음) 그런 장난을 좀 쳤다. 진짜 심각한 상황에서 그런 건 아니다. (웃음)


욕망의 괴물화. 드라마 속 설정처럼 혹시 어떤 욕망에 잠식될까 두렵다면, 그 욕망은 어떤 욕망일까. 지금 이진욱이 가장 원하는 것은?

글쎄, 어렸을 때부터 하늘을 날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새를 부러워했다. 새가 되고 싶다기보다도, 어디든 날아서 갈 수 있다는 게 부러웠다. 그래서 아마 나는 그렇게 날 수 있는 새가 되지 않았을까.

나이키를 많이 좋아하더라. 신발 괴물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럴 수도 있다. 나이키 스우시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 (웃음)


괴물도 괴물이지만 <스위트홈>은 멸망한 세상에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실제 그런 상황에 부닥친다면 이진욱은 드라마 속 어떤 인물과 닮아있을까.

현수와 은혁이의 중간 정도일 것 같다. 음… 어떤 거냐면, 좋은 거다. 집단의 안전을 도모하면서도, 그렇다고 너무 비인간적이지 않은. 우리 무리를 끝까지 살아남게 만들 거다. 그리고 나쁜 놈은 제거 할 거다. (웃음)

<보이스 2>
<리턴>

필모그래피를 보면 로맨틱 코미디의 지분이 크긴 하지만, 최근 참여한 대부분의 작품은 장르물이다. <보이스> 시리즈, <리턴>, 그리고 <스위트홈>. 작품 선택의 기준이 있다면.

나이가 들어가면서 지레 겁먹었던 걸까. 다음 단계의 성인 연기자에 대한 느낌을 미리 몸으로 받아들이고 싶었다. 그래서 장르물을 택했다.


데뷔 18년 만에 소셜 미디어 계정을 개설했다. 얼굴이 그냥 인스타그램 감성이라고 화제가 됐었는데, 알고 있나.

들었다. (웃음)

오래도록 하지 않다가 올여름 돌연 개설했는데. 이유가 궁금했다.

그런 얘기는 계속했는데 엄두가 나지를 않았다. 나만 같아도 좀 옛날 사람이라. 전에도 SNS 활동을 했던 사람이 아니라. 막연하게만 생각했었다. 나랑은 별로 상관없는 일 같고. 어느 날 문득 친구들이 “그냥 만들어야 하는 거”라고 그래서 그냥 만들었다 정말.

개설하고 몇 달간 여행 사진으로 피드를 채웠다. 여행이 많이 그리운가보다. 상황이 좋아진다면, 가장 먼저 가고 싶은 곳이 있는가.

여행이 인생의 목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여행을 좋아한다. 열심히 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디든 갈 것 같다.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곳, 어디든.


<스위트홈>이 12월 18일 공개된다. 이제 제작진의 손을 떴다. 즐겨줄 관객의 몫만이 남았다. 캐릭터를 놓아주며 편상욱에게 마지막으로 한마디 한다면.

그래, 상욱아. 고생 많았고. 이제부터 진짜 삶이 시작되는 것 같다. 사람처럼 살아야지. 사람처럼 살자. 화이팅!

* 아래 질문에는 약스포일러가 포함됐다.

<스위트홈>

상욱이 복수를 끝내고 나서 생존자들의 안전지대와도 같던 그린홈의 밖으로 나가 셔터를 내리는 장면. 개인적으로 극 중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었다. 이전까지 보여주었던 무거운 눈빛과는 확실히 대비되는 흐리멍덩한 눈빛을 보여줬는데. 세상에 어떠한 여한도 남아있지 않은 듯했다.

배우 인생 전체를 놓고 보더라도 기억에 남을 장면 중 하나다. 편상욱 같은 캐릭터가 현실에 존재할 수도 있겠지만, 쉽게 접하기 어려운 인물이지 않은가. 대본으로 그 순간을 접하고 나서, 연기하려니 마음이 너무 무겁더라. 이례적으로 인물이 되어 연기했다기보다 제삼자로서의 아픔을 가지고 연기했던 것 같다. “다 끝냈다”, “여한 없다”는 것을 표현하려 했다. 상욱은 애초에 삶에 미련을 둔 인물이 아니다. 인간에 대한 회의를 품고 평생을 살았는데, 재헌(김남희)을 통해 그런 인간에게 위로를 받는다. 상욱의 인생이 바뀌는 순간이기도 했지만, 나 스스로에게도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한 장면이다. 프리퀄을 만들면 좋겠다. 감독님과 왜 상욱이가 상욱이가 되었는지에 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정도로 뒷이야기가 있는 캐릭터다. 우리 드라마에 모든 내용이 담길 수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기자님이 느끼신 대로 표현이 됐다면, 정말 성공한 거다.

사진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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