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잔칫날> 하준이 감독과 유사 연인처럼 지낼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조회수 2020. 12. 4.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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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이지연 기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상주 경만(하준)은 식장을 지킬 수가 없다. 장례비용을 마련하려 식장을 빠져나와 삼천포 잔칫집으로 향하는 경만. 얼굴에 분을 칠하고 구레나룻을 덧그리면 그는 광대가 된다. MC 경만은 가장 슬픈 날 웃어야 한다. 웃어야 하는 것도 모자라 남을 웃겨야 한다.


기자의 부탁에 하준은 종이 위에 사인을 했다. 한글 '하준' 위에 클 하(嘏), 준걸 준(俊) 한문 두 자를 정성스레 적었다. 한문은 또 처음 받아봤다. 그의 생각만큼이나 반듯한 획이었다. "말은 주워 담을 수가 없으니까요." 짧은 대화였지만 조금은 알 수 있었다. 그가 배우로서 자신이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의 무게를 알고 신중을 기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책임을 통감하며 연기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어느덧 연기 커리어 10년 차를 넘긴 그의 차후 10년, 20년이 더 궁금해지고, 그날들을 만나기 전부터 신뢰가 앞서는 이유다. 제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4관왕에 빛나는 <잔칫날>이 12월 2일 개봉한다. 그와 나눈 <잔칫날>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한다.


작품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오디션을 좋게 봐주셔서 참여하게 됐다. 배우가 감정을 쏟아낼 수 있는 대본을 받기 쉽지 않다. 대본을 받았는데 욕심이 나더라. '이건 잘해야 한다', '진짜로 잘해야 한다'라는 부담감이 있었지만, 그것보다 도전하고 싶었던 게 더 컸다.


김록경 감독이 겪은 이야기다. 감독과 대화를 많이 했다고.

현장에서 감독님과 거의 연인처럼 있었다. 가끔 팔짱도 끼고 다니고. (하하) 작품마다 인물마다 인물에 다가가는 방식이 다르지 않은가. 대본 볼 때부터 경만이에 대한 해답이 당사자인 감독님께 있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저예산 영화가 그렇듯, 현장에서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시간과의 싸움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테이크를 최대한 적게 가야 했는데, 그러려면 감독님 마음이 곧 내 마음이어야 했다. 서로 많이 의지했다. 사실 연출하시는 분 모두가 모니터에서 배우와 함께 숨 쉬듯 감독하시겠지만, 좀 더 딥하게 함께 호흡했던 것 같다.


감독과의 대화 중에 극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서 반영된 경우도 있는가. <범죄도시> 때는 하준이 제시한 '진실의 방'이라는 워딩이 영화에 사용됐다.

'진실의 방'의 경우 딱히 내 아이디어라기보다는. 그 공간을 어떻게 부를지 단어를 제안해보는 장이 열려있었다. 막내 스탭부터 시작해서 이 단어 저 단어 던지다가 (내가 던진) '진실의 방'에 동석 선배님께서 호응해주셨다. 얻어걸린 감이 있다. <잔칫날>의 경우 프리 프로덕션 기간에 행사 장면들에 관해 얘기를 많이 했다. 연습이 필요한 장면이니까. 마트 행사 장면에서 아이에게 아이스크림 좋아하냐고 묻는 것은 애드립이었다. 옛날에 직접 행사 일했던 경험에서 얻은 것이다. (내가) 애드립 넣어 연습하는 걸 감독님이 보시고 좋다고 생각하셔서 촬영 때도 활용했다.

<잔칫날>

행사 경험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경만은 MC다. 경만이 행사 MC를 보는 장면과 과거 <라디오 스타>에 출연해 행사 진행을 시연한 것과 겹쳐 보이더라. 그때의 덕을 좀 봤는지.

그 덕인지 사회 보는 신이 그렇게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물론 그 장면 자체가 뻘쭘함이 묻어나는 장면이기는 하지만 준비 과정에서 부담스럽다는 느낌은 없었다. 배우는 시선을 싸워 이겨내야 하는 사람이지 않은가. 어느 정도 감정의 결과치를 내야 하는 부분에서, 그걸 뽑아내야만 한다는 부담감은 있었다. 행사 진행은 재미있게 연기했다.


MC 경만은 자기소개를 속사포처럼 늘어뜨렸다. 배우 하준은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는가.

사석과 공석이 다른데. 사석에서는 "안녕하세요 듣보잡입니다"라고 하고 다니고. (하하) 공석에서는, 글쎄. "연기 열심히 하고 싶어 하는 배우입니다", "아직 선배님들에게는 애기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런 식으로 한다.

<블랙독>
<미씽: 그들이 있었다>

<잔칫날> 경만, <미씽: 그들이 있었다> 신준호, <블랙독> 도연우. 작품도 캐릭터도 조금은 무겁거나 진중하다. 본인에게 그런 얼굴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어떤 분의 인터뷰에서 들었는데, 나에게 억울한 게 잘 어울린다더라. 내게 아련아련한 눈빛이 있나 보다. 연출하시는 분들은 배우를 볼 때 '저 친구는 저런 느낌이 있구나, 저걸 잘 담아내야지' 하는 마음을 갖지 않는가. <블랙독> 감독님께서 캐스팅할 때도 그런 눈빛을 봐주셨던 것 같다.

아직 보여주지 않은 얼굴 중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해맑은 역할도 잘 어울릴 것 같다.

평소에 되게 밝다. 밝은 만큼, 그만큼 어두운 부분도 있겠다. 이번 작품에는 그런 면이 많이 나왔던 것이고. 밝은 역할을 하고 싶은 욕심은 늘 있다. 유쾌하고 편한 캐릭터. 그런 기회가 오면 너무 감사히 할 것이다. 오기만을 바라고 있다. 최근에는 너무 많이 울어서. (하하)


정말로 그랬더라. 경만이 경찰서에서 묶어둔 감정을 터뜨리는 장면도 그렇고, <미씽: 그들이 있었다>에서 준호가 여나의 죽음을 깨달았을 때도 그렇고, 오열에 특화된 배우라고 생각했다. 감정을 쏟아부을 때 어떤 생각을 하는가.

격한 오열을 할 때는 생각을 안 하게 되는 것 같다. 마음가짐은 있다. 감정신을 하면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내가 이 장면을 소화하려 몰입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내 스태프, 현장 스태프들이 내 눈치를 봐야 할 일 없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다. 나의 숙제이지 않은가. 그걸로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라고 배웠다.

감정 연기를 준비하면서는, 촬영 전에 대본을 몸에 기억 시켜 놓는 편이다. 대본을 몸에 넣어뒀다가, 자다가 일어나서 갑자기 해보는 식이다. (연기를 한다는 것이) 시나리오에 적힌 상태, 그 상태에 들어가는 것이지 않은가. 나를 그 주파수에 맞춘다고 해야 하나? 몸이 기억해버리게 계속 그 상태로 나를 넣어본다. 그러면 더 편해지고 자신감도 생기더라. 사실 감정신에서는 다 내려놔 버려야 하는데, 내려놔도 몸이 연습한 것을 기억하기에 자신이 있는 거다.

<잔칫날>

소주연 배우와의 호흡은 어땠나. 남매지만 경만은 잔칫집에, 경미(소주연)는 장례식장에 있어서 영화 반절 이상은 전화로만 연락하더라.

지금도 현실 남매 같이 지내고 있다. 그런 아쉬움은 있었다. 우리가 이렇게 남매 케미가 좋으니, 긴 호흡으로 경쾌한 극에서 남매로 만나도 참 재미있겠다 싶었다. 주연이에게는 뭐랄까, 살아 움직인다는 느낌이 있다.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경미가 경만이에게 뭘 주고 경만이가 그걸 버리지 않는가. 그게 사실 쓰레기다. 사탕 껍질을 줘서 버린 건데. 이 장난은 주연이의 애드립이었다. 슛 들어가기 전에 얘기도 안 했었다. 현실 남매가 티격태격하는 것 같은 게 좋아서 그날 촬영 끝나고 주연이에게 전화했다. 너무 좋았다고. 주연이는 주연이 나름대로 내가 안 받아주면 어쩌나 하는 고민을 했다고 하더라. 둘 다 성격이 둥글둥글하고 장난치는 것도 워낙 좋아해서 딱히 맞춰야 하는 자리를 갖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남매가 되었다.


실제로도 여동생이 있다. 경만처럼 묵묵하게 챙겨주는 오빠인가, 아니면 또 다른가.

잔소리를 좀 많이 하고. "엄마한테 잘하라" 그러고. "엄마 네 친구 아니라" 그러고. 뭐, 그렇다. (하하) 상담도 많이 해준다. 요즘에는 연애 상담도 해준다. 동생이 짝사랑을 하면 "그래, 그러면서 크는 거다" 하고. 나이 차가 좀 나다 보니까 딸 같은 것도 있다.

극중 사촌형(강성호)이 식장에 와서 아버지의 부채에 관해 이야기할 때 경만이 "죄송해요"라고 답한다. 말 자체는 단 네 자인데 눈빛이 많은 말을 하더라. 얼핏 형을 노려보는 것 같기도 했다.

'산 넘어 산이구나'라는 생각이었다. 경만은 사실 사람과 대화를 할 때, 선택할 수 있는 단어의 폭이 넓은 사람은 아니다. 정말 죄송해서 죄송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이 외의 상황에서도 죄송하다는 말로밖에 대답할 수 없는 때가 있다. 경만에게 '죄송하다'라는 단어는 이미 선택되어 있고, 그 표현 안에 '아.. 또.. 올 게 왔네..' 하는 마음, 압박의 압박의 압박에 대한 짜증과 괴로움이 섞여 있었던 거다. 감정은 복합적인데 선택할 수 있는 단어는 하나밖에 없는 그런. 가끔 짜증이 삭 올라오기도 하지만, 경만이는 감정 속에 있으면 안 되는 인물이라. 어떻게든 상황을 해결해서 장례식을 잘 치러야 하기 때문에 단어 속으로 다시 구겨 넣는 거다. 그러다가 경찰서에서처럼 터지고.


경만은 안으로 많이 삭혀야 했다. 하준은 어떤 성격인가.

나도 많이 삭히는 편이다. 경만을 하게 된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하하하)

그럼 경만처럼 터지기도 하는지.

삭히기도 하지만 그때그때 다 털어버리려 한다. 운동을 한다든지, 좋아하는 영화를 본다든지. 많이 풀어서 막 터지지는 않는다. 근데 또, 사람이 궁지의 궁지의 궁지에 몰리다 보면 누구나 터지는 순간이 오지 않는가. 서러웠던 순간도 있었을 거고, 아팠던 순간도 있었을 거고. 그 순간들을 겪으면서 한편으로는 이게 다 자양분이 되겠지 생각하기도 한다. 이런 정서적인 것들이 나를 또 깊게 만들어주겠지, 스스로를 위로한다. 배우라는 직업 자체가 위로를 좀 주는 것 같다. 겪은 것을 토대로 누군가를 달래거나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보람이다.

인스타그램에도 인상 깊게 본 영화에 대한 기록을 남기더라. 최근에는 바쁜지 올리지 않는 것 같지만.

요즘에도 많이 보기는 한다. 팔로워 수가 조금씩 늘면서 올릴 때 생각을 많이 하게 되다 보니 조금 조심스러워졌다. 영향력이란 걸 무시할 수가 없어서. 전만큼은 선뜻 잘 올리지 않았던 것 같다. 안 보지는 않는다.

마지막으로 올린 작품은 <두 교황>이더라.

<두 교황>은 논란의 소지가 없는(하하) 좋은 작품이고. 종교 이야기라기보다는 세대교체, 화해, 프렌드십을 다루고. 안소니 홉킨스, 조나단 프라이스 두 배우 모두 사랑하는 배우라 존경하는 마음에 올렸었다.

최근에 본 작품은.

HBO 6부작 <이어즈&이어즈>를 굉장히 재미있게 봤다. 가족의 이야기, 결국 우리는 다시 살아간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캐릭터도 모두 좋았다. <퀸스 갬빗>도 재미있게 봤다.

오, 신작인데. 꾸준히 보나 보다.

작품이 없으니까 챙겨본다. 책도 그렇고, 볼 것이 많이 쌓였다. 데이빗 핀처 감독님의 <밀레니엄>도 최근에 봤다. <맹크> 전에 (핀처 감독 영화 중) 못 본 작품을 미리 보고있다. 영화가 너무 재미있어서 원작 소설도 다 샀다.


영화 기록도 기록인데 종종 장문의 응원, 감사 글을 올리기도 하더라.

늘 그런 생각을 한다. 배우는 말을 하는 사람이지 않은가. 내가 하는 이 연기에 누군가가 감정적인 동요를 받고, 그럼 누군가의 삶에 내가 어떤 영향을 드리게 되는 것이지 않은가. 그러다 보니 가끔, 보통 시기적으로 힘들 때 그런 글을 올렸던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어서 송구스러운. 내가 가진 영향력 선에서, '다들 힘내셨으면 좋겠다'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 그렇게 했다.

단역부터 시작해서 어느덧 데뷔 10년 차를 넘겼다. 맨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때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을 비교할 때 가치관에 달라진 것이 있다면.

요즘 드는 생각은... 음... '좀 더 스스로에게 편해지자'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스타일인데, 그렇게 달렸더니 연기적으로 갇히게 된 것은 아닌가 싶더라. 이겨내려면 내 삶 자체를 풀어줄 필요가 있을 것 같더라. 뭘 쥐어 넣으려고 하기보다는 좀 편하게 있자, 뭐가 됐든 감사히 받아들이자 생각했다. 진인사대천명이라고, 상황을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니까. 최선을 다한 다음에 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스트레스받지 말자, 나를 칭찬해주자 했다. 말씀하셨듯 10년 만에 이렇게 단역에서 주연하는 배우까지 올라온 것만으로 정말 감사하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열심히 진실하게 연기하자. 요즘 이런 생각을 많이 한다.

생각이 많아 보인다.

많이 한다. 집 앞에 산이 있는데, 매일 산 보며 멍 때리면서 생각을 많이 한다. (하하하하)


차기작이 궁금하다. <범죄도시 2>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범죄도시 2>는 한국 촬영분은 모두 끝났다. 베트남 촬영분은 코로나 19 사태가 해결돼야 진행할 수 있기에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부분은 감독님에 따르면 한국 촬영분이 굉장히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범죄도시>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있는 분들, 특히 내가 연기했던 강홍석 역에 감정 동요가 됐던 사회초년생분들은 "아유, 우리 홍석이 좀 컸네?", "오구오구" 하실 것도 같다. 적당한 넉살도 생겼고, 오랜 경찰 생활 끝에 터득한 거친 말들도 하고, 나름 싸움도 좀 하는? 그런 인물로 성장하는 것을 보실 수 있을 거다. tvN 드라마 <하이클래스>는 내년 중 촬영을 시작할 예정이다. 그 외에는 아직까지 없는데, 좋은 기회가 있다면 마다하지 않는다.

사진 트리플 픽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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