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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부터 미술까지! 화려한 이력 가진 '삼토반' 이 배우

조회수 2020. 11. 21.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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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백현진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장점 중 하나는 주연 고아성, 이솜, 박혜수와 더불어 수많은 조연 배우들의 준수한 연기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가운데 특히 반가운 얼굴이 있다. 오상무 역의 배우 백현진이다. 아버지의 회사에 낙하산으로 와서 결국 사장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상무로 남은 무능력과 열등감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를 백현진 특유의 오묘한 발성과 심드렁한 표정으로 구현했다. 익히 잘 알려져 있듯 백현진은 음악/미술계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그가 지나온 활동의 궤적들을 간단히 훑어보자.


노래

백현진은 어어부라는 이름을 내세워, 신스팝 밴드 '도마뱀'의 베이시스트였던 장영규와 무용/국악계에서 활동하던 원일과 함께 '어어부 프로젝트 밴드'로 활동했다. 1997년 데뷔 앨범 <손익분기점>을, 원일이 탈퇴하고 2인조 체제로 두 번째 앨범 <개, 럭키스타>(1998)를 발표하면서, 친숙한 악기도 낯설게 들리는 사운드와 축축한 세계관을 말로 옮긴 가사 등 밴드의 정체성을 확고히 했다. 장영규가 음악감독을 맡고 '사각의 진혼곡'을 수록한 <반칙왕>이 개봉한 2000년엔 3집 <21c New Hair>를 내놓았다.

EP <참치월드>(2004) 이후 어어부 프로젝트의 신작 소식은 오랫동안 뜸하고 음악보다는 그림 그리기에 더 열중하던 와중, 솔로 가수로서 첫 음반 <반성의 시간>(2008)을 발표했고 라이브 앨범 <찰라의 기초>(2011)과 김오키, 이태훈, 진수영과 밴드를 꾸려 만든 두 번째 앨범 <가볍고 수많은>(2019)을 보탰다. 그 사이 어어부 프로젝트의 4집 <탐정명 나그네의 기록>(2014)과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 사과농장 주인을 연기한) 기타리스트 방준석과 함께 '방백'을 결성해 앨범 <너의 손>(2016)을 선보이기도 했다.

영화음악도 여럿 작업했다. 어어부 프로젝트 명의로 <휴머니스트>(2001), <복수는 나의 것>(2002), <녹색의자>(2003), 백현진의 이름으로 <달려라 장미>(2005)의 음악을 담당했다. 임상수의 <바람난 가족>(2003)과 <돈의 맛>(2012), 류승완의 <주먹이 운다>(2005), 이경미의 <미쓰 홍당무>(2008), 장률의 <경주>(2013) 등의 엔딩 크레딧에선 그의 목소리가 울러퍼졌다.


연기

출처: <뽀삐>

요 몇 년 사이 '배우' 백현진의 활약상이 꽤 두드러졌지만, 사실 그의 연기 경력은 근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칸 영화제에서 단편 부문 그랑프리를 받았던 송일곤의 장편 데뷔작 <꽃섬>(2001)에서 게이 밴드의 멤버로 출연했다. 다음 두 작품에선 주연을 맡았는데 <뽀삐>(2002)에선 반려견을 떠나보낸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 개와 함께 사는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감독으로, 단편 <열애기>(2004)에선 아내(무명 시절의 김선영이 연기했다)의 연애편지를 발견하고 질투에 휩싸인 남자로 나왔다.

출처: <경주>

드문드문 <강적>(2006), <은교>(2012), <특종: 량첸살인기>(2015) 등에서 작은 역할로 참여했던 백현진은 주로 비호감 40대 식자층 캐릭터를 맡는 경우가 많았다. <경주>(2013) 속 윤희(신민아)를 성추행하는 교수를 시작으로 장률 감독의 4개 영화에 연달아 출연하면서 필모그래피를 확확 늘려나갔다. <경주>로 처음 영화상 후보(부일영화상 남우조연상)에도 올랐다. 홍상수는 <북촌방향>(2011)과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2016)에 각각 작곡가, 술집 주인 역으로 그를 카메라 앞에 세웠다.

출처: <내일 그대와>

2017년엔 TV 드라마에도 출연했다. <내일 그대와>의 유제원 PD가 주연배우 신민아의 연기를 모니터링 하기 위해 <경주>를 봤다가 백현진을 발견해 그에게 <내일 그대와>의 악역을 맡긴 것. 이상할 만큼 나긋나긋하거나 신경질적인 제스처로 기성 배우들과 결이 다른 연기를 선보여왔던 백현진의 독특한 악인 연기를 향한 호평이 많았다. 그동안 그가 출연한 영화들은 대개 흥행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34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그것만이 내 세상>(2017)에 이어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 준수한 성적을 기록해 그의 독특한 목소리를 기억할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처음 공개된 <십개월>에선 산부인과 의사를 연기했다고.


그림

어어부 프로젝트의 앨범 <개, 럭키스타> 부클릿
이상은 <외롭고 웃긴 가게> 커버
루시드 폴 1집 커버
장영규 <4인용 식탁> OST 커버

잠깐의 학부 시절 조소과에 다녔던 백현진은 뮤지션과 배우로 활동하는 틈틈이 일러스트와 그래픽 디자인 작업을 병행했다. 음악 활동으론 미미하기만 했던 경제 사정을 충당했다. 어어부 프로젝트나 장영규가 관여한 음반들, 이상은의 앨범 <외롭고 웃긴 가게>(1997)와 에세이 <푸른 달팽이의 달빛무대 & SOUL>(2004), 루시드 폴의 첫 번째 앨범의 아트워크 등이 그의 솜씨다. 1996년 한 단체전에 참여하긴 했지만, 미술 작가로서 뚜렷한 행보를 보이진 않았다.

<염기 섞인 붉은 책> 중 하나
<산만과 실체> (2006-2007)

일러스트/그래픽 디자인 작업을 중단한 백현진은 선물 받은 수첩에 샤프로 그린 구불구불 설명하기 어려운 형체들을 모은 드로잉북 <염기 섞인 붉은 책>을 내놓았다. 그리고 그게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아라리오 갤러리의 소속 작가가 됐고, 첫 솔로 앨범을 냈던 2008년 개인전 <산만과 실체>를 성대하게 치렀다. 갤러리의 전속 작가 시스템을 통해 5년간 원 없이 회화 작업에 매진할 수 있었던 백현진은 두산갤러리, PKM갤러리(개인전), 삼성미술관 플라토, 서울시립미술관(단체전) 등 한국의 유력 미술 공간들을 두루 거쳤고, 2017년엔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상' 후보에 올랐다. 올해도 개인전/단체전을 치른 백현진은 그때그때 작업하고 있는 그림들을 인스타그램 계정에 업로드하고 있다.

<지평선> (2011-2012)
<몇 가지 사실들과 추측들과 망상들과 침묵> (2015-2016)
<실직폐업이혼부채자살 휴게실>(2017) 설치 전경
<농담과 통곡의 벽지>(2019-2020) 설치 전경

연출

출처: <디 엔드>

'감독' 백현진의 흔적도 있다. 극장에서 상영될 땐 영화라 부르고 미술관에 놓였을 땐 비디오라 불릴 만한 작업이라, 백현진은 '동영상'이라 부른다. 30분 남짓한 단편 <디 엔드>(2009)는 머릿속에 맴도는 무언가가 그림과 노래로는 잡히질 않아서 동영상이라는 매체와 훈련된 배우들(박해일, 문소리, 엄지원, 류승범)을 통해 그걸 엿볼 수 있을까 싶어서 시도한 작업이다. 그로부터 2년 뒤에 다시 한번 만든 단편 <영원한 농담>(2011)은 90년대에 가깝게 지내다가 행방을 아알지 못했던 뮤지션 지인을 제주도에서 오랜만에 만난 후, 그에게서 받은 인상을 제주도에서 영상으로 풀어내보고 싶다는 충동에서 비롯됐다. 두 작품 모두 김우형이 촬영을, 장영규가 음악을, 박해일이 주연을 맡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출처: <영원한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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