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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비규환> 장혜진, “<살인의 추억> 출연 거절한 거 후회하냐고?”

씨네플레이 심규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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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진(사진 리틀빅픽처스).

“후회 많이 했다.” <살인의 추억>(2003) 출연을 거절하고 난 후 내내 아쉬웠다고 했다. 지나간 일을 묻는 게 의미 없다는 것을 알지만, 결단한 일에 뒤돌아보지 않을 담대함과 스크린에 선 자리가 그토록 믿음직한 배우에게도 후회라는 것이 있을까 하는 짓궂은 궁금함 때문에 던진 질문이었다. 마음 없는 껍데기로 연기하는 게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 생각해 진심을 다해 사랑한 무대를 떠났다던 그는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현장의 온기에 마음을 열었다.


그렇게 다시 돌아온 장혜진은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2016)에서 속 깊은 선의 엄마로 호평받고, 운명처럼 다시 만난 봉준호 감독과 함께한 <기생충>(2019)을 통해 크게 주목받았다. 지난한 현실 속 평범한 인물이 담은 온기를 진솔하게 표현하며 관객 마음의 변곡점을 정확하게 자극하는 장혜진이기에 많은 감독들이 서둘러 찾을 수밖에 없는 배우가 되었을 것이다. 고등학생 제자와의 사이에서 덜컥 임신까지 한 딸 토일(정수정)에게 지나치리만큼 냉정하게 대처하는 엄마 선명(장혜진)은 왠지 보통의 우리 엄마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애비규환> 개봉을 앞둔 지난 11월 5일 장혜진을 미리 만나 범상치 않은 엄마 선명에 대해 묻고 들은 이야기를 전한다.


장혜진(사진 리틀빅픽처스).

<애비규환> 개봉을 앞두고 있는 데다 드라마 <산후조리원>도 이번 주 방송을 시작했다. 어느 때보다 바쁘게 지내겠다.

<애비규환>은 작년 여름에 찍었다. 개봉 전 내부 시사를 통해 먼저 봤는데 너무 잘 나왔더라. 최하나 감독이 어떠냐고 묻길래 한두 컷 마음에 안 드는 것 말고 나머진 정말 다 좋다고 했더니 “좋은 것부터 먼저 말씀하셨어야죠.”해서 같이 웃었다. (일동 웃음) <산후조리원>은 지난 8월에 촬영을 마쳤다. 드라마는 보통 방영 중에도 촬영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촬영을 다 마친 상황이라 개봉 무렵 영화 보는 것처럼 어떻게 나왔을까 궁금해하며 보고 있다.


작년 <기생충> <니나 내나>로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했다. 배우 생활 22년 만에 처음 방문이라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애비규환>으로 부산국제영화제를 다녀왔는데 어땠나.

올해는 작년보다 짧은 1박 2일 일정으로 빡빡하게 다녀왔다. 작년보다 차분하고 조용하기는 했지만 부산국제영화제에 오신 분들의 호응도는 상당히 높았다. <애비규환>도 예매 5분 만에 매진되었다고 하고. 직접 만나보니 관객의 많고 적음은 문제가 아니더라. 마스크를 쓰고 계셔서 말씀을 많이 못 하셨지만 눈빛이 너무 진지했다. 영화가 주는 낭만, 그리고 그걸 찾으려는 열망은 여전히 큰 것 같다.


<애비규환>에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

제작사인 아토ATO(이하 아토)와 인연이 깊다. 아토의 대표 중 한 분인 제정주 PD가 내가 출연한 <밀양>의 제작부였다. 그의 소개로 <우리들>에 참여하게 되었다. 아토의 첫 작품을 함께 하다 보니 이후 모든 아토의 작품이 항상 나와 같이하는 느낌인 거다. 아토에서 대본이 오면 일단은 거절하지 않고 모두 본다. 내가 할 수 있는 상황인지 또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인지 꼼꼼하게 고민한다. “언니가 했으면 좋겠어” 이러면 난 무조건 오케이다. (웃음)


<우리들>을 비롯해 <용순> <우리집>까지 각별한 인연에 걸맞게 아토의 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최덕문 선배는 열 작품을 계약했다. 그 선배는 거의 직원이다. (웃음). 나도 나중에 돈 많이 벌면 투자 이사가 되고 싶다. (웃음) 돈 많이 벌어서 투자할 테니 살아만 있어 달라고 했다.

<애비규환> 장혜진, 정수정.

딸 토일(정수정)이 임신해 어린 고등학생과 결혼한다고 했는데도 선명(장혜진)은 크게 놀라지 않는다. 대다수 부모는 원망, 질책, 체념같이 감정적인 부분을 많이 드러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데. 선명은 어떤 감정이었을까.

나도 최하나 감독께 이거 화내야 하지 않나, 화내는 게 보통 엄마들의 모습 아닌가, 이 상황에 어떻게 이렇게 담담할 수 있냐 물었는데 최 감독은 더 다운시켜달라고 했다. 더 냉정하고 냉철하게 ‘너 그거밖에 안되지, 넌 원래 그런 애니까’ 이렇게 더 비아냥거려달라는 거였다. 재혼 가정이란 것 때문에 아이에게 상처를 줬고, 그 미안함 때문에 조금 거리를 둔 것이란 설정을 생각하니 이해가 가더라. 그렇지만 속은 부글부글 들끓고 있었다. 연기하는 동공이 막 떨렸는데 안 보였나? (웃음)


<우리들> <기생충> 등에서 무덤덤하게 현실에 충실하면서도 자식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주는 엄마로 나온다. <애비규환>의 선명도 든든한 조력자지만 자식을 대하는 태도 등이 이전 작품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어떻게 캐릭터를 만들어 갔나.

감독님과 상의해서? (웃음) 내 연기는 주문 제작 시스템이다. 연기에 내 생각이 많이 들어가면 캐릭터에 내 모습이 그대로 반영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어떤 작품, 어떤 캐릭터를 만나도 연기가 매번 똑같지 않겠나. 디렉팅에 충실하게 따르고 상대 배우들과의 호흡을 잘 맞추면 다른 모습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캐릭터를 만드는 일은 온전히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다.


<니나 내나>를 비롯해 <우리들> <기생충> 그리고 <애비규환> 까지 어느 가족이든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특별히 가족과 성장에 대한 영화에 관심을 가진 이유가 있나.

내가 엄마다 보니까 그런 생각들이 작품 선택에 많이 반영되는 것 같다. 마음이 많이 와닿기도 하고. 나도 평탄한 삶을 산 것은 아니잖나. 다들 들어보면 인생사는 1박 2일을 풀어도 다 못 풀만큼 길더라. 그런 것들을 내 입으로 말하는 것보다 영화를 통해 풀어내는 것도 있다. 괜찮다고 말하고 스스로에게 힘을 주는 것처럼 말이다.


토일과 선명은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유사한 점이 많다. 그것은 부모가 자녀의 가치관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기도 하다. 장혜진 배우에게는 사춘기의 딸(2004년생)이 있다. 딸에게 장혜진은 어떤 엄마인가.

<기생충> 촬영 때 딸이 긴 메시지를 보내 준 적 있다. ‘현장에 와서 봤는데 엄마가 너무 힘들어하는 게 느껴진다. 집에서는 항상 밝은 엄마인데’ (눈시울이 붉어지며) 사실 이걸 말할 때마다 눈물이 나긴 한다. ‘내게 동생도 만들어줬고 따뜻한 가정도 있게 해줬다. 엄마로서 할 역할은 다 했고 또 잘하고 있으니 엄마는 이제 엄마 장혜진보다 배우 장혜진으로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엄마 하고 싶은 대로 참지 말고 해라’ 이렇게 보내왔었다. 이게 내게 큰 힘이 된다. 힘들 때마다 본다. 딸이 뭐 보냐고 물으면 네가 쓴 메시지 본다고 하는데 그때마다 부끄러운지 딸이 막 소리를 지른다. (웃음) 딸이 세 살 때 내가 연기를 다시 시작해서 연극할 때 공연할 때마다 데리고 다녔다. 그렇게 오래 곁에 있어서인지 철없고 여린 엄마를 자기가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하나 보다. 항상 고맙고 미안하다.

<애비규환> 장혜진, 최덕문.

선명의 가족이 속한 대구라는 지역과 교사라는 직업은 보수적인 이미지를 대변하는 것 같다. 토일의 가족이 재혼하며 고향을 떠난 이유도 이런 보수적인 분위기에 대한 탈출이 아니었을까 싶다.

맞다. 감독님의 의도도 그렇다. 친정이 있는 대구의 지역적 보수성과 엄마의 재혼, 손녀의 임신이 충돌한다. 새아빠는 한문 선생님으로 고지식한 한자성어를 남발하는데 또 한편 딸에 대해서는 한없이 부드럽다. 엄마는 윤리 선생님인데 재혼했고, 집 나간 아빠는 기술가정 선생님이고. 최하나 감독이 대비된 공간과 직업을 일부러 설정해 아이러니를 통한 영화적 재미를 줬다.


고향이 부산이다. <애비규환>의 배경은 대구이고. 일반인들은 다 같은 경상도라고 느낄지 모르겠지만, 부산과 대구의 말씨는 차이가 있다 들었다. 대구 사투리를 쓰는 데 어려움은 없던가.

“언니야! 오빠야!” (실제 예를 들며) 높낮이가 이렇게 다르다. (웃음) 최하나 감독이 대구 출신이라 많이 물어봤다. 그런데 영화를 보니까 내 말투에 미묘하게 부산 사투리가 섞여 있더라. 생각보다 썩 잘한 것 같지 않다. (웃음) 지역 분들이 ‘저게 무슨 대구 사투리야?’ 할 것 같다. (웃음)


정수정 배우와 같은 동네에 살며 자주 만나겠다고 한 걸 보니 연기 외에도 정서적 교감도 좋았던 것 같다. 정수정 배우와의 호흡은 어땠나.

원래 근처에 살긴 한다. 서로 자기 차가 없을 때 촬영장에서 집에 데려다주곤 했다. 내가 곧 이사가야 한다고 하니 정수정 배우가 자기 집 근처로 오라고 하더라. 같이 산책하고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자고. 떡볶이 먹기로 했는데 바빠서 아직 못 먹었다. (웃음) 연기 호흡은 정말 좋았다. 정수정 배우는 똑 부러지는 성격이다. 의사 표현도 분명한 편이고 연기할 때 두려움도 없었다. ‘이걸 어떻게 하지’가 아니라 ‘힘든데도 할게요, 할 수 있어요’ 이런 식이다.


최하나 감독은 92년생 밀레니얼 세대다. 단편으로 주목받은 신예 감독이기도 하고. 작품에 대한 또 그 외적인 부분에서 최하나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

신선하다고 해야 할까? 일단 현장에 그렇게 옷을 잘 입고 오는 감독을 처음 봤다. (웃음) 다들 추우면 패딩, 더우면 반팔 티셔츠 이렇게 후줄근하게 입고 오는데 말이다. 그게 편하니까. (일동 웃음)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신선했다. 이때 이 나이의 지금 젊은 사람 딱 그런 느낌을 받았다. 본인의 생각을 이야기하는데도 거침이 없었고 현장을 너무 잘 이끄시더라.

<기생충> 장혜진.

<기생충> 이전에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을 거절했다고 들었다. 당시 배역의 크기가 모든 것을 던질 만큼은 아니었다고 했다는데 그래도 당시 출연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는 없었나.

엄청 많이 했었다. (일동 웃음). 그때 ‘어떻게 제가 휴가 내서라도 갈까요’ 했더니 봉준호 감독이 당신의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올만큼의 역할은 아니다는 말을 했던 거다. 내가 성공하면 또 혜진씨도 다시 연기를 시작하게 되면 더 좋은 작품으로 그때 하자 했었는데 감독님은 이 말을 잊어버리셨더라. (일동 웃음) 그 전화 내용을 나만 기억하고 있던 거다. 기억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내가 얼마나 아쉬워했을지 짐작할 수 있는 거 아닐까? (웃음) 다시 연기를 시작하게 되었을 때 주변에 그 말을 했었는데 다들 연락해보라 했다. 연기 다시 시작했다고. (웃음) 어떤 선배님이 봉준호 감독 전화번호를 줬는데 전화를 할까 말까 망설였지만 차마 못 하겠더라. 그래서 전화번호만 갖고 있었다. (웃음) 그러다 <기생충> 할 때 연락이 왔는데 감독님 전화번호가 다른 거다. 다시 봤더니 가운데 번호만 달랐다. (웃음) 어쨌든 봉 감독님도 본의 아니게 약속을 지키게 된 거다. (웃음)


<기생충>의 성공 이후 주변의 기대가 컸을 것 같다. 작품을 선택하거나 연기할 때 부담감은 없었나.

없었다. <기생충>이라는 좋은 작품을 만나서 엄청난 일들을 겪었지만 그냥 그것은 과거의 일, 나에게 선물 같은 축제 같은 일, 다시 올 수 없는 행운이 온 것이라 감사하게 생각하고 이제 다시 시작이라는 결심을 했었다. 실제 부담은 <니나 내나> 때와 지금 <애비규환> 개봉 때 느끼고 있다.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과 연기에 대한 부담이 그것이다. 연기는 하면 할수록 어려워지는 것 같다, 전엔 멋모르고 했다면 지금은 디테일에 더 신경 써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연기 수업을 받고 있다.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해서다.


그래도 <기생충> 이후 <니나 내나>, 드라마 <동백꽃 필무렵> <사랑의 불시착> 등 작품들마다 좋은 평가를 받았다. 스스로를 평가해보면 어떤가.

많이 부족하다. 내 연기를 어떨 땐 못 보겠더라. 간혹가다가 괜찮은 게 한 번씩은 있다. 최근 찍은 작품에서 그런 느낌을 몇 년 만에 받은 적이 있다.


다른 배우들이 이 인터뷰 보면 싫어할 것 같다. (웃음)

그런데 그게 진심이다. 나 겸손한 사람 절대 아니다. (웃음)

장혜진 (사진 리틀빅픽처스).

누구나 좋아하는 길을 가면서도 장벽을 만나는 순간이 있다. 연기를 멈추게 되었던 계기를 듣고 싶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뭔가 안 좋은 일은 한꺼번에 오지 않나. 테크닉적으로는 연기를 할 수 있었겠지만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껍데기만 가지고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다시 연기를 시작하며 잘했다고 생각되었던 때가 언제인가.

<밀양> 현장이 너무 재미있었다. 현장이 너무 재미있어서 내가 진작 이런 재미를 알았었다면 어땠을까 했다. 생각해보니 다시 하니까 재미있고 다르게 보인 게 아니었을까? 그런데 막상 시사회 때 영화를 보고 내 연기는 마음에 안 들었다. 화가 많이 났는데 당시 <밀양>의 조연출이던 친구가 웃으면서 네가 너무 열심히 해서 그렇다고 했다. 순간순간 몰입에만 집중해서 전체적인 흐름을 못 본 것일 수 있다고 하더라. 얻은 게 많은 현장이었다.


아직 해보지 않은 장르 혹은 욕심나는 역할이 있다면 무엇인가.

안 그래도 어제 라디오에서 로맨스와 멜로를 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우리 매니저들이 빵 터졌다고 하더라. (웃음)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같은 사랑 연기를 하고 싶다. 내가 연기를 그만뒀던 시기가 가장 사랑을 많이 할 나이 아닌가? 그런 거 못 해본 게 아쉽다. 당시엔 왜 그렇게 싸우고 소리치는 연기가 좋았을까 싶다. 이젠 멜로와 로맨스 꿈꾸고 있다. (웃음)


준비하는 차기작이 있나.

민용근 감독의 <소울메이트>다. 대만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의 한국 리메이크 작품이다. 김다미, 전소니 배우와 함께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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