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알고 나면 더 충격적인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모티브가 된 이 사건

조회수 2020. 10. 30. 16:5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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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인턴기자 유정아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코로나19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국내 극장가에 '파이팅'의 에너지를 불어 넣어주고 있는 한 편의 영화가 의미 있는 흥행을 이어오고 있다. 바로,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남성 위주의 사회 분위기 속 고졸 여성 직원들을 향한 불합리와 부조리가 만연했던 1990년대를 배경으로 업무능력은 늘 베테랑이지만 늘 말단 직원을 벗어나지 못하는 세 친구 자영(고아성), 유나(이솜), 보람(박혜수)의 씩씩한 연대와 성장을 그린다. 

세 사람이 두 팔을 걷어 붙이고 힘을 합친 이유는 회사의 비리를 파헤치기 위해서다. 개인 간의 알량한 권력 다툼이나 횡령 따위의 비리가 아니다. 무려 회사 공장에서 유출된 검은 폐수를 둘러싼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서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오프닝 시점부터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말을 관객들에게 전한다. 영화의 모티브가 된 실화 사건은 총 2개인데, 당시 실제로 있었던 상고 출신 고졸 사원들을 위한 토익 수업에 관한 내용과 우리나라를 충격에 빠뜨렸던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이 영화에 녹아있다. 그중에서 폐놀 유출 사건은 영화의 배경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하다. 이종필 감독에 따르면 영화의 시나리오 초고는 사회 고발물에 가까웠을 정도로 페놀 관련 내용이 많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 혹은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이라고도 불리는 이 사건은 국내 환경오염 역사상 최악의 결과를 남겼을 뿐만 아니라 전 국민의 분노를 가장 격렬하게 일으킨 충격적인 사건이다. 사건의 진실은 이렇다. 1991년 3월, 구미공업단지 안에 위치한 두산전자의 페놀 원액 저장 탱크 파이프가 파열되며 8시간 동안 페놀 원액 30t이 유출됐다. 실제로 그들이 쏟아부은 페놀은 낙동강을 상수원으로 하는 250만 대구시민에게 노출됐고, 실제로도 고약한 악취가 난다는 시민들의 신고가 빗발쳤다. 

그럼에도 정부는 단순 소독만 진행했을 뿐, 고의성이 없다는 이유로 20일 만에 두산의 조업 재개를 허용했다. 더욱 충격적인 건 조업 재개 2주 만에 다시 한번 2차 유출 사건이 발생하게 됐고 그제야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된다. 결국, 검찰 수사를 받게된 두산전자는 무려 1990년 6월부터 6개월 동안 약 325톤가량의 페놀을 무단 방류했다는 사실을 밝힌다.

출처: MBC

페놀 유출 사건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은 당연히 대구다. 대구 지역의 상수원으로 사용되는 다사 취수장으로 유입된 페놀은 염소를 이용한 정수처리 과정에서 클로로페놀로 변하면서 지역 내 악취를 유발한 건 물론, 시민들의 건강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다. 참고로 페놀은 농도 1ppm을 넘으면 암 또는 중추신경장애 등 신체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치는 극약이다. 실제로 대구 지역 임산부 중에선 유산을 겪은 이도 있을 정도며 많은 시민들이 복통, 설사, 피부 가려움증 등을 호소했다. 


영화 속 '옥주' 공장은 실제로도 있는 곳일까?

그럼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안에서 그려지는 페놀 유출 사건 장면들을 되짚어 볼까. 자영, 유나, 보람이 다니는 '삼진그룹'의 사무실은 을지로에 위치해 있지만 검은 폐수가 유출되고 있던 공장의 위치는 '옥주'로 소개된다. '옥주'는 영화의 배경 설정을 위해 만들어진 가상의 지명이다. 잔심부름을 위해 옥주 공장을 방문한 자영이 폐수 유출 현장을 최초로 목격하게 되며 영화는 급물살을 탄다. 실제로 영화 속에선 과수원의 전경과 썩어 있는 사과의 모습 등을 통해 실제 사건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실제 사건이 그랬던 것처럼, 영화 속에서도 '삼진그룹'은 폐수 무단 방류를 은폐하려는 비리를 저지른다. 끔찍한 부조리를 마주한 세 사람은 비리를 파헤치고,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말단 사원들과 힘을 합친다. 그들이 진실에 가까워지는 과정 속에서도 영화는 폐수 사건의 '진실 찾기'에만 몰입하지 않고, 회사 안에서의 불합리한 상황들도 곳곳에 녹여내며 1990년대 사회 분위기를 다양하게 담아냈다. 



요즘 사람들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비상식적인 일들이 사무실에서 벌어지는데 특히 사무실 내부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 쉬는 시간에 전 직원이 국민 체조를 하는 장면, 직급에 따라 철저하게 배치된 자리, 아침마다 전 직원에게 커피 심부름을 하는 여성 직원들의 모습 등을 통해 90년대의 회사 분위기를 리얼하게 표현했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속 국민 체조 장면

'페놀 유출 사건' 이후 우리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나

아쉽게도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영화 속에선 다뤄지진 않았지만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은 범국가적 변화를 불러일으키며 전 국민의 생활을 변화 시켜 놓기도 했다.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되며 인식의 전환을 겪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된 건 물론, 생활에 밀접한 변화들은 지금의 우리에게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금에야 생수를 사 먹는 일이 흔하지만, 1994년까지만 해도 법적으로 먹는 생수는 판매가 금지되어 있었다. 25년 전만 해도 대한민국의 모든 가정이 수돗물을 받아 끓여 먹는 생활을 했다. 

하지만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이 경남지역 일대를 넘어서 부산까지 확대됨에 따라 수돗물을 불신하는 여론이 생기기 시작했다. 결국 국민들의 우려를 받아들인 정부는 생수 판매를 합법화하기에 이른다. 세계에서 지표수를 식수로 먹을 수 있는 나라였던 대한민국이 이젠 생수를 사 먹는 국가가 된 것이다. 이에 1998년부터 생수 생산을 시작한 삼다수는 출시 6개월 만에 생수 시장 1위를 기록하고, 현재까지 업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하이트맥주 지면 광고

생수를 넘어 맥주까지 판이 뒤집어졌다. 당시 독보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던 두산그룹의 OB맥주가 전국적인 불매운동으로 인해 큰 타격을 입게 된 것이다. 이 사태의 실질적 이익은 하이트 맥주에게 돌아갔다. 물의 안전에 민감해진 국민 정서를 활용해 하이트 맥주는 '천연암반수로 만든'이라는 마케팅 문구를 내세웠고, 이로 인해 만년 2위에 머물렀던 하이트 맥주는 시장 점유율 1위로 등극했다.



영화 속 금붕어 '람보'의 의미?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금붕어 '람보'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의 흔적들을 녹이려는 노력은 곳곳에 숨어있는데, 영화에서 나름 비중 있게 다뤄지는 금붕어 '람보' 역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세 사람이 힘을 합쳐 비리를 밝혀내는 대장정의 시작점에 금붕어가 있다. 자영이 공장 근처 강가에 금붕어를 방생하려고 한 순간 떼죽음 당한 물고기들을 발견하고, 폐수가 유출된 현장을 목격하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금붕어는 보람의 고된 회사생활을 이겨내는 반려어(!)로 등장한다. 금붕어의 이름인 '람보'역시 보람의 이름을 거꾸로 해 만들어진 이름이다. 그렇다면 왜 금붕어여야 했을까.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 당시 유해성을 증명하기 위해 사용된 실험 물고기가 바로 금붕어다. 페놀이 담긴 비커에 금붕어를 담아 유해성을 확인하는 실험을 진행한 건데, 금붕어는 5분 만에 죽었다고 알려졌다. 이 실험은 전 국민에게 페놀의 유해성을 알려준 실험으로 유명해졌다. 


영화를 연출한 이종필 감독은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이 가진 역사적인 의미를 다루면서도 재미를 잃지 않았다. 단순 사회 고발 영화에서 끝나지 않고 연대와 승리를 이룩하는 서사를 통해 관객들에게 든든한 응원을 전한다. 영화를 통해 '파이팅'을 전하고 싶었다는 이종필 감독의 말처럼 씩씩하게 비리를 밝히고, 앞으로 나아가는 인물들을 통해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관객들의 마음 한 켠을 뜨겁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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