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엮어넣기'?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실화는 무슨 내용일까

조회수 2020. 10. 29.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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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
출처: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포스터

올해는 조용한가 싶었는데, 역시 그들은 '계획이 있었다'. 넷플릭스가 10월 16일 공개한 영화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은 북미 현지는 물론 바다 건너 한국 시청자들에게도 호평을 받고 있다. 지난해 <아이리쉬맨>, <결혼 이야기> 등을 공개할 때보다 조용하지만, 그러나 묵직하게 울림을 퍼뜨리고 있는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을 한 번 살펴보자.


'시카고 7의 재판'은 무엇인가.

정부에서 기소한 '시카고 7'

제목이 뜻하는 '시카고 7의 재판'은 무엇일까. 한국인들 중 이 재판을 바로 떠올릴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시카고 7의 재판'은 1968년 시카고에서 진행한 반전시위가 폭력사태로 번지자 정부에서 시위의 책임자 7명을 고발한 사건을 뜻한다. 정부 측은 시위를 주도한 7명이 폭동을 일으키려는 의중이 있었음을 주장하고, 피고석에 자리한 7인은 당시 경찰이 먼저 폭력을 휘둘러 폭력 사태가 번졌으며 폭동 의도는 전혀 없었음을 반론으로 펼쳤다.

처음 기소당한 인원은 8명. 애비 호프먼, 제리 루빈, 데이비드 델린저, 레니 데이비스, 리 와이너, 존 프로인스, 톰 헤이든, 보비 실이다. 그런데 왜 '시카고 7'이냐고? 보비 실이 주장한 것도 그와 일맥상통했다. 그는 당시 시카고 시위의 주축도 아니었으며 연설을 위해 잠시 들렸다고 여러 차례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을 진행하는 율리우스 호프먼 판사가 그의 반론을 듣지 않자 보비 실은 결국 울분을 토했고, 그 결과 아예 별개의 사건으로 분리됐다. 그래서 '시카고 8'은 보비 실이 별개의 사건 피고인으로 제외되면서 '시카고 7'으로 남게 됐다.

영화 속 주요인물들

그럼 남은 7명이 진짜 폭동을 모의했느냐? 영화는 처음부터 정확하게 짚고 들어간다. 애초 이 7인은 소속단체부터 다르다. 시카고 시위를 주도했지만 결코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 개중엔 폭력 사태를 감수할 인물도 있었으나 끝까지 비폭력을 주장한 이도 있었다. 뜻은 같으나 방향이 다른 7명은 재판의 피해자임과 동시에 영화의 갈등을 고조시키는 불씨이기도 하다.

반백 년 전 실화가 원전이니, 영화의 결말? 대충 감 잡았을 것이다. 하나 숭고함으로 용기를 북돋는 실화가 결말을 보려고 보는 건가. <트라이얼 오브 시카고 7> 또한 핵심은 과정이다. 반전 시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기득권과 누명을 벗고 평화를 담론화하려는 혁명가들의 사투. 일견 한쪽으로 치우칠 편협한 시선을 거둬내기 위해 영화는 각 인물의 재판에 임하는 태도와 그들의 당시 행적, 성격을 상세하게 그려 성스러운 혁명가로 우상화되는 것을 견제하고 결함이 있는 인간임을 명명백백하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씌우진 누명은 비단 그들만의 것이 아니며, 언제든 우리를 향할 수 있음을 은밀하게, 그러나 명확하게 전한다.


이야기 깎는 장인 아론 소킨

촬영 현장의 아론 소킨 감독 (가운데)

<트라이얼 오브 시카고 7>의 선두에 선 사람은 아론 소킨. 드라마 <뉴스룸>과 영화 <소셜 네트워크>, <머니볼> 등 실화를 기반으로 한 작품에서 '말맛'을 잘 살리기로 유명한 각본가 출신 감독이다. 2017년 <몰리스 게임>으로 처음 연출을 맡았을 때는 기대에 비해 썩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트라이얼 오브 시카고 7>는 처음부터 그가 각본을 맡았고, 프로젝트가 표류하다가 그의 손에 들어온 만큼 재판의 '티키타카'를 기막히게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아론 소킨의 능력은 <트라이얼 오브 시카고 7> 등장인물 안배에서도 빛난다. 많은 인물이 정보를 쏟아내는 작품이기에 어느 캐릭터 하나 공허하게 느껴지면 자칫 영화 전체가 허술해질 수 있다. 아론 소킨은 한 명 한 명 인물을 차곡차곡 묘사해간다.

특히 피고인으로 기소된 시카고 8뿐만 아니라 검찰 측 인물 리처드 H. 슐츠(조셉 고든 레빗)를 초반에 등장 시켜 이 재판이 얼마나 '미국적'인 것인지를 상기시킨다. 뿐만 아니라 판사 율리우스 호프먼(프랭크 란젤라)의 꽉 막힌 성격을 단 몇 장면만으로 정확하게 포착해 극 전체에 드리운 권위주의의 그림자를 암시한다.


실존인물을 넘어선 존재감

<트라이얼 오브 시카고 7> 포스터는 참 넷플릭스답다. 영화의 정서를 포착한 장면으로 깔끔하고, 정갈하다. 하지만 <트라이얼 오브 시카고 7> 출연진을 한껏 내세운 '한국식 포스터'로 공개했더라도, 그만한 매력이 있었을 수도 있다. 출연진이 빵빵하기 때문이다.

조셉 고든 레빗은 검사 리처드를 연기한다.

시카고 8을 기소하고 그들에게 궁지로 몰아세우는 검사 리처드는 조셉 고든 레빗이 맡았다. 얼마 전 공개한 신작 <프로젝트 파워>에서 다소 아쉬웠다면 이번 영화에선 특유의 선하고 젠틀한 이미지를 앞세워 정해진 결말로 몰아가는 검사 역에 완벽 빙의했다. 그와 대척점에 선 '시카고 8'은 에디 레드메인, 사챠 바론 코헨, 제레미 스트롱, 야히아 압둘 마틴 2세 등이 맡았다. 에디 레드메인이야 이번에도 진중한 목소리로 이상과 비폭력 사이에서 고민하는 톰 헤이든을 기막히게 연기했고, 샤차 바론 코헨은 그동안의 코믹 이미지를 완전히 내려놓고 가장 아이코닉한 인물 애비 호프만을 완벽하게 연기해 호평을 받았다.

애비(사챠 바론 코헨)와 제리(제레미 스트롱)
호프먼 판사를 연기한 프랭크 란젤라는 배우가 싫어질 만큼 찰진 연기를 보여준다.
컨슬러 변호사를 연기한 마크 라이런스(가운데)는 역시 연륜에 걸맞은 명연을 펼친다.

이 젋은 배우들과 함께 호흡을 맞춘 원로 배우들도 한 명 한 명 놓치기 아깝다. 재판을 마음대로 쥐락펴락하는 호프먼 판사는 프랭크 란젤라가 맡았는데, <굿나잇 앤 굿럭>, <프로스트 VS 닉슨>, <그레이스 오브 모나코> 등 실존인물을 연기한 영화의 경력만큼 두터운 존재감을 뽐낸다. <덩케르크>와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상이한 캐릭터를 인상적으로 연기한 마크 라이런스는 시카고 8 측의 변호사 윌리엄 컨슬러로 날 선 통찰력을 보여준다. 스크린에 등장하자마자 작품의 리듬조차 변화시키는 히든카드는 다름 아닌 마이클 키튼. 당시 법무 장관 램지 클락을 맡아 짧지만 굵은 자신의 인장을 스크린에 선명하게 남긴다.

마이클 키튼은 (팬이라면 아쉬울) 짧은 분량에도 존재감은 확실하게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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