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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소리도 없이> 유아인 "큰 작품이 아니라 큰일을 하는 작품"

조회수 2020. 10. 19.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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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
출처: <소리도 없이> 포스터

딱 2년 전 즈음이다. 부산국제영화제 취재 도중 오픈 토크 현장에서 처음 유아인의 ‘언어’를 들었다. 유아인이란 배우는 당시에도 스타이자 활동도 오래 한 배우였지만 그때 처음으로 유아인이란 개인의 존재감을 체감했다. 질문을 받으면 최선을 다해 자신의 생각을 구체화하는 그의 모습은 묘하게 오랜 시간 마음에 남았다. ​ 

그리고 <소리도 없이> 개봉을 앞두고, 그와의 인터뷰가 성사됐다. 대사 한 마디 없는 태인을 연기한 유아인을 인터뷰해서 그의 언어를 글로 옮기다니. 걱정 반 기대 반을 안고 배우 유아인을 만났다. 그리고 다시 한번 통감했다. 이 사람, 참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말’을 한다. 혼자 듣기 아쉬운 그의 말들. <소리도 없이>, 그리고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유아인의 언어를 이 자리를 통해 씨네플레이 독자들에게 전해본다.

출처: (사진 제공=UAA)

출처: <소리도 없이>

<소리도 없이>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가 이전에 ‘양심적으로 만들어진 영화다’라는 말씀을 드렸는데, 부연 설명을 못 드렸던 거 같아요. 시나리오를 보면 재밌다, 기술력이 보이겠다, 생각하는데 이 영화는 감독님의 태도, 자세 이런 부분들이 느껴졌어요. 선한 이야기를 해서 양심적이라고 느꼈다기보다 선과 악에 대한 판단과 그 너머의 이야기들을 상상하게 해서, 그리고 그것들을 관객에게 판단의 기회를 돌려준다는 점에서 보기 드물게 양심적으로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홍의정 감독님에 대한 발언들을 보면 감독님에 대한 믿음이 확고해 보여요. 감독님과 작업 전과 후, 어땠나요? 

한결같이 똑같고 솔직하고. 한결같다는 건 1년 전, 1년 후의 그분이 같다는 의미가 아니에요. 겪는 변화들에 솔직하고,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분인 것 같고. 일관적으로 똑같단 건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한다는 거였고, 그 점에 제가 현장에서 행복한 기분을 느꼈고요. 그런 부분들이 역시 이런 시나리오를 쓰실 만한, 작업을 하실 만한 분이다 싶었죠. 

이런 얘기를 들어보니 감독님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있는 것 같아요.

굉장히 조심스러워하고 과한 예의를 차리시지만(웃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진정한 예의가 무엇인지 더 깊이 이해하고 계신다고 생각했어요. 예의 차리느라 남들에겐 괜히 좋은 사람이 되고 정작 자신의 일을 놓쳐버리는, 요새는 그런 것들이 비일비재하잖아요. 우리에게 요구되는 태도, 예의, 사회적인 기준에 부합하려는 우리의 노력들만 연극처럼 우리의 시간을 물들여버리는, 교류와 소통 안에서 실질적으로 존재해야 하는 것들을 공허하게 만들어버리는 그런 순간들이 많이 보이는 거 같아요. 감독님은 충분히 모든 사람을 배려하고 인간적으로 대하시면서 자신이 해야 할 일, 지켜야 할 것들을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지켜내려고 했다는 것에서 특별한 것 같아요. 물론 (스스로 느끼기엔) 놓치신 부분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웃음).

출처: <소리도 없이>
태인과 창복은 각각 유아인과 유재명이 맡았다.

이번 영화에서 유재명 배우와 호흡을 맞췄어요. 두 분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연기 활동을 쌓아오셨는데, 유재명 배우와 작업하면서 특별히 남는 순간이 있다면?

어떤 장면을 촬영하고 “서로 잘 통했다”, “어떤 느낌을 받았다” 전해주셨는데 그럴 때 되게 감사했어요. 저는 별생각 없었거든요(웃음). 당연히 저는 그 흐름 속에 함께 하고 있다 생각하는데, 저만의 착각일 수도 있잖아요. 그런 걸 상대 배우를 통해 전해 들을 수 있어서 안도감이 들고 감사한 일이죠.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잘 짚어줬다는 그런 의미일까요?

네. 흘러갈 수도 있는 부분을 한 번 정리해 주시고, 짚어주신 것으로 위로가 되고 반성하게 되는 부분도 있고요. 저 역시 더 안정감을 드리기 위해서 노력들을 했어야 하는데, 제가 그런 점이 부족하다 보니까 선배님께서 그런 노력들을 많이 해주셨었고. 그런 것들이 참 감사했던 것 같아요.

출처: <소리도 없이>
초희 역의 문승아

유재명 배우 못지않게 초희 역의 문승아 배우, 문주 역의 이가은 배우와의 장면이 많았어요. 두 배우와는 어떤 식으로 장면을 만들어가셨나요?

평소엔 그런 노력이 부자연스러워서 많이 안 했는데, 이 배우들이랑은 좀 친해지고 싶어서 노력을 많이 했던 거 같아요. 처음 만났을 때 장난치다가 울린 적도 있고. 장난의 톤을 낮은 데서부터 올라가면서 수위를 맞춰야 하는데 저는 제일 크게 지르고 깎아가는 과정을 밟거든요. ‘이 정도를 넘어가면 이 친구가 힘들 수 있겠다’ 이런 과정으로 친해지고 싶어서 노력을 많이 했고. 그 친구들도 많이 따라줬던 거 같고 저도 많이 따라간 거 같아요. 저야 하는 게 딱히 없으니까, 영화에서(웃음). 이 친구들이 만들어주는 에너지나 리듬들, 그것들과 함께 따라가려고 했고, 따라가지 않아도 따라갈 수 있게끔 분위기를 잘 만들어줬던 거 같고. 아주 좋은 선생님들이었던 거 같아요, 여러모로.

출처: (사진 제공=UAA)

영화 대부분을 경기도 로케이션 촬영한 걸로 알고 있어요. 그동안의 세트촬영이나 시대극을 벗어나 지금 이 시대를 배경으로 로케이션 촬영해서 감회가 새로웠을 거 같은데. 혹시 컨디션 조절 같은 것도 하셨나요?

그다지 하지 않았어요. 태인이 그렇게 건강해야 하는 인물은 아녀서(웃음). 겉보기엔 건강한, 건강 이상의 강렬한 느낌을 주는 인물이긴 하지만 폭발적인 에너지는 계속 꺼내는 인물은 아니니까. 삶에 찌들어있는 느낌도 있는 친구기도 하고. 특별히 준비한 건 밤을 새우고 촬영을 간다거나(웃음) 컨디션을 최악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런 노력들을 하곤 했죠.

영화 속 풍경들이 너무 예뻤어요. 

그런 도움도 많이 받았던 거 같아요. 한편으론 그런 것들을 경계해야 하기도 해요. 풍경이나 주변 환경에 취하거든요. 그래서 꼴값스러운 연기를 하게 되는 순간이 있는 거죠. 오버하는 거죠, 말 그대로. 남들이 크게 공감하지 못하는데 혼자 감정이 충만해서, 비슷한 환경을 제공한 영화에서 제가 가져갔던 실수들, 충분히 정제되지 않았던 모습들을 상상하면서 (반복하지 않도록) 경계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증량하기 위해 치킨을 많이 드셨다고 했는데, 그 외에도 마음 놓고 많이 먹은 것이 있다면?

고기, 지방류, 이런 것들. 아, 아이스크림. 저 아이스크림 진짜 좋아하거든요. 하루에 다섯 개씩 먹고. 진짜 칼로리 높은 거. 그런 건 편했죠.

하루에 다섯 끼도 먹어봤다고 하셨는데, 끼니마다 아이스크림을 먹은 셈이네요. 

전 식사 전에도 아이스크림을 먹어요.

출처: <소리도 없이>

영화에서 태인에게 양복은 하나의 상징처럼 그려져요. 유아인 본인에게 그런 상징적인 물건이 있을까요?

저는 물건에 의미를 두지 않거든요. 그러기엔 물건이 너무 많긴 하지만(웃음). 잘못된 버릇이긴 한데... 물건에 의미를 두거나 애지중지하거나 하는 편이 아닌데. 최근 생일날 아는 분이 물질을 줄 테니 뭐든 얘기해보라 하셨어요. 그래서 얘기했어요. 절대로 누구도 만들 수 없는, 세상에 본 적이 없는 물질을. 아직 받지 못했는데, 혹시 그게 제 손에 들어오면 말씀드릴게요(웃음). ​ 

<소리도 없이>를 보면서 윤리적으로 애매한 부분을 건드리는 게 재밌다고 느꼈어요.

윤리 자체가 애매한 부분이긴 하죠. 그걸 우리가 맹신을 하고 매 시대의 담론을 통해서 사회적인 윤리를 찾고, 구하고, 만들어가는 것이죠. 윤리는 영원불변의 보편적 진리라고 하기에 한계가 있는 건데, (<소리도 없이>는) ‘그것이 무엇인지’에서부터 시작해서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모습’까지 확장적으로 생각할 여지를 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역시 툭 던지니까 확 나오시네요. 영화를 봤을 때 그 지점들이 흥미로웠거든요. 

예전에 어떤 감독님께서 인물들이 불법적인 행위를 하는 장면을 보고 “그게 불법인 거지, 나쁜 건 아니잖아” 이런 말씀을 하신 기억이 나요. 법이든 윤리든 모든 것들이 보다 더 보편적으로, 모든 사람들을 위해 작동하는 것이다 생각해요. 아직 이뤄지지 않은 일이지만. 단순히 우리를 제한하고 제약을 주는 어떤 강령 같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인간 사회에서 보다 더 깊은, 다양한 층위에서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서 함께 만들어 가고 다듬어가면서 무엇이 더 나은 것일까를 (찾는 거죠). 영원히 가질 수 없는 것일 수도 있고(웃음). 멈춰있지 않은 시간성 안에 놓인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딜레마 같은 거라서. 그냥 그것들을 다루는 자연스럽고 지혜롭고 성숙한 태도 같은 걸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모두 다 가져가면 좋은 거잖아요. 모두 다 그것 때문에 죽네 사네 하니까.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촬영을) 했던 거 같아요. 이런 부분이 <소리도 없이> 전부라고 할 순 없지만 그런 것들을 지루하지 않게 영화적으로 풀어낼 수 있단 점에서 특별한 시간들을 보냈어요. 그리고 영화 그 자체로서 갖는 영화성보다 다른 관객들과 만나면서 이게 전해질 때, 기자님이 하신 일 같은 것을 통해서 영화 하나가 사회적인 맥락을 함께 구성할 때, (이런 부분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잘 해주셔야 되는 거죠(웃음).

출처: (사진 제공=UAA)

예전에 GV하는 걸 들었는데, 배우님의 이런 부분들이 좋았어요. 필사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구체화시켜서 전달하려는 것들요.

이런 걸 간결하게 얘기할 수 있을 만큼 제가 고급스러운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구구절절해지는 측면도 있고.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다는 건 귀중한 시간이고 기회인 거잖아요. 그만큼 위험하기도 하지만. 이왕이면 더 잘해보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고르는 캐릭터라든가 작품의 성향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동시대에 살고 있는 배우라는 걸 느껴요. 작품을 고를 때 특별히 보는 부분이 있을까요? 

그렇게 얘기하셨으니까, 동시대성?(웃음) 우리가 감독의 세계관, 작품의 세계관이나 시대적인 감각, 시대정신 같은 걸 백날 얘기해도 (그걸 보는) 한 개인의 편협한 자기 세계에 대한 이야기일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세계를 만들어내 체험을 제공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만들어내는 현상들을 수렴하면서 의도에 어긋나지 않게 영화라는 총체적인 쇼를 컨트롤할 것인가 그런 과제들이 있는 것 같아요. 이왕이면 큰 작품보다 큰일을 해낼 수 있는, 소리가 작더라도 멀리 퍼져나가지 않더라도, 우당탕탕 시끄러운 소리만 내는 영화가 아니고 이왕이면 좀 더 큰 묵직한 소리를 낼 수 있는 영화들을 찾아가는 거 같아요. 사실 희망은 그거밖에 없어요. 저들(태인과 창복)이 범죄조직의 하수인을 하고 있지만 우리도 이런 세상의 하수인일 수 있는 거잖아요. 우리가 대단히 선량하고 도덕적인 일을 한다,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마피아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은 역학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는 일개 하수인, 청소부일 수도 있는 거죠. 그런 것들이 무섭지만 그나마 희망을 조금이라도 그려내기 위해서, 이 마피아적인 폭력을 해체하는 데 조금이나마 일조할 수 있을까 하는 부분에서 (이런 작품들을) 해보는 거죠.

실제로 <소리도 없이>를 보면서 그런 지점이 좋았어요. 이들의 생활이 너무나 일상적이라서 실제 직장인 같아 보이거든요. 

모든 일에는 이면이 있으니까요. 스스로 아무리 멋있고 대단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자부하는 것도, 그것의 파장이 번져나가다 보면 이면엔 그것이 만들 수 있는 부정적인 영향이 존재할 수 있는 거니까. 옳다 그르다를 떠나서 모든 일들의 이중성을, 복합성을 생각해본다면 타인을, 세상을, 자신을 다루는 태도 같은 것들이 조금씩 달라지지 않을까...

출처: (사진 제공=UAA)

배우가 아닌 엄홍식(유아인의 본명)을 생각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다른 일을 했다면 뭘 하고 있을까요?

농사. 세상에 개입해서 큰일들을 하고 파장이 있는 일을 하고 자존감을 느끼고 하는 것들도 좋지만 쓱 빠져서 내 삼시 세끼 밥, 내가 먹으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인생이 훨씬 더 숭고한 것일 수도 있겠다 싶어서. 사실 그렇게 못 살았으니까. 십 대 때부터 일을 해서 사회에서 뭔가를 이루려고, 내가 알지 못하는 의미나 가치 같은 것들을 찾고 구하려고 노력하면서 살다 보니까 외려 나라는 하나의 인간의 명함은 만들었지만, 내 삶을 다루는 내 태도는 음, 구리다? 이런 생각이 들 때가 많으니까. 어떤 분이 그런 얘기를 하셨거든요. 자기가 먹은 걸 자기가 치우고, 자기가 해먹을 것 자기가 해먹고, 자기 잠자리 치우고 일어나면 그냥 그게 성스러운 일이고 시간이다. 그냥 그런 게 도를 닦는 시간이다 하시던 분이 계셨는데 나이가 들수록 그런 생각이 많이 드는 거 같아요. 성스러운 게 또 완전히 다른 건 아니지만.

최근에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나 책이 있을까요? 

어제 서점 가서 배수아 작가의 소설을 샀는데 빨리 읽고 싶어요. 백 년 만에 서점에 가서 책이란 걸 샀거든요(웃음).

마지막으로 <소리도 없이>를 기다리는 관객분들께 인사 부탁드려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분들이 기대하고 기다려주신 거 같아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제목은 <소리도 없이>지만 여러분들 시간에 그동안 없었던, 많이 상기하지 못했던 소리들을 끄집어낼 수 있는 영화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시간들에 임하고 있는 것 같아요. 여러분들의 영화니까, 여러분들의 방식으로 이 영화에 함께 해주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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