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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인터뷰] <다시 만난 날들> 홍이삭, 주연 배우가 음악 감독까지 겸한 이유

씨네플레이 인턴기자 유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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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겐 익숙하지만, 누군가에겐 처음 들어보는 이름일 수도 있겠다. 홍이삭. 이름 세 글자만으로도 어딘지 모르게 평범치 않은 기운을 풍기는, 그는 싱어송라이터다. 최근에는 '네가 없는 하루'라는 싱글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싱어송라이터가 씨네플레이엔 무슨 일인가 싶을 수 있겠다. 영화의 OST를 불렀나? 영화의 음악 감독인가? 두 가지 모두 정답이다. 그리고 한 가지의 이유를 덧붙여야 한다. 홍이삭이 장편 영화의 '주연 배우’로 관객들을 찾았기 때문이다. 바로 영화 <다시 만난 날들>이다. 홍이삭은 음악 영화 <다시 만난 날들>의 주연 배우이자 음악 감독으로 처음 관객들을 만나게 됐다.

만약 홍이삭이란 이름이 낯설게 느껴진다면, 그건 어쩌면 당연한 걸 수도 있겠다. 이제 막 흙을 뚫고 올라온 홍이삭은 대중의 앞으로 힘차게 발돋움을 하고 있는 중이다. 홍이삭은 2013년 제24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자작곡 '봄아'로 동상을 받으며 데뷔했다. 이후 '하나님의 세계'라는 CCM을 발표하며 주목을 받은 그는 2019년 <슈퍼밴드>를 통해 두터운 팬층을 형성했고, 버클리 음악대학 출신(현재는 휴학중)이라는 점에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출처<다시 만난 날들> 홍이삭

출처<다시 만난 날들> 장하은, 홍이삭

화려한 이력이 감싸고 있는 듯한 홍이삭에게도 혼란과 방황의 20대 시절이 있었다. 불안한 음악 세계로 인생의 방향키를 틀기까진 현실이 녹록지 않았다. 개봉을 앞둔 <다시 만난 날들> 역시 서툴렀지만, 가슴 깊이 음악을 갈망했던 태일(홍이삭)의 꿈과 현실을 그리고 있다. 홍이삭의 목소리로부터 영감을 받았다는 심찬양 감독은 홍이삭을 주연 배우로 캐스팅, 음악 감독 역할까지 쥐여주며 오롯이 홍이삭의 정서를 영화에 녹여냈다. 그럴듯한 말 대신 한 문장, 한 문장에 진심을 내비치고 매 순간 눈을 맞추며 솔직한 답변을 전한, 영화배우로서의 첫 인터뷰를 진행한 홍이삭과의 대화를 전한다.



- <다시 만난 날들>의 주연 배우이자 음악 감독으로 참여하게 됐다. 개봉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기분이 어떤가.

= 솔직히 좀 도망치고 싶다. (웃음) 영화의 시나리오 작업 초창기부터 계속 영화에 붙어 있었기 때문에 긴 마라톤이 끝난 거에 대해선 속이 시원하기도 하다. 현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배우 계약서와 음악 감독 계약서를 둘 다 가지고 있다. (웃음) 영화 제작 환경에서 배우 입장으로서의 영화와 음악 감독으로서 입장을 둘 다 경험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이제 (음악) 작업이 끝난다는 후련함과 제 얼굴이 스크린에 나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교차한다. 아쉬운 마음도 있다 보니 도망가고 싶은 기분이 드는 것 같다.

- 코로나19로 인해서 음악 무대에 서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코로나 블루에 지친 마음이 들지는 않나.

= 사실 우울함은 없는 편이다. 오히려 의도치 않게 쉬는 타임이 된 것 같다. 영화 작업이 없었다면 좀 우울했을 것 같다. 지금 (영화) 후반 작업을 열심히 해야 하는데 오히려 공연이 취소되니까 영화 쪽으로 시간을 쓸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됐다.

- 최근에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영화 크레딧 정리 화면을 보여주며) ‘끝이 안 나, 너무 행복해’라고 올린 걸 보고 마감의 고통이 느껴졌다.

(웃음) 영화 음악을 위한 후반 작업은 거의 끝났는데, OST 작업을 하고 있었다. 영화가 개봉 직전까지는 수정이 있다 보니 끝나지 않는 작업들이 있더라.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개막작으로 초청됐다. 당시 씨네콘서트에서, '앞으로는 음악 감독 제의가 들어오면 신중하게 생각해 볼 거다'라고 말한 부분에서 고단했던 감정이 느껴졌다. 한 영화의 음악 감독으로서 어떤 부분이 제일 괴롭고 힘들었나.

= ‘홍이삭’이라는 싱어송라이터의 음악을 했을 때는 고려해야 할 게 그렇게 많지 않았다. 얼마나 내가 나 다울 수 있는지, 얼마나 나를 표현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팬들을 위해 더 좋은 음악을 할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면 영화 음악은 그런 점이 필요가 없었다. 음,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는 말을 쓰지 않느냐. 최종 결정권자는 감독님이다 보니 클라이언트를 맞춰 줘야 하는 입장이 됐고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부분들이 생겼다. 또 이번 작업이 더 어려웠던 이유는 <다시 만난 날들> 속 안에 내가 만든 음악이 대부분이기도 했고 내 정서들도 굉장히 많이 들어가 있다. 그래서 객관적이기가 어려웠다. ‘내가 느끼기에는 이게 더 좋은데’라는 생각이 들 때, 감독님을 따라가는 게 맞기 때문에(웃음) 주관적인 균형을 맞춰가는 과정이 어려웠다.

- 감독님이랑 자연스레 다툼이 생겼을 것 같다.

= 지금은 인사도 안 한다(농담). (일동 웃음)

- 사실 ‘홍 감독’의 이야기보다는 ‘홍 배우’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 과정이 더욱 궁금했다. 어떻게 장편 영화의 주연 배우로 출연을 결심하게 됐나. 혹시 우려의 목소리는 없었나.

= 주위에 반대하는 사람이 80% 정도 있었다. (웃음) 해보라고 하는 사람은 한 2명? (일동 웃음)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원스> 같은 영화를 만들어 보자는 마음이 컸다. 가수가 아닌 사람이 더빙이나 포장을 통해서 음악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아니라 정말 음악을 하는 사람이 직접 음악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사실 이런 맥락으로 감독님한테 설득을 당했다. (웃음) 심 감독님을 믿었다.

- 연기를 한다고 했을 때 음악 하는 친구들의 반응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 굉장히 반응이 양극이었다. 약간의 어이없음도 있었고, <슈퍼밴드>를 함께 했던 친구들은 긍정적으로 바라봐줬다. 한편에선 ‘네가 지금 음악을 할 때지 연기를 할 때냐’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친구들은 뮤지션으로서 자신의 음악이 들어간 영화에 출연하는 건 꿈 같은 일이지 않냐고 하더라. 중간이 없었다. (웃음)

-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연기 수업을 따로 받았나.

= 아니다. 나는 살면서 멋모르고, 에라 모르겠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충동적이다. (웃음) 그 지점에서 연기도 약간의 충동성과 도전 의식이 섞여 있었다. 또 심찬양 감독님의 전 장편 영화가 <어둔 밤>, 페이크 다큐멘터리다. 그러다 보니 감독님이 배우 경력이 없는 사람들을 어떻게 컨트롤해야 할지 이해도가 있다는 걸 알았기에 감독님을 믿었다. 무엇보다도 크랭크인 한 달 전에 캐스팅이 결정됐다. 오히려 연기에 대한 이해나 개념이 없는 상황이어서 뭔가를 배우면 더 문제가 될 수도 있으니(웃음) 그냥 연기를 배우지 않기로 했다.

- 그럼에도 감독님이 원하는 태일의 방향성이 분명하게 있었을 것 같은데. 연기적으로 어떤 디렉팅을 줬는지 궁금하다.

= 사전 디렉팅은 많지 않았다. 사.전.에.는. (웃음) 아 제가 너무 할 말이 많은데! 촬영하면서 계속 감독님께 ‘이래도 되냐, 저래도 괜찮냐’고 물어봤다. 감독님은 계속 괜찮다곤 하더라. (웃음) 대신 대본 수정을 많이 했다(웃음). 태일이라는 캐릭터에 저의 성격이나 말투, 대화법을 적용시켜 캐릭터를 최대한 자연스럽게 만들어 갔다.

- 심찬양 감독이랑은 대학교 선후배 사이로 잘 알려져 있다. 영화 제작도 대학 당시부터 생각했다고 들었다. 특히 심찬양 감독이 말한 ‘버스 에피소드’가 인상적이다. 12년 전, 버스를 타고 가던 심찬양 감독에게 직접 작곡한 노래를 들려줬고, 홍이삭의 목소리를 들은 심찬양 감독이 그 순간 <다시 만난 날들>의 영화 제작을 떠올렸다고 하던데. 정말 그날이 영화의 시작이 맞는지 궁금하다. 어떤 노래인가.

= 영화에 삽입된 ‘knowing you’라는 노래다. 근데 사실 감독님이 생색을 많이 낸다. (웃음) 포장을 잘하는 편이다. 사실대로 이야기하자면 ‘knowing you’는 심 감독님이 단편 영화의 OST를 한 곡 만들어 달라고 해서 제작한 노래다. (영화의 시작이라기보다는) 이 노래가 감독님과 콜라보의 시작이 됐다. 그 노래에 맞춰서 심 감독님은 뮤지컬도 만들었다. 시간이 흘러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화까지 만들게 된 거다.

- <어둔 밤>처럼 실제로도 감독님이 독특할 것 같다.

= 네 남다르죠.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 같아 보인다고 되묻자) 부끄러운 척을 많이 하시는데 다 컨셉이다(농담). (일동웃음)


-‘디스토리어’ 친구들도 그렇고, 장하은 배우도 그렇고 모든 배우들이 연기가 처음이다 보니 현장에서 어색하거나 낯선 부분들이 많았을 것 같다. 촬영 현장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 모든 게 낯설었다. 특히 개인적으론 음악 감독과 배우를 겸했기 때문에 현장에서 여러 계산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음악 영화다 보니) 사운드를 더빙으로 진행할지, 현장 사운드로 녹음해서 진행할지 등 여러 가지로 멀티 태스킹을 해야 했다.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은 현장이었다.

- 현장에서 ‘디스토리어’ 친구들과 함께하면서 옛날 생각도 많이 났을 것 같다.

= 안 날 수가 없었다.

- 유년 시절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바르게 자라왔다고 여러 차례 이야기하던데 정말 그랬나.

= 교회 안에서 자랐고, 부모님은 모두 초등학교 선생님이다. 누나랑 매형도 선생님이고, (웃음) 교사 집안이다. 그래서 바르게 자라왔다(웃음). 유년 시절은 파푸아뉴기니에서 보냈다. 그때부터 악기를 다뤘는데 색소폰을 배우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가장 재밌었던 기억도 친구 집에 모여서 같이 색소폰, 밴드 연습을 하는 거였다. 화음의 일부가 되는 즐거움이 컸다. 사실 음악을 계속하게 된 이유 역시 그 지점에 있다. 함께 하는 순간이 좋아서. 또… 파푸아뉴기니에선 자연과도 친하게 지냈다. 솔방울 던지고, 산 타고, 노을 보고… 자연주의 유년 시절을 보냈다. (웃음)

- 일탈을 해본 적은 없나. (웃음)

= 그러면서 컸어야 했는데... (웃음) 아니 가출을 한 적이 있는데, 집 뒤에 10m 떨어진 나무집으로 갔다. 그게 인생에서 제일 멀리 떠난 가출이었다. 부모님한테 ‘자녀 교육 어떻게 시켰냐’는 말을 듣게 하고 싶지 않아서 스스로 틀을 만든 것 같다.

-사춘기도 없었겠다.

= 그래서 지금 좀 방황을 하고 있다. (웃음)

- 교회 오빠라는 타이틀도 가지고 있는데, 대중들이 바라보는 교회 오빠라는 이미지가 답답하게 느껴질 것 같다.

= 그런 이미지를 부정할 순 없다. 사실 제가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음악이라기보다는 학습이다. 배우는 것에 대한 즐거움이 있다. 그러다 보니까 어릴 때부터 교회에서 학습을 잘하면서 자라왔고, 자연스럽게 엇나가는 게 어색하게 됐다. 반항하기보다는 순종하고 헌신하는 게 익숙해졌다. 하지만 커가면서 그런 점들이 만약 긍정적이지는 않다는 걸 알게 됐고 답답함이 생겼다. 창의적으로 무언가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태도에 제한이 생기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틀에서 빠져나가지 못해서 답답한 건 사실이다. 엇나가지는 못하지만 (음악적으론) 분출을 해야 되니까. 그러다 보니 생각이 많아진다. 잡생각도 많고. 결국에 내가 있는 위치에서 안정감이 생기지 않는 한 그런 생각이 많을 것 같다.

- 생각이 많으면 스트레스도 많겠다. 따로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 있나.

= 피아노 연습이다. (웃음)

- 음악 외에는?

= 그게 좀 문제다. (음악 외에) 스트레스 푸는 걸 찾고 싶다. 그걸 찾지를 못했다.

-만약 음악을 안 했다면 어떤 일을 했을 것 같나.

= (부모님을 따라) 선생님을 했을 것 같다. (웃음)

- 그러고 보니 버클리 음악대학에 입학하기 전에 다녔던 한동대학교에선 음악 전공이 아니더라.

= 사실 한동대학교는 무전공으로 입학을 했다. 입학을 하고 나서 과를 선택했다. 지금 선택한 과(언론정보학과)가 상대적으로 공부를 안 하는 것 같았다. (웃음) 그러다 보니 다른 걸 많이 할 수 있겠다 싶어서 선택한 과다. 뭔가 느낌상 언론정보학과는 자유로운 느낌이 있었다. 영화 보고, 광고 보고, 뉴스 보고 창의적인 걸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언론정보학과에 친한 형이 공부를 안 했다. (웃음) 그래서 자연스레 과를 선택하게 됐고 동아리를 한 5개 정도 들었다. 총학생회, 학생회, 봉사활동, 농구팀 등등에 참여하면서 작사 작곡도 했다.

- 극 중에서 지원(장하은)은 ‘디스토리어’ 친구들에게 기타 선생님 그 이상으로 많은 것들을 가르쳐준다. 지원 같은 음악 선생님이 홍이삭에게도 있었나.

= 지원 같은 선생님은 없었다. 혼자서 음악을 많이 했다. 그래도 나를 지지해주는 선생님은 있었다. 고등학교 음악 선생님이다. 아, 그 학교의 교장 선생님이 저희 아버지였다. 그래서 엇나가기가 힘들었…. (웃음) 당시 고등학교 음악 선생님이 굉장히 자유로운 분이었는데 감사하게도 부모님께 ‘얘는 음악을 해야 돼요’라고 말해주셨다. 어떻게 보면 나에게 첫 지지자이자 서포터가 되어 주셨다.

- <다시 만난 날들>은 홍이삭에 의해서, 홍이삭을 위해서 만들어진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니 ‘태일’이란 인물이 캐릭터라기보다는 홍이삭 그 자체로 느껴졌다. 태일을 봤을 때 어떤 점이 자신과 가장 비슷하고 다른 것 같은가.

= 비슷한 점은 태일처럼 약간 비관적인 편이다. (웃음) Sarcastic 하달까. 그런 성격이 태일의 토대가 된 것 같다. 태일처럼 비판적인 것도 있고 현실에 대해서 긍정적이기보다는 중립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다른 점이라면 태일은 모든 상황에서 차분하고 조용한 캐릭터다. 실제 성격은 생각보다 밝고 대화를 밝게 하는 편이다.

- MBTI가 'E'로 시작하나.

= 네. 근데 (웃음) 왔다 갔다 한다. 반반이다. 때에 따라서 'I'가 나올 때도 있고, 'E'가 나올 때도 있다. 마지막으로 검사했을 때 ENTP(발명가형)나왔다.

- 친구들을 만나면 굉장히 활발해지겠다.

= 꼭 또 그렇지만은 않다. (웃음)

- 아...? (웃음)

= 제가 되게 어려운 성격이다. (웃음) 성격이 그렇게 좋진 않다(농담). 첫인상은 엄청 좋다. 첫인상은 그런데…. 알면 알수록 (점수가) 깎일 때가 있다. (웃음)

- 영화 속에서 태일은 현실과 꿈(음악) 사이에서 고민하며 방황한다. 홍이삭에게도 꿈을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있나.

= 사실 이번에 영화음악 작업을 마무리하면서 음악을 잠깐 쉬고 싶다고 생각했다. (웃음) 프리 프로덕션부터 함께 하고, 음악 감독과 배우를 동시에 맡아 촬영을 진행하고, 음악 후반 작업에 이젠 홍보까지 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 지치는 순간이 오더라. 그래서 잠깐 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살면서 음악을 그만하고 싶은 순간이 없었는데…. 1년 정도 이곳을 벗어나 다른 지역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제도 전세 대출을 알아보면서 양평과 강릉의 집들을 알아봤다. (웃음) 서울을 벗어나니 좋은 집들이 많더라.

- 지금은 음악적으로 방황의 시기를 겪고 있는 것 같다. 아티스트로서 대중이 원하는 것과 내가 잘하는 것 사이에서 늘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왔는데.

= 내가 좋아하는 건 대중이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편견이 어릴 때부터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음악을 쓰면 ‘매니악’하다는 단어들을 주변에서 꺼내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아, 내가 좋아하는 음악들은 편협된 음악이구나’라는 생각이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그런 고민들로 인해서 아티스트로서, 예술가로서 온전한 집중은 잠시 내려놓기 시작했다. 여전히 대중성에 대한 물음표를 스스로 던지면서 길을 찾아가고 있다. 물론 가끔은 외로움도 생기는 것 같다. 내가 정말로 눈치 안 보고 할 수 있는 음악에 대한 증명을 못 한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실 우리가 항상 잘 차려진 음식만 먹고 싶은 건 아니지 않나. 라면도 먹고, 떡볶이도 먹고, 가끔은 비싼 레스토랑에 가고 싶을 때도 있다. 이러한 다양성에 대한 지점들은 자기 음악을 하는 모든 아티스트들이 가진 똑같은 갈등일 거다. 자기의 예술의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이 가진 공통적인 딜레마인 것 같다.

- 음악을 만들 때 주로 어디서 영감을 주로 얻나. 홍이삭의 영감 창고가 궁금하다.

= 때마다 다르긴 하지만 스스로한테는 영감을 잘 못 받는 편이다. 그게 내가 가진 숙제이기도 한데 내 이야기를 잘 꺼내지 못하는 편이다. 그래서 주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재미있어하는 편이다. 또 자연에서도 감정적인 영감을 얻는다. 자연이 참 재미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매일 바라봐도 하늘은 같은 하늘이 없고, 구름도 같은 구름이 없다. 대부분 자연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많은 영감을 얻는다.

- 영감을 얻기 위해 영화도 자주 보는 편인지.

= 영화 좋아한다. 음악 인생에 있어서 영감을 받은 영화는 <프랭크>다. 주인공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해준 영화다. 또, <머니볼>도 기억에 남는다. 브래드 피트가 영화 속에서 보여준 꾸준함과 욕심을 보면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 그러고 보니 주로 영화 속 인물이 가진 삶의 태도를 통해서 영감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 홍이삭의 '인생 영화'도 궁금한데.

= 나의 인생을 바꾼 영화는 <물랑 루즈>다. 중학교 때 처음 봤는데 아직까지도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물랑 루즈>에서 맥 그리거 아저씨가 극을 쓰기 시작하면서 노래를 시작한다. (직접 노래를 흥얼거리며 불러주었다). 그 멜로디와 그 순간이 너무 멋있었다. <물랑 루즈>에 나오는 노래들이 그 시대의 분위기와는 굉장히 다른 부분들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아 음악이 이렇게 다양할 수 있구나’라는 걸 처음 느꼈었다. 또 배우들의 연기와 음악이 뒤섞이는 걸 보며 음악을 통해 (배우들의) 감정 폭이 확장돼 표출될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됐다. 유년 시절 인생 영화가 <물랑 루즈>라면 곡을 쓰고 나서 도움이 됐던 영화는 <원스>다. 노래를 어떻게 써야 할지 알려준 영화다.

- 지금까지 홍이삭이 걸어온 인생을 곱씹어보면 의외의 선택이랄까, 자신만의 고집과 주장을 또렷하게 펼치는 행보를 이어왔다는 생각이 든다. 갑작스레 버클리 음악대학으로 진학을 결정하고, <슈퍼밴드>에선 거의 유일하게 자작곡으로만 무대를 채우고, 이번엔 과감하게 배우에 도전하고… 홍이삭의 인생에서 선택의 기준이 궁금하다. 선택의 원동력이랄까?

= 기준은 있는 것 같지만 생각해 보니 다 충동적인 선택들이 많았던 것 같다. 버클리에 진학하게 된 건 '이대로 살면 안 되겠다' 싶어서 우연히 지원했는데 어쩌다 보니 합격을 해서 입학을 하게 됐다. (웃음) 또, <슈퍼밴드>에선 곡을 쓰는 거에 있어서 나의 자존심도 있었고, 내가 쓰는 노래를 잘 부르게 되면 노래도 잘 부르고 곡도 잘 쓰는 면을 둘 다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자작곡으로 무대를 꾸미게 됐다. <슈퍼밴드> 하면서는 매번 안전한 선택은 피해서 결정을 내린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내가 지금까지 한 선택의 과정을 보면 '안전하다 싶은 선택을 하지 않는 것'이 선택의 기준이 된 것 같다. 안전한 선택 안에서는 그 이상을 갈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내가 한 층 더 성장하고 확장되기 위해서는 불안한 선택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 30대가 지나기 전에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나.

= (1분 정도 깊게 고민하며) 지금 질문을 받아서 방금 생각을 떠올린 건데, 전 세계 투어를 한번 해보고 싶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라디오 헤드를 좋아해서 영상을 많이 찾아봤었는데 보컬과 기타, 두 분이 펍에서 공연하는 걸 본 적이 있다. 한두 시간짜리 공연이었던 것 같다. 그런 투어를 한번 해보고 싶다.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되고 싶은 건 아니지만 제 음악이 좀 더 좋아져서 널리 알려질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크지 않은 공연장에서라도 여러 세계와 지역을 쭉 한 번 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 <다시 만난 날들>은 청춘의 습작을 위로해주는 영화다. 지금도 꿈과 현실 사이에서 답답한 방황을 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따뜻한 한마디를 해준다면.

= 뿌리를 잘 지켰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슈퍼밴드>를 하고 나서 스스로가 굉장히 헷갈리는 순간들이 많았었다. 나는 나대로 하면 된다고 하는 반응과 동시에 대중이 좋아하는 음악을 해야 된다는 얘기를 들으니까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근데 그러다 보니 이도 저도 아니게 되더라. 사람은 살아왔던 방식이 있어서 변화가 쉽지 않다. 그럴 때 일수록 내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뿌리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결국 나를 만드는 건 나를 키워준 환경, 키워준 사람, 나와 만났던 사람들이다. 아무리 내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뿌리에 대해서 부정을 할 수는 없더라. 그렇게 나의 근본적인 뿌리를 깊이 바라보고 내 존재를 인정하고 나니까 내가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지 보이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전에 내가 나한테 잘 보이는 법을 알아야 한다. 그걸 고민하다 보면 최소한 나를 향한 태도가 정해지고 심적인 안정이 찾아오더라. 실은 뭘 하던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싫어하기 마련이다. 스스로의 뿌리를 인정하고 나의 청춘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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