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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 나인 나인>의 진정 '도른자', 지나 리네티 직장인 롤모델 모먼트

조회수 2020. 9. 15.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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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인턴기자 이지연
<브루클린 나인 나인>

지금 방영 중인 미드 시트콤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있는 <브루클린 나인 나인>. 하마터면 시즌 5를 끝으로 시리즈를 다시는 볼 수 없을 뻔했다. 지난 2018년 5월 폭스가 제작 취소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당시 갑작스런 중단 소식에 많은 팬들이 아쉬움을 드러내며 '#RenewB99' 해시태그로 구명운동을 벌였다. 루크 스카이워커를 연기한 마크 해밀,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메리 포핀스 리턴즈>의 린마누엘 미란다, 세스 마이어스, 숀 애스틴도 그중 한 명이었다. 마크 해밀은 트위터에 “안 돼!! 99과 작별 인사를 할 준비가 전혀 안 됐어”(Oh NOOOO!!!! I'm SO not ready to say #ByeBye99)라며 격한 아쉬움을 표했고, 델 토로 감독은 “<브루클린 나인 나인>은 너무나도 인간적인 캐릭터들을 보여줬다”(Brooklyn Nine-Nine has given us fully human characters, beautiful, powerful, flawed, vulnerable, majestic...)며 “이 시리즈는 어떻게서든 돌아와야 하고, 돌아올 것”이라고 하기도 했다.

폭스가 시리즈의 취소를 알린 지 30시간 만에 NBC에서 시리즈 제작을 이어갈 것이라고 발표했을 때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모른다. 앞서 언급한 셀러브리티들도 이 소식에 한껏 기뻤는지 스스로를 ‘가디언즈 오브 나인나인’이라 부르며 축하를 표했다. <브루클린 나인 나인>이 아니었다면 이들을 한 그림에서 보게 될 것이라고 상상은 했겠는가. 어쨌든. 그렇게 시즌 6, 7까지 방영을 마치고, 지난해 11월 시즌 8의 제작을 확정했다.

그런데 지난 8월 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NBC가 9월 중으로 예정했던 시즌 8 공개를 2021년으로 미뤘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코로나19 때문이다. 뭐, 공개가 몇 개월 미뤄진 것뿐 폭스 때처럼 시리즈가 아예 사라진다는 건 아니니 청천벽력이랄 것도 없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시즌 7 마지막 에피소드를 다 본 그 순간부터 시즌 8의 첫 에피소드가 공개되기를 손꼽아 기다리던 팬들로서는 아주 섭섭했을 것이다.


<브루클린 나인 나인>의 캐릭터들은 단지 웃기기만 하지 않다. 자아 성장이라는 영원한 난제의 답을 찾지 못한 제이크(앤디 샘버그)부터 큰 몸에 그렇지 못한 감수성을 가진 테리(테리 크루즈)까지 모든 캐릭터가 독특한 성격을 가졌고, 그것이 꽤 선명하다는 것은 이 시리즈의 최대 장점 중 하나이다. 주연 캐릭터뿐만 아니라 조연・카메오 캐릭터까지 그렇다. 프로듀서 마이클 슈어와 <오피스>에서 부터 함께한 크레이그 로빈슨이 연기한 더그 주디, <팍스 앤 레크리에이션>, <굿 플레이스>에서도 함께한 마크 에반 잭슨이 연기한 케빈은 등장했다 하면 에피소드를 ‘하드캐리’하곤 한다. 매력적인 캐릭터가 시리즈에 다수 포진해 있지만 누가 뭐래도 이들 가운데 가장 ‘도른자’는 지나 리네티(첼시 퍼레티)다. 시즌 8 방영 연기의 아쉬움은 잠시 뒤로하고, 저 혼자 판타지 소설 격정도 되는 ‘지나 세계관’에 사는 그의 직장인 롤모델 모먼트가 돋보이는 에피소드를 모아봤다.

인생은 지나처럼.gif

휴대폰에 진심, 일은 뒷전|시즌 2 에피소드 22

지나는 브루클린 99 지역구 관할 서장 레이먼드 홀트(안드레 브라우퍼)의 직속 비서로, 경찰이 아니다. 비서라고는 하는데 그가 어떤 비서 업무를 보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보이는 바로는 휴대폰을 쥐고 무언가를 끊임없이 하는 것이 그의 주업무(?) 인듯하다. 그래서인지 휴대폰과 관련된 지나 에피소드가 많은데. 지나가 두 시간 연속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않자, 99 나머지 멤버들은 휴대폰 밖으로 지나의 관심을 끌어내는 첫 번째 사람이 이기는 내기를 시작한다. 두 시간 동안 휴대폰만 보고 있는데, 쉬는 시간이냐고? 전혀 그렇지 않다. 근무시간에 무얼 할지는 지나 스스로 정한다. 그리고 그 일들은 보통 근무라는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을 법한 것들이다. 제이크가 앞에서 노래를 틀어도, 에이미(멜리사 푸메로)가 조지 W. 부시가 죽었다는 가짜 빅뉴스를 전해도, 로사(스테파니 비트리즈)가 굉음을 내는 확성기를 귀 옆에 갖다 대도 지나는 관심을 줄 생각이 없다. 그를 휴대폰에서 눈 떼게 한 첫 번째 사람은 테리였다. 테리가 페이스북 연애/결혼 상태를 바꾸자 이에 즉각 반응한 것이다. 그렇다. 지나가 근무시간 내내 보고 있던 것은 소셜 미디어였다. 지나는 알아주는 소셜 미디어 헤비 유저다.


컵케이크 매치 시즌 1|에피소드 19

딴짓하다가도 직속 상사 앞에서는 일하는 시늉이라도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나는 예사 직장인이 아니다. 카카오톡 대화창에 엑셀 테마를 적용하다거나, 괜히 의미 없는 키보드 플레이를 한다거나 괜한 마우스 클릭을 하는 식의 수고가 지나에게는 필요 없다. 딴짓은 그저 대놓고 하면 되니까. 홀트가 바로 옆에 와서 불러도 지나는 ‘크웨이지 컵케이크’ 게임을 하느라 바쁘다. 누가 봐도 빈정대는 투로 “이 게임 하는 게 일하는 것보다 재미있냐”고 묻는 서장에 “네, 훨씬 재미있죠”라고 대답해버리는 비서, 현실 세계에서 가당키나 한가. 공사 구분 뚜렷한 홀트마저 게임 중독에 빠트려버리는 지나 매직. 숨어서 몰래 게임을 하다가 들킨 것이 수치스러웠던 홀트는 급기야 중독 증세를 인정하고 지나에게 조언을 구하기까지 한다.


(웃는 얼굴로) 유감없어 네가 싫어 농담 아냐|시즌 1 에피소드 3

지나가 남긴 ‘띵언’은 한두 문장이 아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유감 없어. 네가 싫어. 농담 아냐. 안녕.”(No hard feelings, but I hate you. Not joking. Bye.) 에이미가 지나를 섭섭게 한 상황이기는 했지만, 직장 동료 면전에 대고 이런 말을 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장난 치는 경우가 아니라면 지나의 언행은 100% 진심에서 나오는 것이다. 상황이나 맥락은 가뿐히 무시해버린다. 팬들은 자기중심적 혹은 열정 결핍으로 표현되는 지나의 성격에 대리만족을 느끼고, 그가 또 어떤 멋들어진 예측 불허의 문장을 내뱉을지 기대하며 한회 한회 도장 깨기를 했겠다.


타이어 교체는 에이미에게 맡기자|시즌 4 에피소드 19

꼭 직장인 롤모델 모먼트로만 특정할 수는 없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에피소드. 에이미의 성격은 경쟁심, 학구열, 성취욕,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정도로 요약된다. 타이어에 구멍이 나 견인차를 부르겠다는 지나에게 스스로 타이어를 교체하는 법을 가르쳐주겠다고 나서는 에이미. 썩 내키지는 않지만 에이미가 지나에게 밥을 사주는 조건으로 지나는 이를 허락 한다. 뭔가 바뀌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누가 봐도 여기서 아쉬운 쪽은 못 가르쳐줘서 안달 난 에이미 쪽이다. 에이미가 시범 삼아 지나 차의 타이어를 교체하는 동안 지나는 원숭이 털빗기는 유튜브 영상에만 시선을 고정할 뿐. 처음부터 타이어 교체법을 배우는 것에는 관심도 없었다. 수리비도 굳고 점심도 얻어먹고, 지나에게는 이득이다. 절대 잘한 일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이런 마인드가 필요할 때가 있으리니.


지나 모먼트(GM)|시즌 6 에피소드 4

아쉽지만 많은 이들의 최애 캐릭터 지나는 시즌 6를 마지막으로 <브루클린 나인 나인>을 떠났다. 기업가로서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서를 떠나기 전, 지나는 99 멤버 한 명 한 명에게 퍼스널 지나 모먼트(일명 GM, Gina Moment)를 선사했다. 셀럽, 파티라면 사족을 못 쓰던 제이크에게 꼭 셀럽이 있어야만 이벤트가 특별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GM을, ‘감정적’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한참 먼 로사에게는 감동의 순간을 선사했다. 하지만 병맛계에서는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는 지나가 마지막 순간에 감동만을 남겼을 리 없다. 기이한 무언가를 하지 않았을 지나가 아니다. 지나 모먼트, 그 화룡점정은 지나 동상이었다. 퇴사하면서 본인을 그리워할 99 식구들을 위해 주문 제작 동상을 사무실에 남기고 간 지나, 퇴장하는 순간까지도 지나스럽다. 킬링 포인트는 동상 손에 쥐어진 지나의 상징, 휴대폰이다.


<브루클린 나인 나인>은 다양성을 고려한 캐스팅과 소수자를 진지하게 다루는 방식에 호평을 받았다. 사회적 이슈를 에피소드에 즉각적으로 반영하는 것도 이 시리즈의 큰 장점 중 하나인데, 최근 테리역의 테리 크루즈는 한 인터뷰에서 “작가가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 BLM) 이슈를 극에 반영하기 위해 이미 완성된 시즌 8 에피소드 4편의 대본을 버리고 재정비에 나섰다”고 밝힌 바 있다. 쇼의 공개가 미뤄진 것은 다소 아쉽지만 결국에는 보다 탄탄해진 에피소드와 함께 돌아올 새 시즌을 차분히 기다려보자. 그럼 <브루클린 나인 나인>의 색이 돋보이는 시즌 5 에피소드 16의 오프닝 취조실 장면과 함께 마무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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