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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 캐릭터는? 지난 30년간 황정민의 영화 속 캐릭터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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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민과 이정재가 다시 만나 화제를 모은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가 개봉 3주차에도 박스오피스 정상을 지키고 있다. 코로나19 시국에도 준수한 결과를 거둔 <반도>가 개봉 한달 차에 기록한 스코어를 불과 14일 만에 뛰어넘었다. <공작> 이후 2년 만에 내놓은 신작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로 연기력과 티켓 파워를 동시에 증명한 황정민이 지난 30년간 선보인 캐릭터들을 소개한다.


<장군의 아들>(1990)의 낙원회관 종업원


학부 1학년 때 출연한 황정민의 첫 영화. 임권택 감독이 오랜만에 작업한 액션영화 <장군의 아들>은 1989년 대규모 공개 오디션을 진행했고, 2000명에 달하는 지원자가 몰렸다. 서울예대 재학 중이었던 박상민이 주인공 김두한에 캐스팅 된 가운데, 동문인 황정민은 영화의 주요 공간인 낙원회관 종업원 역을 맡게 됐다. 굽실굽실 늘 풀죽은 자세로 한시도 바람잘날 없는 낙원회관의 사건들에 대처하느라 바쁜 캐릭터다.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의 강수


<쉬리>(1999)에서 단역을 맡은 걸 제외하곤 황정민은 10년간 연극/뮤지컬 무대에서 활동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그의 실질적인 영화 데뷔작이었다. 쇠락을 걷고 있는 밴드의 드러머인 강수는 순해 빠진 태도로 좋아하던 여자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키보디스트 정석(박원상)에게 빼앗겨 실의에 빠져 마약에 손을 댄다. 오디션에서 임순례 감독은 황정민의 옆모습을 보고 강수의 얼굴을 발견했다고. 잠시 드러머로 활동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황정민은 두 달 만에 드럼 연주를 연마해 촬영에 임했다.


<로드 무비>(2002)의 대식


<로드 무비>에선 동성애자를 연기해 화제를 모았다. 한때 유명한 산악인이었던 대식은 실패한 펀드 매니저 석원(정찬)을 사랑하고, 두 남자의 여정에 우연히 끼어든 여자 일주(서린)는 대식을 사랑한다. 황정민은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서 <로드 무비>의 대식이 가장 힘들었던 역할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성애자로서 동성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게 진정성이 부족하다고 여겨 스트레스가 상당했다고. 황정민은 대식 역으로 청룡영화상을 비롯한 여러 시상식에서 신인남우상을 받았다.


<바람난 가족>(2003)의 주영작


<바람난 가족>은 제목이 주지하듯 가족의 파탄을 그린다. 돈 안 되는 사건도 도맡아 하는 '비교적' 정의로운 변호사 주영작은 나이 어린 여자와 외도 중이다. 내연녀와의 여행 중에 어느 우체부의 아들을 뺑소니 해 원한을 사면서 가정은 파국에 이른다. 평소 황정민의 캐릭터와 달리, 줄곧 댄디한 차림새의 주영작은 '감정'이 없는 인간처럼 보인다. 배우 스스로도 무슨 일이 벌어져도 멀뚱멀뚱 서있는 연기를 지향했다.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파국에도 불구하고 아내 호정(문소리)에게 쏟아내는 분노가 보다 폭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달콤한 인생>(2005)의 백 사장


<YMCA 야구단>(2002) 이후 줄곧 주연으로 활약하던 황정민은 김지운 감독의 누아르 <달콤한 인생>에서 조연이자 악역을 맡았다. '특별출연'으로 이름을 올린 만큼 분량은 적지만, 찢긴 입고리의 백 사장이 남긴 인상은 선우(이병헌)이나 강 사장(김영철) 못지 않았다. 특히 텅빈 체육관에서 선우와 대치하는 신, 너스레를 떨다가 비열하게 선우를 수차례 찌르고 내뱉는 "인생은 고통이야~ 몰랐어?"는 <달콤한 인생> 최고 명대사 중 하나로 손꼽힌다. 엔딩곡 'A Honeyed Question'을 불러 출중한 노래 실력까지 뽐냈다.


<너는 내 운명>(2005)의 김석중


<너는 내 운명>은 마음 놓고 사랑에 푹 빠진 황정민의 얼굴을 만나는 첫 영화였다. 서른여섯 살의 농부 석중은 마을에 온 다방 종업원 은하(전도연)에게 첫눈에 반해, 많은 구애 끝에 그녀와 사랑을 이룬다. 하지만 위기, 그 다음에 더 큰 위기가 찾아오면서 둘은 헤어지게 된다. 체중 20kg 감량과 증량을 반복하는 차력적인 외모 변화는 물론, 순박한 얼굴로 사랑에 겨워하는 기쁨과 아무리 발버둥쳐도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 둘 수 없는 슬픔을 고스란히 끄집어냈다. 청룡영화상을 비롯 수많은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쓸어담았고, 영화만큼이나 감동적인 수상소감을 남겼다.


<사생결단>(2006)의 도진광


나이트클럽 밴드 드러머와 그에게 악기를 배우려는 웨이터로 호흡을 맞춘 <와이키키 브라더스> 이후 5년 만에 황정민과 류승범이 다시 조우했다. 'IMF 시대', '마약', '부산 뒷골목' 세 가지 요소가 한데 뭉친 <사생결단>에서 황정민은 마약계 거물을 잡기 위해 마약 판매상 상도(류승범)를 끄나풀로 잡고 웬만한 범인보다 더욱 악질적인 수사를 펼치는 형사를 연기했다. 황정민과 류승범 모두 다른 배우 캐스팅은 모른 채 시나리오를 읽고 난 후, 상대역 배우는 누가 좋을 것 같냐는 질문에 서로를 지목했다고 한다. 둘의 특별한 인연은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와 같은 도 경장과 상도의 기묘한 관계를 보다 뜨겁게 타오르게 했다.


<행복>(2007)의 영수 


<행복>의 영수는 <너는 내 운명>의 석중과 반대편에 선다. 석중이 은하와의 삶을 위해 모든 걸 건다면, 영수는 제 사정에 따라 사랑했던 사람에게 상처주고 떠날 수 있다. 순애보 따위 없는 남자. 운영하던 클럽이 망하고, 애인(공효진)과 헤어지고 심각한 간질환까지 앓게 된 영수는 시골 요양원에서 만난 중증폐질환 환자인 은희(임수정)와 연인이 되지만, 사정이 나아지자 금세 등을 돌린다. 여전히 아픈 은희에게 "밥 천천히 먹는 거 지겹지 않"냐는 비열한 면모는 <바람난 가족>의 주영작, <달콤한 인생>의 백 사장보다 더하다.


<슈퍼맨이었던 사나이>(2008)의 슈퍼맨


<슈퍼맨이었던 사나이>에선 무려 슈퍼맨 역을 맡았다. 새파란 스판덱스 유니폼을 입고 하늘을 나는 건 아니다. 그가 직접 말하길, 악당이 머리 속에 넣은 크립토나이트 때문이다. 영화는 진짜 슈퍼맨보다 더 값진 그의 소소한 선행들을 보여주면서 시청률 밖에 모르던 PD 수정(전지현)을 변하게 한다. 순박하지만 매순간 긴장을 놓지 않는 황정민의 얼굴이 착한 망상 같은 이야기에 설득력을 불어넣었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2010)의 황정학


힘을 한결 덜어낸 채로 구한말의 사설탐정을 연기한 <그림자 살인>(2009)에 작업한 시대극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박흥용 작가의 만화를 영화화 한 작품이다. 다만 원작과는 차이가 크다. 임진왜란 직전의 조선, 맹인 검객 황정학과 왕족 서얼 출신의 이몽학(차승원)은 평등한 세상을 꿈꾸던 중 실패하고 서로 적이 된다. 끝내 실패하고 마는 혁명의 허무주의를 그려온 이준익의 시대극인 만큼, 앞이 보이지 않는 검객을 연기한 황정민의 퍼포먼스는 강력한 전투력보다는 앞이 보이지 않는 혁명에 대한 좌절이 더 짙게 묻어난다.


<부당거래>(2010)의 최철기


류승범과의 세 번째 협업작 <부당거래>에서 두 배우는 적으로 만났다. <사생결단>에 이어 형사를 연기한 황정민의 캐릭터 최철기 역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불의를 무릅쓴다. "호의가 계속 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가 영화를 대표하는 대사일 정도로 비리 검사 주양 역의 류승범이 돋보인다는 평이 주를 이뤘지만, 권력에 잠식당해 완전히 파멸해버리고 마는 황정민의 공허한 얼굴이 뿜는 에너지도 대단했다.


<신세계>(2012)의 정청


<부당거래>의 시나리오를 썼던 박훈정 감독이 감독을 맡은 누아르 <신세계>는 황정민의 명과 암을 동시에 만끽할 수 있다. 말쑥한 차림새에 간이 슬리퍼를 신고 "어이 부라더~" 하며 나타나 만담을 방불케하는 구수한 입담을 쏟아내던 정청은 골드문이 위기에 빠지면서 조직의 2인자다운 냉혈한의 면모까지 풀어놓는다. 경찰 첩자인 이자성(이정재)의 정체를 아는 듯 모르는 듯 옭아매는 기묘한 태도는 황정민의 진일보라 할 만했다. 이 역할로 두 번째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전설의 주먹>(2013)의 임덕규


<전설의 주먹>은 황정민이 작정하고 액션을 소화한 영화다. 고교시절 싸움으로 이름을 날리던 이들이 40대가 되어 각자의 이유로 링 위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이야기. 복싱 유망주였지만 지금은 국숫집을 운영하는 덕규는 학교에서 사고친 딸의 합의금을 마련하기 위해 격투기 프로그램에 참가한다. 윗몸일으키기만 하루에 천 번을 하는 등 수 개월 간 서너 시간을 투자해 몸을 만들었고, 정두홍 무술감독이 '진짜'에 초점을 맞춰 연출한 액션을 소화하기 위해 상대배우의 공격을 고스란히 맞아야 했다.


<국제시장>(2014)의 덕수


<전설의 주먹>에서 평범한 아버지의 면모를 보여줬던 황정민은 <댄싱퀸>(2012)에 이어 윤제균 감독이 이끄는 JK필름 작품 <국제시장>에서 우리네 아버지의 '삶'을 보여줬다. 6.25 전쟁, 파독 광부, 월남전 등 1930년대 태어난 한 남자가 통과했을 한국 현대사의 순간들을 고스란히 밟아나간다. 20대 청년부터 여든을 바라보는 노년까지, 평생을 열심히 살아온 사내의 인생을 두루 선보여 1400만 명이 넘는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국제시장>을 기점으로 황정민은 배우로서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했다.


<베테랑>(2015)의 서도철


사회비판적인 형사물을 찍을 때 빛을 발하는 류승완 감독은 <부당거래>에 이어 다시 한번 황정민을 기용해 <베테랑>을 만들었다. 다만 차도철은 <부당거래>의 최철기보다 훨씬 가볍다.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다혈질이지만, 정의를 구현하겠다는 신념은 좀처럼 꺾이지 않아, 재벌이 벌려놓은 분탕질에 서민들이 위협 당하는 현실이 두루 즐길 수 있는 선을 지킬 수 있게 됐다. <베테랑>은 <국제시장> 이후 1년도 지나지 않아 그에 맞먹는 흥행을 기록하며 '황정민 전성시대'를 공고히 했다.


<검사외전>(2015)의 변재욱


강동원은 대배우와의 2인조 케미를 보여준 작품들을 통해 배우로서 성장을 증명했다. 송강호와의 <의형제>(2010), 김윤석과의 <검은 사제들>(2015)에 이어, 황정민과 콤비 플레이를 보여준 <검사외전> 역시 그 계보를 따른다. 취조 중이던 피의자가 변사체로 발견돼 살인누명을 써 15년 옥살이를 하는 재욱은 감옥에서 만난 사기꾼 치원(강동원)을 내세워 누명을 벗을 작전을 실행한다. 장르에 구애 받지 않고 영화 전체를 이끌어가는 저력을 뽐내왔던 황정민이 한발 물러서 '투톱' 영화의 밸런스를 마련했다.


<곡성>(2016)의 일광


외지인이 나타난 후 흉흉한 사건들이 벌어지는 마을을 그린 스릴러 <곡성>. 황정민이 연기한 무속인 일광은 156분 러닝타임 중 절반이 훌쩍 넘는 90분이 지난 후에야 영화에 등장해, 관객의 숨통을 놓았다 쥐였다 한다. 실제 무속인들도 극찬했다는 굿 시퀀스 속 퍼포먼스는 물론, 마을을 둘러싼 미스터리에 거의 잠식 당한 종구(곽도원)의 이성을 흩뜨려놓는 교묘한 태도를 적절한 균형으로서 나타내는 경지를 보여주었다. 



<아수라>(2016)의 박성배


황정민이 오랜만에 선보이는 완전한 악역. 악인들의 지옥도를 그린 <아수라>의 세계에서 안남시장 박성배는 악인 중의 악인이다. 강력계 형사 한도경(정우성)을 끄나풀 삼아 각종 범죄를 저지르는 그는 평소 정치인답게 유들유들하게 대중들을 구워삶다가도, 수가 틀리면 금방이라도 상대방의 목을 움켜쥐고 얼굴에 담배를 지져버리는 인간이다. 황정민은 우리가 매일 뉴스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정치인들의 얼굴을 교과서 삼아 캐릭터를 구축했고, 커다란 안경을 써서 속내를 감춘 채 그가 저지르는 악행만 남겼다.


<공작>(2018)의 흑금성


상대 배우와 비등비등한 에너지를 겨루며 쌓는 긴장은 홀로 극 전체를 장악할 때보다 강력한 인상을 남긴다. 실존인물 흑금성(박채서)의 일화를 영화화 한 <공작>은 그 모범사례라 할 만하다. 정보사 소령 출신으로 안기부에 스카우트 돼 북한 고위층 내부에 잠입한 흑금성은 대북 사업가로 위장해 북 고위간부 리명운(이성민)의 신뢰를 쌓는다. 황정민은 이성민과 함께 우정과 의심의 가느다란 그 사이를 곡예를 타듯 조절하며 스파이 영화의 텐션을 가능케 한다. 황정민과 이성민이 서로 독대하고 있는 신이 등장하면 공기가 달라지는 것 같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2020)의 인남 


<신세계> 이후 8년 만에 황정민과 이정재가 다시 만났다. 정청과 이자성의 우정은 가히 로맨스를 방불케할 만큼 끈질겼다면, 레이(이정재)는 자신의 의형제를 죽였다는 이유만으로 지구 끝까지 따라붙을 기세로 인남을 위협한다. 하지만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황정민의 진가는 레이와의 대치보다는 뒤늦게 존재를 알게 된 딸 유민을 마주할 때 빛을 발한다. 클라이막스 부근, 황정민이 보이는 눈물은 낯선 만큼 절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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