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형, 사이코패스형, 집착형.. 유형별로 보는 한국영화 속 나쁜 놈들

조회수 2020. 8. 24.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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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객원 기자 김명재
사탄이 기립박수 칠만한 이들을 모아봤습니다.

나쁜 놈들에도 종류와 급이 있다. 권력을 앞세워 온갖 악행을 몰래(때로는 당당하게) 저지르고 다니는 권력형부터, 감정 없이 사람을 죽이는 사이코패스형, 타깃은 절대 놓치지 않는 집착형까지. 현실에서는 누굴 만나도 오금이 저리겠지만 우리에겐 스크린이란 든든한 편이 있다. 푹신한 의자에 앉아서 ‘누가 누가 더 나쁜 놈인가’를 골라 보면 된다. 만약 내 마음 속 최고의 한국영화 속 악역이 없다면 댓글로 남겨주시길!


사이코패스형
<공공의 적> 조규환

<공공의 적>(2002)

악역 연기를 너무 잘해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 <공공의 적> 조규환(이성재)이다. 조규환은 펀드 매니저이자 자상한 가장이었으나, 사람을 죽이는 데 망설임이 조금도 없는 인물이었다. 자신에게 우유를 쏟았다는 이유로 집까지 쫓아가 죽이는 사이코패스이자, 상속 문제로 인해 부모도 살해하는 극악무도한 패륜범이다.

GIF는 차마 넣을 수 없었던 기자의 마음을 헤아려주길
이렇게 찰기 있게 욕하는 캐릭터는 처음이었다(F**K! Mother F**K!)

<공공의 적> 전까지만 해도 신사 이미지였던 이성재는 <공공의 적>에서 사이코패스 조규환을 지나칠정도로 완벽하게 소화한 바람에 10년 동안 CF가 끊길 정도였다. 이성재는 한 인터뷰에서 “거부감을 가지시는 건 처음부터 예상 못한 일이 아니었어요. 영화 들어가기 전에 강 감독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성재야, 너 한 3년간은 CF 안 들어올 거다, 면도날이나 식칼 CF라면 모를까”라고 말했다. 그도 알고 있었다. 이 역이 얼마나 잔인하고, 받아들이기 힘든 것인지. 어쩌면 그가 쌓아왔던 커리어를 모두 무너뜨릴 수도 있는 배역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수락한 이유는 연기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다고.

그 놈 (헛)소리


신념형
<변호인> 차동영

<변호인>(2013)

<변호인>에서 공안 책임자로 등장해 관객들의 고혈압을 일으킨 차동영(곽도원). 자칭 애국자라고 말하는 그는 공안 책임자로 국가가 시키는 일은 뭐든지 다한다. 그게 옳은 일이든, 아니든 그는 국가 아래 국민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기에 군부정권의 논리를 철저하게 따른다. 신념이 강한 자와 폭력적인 신념이 만난 것만큼 무서운 일이 있을까. 그는 조사하러 온 송우석(송강호) 변호사를 무자비하게 폭행하다가도 애국가가 울리자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한다.

송우석과 차동영의 법정 싸움은 긴장감 이상의 울림을 준다.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이다!” 국민 위에 국가를 두는 차동영에게 송우석은 헌법을 읊어준다. 관객들조차 잊고 살았는데, 송우석은 스크린 너머로 헌법이 이토록 아름다운 언어였음을 이야기 한다. 스스로 애국자임을 굳게 믿고 있었던 차동영에게 송우석은 그가 애국자가 아니고 군사정권의 하수일 뿐이라고 쏘아붙인다. 차동영이 뱉을 수 있는 말은 모든 의견을 묵살하는 마법의 언어, “입 닥쳐! 이 빨갱이 새끼야!”였다. 신념이 팽팽하게 부딪히는 이 장면은 <변호인> 최고 명장면으로 뽑히며 곽도원이 권력-신념 악역 전문 배우임을 인증했다. 

그 놈 (헛)소리


집착형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레이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2020)

이유도 잊어버렸다. 그저 죽인다. 타깃을 향한 맹목적인 집착이 레이(이정재)를 지독한 악인으로 만들었다. 청부살인을 하는 인남(황정민)에게 자신의 형제가 암살당한 것을 알게 된 레이는 그를 죽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마치 그가 태어난 이유가 인남을 죽이기 위해서라는 듯, 앞뒤 가리지 않고 추격하는 그에게서 일종의 광기까지 엿보인다.

‘납치된 소녀를 찾아 나선다’라는 익숙한 스토리에 레이는 매력적인 향신료다. 형의 복수를 위해 집요하게 인남을 쫓는 레이. 형의 죽음을 슬퍼하지도 않으면서 어떤 이유로 그렇게까지 추격을 하는지 영화에선 알 수 없다. 과거를 알 수 없는 남자로 등장하기에 그의 행동은 더욱 파악하기 어렵다. 그리고, 예측불가능이기에 매력적이다. 이정재는 레이의 독특함을 표현하기 위해 직접 그의 패션, 액세서리, 타투 등 화려한 콘셉트를 잡았다. ‘인남을 쫓는다’라는 대전제만 있는 상태에서 이정재는 그만의 레이를 완성해나갔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전까지 보기 힘들었던 스타일리시한 짐승 같은 악인이 탄생했다.

그 놈 (헛)소리


권력형
<베테랑> 조태오

<베테랑>(2015)

2015년 최고의 명대사로 꼽히는 조태오(유아인)의 “어이가 없네?”는 권력형 악인의 정수가 담긴 대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당함을 주장하러 온 배기사(정웅인)를 그는 오히려 ‘아무것도 아닌’ 일 때문에 자신을 가로 막는 무례한 사람으로 본다. 권력을 가졌다, 약자가 아니다 라는 면에서 위의 신념형과 비슷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이들은 철저하게 자신의 권력과 돈을 믿는 존재다. 그릇된 신념에 의해 행동하기 보단, 권력을 믿고 쾌락을 추구하기 위해 행동한다. 그에게 가장 불쾌한(혹은 두려운) 일은 갖고 싶은 걸 못 갖는 것이다.

그는 선악판단이 안 되는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같은 인물이 아니라 선악판단을 할 필요가 없는 환경에서 자란 어린 아이 같은 인간이다. 환경에 의해 후천적으로 공감 능력을 거세 당했다는 게 옳은 표현일 것이다. 류승완 감독은 인터뷰에서 “조태오라는 인물은 만들어진 괴물이라고 생각한다.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가 아닌 단지 미성숙할 뿐이다”라고 말하며 그가 권력에 의해 만들어진 악인임을 밝혔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마약, 성매매, 아동청소년 성보호 위반, 음주, 과속, 고공시설 파손, 공무집행 방해, 배철웅 기사 폭행 및 살인미수, 경찰관 살인교사. 그가 저지른 수많은 악행은 결국 그와 그를 눈감아 준 권력이 만들어낸 셈이다.

그 놈 (헛)소리


악마형
<악마를 보았다> 장경철

<악마를 보았다>(2010)

한국영화 사상 가장 잔인하고, 더럽고, 기분 나쁜 캐릭터를 고르라 한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악마를 보았다>에 장경철(최민식)이다. 사탄이 기립박수를 칠 정도로 그의 행동은 이 세상 악이 아니다. 고작 144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장경철은 일일이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로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다. 임신한 김수현(이병헌)의 약혼자를 무자비하게 살해한 후, 시체를 토막내는 걸 시작으로, 피해자의 목을 자르고, 중학생과 간호사를 강간한다. 금기시 되던 건 모두 했다.

택시 신 GIF를 넣을까 했으나, 반복해서 보다 보니 기분이 나빠져서 탈락. 독자분들의 마음을 지켜드립니다.

그 때문인지 한국 최고의 배우에게도 장경철은 녹록치 않은 캐릭터였다. 최민식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한 중년 남성이 친근감을 표시하며 반말을 하자, ‘이 새끼가 왜 반말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뭐 하나 빠지면 심하게 빠지는 스타일인데 이건 아닌 것 같았다. (중략) 정말 몰입해버리면 난리가 날 것 같았다”고 말하며 정신적 고통을 토로했다. 그래서인지 “다시는 살인자의 ‘살’자도 안 하고 싶다고. 이 다음엔 따뜻한 영화를 하고 싶다”고 했던 그는 차기작으로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2012) 속 최익현 역을 맡았다(!).

그 놈 (헛)소리

당연히 안 된다.

현실형
<추격자> 지영민

<추격자>(2008)

스크린 속 살인마는 어딘지 모르게 일반 사람들과 달랐다. 외모든, 행동이든 일반적인 범주 안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누가 봐도 살인마였다. 그러나 <추격자>의 지영민(하정우)은 현실에 있을 것만 같다. 어쩌면 스쳐 지났을지도 모른다. 악이 내 곁에 있다는 걸 모르는 것만큼 위험한 일이 있을까. 군중 속에 녹아들어 약자만을 골라 살인을 저지르는 그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한국 사회에서 낯이 익은 캐릭터다.

<추격자>는 실제 살인 사건인 유영철 연쇄살인사건에서 영감을 얻은 만큼 기존의 사이코패스 영화보다 훨씬 현실적인 공포를 안겨준다. 특히 지영민은 기존의 스크린 속 사이코패스보다 훨씬 현실에 가깝다. 자신보다 물리적으로 힘이 약한 여성만을 노리고, 상황을 둘러대기 위해 앞뒤가 안 맞는 거짓말을 하기도 하며, ‘성불구냐’는 말에 당황하고 분노를 표현한다. 쫓기다가 힘들어서 헛구역질을 하거나 넘어지는 모습에선 그가 악마가 아니라, 우리 곁에 있는 인간임이 드러난다. 바로 그 점이 <추격자>가 두려운 이유다.

개인적으로 꼽은 <추격자> 최고의 명장면

그 놈 (헛)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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