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장편 애니메이션 역사상 가장 많은 돈 들인 <원더풀 데이즈> 재개봉의 의미는?

조회수 2020. 7. 29. 08:00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씨네플레이 신두영 기자

<원더풀 데이즈>가 9월 재개봉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더빙을 다시 한 리마스터링 버전이라고 한다. 애니메이션의 오랜 팬이라면 이 소식에 묘한 기분을 느낄 것 같다. 특히 2003년 개봉 당시 극장에서 이 작품을 본 사람이라면 더 그럴 것이다. 왜 그런지, <원더풀 데이즈>가 어떤 작품이었는지 돌아보자.


미친 퀄리티
<원더풀 데이즈>는 2005년 일본에도 개봉했다. 당시 배급사가 가이낙스다. <에반게리온>을 만든 그 회사가 맞다. 가이낙스가 <원더풀 데이즈>를 수입하고 <카우보이 비밥>으로 유명한 성우 야마데라 코이치를 기용한 이유는 퀄리티였다. <원더풀 데이즈>는 그야말로 미친 퀄리티의 작화(?)를 보여준 작품이다. 작화라는 말에 물음표가 붙은 이유가 있다. 이 애니메이션이 단순한 2D가 아니기 때문이다. 3D CG 기술만으로 제작한 픽사의 <토이 스토리>가 1995년에 이미 나오지 않았냐고? 그렇다. 그래서 2D에 3D도 접목시켰다. 여기에 실사 촬영의 정밀한 미니어처 촬영 기술도 추가했다. 한마디로 <원더풀 데이즈>는 당시 국내에서 쓸 수 있는 애니메이션 기술의 집약체였다. 그 결과 역시 나쁘지 않다. 17년에 지난 지금 봐도 질이 낮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150억의 눈물
2003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원더풀 데이즈>는 곧이어 7월에 개봉했다. 당시 ‘씨네21’에 실린 20자평이 인상적이다. “비주얼은 됐다. 이제는 시나리오다.” 별점은 3개 반이었다. 화려하고 뛰어난 비주얼에 비해 스토리가 약했다. 제작비 문제 때문이었는지 러닝타임이 짧아져 원래 계획했던 이야기를 다 펼쳐내지 못했다는 의견도 있다. 어찌 됐던 극장에서 영화를 본 관객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게 <원더풀 데이즈>가 받아든 성적표는 약 30만 명(당시는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이 막 보급되던 시기여서 지금과 같은 정확한 관객수 통계를 알지 못했다)의 관람객 수다. 매체마다 그 수치가 달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15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 <원더풀 데이즈>는 그렇게 쓴 눈물을 삼켜야 했다. 정정. 쓴 눈물 정도가 아니라 피눈물이라고 해야 맞겠다. 참고로 <반도>가 200억 원, <강철비 2: 정상회담>이 154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패의 유산
<원더풀 데이즈>의 꿈은 장대했다. <원더풀 데이즈>와 비슷한 장르의 재패니메이션 이를테면 <공각기동대> 등을 뛰어넘을 작품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 적어도 제작진과 투자자의 기대는 그랬을 것이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그들은 국내 관객 300만 명, 해외 수출 700만 달러를 외쳤다. 결과는 위에서 설명한 대로다. 그렇게 성인을 대상으로 한 한국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의 또 하나의 실패 사례가 늘었다. 1994년 한국 최초의 성인용 애니메이션 <블루 시걸>이 나왔을 때 그야말로 ‘성인용’을 표방했기에 전국 50여 만명의 흥행을 기록했지만 완성도가 엉망이어서 실패. 1996년 대규모 제작위원회를 꾸려서 만든 <아마겟돈> 역시 비평 및 흥행에서 재난에 가까웠다. <원더풀 데이즈>는 이런 과거를 지워낼 희망이었다.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었고, 엄청난 퀄리티의 비주얼과 이승열이 노래한 주제가 ‘비상’을 비롯한 원일 음악감독의 명작 O.S.T.를 남겼다.

다시보기의 의미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 <마왕의 딸 이리샤>을 만든 장형윤 감독이 2019년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 생각에 2003년 <원더풀 데이즈>가 한국 극장용 장편애니메이션의 마지막 불꽃을 태운 시기였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 같이 작업한 사람들 중에 지금까지 남아 있는 사람이 몇명이나 되나.” 그의 말처럼 <원더풀 데이즈>는 한국 애니메이션의 역사에서 가장 큰 규모의 프로젝트였으나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 상실감은 꽤 컸다. 당연히 애니메이션에 대한 투자도 줄어들었다.

<원더풀 데이즈> 이후 8년이 지난 2011년 한국 애니메이션 역사에 변화가 감지됐다. 그해에 3편의 장편 애니메이션이 개봉했다. 200만 관객을 넘으며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 흥행 1위를 기록한 <마당을 나온 암탉>, <부산행> 이전의 연상호 감독이 만든 주제면에서 진짜 성인용인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 셀 애니메이션의 감성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스튜디오 연필로 명상하기가 만든 <소중한 날의 꿈>이 개봉했다.

지금, 2011년 이후 9년이 지났다. 이 시간 동안 개봉한 작품 가운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장편 애니메이션은 없다. <원더풀 데이즈>를 다시 본다는 의미를 쉽게 말하기는 힘들다. 한국 애니메이션에 대한 애정이 있는 관객이라면 <원더풀 데이즈>를 다시 보면 좋겠다.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