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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2020년 상반기 우리 곁을 떠난 영화인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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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상반기에도 수많은 영화계 인사들이 세상을 떠났다. 그 가운데 특히 우리 기억에 익숙한 7명의 생전 커리어를 짤막하게 정리했다.


커크 더글라스
Kirk Douglas

출처<스파타커스> (1960)

1916.12.09.
~
2020.02.05.

2차 세계대전 당시 해군에 입대해 3년 만에 의가사 제대한 후 연극 무대에서 활동하던 커크 더글라스는, 학교 동기였던 로런 바콜의 추천으로 1940년대 중반 가장 높은 개런티를 자랑하던 여성배우 바바라 스탠윅 주연의 <마사 아이버스의 위험한 사랑>(1946)에 출연하며 처음 영화계에 입성했다. <챔피언>(1949)에서 부도덕한 복서를 연기해 생애 처음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는 등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했다. 주로 누아르(<배드 앤 뷰티>), 웨스턴(<OK 목장의 결투>)에 출연해 '터프가이'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사이 <열정의 랩소디>(1956)에선 빈센트 반 고흐를 연기하며 배우로서 스펙트럼을 넓혔다. 어머니의 이름을 딴 '브라이나 프로덕션'을 운영하면서 스탠리 큐브릭의 반전영화 <영광의 길>(1957)과 당시 최다 제작비를 쏟아부은 <스파타커스>(1960)를 제작하고 주연으로도 활약했다. 5~60년대 전성기를 보낸 후 헬리콥터 사고를 당한 1991년까지 거의 한해도 빠짐없이 크고 작은 영화들에 출연해왔고, 1973년엔 감독 데뷔작 <스캘러웨그>를 내놓기도 했다. 103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커크 더글라스는 할리우드 황금기를 통과한 몇 안 되는 생존 배우 중 하나였다.

출처<분노의 악령> (1978)

​이규형

출처<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 (1987)

1957.06.15.
~
2020.02.07.

이규형 감독은 1970년대 중후반 하이틴 영화 붐을 몰고 온 <진짜 진짜 좋아해>(1976)를 연출한 문여송 감독의 <사랑 만들기>(1983)의 각본을 쓰면서 충무로에 등장했다. 여러 영화의 시나리오를 써온 그는 1986년 직접 제작까지 맡은 <청 블루 스케치>로 감독 데뷔해 이듬해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를 발표했다. 박중훈, 강수연, 김세준 주연의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는 1987년 한국영화 흥행 1위를 기록했고, 이규형은 대종상 신인감독상을 받았다. 당대 청춘스타들을 캐스팅 한 <어른들은 몰라요>(1990), <굿모닝! 대통령>(1989), <난 깜짝 놀랄 짓을 할 거야>(1990)를 발표한 뒤 90년대 들어서는 국내외 화제작의 인기에 편승해 기획된 영화들을 주로 만들었다. <공룡 선생>(1992)은 <죽은 시인의 사회>, 애니메이션 <헝그리 베스트 5>(1995)는 <슬램 덩크>, <DMZ, 비무장지대>(2004)는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 등의 영향이 짙게 묻어났다. '세계 최초 인터넷 개봉 영화'를 표방한 <굿 럭>(2006)마저 실패한 뒤 사기 혐의로 여러 차례 법정에 섰고, 담도암 투병 중에 올해 2월 별세했다.

출처<공룡 선생> (1992)

막스 폰 시도우
Max Von Sydow

출처<엑소시스트> (1973)

1929.04.10.
~
2020.03.08.

스웨덴 출신의 배우 막스 폰 시도우는 70년에 걸친 커리어 동안 자국과 할리우드를 오가며 150편이 넘는 작품들에 출연했다. 폰 시도우가 두각을 드러낸 건 스웨덴 최고의 감독으로 손꼽히는 거장 잉마르 베리만의 <제7의 봉인>(1957)에서 '죽음'과 체스 게임을 벌이는 안토니우스 블로크 역을 연기하면서부터다. <산딸기>(1957), <처녀의 샘>(1960), <겨울 빛>(1963) 등 베리만과 11개 영화를 함께 했다. 베리만의 작품들이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연달아 수상하게 되면서 폰 시도우 역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007 살인번호>(1962)와 <사운드 오브 뮤직>(1965) 등에 캐스팅 제안을 받고 고사하다가 조지 스티븐슨의 <위대한 생애>(1965)에서 예수 역을 맡아 할리우드에 입성했다. <엑소시스트> 시리즈, <제국의 종말>(1980), <듄>(1984), <정복자 펠레>(1987),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 <셔터 아일랜드>(2010),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2015), <왕좌의 게임>(2016) 등 수많은 명작들이 폰 시도우 특유의 금욕적이고 음울한 이미지를 끌어안았다.

출처<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2015)

이르판 칸
इरफ़ान ख़ान

출처<무사> (2001)

1967.01.07.
~
2020.04.29.

살아생전 인도영화계 최고 스타로 군림한 이르판 칸은 오랜 무명생활을 거쳤다. 1988년 <살람 봄베이!>를 통해 데뷔해 90년대에 꾸준히 활동했지만 뚜렷한 존재감을 남기진 못하고 연기를 포기하려던 와중, 인도계 영국 감독 아시프 카파디아의 데뷔작 <무사>(2001)가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되면서 전 세계에 널리 얼굴을 알렸다. 스릴러 <로그>(2005)로 발리우드에서 처음 주연을 맡게 된 칸에게 2007년은 아주 중요한 해였다. <이름 뒤에 숨은 사랑>과 <지하철 사랑>이 2007년 박스오피스에서 큰 성공을 거두면서 자국의 흥행 배우로 거듭났고, 웨스 앤더슨의 <다즐링 주식회사>와 마이클 윈터바텀의 <마이티 하트>에 조연으로 참여해 해외로까지 활동 반경을 넓히는 기반을 닦았다. 인도를 배경으로 한 영국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세계적으로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면서, 칸은 인도의 다양한 장르영화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012), <라이프 오브 파이>(2012), <쥬라기 월드>(2015) 등 할리우드 대작들의 작업을 병행했다. 2018년 3월 희소암인 신경내분비종양 투병 사실을 알리고 활동을 중단했으나 결국 다시 카메라 앞에 서지 못했다.

출처<라이프 오브 파이> (2012)

미첼 피콜리
Michel Piccoli

출처<경멸> (1963)

1925.12.27.
~
2020.05.12.

미첼 피콜리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동한 명감독들이 가장 사랑한 배우라 할 만하다. 장 르누아르의 걸작 <프렌치 캉캉>(1955)에 참여한 그는 장 피에르 멜빌이나 르네 클레망 같은 베테랑부터 50년대 말 태동한 프랑스 누벨바그를 이끈 젊은 감독들에 이르는 감독들의 작품에 참여했다. 루이스 부뉴엘, 장 뤽 고다르, 알프레드 히치콕, 알랭 레네, 아녜스 바르다, 자크 드미, 앙리 조르쥬 클루조, 클로드 샤브롤, 마르코 벨로치오 등 그에게 러브콜을 보낸 감독들만 추려만 봐도 피콜리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늠해볼 수 있다. <리프 인 더 다크>(1980)로 칸 영화제, <스트레인지 어페어>(1981)로 베를린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칠순에 접어든 2000년대 이후에도 피콜리가 구축한 필모그래피의 밀도는 좀처럼 떨어지는 법이 없었다. 그해 최고작으로 손꼽힌 난니 모레티의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2011)와 레오 까락스의 <홀리 모터스>(2012)가 피콜리의 마지막 작품에 속한다.

출처<우리에겐 교황이 있다> (2011)

​이안 홈
Ian Holm

여느 영국 명배우들처럼, 이안 홈 역시 연극 무대와 TV에서 배우로서 기반을 다졌다. 1968년부터 여러 영화에서 조연을 맡아온 홈은 존 허트와 마찬가지로 SF 걸작 <에이리언>(1979)를 통해 크게 주목받게 됐다. 샘 코치를 연기한 <불의 전차>(1981)로 칸 영화제 남우조연상을 수상하고,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테리 길리엄(<브라질>), 케네스 브레너(<헨리 5세),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네이키드 런치>), 스티븐 소더버그(<카프카>) 등 세계적인 거장들이 꾸준히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스쿨버스 사고로 20명의 아이가 목숨을 잃은 마을 사람들에게 소송을 부추기는 변호사를 연기한 아톰 에고이안의 <달콤한 내세>(1997) 역시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요즘 관객들에겐 <제5원소>(1995)의 두 주인공을 돕는 코넬리우스 신부, <반지의 제왕>과 <호빗> 시리즈 속 호빗 마을 원로의 인자한 면모와 절대반지를 마주해 욕망에 홀리는 눈빛까지 모두 담아낸 빌보 배긴스, 픽사 애니메이션 <라따뚜이>(2007)의 빌런 스키너 주방장의 목소리로 더욱 친숙할 법하다.


조엘 슈마허
Joel Schumacher

1939.08.29.
~
2020.06.22.

패션 디자인의 명문 파슨스 스쿨에서 공부한 조엘 슈마허 감독은 의상 디자이너로 영화계에 발을 디뎠다. 70년대 중반까지 의상감독으로 활약하던 그는 음악영화 <스파클>(1976)부터 시나리오의 재능을 보이기 시작해, 1981년 코미디 영화 <엄마가 작아졌어요>(1981)로 감독 출사표를 던졌다. 성장물, 로맨틱 코미디, SF 스릴러 등 다양한 장르를 거쳐 좋은 성적을 거둬온 그는 <의뢰인>(1994)으로 연출력을 인정받은 후, 팀 버튼에 이어 <배트맨> 시리즈를 이어받아 <배트맨 포에버>(1995)와 <배트맨과 로빈>(1997)을 연출을 맡게 됐다. 결과적으로 시리즈를 망쳐버렸다는 오명(<배트맨 비긴즈>로 시리즈가 다시 이어지기까지 8년이 걸렸다)을 썼고 연출작에 대한 평도 들쭉날쭉이었지만 <타임 투 킬>(1996), <8미리>(1999), <폰 부스>(2002) 같은 스릴러는 꽤 좋은 평을 얻었다. 유명 뮤지컬을 영화로 옮긴 <오페라의 유령>(2004)이 한국 관객에게 특히 많은 사랑을 받았다.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의 5, 6화 연출을 맡은 걸 이후로 필모그래피가 멈춰 있었다.

출처<오페라의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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