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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 요리사에서 여자 야구선수로, 성별의 벽을 깨는 이 배우

글 씨네플레이 문선우 기자│사진 백종헌(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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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프로 선수가 되길 희망하며 우직하게 야구공을 던지는 소녀가 있다. 그러나 프로라는 벽에 부딪히기도 전, 수인은 여자 선수라는 이유로 프로 입단의 테스트 기회조차 가져보지 못한다. 가까이에 있는 모든 이들이 포기하라 종용하지만, “해보지도 않고 포기 안 한다”라 말한 수인이는 묵묵히 손에 피가 나도록 그 벽을 깨기 위해 야구공을 던진다. 영화 <야구소녀>다.


‘뜨겁게 지져봐라, 나는 움직이지 않는 돌덩이’. 올 초 방영된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서 단밤의 요리사이자 트랜스젠더 ‘마현이’를 연기한 이주영이 <야구소녀> 주수인으로 돌아왔다. 독립영화 <춘몽>, <꿈의 제인>, <메기> 등 개성 있는 작품과 인물들을 통해 착실히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다져온 그는 ‘독립영화계의 아이콘’으로 통하기도 한다. 그 어떤 질문에도 연기에 대한 애정과 오롯한 신념을 내비치며 ‘정직하고 굳건한 배우’라는 믿음을 준 이주영과의 대화를 전한다.


요즘 외출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래도 <야구소녀> 개봉 준비로 바빴을 거 같은데. 어떻게 지냈나.


최근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를 마치고 간간이 화보 촬영을 하며 쉬고 있었다. <야구소녀> 홍보가 시작이 되면서 다시 몸을 일하는 모드로 전환해야 하는데 밤낮이 바뀐 상태여 가지고 피곤한 게 있는 거 같다(웃음). 집중적으로 일이 몰리게 되면 잠을 못 자는 타입이라. 오늘 잠도 많이 못 자고 걱정을 많이 하고 왔는데, 감독님이랑 준혁 선배랑 같이 하는 게 재밌어서 앞으로 즐겁게 홍보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전주국제영화제 한국단편경쟁부문 심사위원으로 선정됐다. 감회가 남달랐을 거 같은데.


전주에 출연 작품 중 <가까이>(2017)라는 KAFA 단편이 하나 갔었는데, 한국단편경쟁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했었다. 그런데 그때 스케줄 때문에 참석을 못 해서 어쩌다보니 전주는 한 3년 정도 관객으로 놀러 가는 입장이었다. 이번에 심사위원으로 선정되면서 ‘내가 그런 자격을 가져도 되나’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은 그 해 전주에서 상영되는 단편들을 모두 볼 수 있지 않나. 요즘은 단편들이 어떻게 찍히고, 어떤 감독들이 있는지 경향이 궁금하기도 했던 차라 기쁜 마음으로 참여했다. 또 전주에는 <야구소녀> 행사 때문에 3∼4일 짧게 갔다 왔는데 휴식의 느낌으로 다녀와서 더 좋았다. 


‘영화제의 아이돌’이라는 수식어가 있다. <메기>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배우상을, <야구소녀>로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배우부문 독립스타상을 연이어 받았다. 쉽지 않은 일이지 않나. 기쁘면서도 한 편으로는 배우로서 부담이 됐을 수도 있을 거 같다.


마냥 좋았다(웃음). 연기라는 게 절대적으로 내가 혼자 해온 수치를 볼 수는 없지 않나. 뭔가 항상 비교당하거나, 누군가의 재능을 질투하게 되는 일인 거 같다. 그래서인지 스스로 자신감을 갖기 힘든 측면도 있고. 그런데 상은 물리적인 보상이다. 그런 걸 받게 되면 내가 헛되게 작품을 하지는 않았구나, 내 연기가 누군가에게는 좋게 보이고 힘이 될 수 있구나 하면서 동력을 얻게 되는 거 같다. 


상은 아무래도 눈에 보이는 거니까(웃음). 


맞다. 그래서 부담감보다는 그냥 지금까지 잘 해왔다, 앞으로 더 큰 상을 받고 싶다?(웃음)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되면서 힘을 얻는 거 같다.

본격적으로 영화 얘기를 해볼까 한다. <야구소녀>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오늘의 탐정>이라는 드라마가 끝나고 휴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감독님께서 맞물려서 <야구소녀> 제의를 주셨다. 마침 영화 작업에 목말라 있었고, 러닝타임 동안 한 캐릭터에 집중해서 끌고 나가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던 차였다. <야구소녀>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욕망에 딱 부합하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야구소녀> 서사 자체가 여성이 끌고 나가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현실에서 여성들이 겪고 있는 편견의 벽과 같은 결을 지니고 있는 영화잖나. 감독님과의 의견 나눔이 굉장히 중요할 거 같아 급하게 감독님을 만나 뵈러 갔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최은태 감독님이라면 <야구소녀> 시나리오가 담고 있는 메시지, 더 나아가 큰 범주의 이야기를 하는 데 무리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고민 없이 결정했다. 


겨울 영하의 날씨에 촬영을 했고, 프로를 준비하는 선수들 사이에서 한 달간 훈련을 하기도 했다.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상업영화도 아니라 찍는데 고충이 있었을 거 같다. 


상황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독립영화다 보니 예산이 적고, 주어진 시간조차도 급박한 환경이었다. 아마 한 달 동안 28∼9회차 정도를 찍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거의 매일 촬영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내가 더위는 안 타는데 추위에 약한 편이다. 그런데 야구복이 재질도 차갑고 얇다. 하의는 타이트해서 히트텍 같은 거를 껴입을 수도 없고. 정말 홀 겹으로 한겨울에 체감온도 영하 20도 되는 기온에서 매일 촬영했다. 이 작품을 찍으면서 ‘이걸 잘 찍어내면 다음에 어떤 작품을 하던 잘 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용기를 얻었다(웃음). 


최코치를 연기한 이준혁 배우는 따뜻하게 껴입고 나오시던데. 


최코치는 아주~ 많이 껴입었다. 엄청 얄미워했던 기억이 나는데(웃음). 아무튼 치열하게 찍었던 게 어떻게 보면 우리 영화의 메시지와도 부합하는 부분이 있는 거 같다. 조금 다른 얘기일 수도 있는데, <야구소녀> 포스터가 사실 개봉을 준비하면서 새로 찍은 포스터다. 수인이가 뭔가 풍족해 보이지 않나?(웃음) 작년 추운 촬영 현장에서 찍었던 스틸들을 보고 포스터가 나온 걸 보니까 작년에 주수인의 색깔을 입고 있었을 때의 독기 가득 찬 눈빛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똑같은 옷을 입고, 같은 세팅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저 조차도 이 포스터를 보고 되게 신기해했다.

<야구소녀> 메인 포스터

수인이는 어떻게 보면 답답할 정도로 감정이라던가, 의사 표현을 안 하는 무덤덤한 캐릭터 같다가도 부당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엔 확고하게 자기감정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차가운 데 뜨거운 캐릭터랄까.


<야구소녀>는 수인이가 얼마나 스스로를 믿고, 갖고 있는 동력으로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를 지켜보는 영화다. 수인이의 경우엔 외부에서 주는 에너지를 받아서 ‘할 수 있어! 난 열정과 끈기로 밀고 나갈 거야!’ 다짐하고 발산하기보다 ‘내가 진짜 되나? 안 되나? 난 남들이 안 된다고 해도 가고 싶은데’처럼 스스로 고민하는 듯한 이미지를 만들고 싶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감독님과 얘기를 많이 나눴었고. 그래서 수인이는 스스로 고뇌하는, 혼자 있는 신이 많다. 수인이가 혼자 여자이다 보니 화장실 한 칸을 자신의 라커룸으로 쓰는 그런 신이 있는데, 그렇게 홀로 있는 수인이를 보여주는 신에서 숨겨진 내면을 보여줄 수 있을 거 같았다. 때문에 그냥 지나가는 신으로 보일 수 있는 신들에 오히려 힘을 되게 줘서 찍었던 거 같다. 그런 부분들이 켜켜이 쌓여서 주수인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었다. 


수인이가 이상을 보고 달려가는 캐릭터라면, 어머니는 현실을 직시하게 멈춰 세우려는 캐릭터였다. 수인이와 어머니 중에 실제로는 어느 편에 가까운가. 


수인이처럼 해보고 보는 편이다. 주변에서 안 된다고 하면 오히려 ‘왜 안 돼?’ 하고 독기가 발현된다(웃음). 수인이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주변에서 독려만 해주고 “너라면 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는 것보다 “네가 어떻게? 네가 선두로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게 수인이에게는 자극제가 돼서 하나의 동력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도 마찬가지고. 


배우로서 이주영은 수인이가 던지는 너클볼 같은 매력이 있다. <꿈의 제인> 지수, <이태원클라쓰> 마현이, <야구소녀> 수인이까지, ‘이런 캐릭터를?’ 할 정도로 매 작품마다 예상치 못한 인물을 연기한다. 소화하기 어려운 캐릭터들인데 작품을 다 보고 나면 웬만한 직구만큼이나 묵직하게 정통으로 와닿는다. 


다른 곳에서 표현을 빌려 써도 되나(웃음). 너클볼이라는 구종이 진짜 매력이 있다. 공이 회전 되지 않게 던져지는데 불규칙하다 보니 그걸 받는 사람이 정말 어떻게 받아야 할지 모르는 구종이다. 나는 작품이나 캐릭터를 선택하는데 스스로 한계를 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영화에서 수인이가 “남들이 내 한계를 정해놓을 수 없지 않냐, 내 미래를 나도 모르는데 남들이 어떻게 아냐”라고 하는 것처럼 해보지도 않았는데 외적으로든, 내적으로든 한계가 정해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정말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잖나. 마현이 캐릭터도 그렇고 다른 작품들도 그렇고, 선택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일단 내게 흥미로운 캐릭터냐는 거다. 또, 작품 안에서 올곧게 자기 할 말을 하는지,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캐릭터인지 여러 가지를 고려한다. 그래도 일단은 최대한 다 해보려고 하는 거 같다.

2019년 KBS 연기대상을 보는데 수상소감이 굉장히 인상 깊었던 기억이 있다. "조금 더 안녕하시고, 조금 더 행복하시라. 저도 조금 더 행복해서, 몸과 마음을 더 다져서 좋은 연기 하는 데 기운을 쓰겠다"라고 했었다. 2020년이 절반이 흘렀는데. 작년보다 조금 더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나.


이렇게 말씀해 주시니 작년 말에 수상소감을 했던 기분이 다시 한번 생각이 난다. 지금도 안 좋은 상황들이 있고 모두가 극복해나가는 과정이지만, 작년 말에는 그때만의 어떤 힘듦이 우리에게 있었다. 물론 현재의 이 힘듦도 그때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이고. 저는... 작년의 수상소감을 했던 때보다는 조금 더 안녕한 거 같다(웃음). 


다행이다. 


좋은 일들이 분명히 있더라. 개인적으로 되게 사소한데 그 자체로 힘을 받는 일들이 있는 거 같다. 제일 큰 영향은 나에게 힘을 주는 주위 사람들이다. 어느 때는 ‘세상은 혼자 사는 거야’, ‘어쨌든 각자도생이야’ 한 적도 있었다. 물론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웃음). 그런데 그렇게 하는 거보다는 조금 더 주변에 기대 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인 거 같다. 지금은 그런 상태다. 


그럼 스스로 더 좋은 연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나(웃음). 


진짜 어려운 질문인데(웃음). 항상 결과물을 보면 일단 아쉬움이 더 많이 남는다. 스스로 평가를 많이 하는 편이라. 그런데 연기를 시작한 이래부터 지금까지 늘 하는 다짐은 지나간 작품, 선택들에 후회하지 말자는 거다. ‘그때 나에게 최선은 저거였고, 아쉬운 부분이나 보완할 부분들이 있다면 다음에 해보면 돼’라고 생각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신건강에 해로우니까(웃음). 연기는 이제 한 계단 정도 올라간 느낌이다. 2011년도에 연기를 시작했지만, 2020년을 기점으로 연기 인생이 환기되는 지점을 맞이하고 있는 건 분명한 거 같다.

불확실한 미래를 보고 달려가기보다 현재를 굉장히 중요시 여기며 매 순간에 충실히 노력하는 배우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이 순간,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야구소녀>? (일동 웃음). 진짜 빈말이 아니고,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야구소녀> 개봉을 잘 시키는 거다. 영화계가 굉장히 힘들어진 것에 대해서 너무 큰 슬픔을 느끼고 있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고, 시사회를 열고, 홍보를 할 수 있었던 그 시절이 얼마나 행복했던 시절인지를 뼈저리게 느끼는 중이다. 할 수 있는 한 모든 걸 다 해서 조금이나마 돌파구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크다. <야구소녀>에 참여한 배우로서, 이 영화를 무사히 개봉시키고 관객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 영화계가 환기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극장가가 다행히 6, 7월이 되면 풍성해질 거 같은데, <야구소녀>가 릴레이의 첫 주자 같은 느낌으로 포문을 잘 열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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