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이론? 이미 슈퍼맨 영화는 00컷이 있다

조회수 2020. 6. 12.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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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

※ 새로 손보는 <저스티스 리그>는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으로 명명됐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편의를 위해 '스나이더컷'으로 통일한다. <슈퍼맨 2 - 리차드 도너 편집판> 또한 '도너컷'으로 통일한다.

출처: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 포스터

코로나19 사태로 한숨뿐인 영화계에 떨어진 대형 뉴스. 2020년 5월 20일, 워너 미디어가 자사 OTT 서비스 'HBO 맥스'로 잭 스나이더 감독의 <저스티스 리그> 감독판을 공개한다고 발표했다. <저스티스 리그>는 잭 스나이더 감독이 제작 도중 가족사로 하차하면서 조스 웨던 감독이 마저 완성한 영화. 조스 웨던이 후반 작업과 재촬영을 맡은 <저스티스 리그>는 그간 잭 스나이더 감독이 작업한 <맨 오브 스틸>,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이하 <배대슈>)과 상반된 분위기로 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팬들은 '잭 스나이더 감독의 <저스티스 리그>를 공개하라'는 '#ReleaseTheSnyderCut' 운동을 벌였고, 워너 미디어가 결국 팬들의 바람에 보답하기로 결정한 것.  

그런데 문득, 이 과정을 보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그것도 DC 영화, 심지어 슈퍼맨 영화였다. 감독 이름을 부제로 사용한 것까지 비슷하다. 바로 2006년 공개한 <슈퍼맨 2 - 리차드 도너 편집판>. 이 영화는 리처드 레스터가 마무리한 <슈퍼맨 2>를 1편의 감독이자 2편 제작 도중 강판한 리처드 도너가 연출하고자 원한 내용으로 편집, 수정한 버전이다. '한 영화 두 감독'으로 난항을 겪고 끝내 새로운 감독판까지 도달한 이 두 영화를 비교해보자.

출처: <슈퍼맨 2 - 리차드 도너 편집판> 포스터

사건의 시작, 감독 교체

제작자와의 불화|가족사+개봉 강행

<슈퍼맨 2> 리차드 도너와 <저스티스 리그> 잭 스나이더 둘 다 영화 완성을 앞두고 연출에서 하차했다. 다만 그 이유는 완전히 다르다. 리차드 도너는 '강판'이었고, 잭 스나이더는 '자진 하차'였다. 무슨 문제가 있었길래 두 감독은 영화 완성을 앞두고 떠나야 했을까.

크리스토퍼 리브(왼쪽), 리차드 도너 감독

리차드 도너는 <슈퍼맨>을 큰 그림을 그리고자 했다. 그가 기획한 <슈퍼맨>은 한 편이 아니라 두 편이 긴밀하게 연결된 2부작이었다. 때문에 1편을 촬영하면서 2편의 내용도 틈틈이 촬영했고, 모든 부분에서 2부작이 한 편으로 느껴지게끔 세밀하게 작업했다. 계속 늘어나는 제작 기간. 개봉으로 돈 벌어야 하는 제작자 피에르 스펭글러, 솔카인드 부자와 영화를 완벽하게 완성하려는 도너 감독은 끊임없이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2편의 결말을 1편으로 사용해서 <슈퍼맨>을 완성한 이후, 리차드 도너는 강판당했다. 제작진은 그 자리에 리처드 레스터 감독을 앉혔다. 리차드 레스터는 도너와 절친한 사이였음에도 '본편의 50% 이상이 직접 연출한 영화'여야 감독으로 이름을 올릴 수 있는 규정에 따라 상당 부분을 편집, 재촬영했다.

리차드 레스터 감독
잭 스나이더 감독

잭 스나이더의 하차는 더 복잡하다. 그는 <맨 오브 스틸>, <배대슈>로 DCEU(DC 확장 유니버스)의 최전방을 담당했지만, 흥행 성적은 본사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저스티스 리그>는 DC 히어로 올스타전이기에 이전 영화들 이상의 성적을 거둬야 했다. 하나 제작 막바지, 두 가지 악재가 겹쳤다. 하나는 잭 스나이더와 (제작자로 함께 일하는) 아내 데보라 스나이더의 딸이 스스로 세상을 떠난 것. 두 사람이 딸의 부재를 털어내고 제작을 재개해도 좋았을텐데, 엎친 데 덮친 격. 워너의 몇몇 임원들이 통신사 AT&T가 타임 워너(워너브러더스 모회사)를 인수하면 자신들을 정리할 것으로 보고 <저스티스 리그> 개봉을 통해 마지막 보너스를 받고자 했다. 이들은 보너스를 받기 위해 어떻게든 영화를 완성하려 했고, <배트걸> 연출을 조건으로 걸고 조스 웨든을 대타로 임명한다. 조스 웨던이 메가폰을 잡으면서 대본 수정, 상당 분량 재촬영, 음악 감독 교체 등이 이어져 <저스티스 리그>는 초기와 전혀 다른 영화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스 웨던 감독

도너 컷으로 스나이더컷 예상해보면 ?

스나이더컷이 공개되려면 적어도 1년은 걸릴 것이다. 어떤 식으로 변경될지도 아직 미지수. 그러나 그동안 공개했던 정보와 예고편, 그리고 스나이더컷의 평행이론급인 도너컷을 통해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가 어떻게 변화할지 한 번 예측해볼 수 있겠다.

코미디 대신 더 진중한 드라마로

지구 부근 우주를 날아가는 슈퍼맨의 모습이 리처드 도너가 생각한 '선한 신'의 이미지가 아닐까.

리차드 도너는 <슈퍼맨> 2부작으로 슈퍼맨을 단순한 히어로 캐릭터가 아닌 신화적 존재로 묘사했다. 슈퍼맨(칼-엘/클라크 켄트)은 지구 밖에서 온 '이방인'이나 누구보다 강한 힘과 선한 마음을 가진 '반신'. 그는 고뇌를 짊어졌음에도 결코 무겁지 않고 위트와 유머러스한 여유를 가졌다. 리차드 도너 식의 코미디는 그정도의 선을 지켰다.

그러나 도너의 대타로 선 리차드 레스터는 모험적이고 가벼운 이야기를 선호했다. 제작진이 원하는 방향도 그것에 가까웠다. 그래서 <슈퍼맨 2>에는 코미디 장면이 많다. 이 장면들이 결코 나쁜 건 아니었다. <슈퍼맨 2>는 흥행에도 성공했고 호평도 받았다. <슈퍼맨 2>의 명장면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공중전화 남자'도 레스터의 장면이었다. 그러나 도너가 생각한 슈퍼맨은 그런 코미디와 어울리지 않았고, 레스터식 코미디 장면은 도너컷에서 상당부분 삭제됐다.

스나이더컷도 비슷할 것이다. 잭 스나이더가 좋은 감독인지 아닌지를 떠나, 코미디에 능한 감독이 아닌 건 모두가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극장에서 본 <저스티스 리그>는 코믹한 장면이 적지 않다. 관객들이 빵빵 터진 '진실의 올가미' 장면, (여러 의미로 인상적인) '원더 우먼 위에 넘어진 플래시' 장면 모두 조스 웨던이 연출했다. 'DC처럼 어두운'이란 수식어의 선봉장인 잭 스나이더라면 스나이더컷에서 이런 코미디 장면을 대거 들어내고 특유의 스타일리시한 액션, 칙칙한 미래상을 추가할 가능성이 크다.


사라진 배우 되살리기

말론 브란도|키어시 클레멘스를 포함한 여러 조연

촬영은 했는데 출연하지 못한 배우들. 스나이더컷에서 만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스나이더컷 발표 이후 '다크사이드'의 목소리를 연기한 레이 포터가 처음으로 자신의 배역을 공개한 것처럼, <저스티스 리그>에 내심 아쉬웠던 배우들이 속속 목소리를 내고 있다.

<슈퍼맨> 촬영장의 리차드 도너(왼쪽), 말론 브란도

<슈퍼맨 2>에서 삭제된 배우는 누구일까. 슈퍼맨의 아버지 조-엘 역을 맡은 말론 브란도다. <슈퍼맨> 오프닝으로 시리즈의 막을 연 그였지만 출연료가 비싸다는 이유로(10분이 400만 달러였고 러닝개런티도 받았다) 2편에 출연하지 못했다. 리차드 도너는 <슈퍼맨 2>에서 아버지(조-엘)-아들(슈퍼맨)로 계승되는 신화를 강조하고자 했다. 조-엘은 인간이 되고자 하는 슈퍼맨과 갈등을 빚고, 악당 조드 입에서 계속 거론되는 등 2편에도 영향력이 있는 캐릭터였다. 제작진은 말론 브란도 대신 어머니 라라-엘, 수잔나 요크를 출연시켰다. 도너컷에선 말론 브란도의 촬영본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라라-엘 대신 조-엘을 등장시켜 신화적 메시지를 재차 강조했다.

스나이더컷에선 어떤 배우들이 등장할까. 앞서 말한 다크사이드의 레이 포터(목소리)와 또다른 히어로 아톰을 연기한 오리온 리, 마샨 맨허트 역의 해리 레닉스는 출연 확정됐다. 더 추측해보면 플래시(에즈라 밀러)의 여자친구 아이리스를 맡은 키어시 클레멘스도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이들이 말론 브란도처럼 영화의 핵심 모티브와 관련돼 보이진 않으나(잭 스나이더 전적으로 보아 이름만 같을 수도 있고), 캐스팅 소식을 듣고 기대했던 팬들에겐 등장만으로도 선물일 것이다.

<저스티스 리그> 삭제장면에 등장한 키어시 클레멘스(오른쪽)

팬들이 이끈 결과, 윈윈할 수 있을까

<슈퍼맨 2> 도너컷이나, <저스티스 리그> 스나이더컷이나 가장 중요한 점은 팬들이 거둔 성과라는 것이다. <슈퍼맨 2>가 26년 만에 도너컷로 돌아온 건 아이러니하게도 리차드 도너가 원한 게 아니다. 2001년 대량의 <슈퍼맨> 관련 푸티지가 발견한 워너가 리차드 도너에게 새로운 <슈퍼맨> 버전을 제안했을 때, 도너는 수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고 완곡한 거절 의사를 표시했다.

출처: <슈퍼맨> 관련 푸티지

그러나 리차드 도너가 원한 <슈퍼맨 2>는 지금과 다르단 건 20여 년간 팬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사실. 팬들은 청원 사이트를 개설하고 워너브러더스에게 '리차드 도너 감독판을 만들어달라'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영원한 '로이스 레인' 마곳 키더도 다른 버전이 있었음을 언급하며 팬들의 행보에 힘을 실었다. 워너는 팬들의 목소리를 무시하지 않고, <슈퍼맨 2>와 직접적으로 이어지는 <수퍼맨 리턴즈>가 개봉한 2006년 도너컷도 함께 공개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저스티스 리그> 스나이더 컷 제작 결정을 고스란히 닮았다. 제작하는 과정에서 감독이 교체됐고, 새로운 버전이 존재하는 것이 알려지며, 팬들이 새로운 버전을 지속적으로 요구한 끝에 마침내 새로운 판본이 공개되는 것. 팬보이가 합심하면(아니면 영화를 돈 때문에 졸속제작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단순히 '팬심'이 해냈다고 보기 어렵다. 둘 다 운때가 좋았다. 도너컷은 <수퍼맨 리턴즈> 개봉을 앞두고 팬보이들의 충성심을 다시 일으킬 방아쇠였고, 스나이더컷은 코로나19 사태에 일어난 세계적인 OTT 붐, 할리우드 후반작업 업체의 일거리 하락 등이 역으로 기회가 된 것이니까.

워너 미디어와 잭 스나이더는 <저스티스 리그> 새로운 버전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투입될 금액은 약 3천만 원. 과연 스나이더컷이 도너컷의 뒤를 잇는 영화계의 보물이 될지, 아니면 괜히 건드렸다 부관참시만 하게 될지 지금은 알 수 없다. 다만 팬들의 요청을 수락해 전 세계의 이목을 끈 워너, 끊임없이 요구해 마침내 새로운 버전을 받아들게 된 팬들 모두 윈윈할 수 있는 결과가 나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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