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맥어보이가 촬영 내내 깔창을 신었어야 했던 이유?

조회수 2020. 6. 2.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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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문선우 기자
출처: <비커밍 제인>

『오만과 편견』 저자 제인 오스틴의 초기 생애와 사랑을 담은 영화 <비커밍 제인>이 스크린을 찾았다. 제임스 맥어보이의 리즈시절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유명한 이 영화는 시대극과 로맨스를 좋아하는 국내 팬들에게 꾸준히 언급되며 사랑받아 왔다. 소품부터 의상, 촬영지인 아일랜드의 전원 풍경이 배우들의 호연과 어우러져 오랜 여운을 남기는 <비커밍 제인>의 소소한 비하인드를 모아봤다.


출처: <비커밍 제인>

제임스 맥어보이는 영화 촬영 내내 3인치(약 8cm) 높이의 깔창을 신었어야 했다. 그의 실제 키는 170cm로, 173cm인 앤 해서웨이보다 작았기 때문이다.


출처: <비커밍 제인>
출처: <비커밍 제인>

영화는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촬영이 진행됐는데, 주로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아일랜드의 봄‧여름은 날씨가 몇 분 안에 변할 정도로 변덕스럽기로 유명한데, 크리켓 장면을 촬영하는 데 있어 굉장히 애를 먹었다고. 자세히 살펴보면 크리켓을 하는 숏에서 빛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출처: <비커밍 제인>

그레샴 부인 저택에서 열린 무도회 장면에는 300명의 엑스트라가 동원됐다. 촬영을 위해 스텝들들도 모두 엑스트라와 마찬가지로 가발과 의상을 입고 움직여야 했다. 촬영장에는 당시 아일랜드 예술부 장관 존 오도노후가 방문했는데, 영화 제작으로 116명의 승무원과 17명의 배우에게 일자리가 제공되고 제작비로 116만 유로가 지출되는 등의 방식으로 아일랜드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이 장면 보고 설레지 않은 사람 없잖아요...

출처: <비커밍 제인>

래드클리프 부인을 만나고 온 저녁, 제인은 ‘첫인상(First Impression)’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이 소설은 훗날 제인 오스틴의 대표작이 된 『오만과 편견』의 초안이다.


재롤드 감독은 제인 오스틴을 타 작품에서 그려지는 천재 작가로서의 모습보다는 평범한 20대 여성으로 그리길 원했다. 실제로 제인 오스틴은 삶에 활력을 지니고 있으며 지적이고 독립적인 여성이었기 때문. 제인 오스틴 역에는 케이트 윈슬렛, 나탈리 포트만, 키이라 나이틀리가 고려됐지만 재롤드는 차별화하기 위해 파격적으로 미국 배우인 앤 해서웨이를 캐스팅했다. 14살 때부터 제인 오스틴의 열렬한 팬이었다는 앤 해서웨이는 제인의 작품을 모두 읽는 것을 비롯해 수화, 서예, 피아노 연주 등을 배웠으며 촬영 시작 한 달 전부터 영국으로 건너가 생활했다.


출처: <어톤먼트>

키이라 나이틀리의 경우, 제임스 맥어보이와는 <비커밍 제인>으로 아쉽게 만나지 못했지만 그해 개봉한 <어톤먼트>에서 호흡을 맞췄다. 또한 영화 <오만과 편견>(2005)에서 주인공 엘리자베스 베넷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출처: <화이트 티>
출처: <화이트 티>

제임스 맥어보이는 줄리언 재롤드 감독과 두 번째 협력이었다. 둘은 2002년 TV 미니시리즈 <하얀 이빨>(white teeth)로 한 차례 만난 바 있다. 맥어보이는 재롤드와 또 한 번 일하기를 희망했기 때문에 톰 르프로이 역 캐스팅 제안을 받아들였다.


*<비커밍 제인>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톰 르프로이와 제인 오스틴

<비커밍 제인>은 제인 오스틴의 생애를 바탕으로 한 전기 영화이지만, 톰 르프로이와의 로맨스는 대부분의 각색을 거쳐 완성됐다. 두 사람이 실제로 알았던 기간은 1795년 말부터 1796년 1월 중순까지 약 한 달이었다. 그 기간 동안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그들은 각자의 위치와 현실을 고려했을 때 결혼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고, 곧 헤어졌다. 영화의 엔딩은 시간이 흘러 두 사람의 재회를 그리지만 실제로 두 사람은 헤어짐 후 다시 만나지 못했다. 톰 르프로이는 말년에 제인 오스틴과의 관계를 물었던 자신의 조카에게 제인 오스틴을 사랑했으나 그것은 ‘젊은 소년 다운 방식(young and boyish way)의 사랑’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출처: <비커밍 제인>

출처: <비커밍 제인>

톰 르프로이는 제인 오스틴과 헤어진 후 1799년, 아일랜드 출신의 상류층 여성과 혼인했다. 두 사람은 사이에 7명의 자녀를 두었으며, 영화의 엔딩에서 알 수 있듯이 자녀 중 한 명의 이름을 제인으로 지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제인 오스틴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는 사실은 확실하지 않다. 할머니인 제인 폴 부인의 이름에서 유래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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