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 짱팬이라는 2000년대 톱스타

조회수 2020. 1. 14.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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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유은진 기자
출처: OBSERVER

걸어 다니는 이슈메이커였던 2000년대 최고의 스타, 시에나 밀러가 <21 브릿지: 테러 셧다운>으로 국내 스크린을 찾았다. 인상 깊은 연기를 펼친 배우라기보단, 할리우드 가십 기사의 단골손님으로 더 많은 주목을 받았던 그녀는 최근 몇 년간 비평가들에게 호평을 받은 영화에 줄줄이 출연하며 필모그래피에 무게를 더해왔다. 루머와 가십에 갇혀 살았던 20대를 딛고, 배우로서 믿음을 더해가고 있는 시에나 밀러. 그녀에 대한 몇 가지 사실을 모았다.

출처: <21 브릿지: 테러 셧다운>

태아 시절부터
배우를 꿈꿨다?

출처: VOGUE

모델이자 데이빗 보위의 개인 비서, 배우 지망생들의 연기 선생님으로 일했던 어머니로부터 맞춤형 DNA를 물려받은 시에나 밀러에게 배우란 운명과도 같은 일이었으니. 시에나 밀러를 뱃속에 품고 있던 그녀의 어머니가 진통을 느낀 장소가 바로 극장이었다. 시에나 밀러는 “어머니가 <호두까기 인형>을 보던 중 진통을 느꼈다더라. 내가 그때 세상 밖으로 나오려고 발길질을 했던 모양”이라 밝히며 태아(!) 시절부터 배우를 운명의 직업으로 삼았음을 밝혔다. 시에나 밀러의 연기 모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출처: <레이어 케이크>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영국 런던에서 자란 시에나 밀러는 영국에서 배우로서의 기본기를 다졌다. 그녀의 데뷔작은 영국 영화 <사우스 켄싱턴>(2001). 조연으로 출연한 뒤 곧바로 TV 시리즈 <베드타임> <킨 에디>에 비중 있는 역할로 캐스팅되어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할리우드가 시에나 밀러에게 주목하기 시작한 건, 그녀가 <킹스맨> 시리즈의 감독 매튜 본이 연출한 범죄 스릴러 <레이어 케이크>에 출연하고서부터. 평범한 삶을 살고 싶어 하는 마약 브로커의 일생을 다룬 영화로 다니엘 크레이그, 톰 하디, 샐리 호킨스 등 영국 유명 배우들의 16년 전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시에나 밀러는 마약상들의 마음을 흔들어놓는 팜므파탈 타미를 연기했다.

배우가 되기 전엔
모델로 일했다

패션지들이 유난히 시에나 밀러를 사랑한 이유. 시에나 밀러는 모델 출신 배우다. 데뷔 초 모델 일을 겸하며 코카 콜라의 얼굴이 되기도 했고, 이탈리아 유명 잡지의 지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2000년대 초중반 패션계 트렌드였던 보호 시크 스타일, 보헤미안 시크 스타일의 시작에 선 인물이기도 하다. 독자적인 개성으로 당시 유행을 선도한 시에나 밀러는 ‘제2의 케이트 모스’라고 불리며 할리우드의 패션 아이콘으로 활약했다.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
주드 로

시에나 밀러의 인생을 언급할 때 떼어놓을 수 없는 한 사람, 바로 주드 로다. 두 사람은 1960년대 동명 영화를 리메이크한 <나를 책임져, 알피>에서 커플로 출연했고, 실제 연인이 됐다. 영화가 개봉한 해 크리스마스에 약혼하며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커플이 된 두 사람. 문제가 있다면 그로부터 반년 후, 주드 로가 유모와 불륜을 저질렀다는 거다.

(왼쪽부터) 주드 로와 시에나 밀러의 데이트 사진, <나를 책임져, 알피>

주드 로는 즉각적으로 언론을 통해 시에나 밀러에게 사과했으나, 시에나 밀러는 파혼을 선언하는 것으로 제 마음을 전했다. 시에나 밀러가 할리우드의 가십 걸로 떠오르게 된 것 역시 이때부터. 주드 로의 바람에 분노한 그녀가 올랜도 블룸, 다니엘 크레이그, 제임스 프랭코, 제이미 도넌, 조쉬 하트넷 등과 만났다는 열애설이 가십지의 1면을 장식했다. 두 사람이 할리우드의 한 획을 그은 커플로 남은 건 이 난리 통을 겪고도 재결합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2009년 12월 재회했다. 결혼설까지 돌았으나, 2년 후 다시 남남이 됐다.

파파라치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다

“파파라치들은 집 밖에 늘 앉아있었다. 어딜 갈 때마다 12대의 차가 따라왔다. 내 모든 삶이 기록되고 조작되고 있었다” 주드 로의 연인, 시에나 밀러의 사생활은 파파라치들의 생계 수단에 가까웠다. 파파라치들이 본격적인 만행을 펼치기 시작한 건 2008년부터. 미국 석유 부호가의 손자이자 배우, 그리고 유부남인 발타자 게티와 시에나 밀러가 불륜 사이였다는 점이 밝혀지자 파파라치들은 시에나 밀러를 표적으로 삼고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카메라 안에 담았다.

이에 가만히 있을 시에나 밀러가 아니었으니. 그녀는 라이터 크기의 카메라로 자신을 미행하는 파파라치들을 몰래 촬영했고, 이를 증거 삼아 법정에 출두했다.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침범한 파파라치 에이전시, 빅 픽처스를 고소한 시에나 밀러는 그들이 자신의 “사진만 찍은 것이 아니라 육체적으로 겁을 주고, 언어폭력까지 행사”한 사실을 입증했다. 시에나 밀러는 모욕, 괴롭힘 관련 법에 따라 파파라치 에이전시를 고소해 승소를 거둔 최초의 배우가 됐다.

<나를 책임져, 알피>의
니키를 잇는
인생 캐릭터들

출처: (왼쪽부터) <팩토리 걸> 시에나 밀러, 에디 세즈윅

시에나 밀러는 스타의 거품을 벗고, 배우로서 인정받기 위해 다양한 작품에 도전했다. 그녀가 ‘주드 로의 연인’이란 수식어를 벗고 제 이름만으로 당당히 승부를 보기 시작한 건 <팩토리 걸>에 출연하고서부터다. <팩토리 걸>은 앤디 워홀의 연인이자, 1960년대를 뒤흔들었던 팝아트의 상징 에디 세즈윅의 일생을 다룬 영화다. 시에나 밀러는 예술가로서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앤디 워홀의 그늘에 가려져 살았던 에디 세즈윅의 공허한 내면을 입체적으로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평단의 호평을 받은 시에나 밀러는 이 작품을 통해 2008년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의 신인상에 이름을 올렸다.

출처: <더 걸>

2012년 <HBO>에서 제작한 TV 영화 <더 걸> 역시 눈여겨볼만하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그리고 그가 집착한 여성 배우 티미 헤드런의 관계를 조명한 영화다. 히치콕 감독이 연출한 <새>와 <마니>에 출연한 티미 헤드런은 “히치콕이 날 강박적으로 소유하려 했고, 그의 요구를 거절한 후엔 다른 영화에 출연할 수 없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더 걸>에서 티피 헤드런을 연기한 시에나 밀러는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그리고 골든글로브 시상식의 TV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됐다.

출처: <폭스 캐처>
출처: <아메리칸 스나이퍼>
출처: <잃어버린 도시 Z>

이후 그녀는 전 세계 영화제, 시상식에서 인정받은 작품으로 관객을 찾기 시작했다. 전쟁 영웅이었지만 가장으로선 인정받지 못한 저격수 크리스 카일의 실화를 다룬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와 데이빗 슐츠 살인사건의 범인, 존 듀폰으로 변신한 스티브 카렐의 웃음기 쏙 뺀 연기로 화제를 모았던 <폭스 캐처>. 시에나 밀러는 2014년 대표 화제작이었던 두 영화에 모두 얼굴을 비쳤다. 2015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으며 데뷔한 <하이-라이즈>와 인디 영화 <미시시피 그라인드> 역시 그녀의 주연작. 2016년엔 제임스 그레이 감독의 모험 드라마 <잃어버린 도시 Z>에 출연해 로버트 패틴슨, 찰리 허넴, 톰 홀랜드와 호흡을 맞췄다.

<지.아이.조-전쟁의 서막>에
출연한 걸 후회한다?

시에나 밀러의 대표작 중 하나는 <지.아이.조-전쟁의 서막>이다. 시에나 밀러는 인류를 위협하는 테러리스트 군단 코브라의 일원, 배로니스를 연기했다. 안타깝게도 이 영화는 최악의 영화를 선별하는 골든 라즈베리 시상식에 여섯 부문이나 노미네이트되었고, 시에나 밀러는 최악의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시에나 밀러는 해외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지.아이.조-전쟁의 서막>은 나와 잘 맞지 않는 영화”였다고 털어놨다. “총을 쏘는 장면을 촬영할 때마다 눈을 깜빡거려 선글라스를 쓰는 게 필수였고, 위협적으로 보이기 위해 온갖 의상을 입어봐야 했”던 등 여러모로 고충이 많았다고. 결국 후속작 <지.아이.조2>에선 시에나 밀러를 만나볼 수 없었다.

SNS를 하지 않는다

출처: GRAZIA

시에나 밀러는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 그 어떤 소셜 미디어 계정도 운영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트인낭’ 형, ‘SNS는 인생의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 시에나 밀러는 소셜 미디어가 “영혼 최악의 부분을 부채질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한때 인스타그램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게 제 영혼 최악의 부분을 부채질했죠. 중독성이 엄청 강하더라고요.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수천 명의 팔로워가 늘어나 있었고, 늘 '사랑해요', '환영해요' 라는 등의 인사말을 받았어요. 언젠가부터 이 형태 없는 사랑에 부풀게 됐는데. 그러다 보니 그만둬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SNS는) 믿을 수 없을 만큼의 외로움을 느끼게 만들어요.

-2015년 <보그>와의 인터뷰 중

봉준호 감독 시상 전문?

출처: 제23회 할리우드 필름 어워즈 현장

시에나 밀러는 봉준호 감독과 인연이 짙은 듯하다. 2019년 11월, 봉준호 감독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개최된 제23회 할리우드 필름 어워즈에서 <기생충>으로 필름메이커 상을 수상했다. 그의 시상자로 등장한 이가 바로 시에나 밀러. 그녀는 “이렇게 놀라운 사람에게 필름메이커 상을 전달할 수 있다니 영광이다”라고 말하며, 봉준호 감독을“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과 어두운 유머로 마스터피스 <기생충>을 만든 천재 작가이자 감독”이라고 소개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얼마 전 열린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에게 외국어영화상 트로피를 전한 이 역시 시에나 밀러였다는 것. 오는 2월 10일 열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시에나 밀러와 봉준호 감독의 투샷을 볼 수 있을지, 눈여겨봐도 좋겠다.

출처: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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