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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차연구소

들어는 봤나 ‘새나라 자동차’, 그때 그 시절 자동차 이야기

6월은 누군가에겐 방학으로, 또 누군가에겐 무더운 여름으로 인식되는 달인데요. 한편으론 6월 25일, 한국전쟁이라는 가슴 아프고도 잊지 말아야 할 역사 기록이 담긴 월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자동차 포스트에서 갑자기 한국 역사를 언급하니 약간은 아리송하실 텐데요. 사실 한국 역사와 자동차 산업의 역사는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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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은 누군가에겐 방학으로, 또 누군가에겐 무더운 여름으로 인식되는 달인데요. 한편으론 6월 25일, 한국전쟁이라는 가슴 아프고도 잊지 말아야 할 역사 기록이 담긴 월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자동차 포스트에서 갑자기 한국 역사를 언급하니 약간은 아리송하실 텐데요. 사실 한국 역사와 자동차 산업의 역사는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6.25가 발생했던 1950년을 기점으로 우리나라의 많은 것이 바뀌었고, 더불어 자동차 산업 역사 역시 큰 영향을 받은 것이죠. 그렇다면 1950년대에 대체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 이후에 자동차 산업은 어떤 과정을 겪었던 것인지 저희 첫차 연구소와 함께 알아보도록 하실까요?


1955년  우리나라 자동차 역사의 서막이 열리다

1955년은 우리나라 자동차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해였습니다.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의 모체가 되었던 회사들이 설립된 해였으니까요.

 

국제 차량 제작소는 최무성이 동생들과 함께 창업한 회사로, 대한민국에서 제작된 첫 번째 차량으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시발 자동차가 탄생한 곳입니다. 미군 부대에서 폐기되어 나온 지프의 부품들과 드럼통을 이용해 만들어졌는데요. 천막집을 공장 삼아 차를 생산했을 정도로 열악했죠.

하동환 자동차 제작소는 드럼통 버스 왕이라고 불리던 하동환이 설립한 회사입니다. 그 역시 미군 부대가 버린 군용 트럭을 드럼통과 함께 개조하여 버스를 만들었죠. 하동환 자동차 제작소는 버스를 규격화하고 대량생산하여 회사를 크게 키웠습니다. 그리고 이 회사는 이후 쌍용의 모체가 됩니다.

부산에서는 김제원, 김창원 형제의 신진 자동차가 설립되었습니다. 역시 미군에서 불하 받은 폐차 섀시를 재생하여 버스를 만들었죠. 이후 1960년에는 전포동에 버스 공장을 완공하며 확장해 나갑니다.


1962년  각종 자동차 공업 회사들이 등장하다

5.16 군사 정변 이후, 국가 재건을 위한 방안으로 자동차 공업 보호 육성법을 제정, 공포하였습니다. 해외 자동차 제조 업체가 대한민국 국내에서 직접 사업을 하는 것을 금지하는 정책으로, 앞으로 외국 브랜드들은 국내의 지역 업체와 함께 협력 벤처 형태로 운영해야 했습니다.

 

새나라 자동차는 이 시기를 틈타 닛산과 제휴를 맺어 부평에 대규모 공장을 세우고 닛산의 블루버드 모델을 부품 수입하여 생산하기 시작합니다. 이 모델은 새나라 자동차라는 이름으로 시장에 출시되었죠. 부평에 공장이 있다는 말에 무언가 떠오르시나요? 네, 새나라 자동차는 이후 한국GM의 전신이 됩니다.

1944년에 설립되었던 경성정공은 1955년, 기아산업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아직 자동차 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지 않은 기아산업은, 삼천리호 자전거를 한국 최초로 생산해 큰 성공을 거뒀죠. 삼천리자전거와 기아와의 연결고리는 서울 모터쇼 등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었죠?

그리고 여기서부터 기아가 탈것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던 걸까요? 1962년, 일본 동양공업과 기술을 제휴하여 삼륜 소형 화물차를 생산합니다. 동양공업은 이후 마쯔다 자동차가 되죠. 1964년에는 훗날 기아자동차의 전신이 되는 아시아 자동차도 설립됩니다.


1965년  새나라 자동차, 신진공업에 인수되다

부산 지역의 버스를 책임지며 승승장구하던 신진공업은 1963년에 신성호라는 이름으로 첫 세단을 출시하며 승용차 시장을 노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신성호는 새나라 자동차에 비하면 높은 가격에 조악한 품질로 판매량 역시 항상 밀렸었는데요.

 

하지만 새나라 자동차가 돈이 얽힌 각종 사고들과 특혜 시비로 사세가 기울자 신진공업이 새나라 자동차가 갖고 있던 인천 부평공장을 인수하게 됩니다. 이후 신진 자동차 공업으로 이름을 바꾸고 토요타와 기술제휴를 맺으며 본격적으로 자동차 생산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하죠.

 

1966년엔 코로나, 1967년엔 크라운과 퍼블리카를 출시하며 국내 승용차 시장을 장악하다시피 했습니다.


1967년  현대자동차가 등장하다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1940년부터 자동차 정비공장을 운영했었습니다. 보통 수리 기간이 오래 걸리던 다른 정비소와는 달리, 빠른 수리로 입소문을 타 순조롭게 운영되었죠. 이후 1946년, 현대자동차 공업사와 1947년 현대토건사를 설립했고, 이 두 회사가 바로 1967년에 등장한 현대자동차의 모체가 되었습니다.

포드 모터 컴퍼니와의 기술 제휴로 설립된 현대자동차는 이듬해 포드 코티나를 제조, 출시하며 자동차 제조 회사로서의 첫걸음을 떼게 됩니다.


1969년 국내 최초로 민간용 지프가 탄생하다

드럼통으로 버스를 만들던 하동환 자동차 제작소는 1963년 하동환 자동차 공업(주)으로 법인을 출범한 뒤 꾸준히 버스 위주의 모델을 생산하며 회사를 키워냅니다. 이후 베트남과 보르네오 등에도 버스를 수출하며 성장세를 이어나갔습니다.

 

그러다 1967년에 발표한 국내 자동차 보호 육성안에 따라 신진 자동차 공업에 계열사로 들어가게 되며 하동환 자동차 공업에서 생산한 자동차들에 신진의 마크가 붙게 되는 일도 일어났죠. 이 과정에서 신진 자동차의 이름으로 민간 지프가 탄생하게 되는데요. 이 모델은 AMC(America Motor Company)의 부품을 들여와 만든 지프로, 코란도의 시초로 언급되기도 합니다.


1972년  신진 자동차, 토요타와 이별 후 GM과 연을 맺다

신진 자동차는 새나라 자동차를 인수한 이후부터 줄곧 토요타와 연을 이어오며 좋은 관계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970년, 중국이 저우언라이, 즉 주 4원칙을 발표하게 되는데요. 이는 '대만과 국교를 맺고 있는 나라와 관계가 있는 나라와는 거래하지 않겠다'라는 내용으로, 토요타는 중국과의 거래를 위해 신진 자동차와의 연을 끊기에 이릅니다.

 

결국 신진 자동차는 1972년, 미국의 제너럴모터스와 새롭게 인연을 맺게 되는데요. 미국 GM과 출자금을 50:50으로 나눠 GM코리아를 설립한 뒤 부평공장에서 각종 자동차들을 공격적으로 양산하기 시작합니다.


1973년 기아 자동차의 고향, 소하리 공장 완공

지금도 현역으로 자동차들을 생산하고 있는 경기도 광명시의 소하리 공장이 1973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만들어진 자동차 종합 생산 공장이자, 기아자동차의 시작이 된 공장이죠. 이 공장에서 기아는 당시의 대표 모델 브리사를 제작하며 스스로를 업계 최강자의 자리에 올려놓게 됩니다.


1975년 한국 자동차 역사의 첫 번째 독자적 모델 출시

현대자동차와 포드와의 관계는 70년대에 들어서면서 결렬로 이어졌습니다. 결국 현대자동차는 자립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죠. 1973년부터 독자적인 모델을 준비하기 시작했는데요. 이탈리아의 자동차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에 디자인을 의뢰하는가 하면, 영국 유력 자동차 회사의 부사장이었던 조지 턴불을 영입하고, 일본 미쓰비시 자동차 공업에 기술 협력을 받는 둥 안팎으로 새로운 변화를 꾀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모델이 바로 전설적인 자동차, 포니입니다. 이전까지는 해외의 출시 모델을 받아와 조립하거나 그대로 생산해 왔던 것과는 다르게, 포니는 완전히 독자적인 모델이었죠.

 

포니는 국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큰 성공을 거두고, 이후 해외 수출도 이뤄낸 기특한 모델이었습니다.


1976년 GM코리아, 새한 자동차로 새 출발

신진 자동차가 GM코리아를 설립하여 변신한 뒤 한 해도 지나지 않아, 세계적으로 큰 위기였던 오일쇼크로 인해 자동차 판매가 부진하면서 회사에는 부채가 누적되기 시작합니다. 결국 신진 자동차는 자신들이 갖고 있던 GM코리아의 지분 50%를 전부 산업은행에 넘기게 되죠.

 

산업은행은 GM코리아의 이름을 새한 자동차로 바꾸고 새 출발을 시작합니다. 앞서 언급한 아시아 자동차 역시, 이해에 기아자동차에게 인수되는 사건을 맡게 됩니다.


1977년 동아 자동차 탄생

상공부의 국내 자동차 보호 육성안에서 벗어난 하동환자동차공업은 70년대 들어 변화한 자동차 업계의 변화를 기민하게 읽어냅니다. 특장차의 수요가 늘어난 것인데요. 이에 하동환자동차는 미국과 일본의 회사와 기술 제휴를 하며 각종 특장차를 만들어 냅니다.  

 

특장차 전문 업체로 자리를 굳히게 된 하동환자동차공업은 1977년, 회사 이름을 동아 자동차로 변경하게 됩니다. 이후 평택에 30만 평의 대규모 공장을 세우고, 고속버스 등을 속속 발표하면서 성공적으로 기업을 확장하게 됩니다.


1981년 역사적인 코란도의 탄생

코란도의 전신은 앞서 이야기했듯, 1969년에 출시된 신진 지프입니다. 이 모델은 민간에 출시되어, 군사정권의 관용차로도 이용되어 거리의 모습을 만들어내던 자동차였죠.

 

이후 신진은 지프만을 위한 신진지프 자동차 공업을 따로 설립하고 꾸준히 지프를 생산하게 됩니다. 이 행보는 70년대 말까지 꾸준히 이어졌고, 드디어 1980년 말, 초기 코란도의 외형을 완벽히 갖고 있는 신진 자동차 브랜드의 마지막 지프인 슈퍼스타가 발매됩니다. 이것이 코란도의 처음을 신진 지프와 연결하는 이유죠.

 

이듬해 신진지프 자동차 공업은 주식회사 거화로 사명을 변경한 뒤 지프의 판매에 주력하게 됩니다. 1983년에는 코란도라는 이름을 상표 출원하며 공식적으로 코란도 역사의 시작이 이어지지만, 사실상 지프 슈퍼스타의 보닛 위에 코란도라는 이름이 새겨진 것 외에는 다른 부분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1983년 대우자동차 주식회사의 첫 등장

1967년 소규모 사업체로 시작한 대우가 70년대를 겪으며 각종 사업을 키워나가며 대기업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죠. 그리고 1978년, 산업은행의 GM코리아 보유 지분을 인수하게 되었고, 이것이 대우자동차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1983년, GM은 대우에게 경영권을 넘겨주었고, 대우는 곧바로 GM코리아의 이름을 대우자동차 주식회사로 변경합니다.


1984년 거화 코란도에서 동아 코란도로

1984년, 코란도를 생산하던 거화가 부도를 맞게 됩니다. 이에 하동환자동차공업이였던 동아 자동차가 거화를 인수하게 되는데요. 서로 얽히고설킨 이 회사들의 오랜 역사를 알고 나면 이 인수가 참 아이러니해 보이기도 하죠. 

 

동아 자동차에 인수된 코란도는 지프에서 벗어나 코란도라는 독자적인 이미지로 대중들에게 인식되게 됩니다.


1986년 현대자동차의 북미 공략 시작하다

현대자동차는 이미 70년대부터 꾸준히 해외에 자동차를 수출하기 시작했습니다. 남미 에콰도르에 포니 5대를 수출한 것이 첫 발자국이었죠.  

 

그때 역시, 북미지역은 국내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고 좋은 시장이었습니다. 이에 현대는 북미 시장을 공략하기로 결정했죠. 캐나다 퀘백 주의 몬트리올 근처에 현지 공장을 착공하기 시작한 것이 1986년이었습니다. 3년 만에 공장은 자동차 생산을 시작했죠.

 

하지만 이 공장은 7년여 만에 가동을 중지하게 됩니다. 미국 시장에서 현대의 자동차들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아, 판매 실적 역시 부진했기 때문이죠. 결국 이 공장은 착공한지 10년 만인 1996년 매각됩니다.


1988년 쌍용자동차의 등장

1986년, 동아 자동차는 쌍용 그룹의 정유 라인인 쌍용정유가 인수하게 됩니다. 이듬해 자동차 기술연구소를 평택에 설립한 쌍용은, 인수한 동아 자동차의 사명을 쌍용자동차(주)로 바꾸고 본격적인 경영을 시작합니다.

 

5도어 왜건인 코란도 훼미리의 출시로 시작된 쌍용의 행보는 이후 무쏘, 체어맨, 이스타나 등을 발매하며 꾸준히 성장해 갑니다.


1992년 해외에서 약진하는 현대자동차

1990년대, 캐나다에서 치욕스럽게 쫓겨난 뒤 현대자동차는 새로운 방안에 몰두합니다. 엘란트라는 1993년 호주 베스트 카에 선정되고, 아반떼가 아시아 퍼시픽 랠리에서 우승하는 등의 성과를 거두지만, 여전히 미국 내에서 현대자동차의 평가는 나아질 기미가 없었죠. 이에 현대자동차는 당장의 판매보다 장기간에 걸친 품질과 디자인 연구에 투자를 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이러한 투자는 2000년대 들어서 결실을 맺게 되는데요. 각종 조사에서 토요타의 뒤를 이어 혼다와 함께 브랜드 품질 2위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이 그것입니다.


1995년 이건희 회장의 오랜 꿈, 삼성 자동차와 모터파크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이 자동차 마니아라는 사실은 그리 새로운 뉴스도 아니죠. 용인 에버랜드 옆에 건설되어 있는 용인 스피드웨이는 회장님을 위한 전용 놀이터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니까요. 이 스피드웨이는 1995년에 용인 모터파크라는 이름으로 처음 개장했는데, 개장 당시에는 국내 유일의 온 로드 서킷이었습니다. 덕분에 온갖 경기가 모두 이곳에서 개최되었죠. 용인 지역에 자동차 센터와 튜닝 샵들이 많은 이유가 바로 이 모터파크 때문입니다.

 

이렇게 서킷까지 만들 열정이었으니, 자동차 회사를 하나 차리는 것 역시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겁니다. 이미 1987년부터 이건희는 승용차 사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1994년에 닛산 자동차와 기술제휴를 맺은 삼성은 이듬해 삼성 자동차를 설립하고, 1998년부터 SM5를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SM5는 이건희의 욕심대로 단단하게 만들어져, 출시 직후 현대자동차를 누를 정도로 화제를 모았었죠. 지금도 중고차 시장에서 호평을 받을 정도입니다.


1997년 외환위기 여파를 직격으로 맞다

주식회사로 전환한지 4년여 만에 막대한 적자를 안게 된 쌍용자동차는 1998년, 대우그룹에 인수됩니다. 쌍용자동차의 적자는 이윽고 쌍용그룹 전체에 번져 그룹 자체를 공중분해 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했죠.

 

대우그룹 역시 쌍용자동차를 인수한 지 1년 만에 금융 위기로 공중분해됩니다. 쌍용자동차를 인수한 뒤 자사에 부족하던 SUV와 RV 라인을 채운 대우자동차는 이후 무리한 확장 경영으로 중심을 잡지 못하다가 경영 악화를 입게 되었던 거죠. 결국 대우자동차는 GM에게서 독립한 1993년에서 채 10년도 되지 않은 2001년, 아예 GM에게 매각됩니다.

 

이건희 회장의 꿈으로 만들어진 삼성자동차 역시 외환위기의 공격에서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누적된 적자로 인해 법정관리 신청을 받게 되었죠. 이후 2000년에 르노 자동차가 삼성 자동차의 승용차 부분을 인수한 뒤 삼성이라는 이름을 계속 쓰는 조건으로 국내에서 영업을 시작합니다.

 

90년대 말, 부실한 경영 실적 등으로 위기설이 돌던 기아자동차 역시 외환위기를 이기지 못하고 자금난에 허덕이다 1997년, 결국 부도 처리 후 법정 관리를 받는 신세가 됩니다. 국제입찰 시장에 올라가게 된 기아를 낙찰한 것은 다름 아닌 현대자동차였죠. 현대자동차그룹의 시작이었습니다.


이렇게 1950년대에서부터 1990년대까지, 20세기 중반의 자동차 산업의 역사를 살펴보았습니다. 사실상 우리나라 경제 발전이 바로 이 20세기 중반에 주로 일어난 만큼, 자동차 산업 역시 어마어마하게 격동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요. 전쟁의 잔해 속에서 아무것도 없었던 기반 위에서 해외 수출을 이뤄낼 정도로 성장한 뒤 다시 외환위기를 맞기까지. 자동차는 우리 곁에 항상 함께 했습니다.

앞으로 21세기의 자동차 역사는 어떻게 흘러갈까, 궁금하지 않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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