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마리몬드 대표·디렉터·홍보실장이 말하는 '기업의 착한 성장'

조회수 2017. 7. 9. 14:14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마리몬드 인터뷰

대학생들의 무모한 열정으로 시작된 기업이 4년 만에 연매출 40억원대 중소기업으로 성장했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꽃으로 형상화 해 개개인의 존엄성을 되새기게 만든 꽃 할머니 프로젝트로 유명해진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 마리몬드의 이야기다.


지난 해에는 수지, 박보검 등 톱 셀럽들이 마리몬드 핸드폰 케이스 및 의류를 착용해 팬들 사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마리몬드의 가파른 성장의 중심에는 이 기업이 가진 철학이 있다. '인간은 누구나 존귀하다'라는 메시지. 소비자들은 마리몬드 제품을 구매함으로써, 그 제품이 가진 메시지까지 같이 손에 쥘 수 있게 됐다.

마리몬드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께 꽃을 부여해드리는 휴먼브랜딩 프로젝트 꽃할머니를 동해 시즌 플라워를 선정, 이를 바탕으로 플라워 패턴을 디자인한다.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담긴 패턴이 사람들의 일상을 수놓음으로 할머니를 기억하는데 의의를 가진다. (위부터)김복동 목련 할머니와 이순덕 동백꽃 할머니와 마리몬드 플라워 패턴이다.

'꽃 할머니 프로젝트'는 마리몬드의 가치철학을 알린 주요 프로젝트이긴 하지만, 이것이 마리몬드의 전부는 아니다. 마리몬드는 그들이 생산하는 제품과 컨텐츠를 통해 재조명이 필요한 또 다른 존재들의 존귀함을 일깨우고, 온 오프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서로에 공감하고 위안하는 공간으로서의 재도약을 서서히 진행 중이다.


목련 꽃 할머니 전시를 통해 '꽃 할머니 프로젝트'를 오프라인 공간으로도 확장시킨 마리몬드의 윤홍조 대표, 홍리나 아트디렉터, 이애리 홍보팀 실장을 종로구 송현동에서 만났다.

마리몬드 윤홍조 대표

▶창업 하기 쉬운 분야는 결코 아니다. 마리몬드를 창업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궁금하다.

-윤홍조(이하 윤) : 동아리 활동으로 시작해 창업으로 이어진 케이스다. 시작이 무모하긴 했다(웃음). 어르신들이 볼 때는 아마 오지의 선교사 같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당시엔 친구들도 대기업으로 많이 취업하는 상황이라 굉장히 무모한 선택이었다. 내 스스로도 평범한 삶을 지향하는 사람이었고, 꿈은 회사원이 되는 것이었다. 군 제대 후 에너지를 쏟고 싶어 동아리에 들어갔고, 그 곳을 통해 '위안부' 할머니들을 뵙게 됐다. 역사책에서 문장 서너줄로만 접했던 '위안부' 문제가 실은 개인의 문제로 아주 큰 문제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동안 '위안부' 할머니들을 그룹화 시켜 바라 보았다는 것에 부채의식이 생겼다. 할머니들을 피해자로만 바라 봤던 프레임도 죄송했다. 직접 뵈면 우리 할머니와 전혀 다르지 않은, 아니 어쩌면 더 밝은 할머니들이시다. 한 분 한 분의 고유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와 닿았다. 사실 이후 (관련) 활동을 열심히 하면 그런 생각들이 없어질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부채의식이 자꾸만 더 커져서 어떻게 하면 후회 없는 일을 할 수 있을까란 고민 끝에 창업으로 이어졌다. 초창기에는 지하에서 대학생 서너 명으로 시작됐지만 후에 그들은 대학원 진학이나 취업 등 다른 길로 갔다.


▶결과적으로는 후회 없는 선택이었나.

-윤: 지금은 후회 없지만 미래에도 후회 없도록 열심히 할 생각이다.

홍리나 아트 디렉터

▶홍리나 아트 디렉터는 어떻게 마리몬드에 입사하게 됐나.

-윤: 초기에는 맨 땅에 헤딩하는 식이었다. 그 후 현대차 창업지원사업에 선정돼 지원을 받으면서 직원에게 급여라는 것을 줄 수 있는 상황이 됐다. 당시 브랜드에 가장 필요한 사람은 디자이너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소개 받은 사람이 바로 홍리나 아트 디렉터였다. 만나서는 무조건 같이 일을 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홍리나(이하 홍) : 마리몬드가 첫 회사다. 취업준비 중 친구의 소개를 받았다. 당시 디자이너로 하고 싶었던 것이 확실해서 마리몬드라는 회사의 좋은 취지는 알겠으나 내가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 고사했다. 그런데 친구가 자꾸 추천을 하기에 윤 대표님을 만났다. 만나고 나니 계속 생각이 났다. '내가 이 다음에 잘 되고 나면 좋은 일을 해야지'라고 막연하게 가진 생각들이 있었지만 사회 복지에 관심도 없었고 잘 모르기도 했다. '위안부' 역시 슬프고 외면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그런데 윤 대표님이 처음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인권운동가이자 예술가로 조명하고 싶다' 였다. 충격적이었다. 그 때도 여전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생각했고 또 회사의 형체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함께 하게 됐다. 입사하고 나서는 홈페이지를 가장 먼저 만들었다. 형체가 없는 회사였으니까(웃음). 또 젊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스마트 폰 케이스를 제작해 다양하게 시도했다.


▶홍보팀은 회사의 규모가 제법 성장한 지난 해 11월에서야 만들어 졌다고 들었다. 홍보팀을 새롭게 꾸린 이유는.

-윤: 오가닉한 반응이 좋아 따로 홍보팀을 꾸리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 해 만들게 된 이유는 홍보도 중요하지만 이슈 관리와 위기 관리가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들 조심해야 한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조심 해야 할 지에 대해 내부적인 경험과 인사이트가 있는 인력은 없었다. 그때 운 좋게 브랜드 초기부터 PR쪽 조언을 해주시던 분에게 이애리 실장님을 소개받았다. 지금 규모에서 상상할 수 없는 영입이 처음 일어났다. 그 이후부터는 좀 마음 놓고 일을 하고 있다.


-이애리(이하 이) : 홍보팀이 생기기 전 마리몬드는 보도자료를 배포한 적도 없었고, 미디어 리스트 조차 없었다. 디지털 쪽에서 채널이나 홈페이지 속 소통을 통해 커온 브랜드이기에 홍보팀을 왜 만들까라는 의문도 들었지만, 내부에 들어와서 보니 공증된 매체를 통해 브랜드에 대한 바른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데 그전까지는 두루뭉술하게 브랜드 메이킹이 된 것이더라. 좋은 일 하는 브랜드라고만 알고 있지 정확하게 어떤 일을 하고 있는 브랜드인지 설명해 줄 포인트가 필요했다. (홍보팀이 생기면서) 그런 부분들이 위기관리와 더불어 매체를 통한 홍보로 이어졌다.

이애리 실장

▶이애리 실장은 원래 이런 문제들에 관심이 많았나.

-이: 원래는 패션 쪽 홍보를 했다. 워낙 많은 브랜드의 홍보와 관련 행사들을 진행하다 보니 나에게 쌓이는 것이 없더라. 허무해졌다. 육아휴직을 낸 상태에서 알고 지내던 선배에게 도움을 요청받아 마리몬드 라운딩을 돌았는데, 그 때 브랜드에 반하게 됐다. 변하지 않는 가치를 가지고 있고 존귀함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하는 브랜드이기에 내 스스로가 회복, 치유받는 느낌이었다. 이런 브랜드라면 내가 동기를 잃지 않고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윤 대표님을 뵙고 나서 돌아가는 길에 계속 생각이 나더라.


▶마리몬드의 이미지가 워낙 좋다 보니 콜라보 제의도 많이 들어온다고 들었다. 어떤 부분을 지향하고 또 지양하나.

-윤: 제안이 정말 많이 들어온다. 6월에는 콜라보레이션한 제품들만 모아서 커머스 형태의 플랫폼을 론칭할 정도다. (타 브랜드와) 협업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해당 브랜드의 정체성과 철학이 우리와 맞는지 여부다. 기존 고객들이 위화감을 느끼지 않을 것인지, 또 일본 위안부 문제에 도움이 되지 않은 브랜드 스토리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아무리 큰 브랜드의 제안이라도 거절한다. 그렇게 필터링을 하면서 나름의 기준을 잡아간다.


▶수지와 박보검이 착용하면서 유명해졌지만, 셀럽 마케팅은 여러 모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겠다.

-이: 우리를 소개해주는 셀럽들에게는 감사함이 있지만, 우리가 직접 셀럽에서 협찬을 진행하지는 않는다. 소비자나 팬들이 셀럽들의 착용샷을 업로드 해주면 그제서야 우리도 알게 된다. 얼마 전에는 이광수 씨와 EXO의 디오 씨가 마리몬드 라운지에 왔다고 하던데, 정작 직원들은 제대로 보지 못하고 SNS에 올라온 목격담을 보고서야 알게 됐다.

마리레터 어플리케이션은 주변 사람에게도 쉽게 털어놓지 못하는 고민이 있을 때 사용자가 익명으로 사연을 작성하면, 해당 사연에 대해 진심이 담긴 위로와 공감의 메시지를 편지 형식인 공감 편지로 답장해주는 커뮤니티 플랫폼이다.

▶마리몬드는 소비자와의 소통이 참 많은 브랜드다. 최근에는 마리레터(maryletter.com)라는 어플리케이션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마리레터의 방향성은?

-윤: 최대한 참여한다는 느낌을 많이 주고 싶었다. 그렇게 성장해왔고 앞으로의 방향성도 그렇다. 마리레터의 핵심은 모바일 서비스이기 때문에 오프라인과 어떻게 함께 갈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있다. 다양한 루트로 익명의 사연을 받아서 서로 공감해 줄 수 있고 작가들이 편지를 써줄 수 있는 형태로 커뮤니티를 키워나갈 예정이다.


▶변하지 않는 가치를 보여주는 브랜드인 만큼, 디자인 창작에 있어 고민이 많을 것 같다.

-홍: 디자인 할 때 약속하는 네 가지 원칙이 있다. 변하지 않는 따뜻함, 생기 있는 풍성함, 유니크한 조화로움, 그리고 정성스러운 편안함이다. 할머니의 이야기 자체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기에 공감, 기억, 재조명이라는 키워드를 어떻게 디자인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에 대해 내부적인 회의 후, 콘텐츠를 만드는 디자이너들이 모두 가져야 할 이 네 가지 약속을 정하게 됐다.


▶마리몬드 직원들을 보면 남다른 것이 애사심이다. 회사의 철학만으로 애사심을 불러일으키기는 힘든데, 비결이 무엇인가.

-윤: 두 가지 측면에서 수익을 많이 남기지 않겠다는 생각이 있다. 하나는 기부금(마리몬드는 영업 이익의 50%를 기부한다), 또 하나는 복리후생 이슈다. 그 결정에 대한 전제는 '지금 왜 수익을 남겨야 하는가'라는 생각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팀원들이 먹고 사는 문제에 걱정거리가 없으면서도 멋진 일에 집중하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다. 그것이 회사 성장의 방향이다. 그리고 고객들이 마리몬드를 사랑하며 쌓이는 것들이 중요하다. 요즘 플랫폼을 운영하는 비즈니스 체제에서 트래픽을 모으면서 동시에 현금을 소진해 브랜드의 가치를 평가 받는 사례가 많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런 방법은 언제가는 무너질 것이라 생각하고, 실제 그런 시그널들이 보인다. 매출이 나서 안정적으로 운영되면서도 고객들의 로열티를 축적할 수 있는 브랜드는 언제가 엄청난 파급력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 당장 단기 순이익이 크지 않아도 좋다는 관점에서 사업을 운영한다. 어렵지만 계속 가야할 길이다. 내가 최대주주이기도 하지만 투자회사에서도 장기적인 관점에 동의해주고 있기 때문에 의사결정에 문제 없이 가고 있다.

▶마리몬드의 목표는 무엇인가.

-윤: 외형적으로는 글로벌 라이프스타일 브랜드가 되는 것이다. 그런 외형의 목적은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존귀함을 이야기하는 다양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보유하는 브랜드이다. 당장 5년 안의 목표는 세계 핫 스팟에 마리몬드 라운지를 만들어 고객들이 분위기와 콘텐츠, 경험만으로 위로와 쉼을 받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마리몬드 제품을 구매하고 또 그런 경험을 하면서 브랜드의 시작에 대해 궁금해할텐데, 그때 당당히 마리몬드의 시작은 ('위안부')할머니들이다라고 소개할 수 있을 것이다. 명품 브랜드 창업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영화로 나오듯. 절대 잊혀질 수 없는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일상에서 기억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다.


▶일본에 마리몬드 라운지가 생기게 된다면 더욱 뜻 깊겠다.

-윤: 실제 일본 시민단체에서 연락이 와서 협업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일부 일본인들의 항의가 있을 수도 있다.

-윤: 지금까지는 없었다. 극단적인 성향을 가진 분들이 싫어할 수 있겠지만, 우리 브랜드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그럼 사람들조차 소중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꼭 싸워야 하나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인터뷰를 하면서도 치유받는 느낌이다. 사람들이 다 이렇게 평화롭나.

-이: 너무 착하게 포장되고 있는 것 같다(웃음). 전 직원이 밝고 장난도 엄청 좋아한다. 회의할 때는 여느 회사와 마찬가지로 격렬하게 의견도 낸다. 목표가 같기에 그것을 위해 뭉친 사람들이라 분위기가 좋은 것 같다.

글=배란다커, 사진=열룩이(셀럽스픽)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