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모르는 제주 물류 이야기

조회수 2020. 4. 9. 17:1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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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물류의 현재와 숙제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해보자. 제주도에도 이마트와 같은 대형마트는 있다. 올리브영 같은 H&B스토어도 있다. GS25 같은 편의점이 있고, 스타벅스 같은 커피 프랜차이즈도 있다. 병원도 있고, 약국도 있다. 이런 공간에 들어차는 상품들은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이 아니다. 어디선가 공급된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하나 더 해보자. 제주도는 다리로 연결되지 않은 섬이다. 어디선가 물건을 가지고 오려면 두 가지 방법을 써야 한다. 제주도에서 만들어서 자급자족하던가. 육지에서 어떻게든 들고 오던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주도에 들어오는 대부분의 화물은 육지에서 건너온다. 제주도는 제조 기반이 그렇게 튼튼한 곳이 아니다. 제주특별자치도청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제주도의 제조업체 숫자는 총 2418개로 산업체 중 차지하는 비중은 4%에 불과하다. 하루 600만병 이상을 뽑아낸다는 제주의 자랑 ‘삼다수’ 공장의 물동량은 엄청나다지만, 볼 건 이게 끝이라는 게 현지 물류업체 관계자의 전언이다.

제주 성산에서 만난 삼다수 트럭의 위용

그럼 육지의 상품들은 어떻게 제주도로 들어올까. 제주도 사람들은 잘 알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그들도 대개는 모른다. 육지 사람들이 동네 홈플러스에 어떻게 상품들이 들어차는 지 별 관심 없는 것과 같은 맥이다. 품절 사태가 일어나서 내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 한, 어딘가에서 제주도로 들어온 물건들도 그냥 공기 같이 당연히 있는 거다.


그래서 잘 알려지지 않은 제주 물류 이야기를 정리해보기로 했다. 물론 아무도 궁금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언젠가 한라산 한 잔 기울이며 여기서 본 내용들을 자랑하면 유식해 보일 거다. 기자가 제주도 사람도 아니고, 제주 물류 전문가도 아니기에 연매출 500억원 규모의 제주물류업체 JBL 이순섭 대표의 도움을 받았다. JBL은 여러 육지 물류업체의 물량을 모아 규모를 만들어 제주도로 운송하는 업체다. 제주도 전역에 들어서는 생활용품(아모레퍼시픽, 유한킴벌리 등), 약국(용마로지스), 식자재(아워홈 등) 물동량을 이 업체가 맡아 한다.


마치 육상운송 같은 해상운송


제주도 물류업자들이 ‘자동화물(트럭킹)’이라 부르는 시스템이 있다. 쉽게 말해서 제주도를 오가는 RORO(Roll-on, Roll-off), 혹은 사람 타는 카페리 선박에 화물차를 그대로 태우는 방식을 말한다. 육지에서 물량을 모아온 화물차가 곧바로 제주항에 내리고 제주 현지 목적지(물류센터, 매장 등)까지 배송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제주도를 오가는 여객 카페리도 거의 ‘화물선’ 느낌으로 변했다. 사진에 보이는 실버클라우드(한일고속 운영)도 여객 카페리인데 4.5톤 기준 150대 가량의 화물차가 실릴 수 있다.

그래서 자동화물을 ‘일괄운송체계’라고도 부른다. 선박에 화물을 싣고 내리는 과정을 생략할 수 있기에 물류 리드타임을 상당부분 감축할 수 있다. 육지에서 제주도로 오는 많은 화물들이 이 방식으로 공급된다.


첨언하자면 화물차주가 화물차 째로 승선하고 계속 차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항해시간 내내 파도에 흔들리는 선박에 실린 화물차에 가만히 앉아있다고 생각하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차량을 먼저 태워서 선박에 고박 시키고, 사람은 따로 승선을 한다. 카페리 안에는 길면 반나절에 달하는 항해시간을 함께 할 수 있는 여러 편의시설이 있다. 식당도 있고, 숙박시설도 있다. 많은 차주들이 잠깐의 피로라도 달래기 위해 쪽잠을 청한다.

실버클라우드에 승선하는 일반 승객들. 카페리에는 사람과 화물이 같이 타고 이동한다.

항공운송이 해상운송보다 느리다고?


현시점, 제주도로 오는 ‘항공운송’은 거의 쓰지 않는다고 한다. JBL에 따르면 전체 물동량의 2%도 안 되는 화물이 항공운송으로 오간다. 유통기한이 짧거나 한 긴급화물을 옮길 때만 항공운송을 사용한다고 한다. 이렇게 항공운송으로 들어오는 대표 품목이 제주도 스타벅스에 공급되는 샌드위치다.

오후 8시 방문한 제주 서귀포시 성산 스타벅스 매대 모습. 제주도에도 스타벅스는 꽤나 많은데, 여기서 팔리는 샌드위치가 항공기를 타고 온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물류 효율을 생각하면 항공운송은 굳이 사용할 이유가 없다는 게 JBL측 설명이다. 일단 물류비가 비싼 게 첫 번째 이유다. 두 번째 이유가 결정적인데 경우에 따라서 해상운송이 항공운송보다 속도가 빠를 수 있다. 항공운송은 심야편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물 픽업시간만 잘 조정한다면 항공운송이 멈춘 심야 선편을 활용하여 항공운송보다 빠른 D+1일 배송을 만들어낼 수 있다.


앞서 제주도에 오는 많은 화물들이 ‘자동화물’로 들어온다고 이야기했다. 자동화물의 강점은 화물을 배에 싣고 내리는 시간이 줄어드는 건데, 항공화물은 그렇지 않다. 더군다나 보안 강화 이슈로 모든 화물의 엑스레이 검수가 실행되기도 한다. 이렇게 추가되는 시간을 고려한다면 오히려 전체 리드타임은 항공운송이 선박보다 느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더군다나 항공운송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하나 있으니 ‘콜드체인’이 안 된다는 거다. 저온 컨테이너 장비가 아예 없어서 대부분 드라이아이스 포장을 통해 제주도로 들어온다는 게 JBL측 설명이다. 반면, 자동화물을 이용할 경우 ‘냉장냉동차’를 선박에 태우는 방식으로 온도관리가 가능하다.


이순섭 JBL 대표는 “현시점 제주도를 오가는 화물기는 완전히 사라졌다”며 “모든 화물은 김포공항을 출발하는 여객기에 실려서 오고 이 물량 규모도 축소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항공사들 입장에서 같은 무게를 싣는다면 화물보다 사람을 태우는 것이 훨씬 돈이 돼서 자연히 항공 화물운송 규모가 줄어드는 것인데, 이 때문에 화주사가 굳이 항공운송을 사용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니라면 대부분은 해상운송으로 제주 물류가 진행된다.

제주도의 물류허브 제주항 전경

제주 물류가 느린 이유


제주 물류는 느리다. 선박을 타니까 당연히 느린 것이 첫 번째 이유다. 통상 목포항에서 제주항까지 5시간, 부산항에서 제주항까지 12시간, 인천항에서 제주항까지 13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육지와 제주를 오가는 선편이 많은 것도 아니라서 대기시간까지 포함하자면 물리적인 이동시간 자체가 일단 길다.


제주 물류가 느린 두 번째 이유가 재밌다. 단순히 선박이 느린 것뿐만 아니라 화물차주가 배를 타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도 오래 걸린다. JBL에 따르면 통상 2박 3일은 걸리고, 가구와 같은 특정 품목은 15일 이상 걸리기도 한다. 그 이유는 차주들이 화주의 주문을 받아서 육지에서 물량을 픽업하고 바로 제주로 향하는 선편에 오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차주는 최대한 차량의 빈 공간이 없게 화물칸을 가득 채워서 제주도로 이동하고자 하고, 그래서 제주물류는 느려진다.


이유를 생각하면 간단하다. 제주도를 왕복하는 도선료를 지불하는 주체가 화물차주이기 때문이다. 제주도를 향하는 도선료는 차종과 공차 여부, 성수기 등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지만 목포항 출발을 기준으로 봤을 때 통상 편도 40만원 정도(4.5톤 초장축~극초장축 화물차 기준)다. 왕복으로 치면 도선료만 80만원 이상이 나가는 것인데, 기왕 제주도를 갈 거면 최대한 많은 물량을 모아서 가는 것이 차주 입장에서 같은 비용에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된다.

제주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물차. 축간거리에 따라 구분하는데, 길어질수록 적재함의 크기도 커진다. 4.5톤 화물차에는 12~16개 정도의 파렛트를 올릴 수 있다고.

이따금 업무차 제주도를 방문하곤 한다는 한 화물차주는 “기본적으로 제주도는 한 번 이동할 때 200만원 이상의 운송비를 받을 수 있을 때 갈만 하다고 생각한다”며 “돈이 목적이 아니고 기분 전환차 힐링이나 하고자 한다면 공차로 나올 것까지 감안해서 100~120만원 사이 받더라도 경험삼아 갔다 오는 것도 괜찮을 것”이라 설명했다.

목포항 기점 산타루치노호/퀸메리호의 화물차 도선요금표. 제주도의 인구수가 그렇게 많은 것이 아니기에 물동량도 그렇게 많지 않다. 차주들은 최대한 한 번 제주도를 갈 때 많은 물량을 채워서 이동하고자 한다.

제주 물류의 숙제 ‘공차율’


제주도에서는 ‘육지’ 번호판과 ‘제주’ 번호판의 화물차를 함께 볼 수 있다. 이들은 서로 다른 지역 번호판을 달고 있지만 제주도와 육지를 오고가면서 화물을 나른다는 측면에선 동일한 일을 하고 있다. 제주 번호판 화물차는 제주도에서 물건을 싣고 육지로 가서 운송을 끝내고, 다시 육지 물건을 실어서 제주로 돌아온다. 육지 번호판 화물차는 정확히 반대로 움직인다.

제주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컨테이너는 통상의 20피트, 40피트 컨테이너가 아니라 10피트 이내의 소형 컨테이너다. 이 컨테이너들은 정확히 규격화가 안 돼 있는 모습인데, 이 또한 제주 물류의 숙제로 꼽힌다.

제주 물류의 오랜 숙제는 ‘아웃바운드 공차율’이다. 쉽게 말해 육지에서 물건을 가지고 제주도까지는 왔는데, 다시 육지로 돌아갈 때는 빈 차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는 거다. 앞서 언급했듯 왕복 도선료를 모두 차주가 지불하는 상황에서 이런 현상은 굳이 제주 물류 수행을 꺼리는 상황을 만드는 요인 중 하나가 된다.


제주 물류에 불균형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태생적으로 제주도는 나가는 물량이 없는 곳으로 꼽힌다. 앞서 언급했듯 제주도는 제조 기반이 취약한 도시인 것이 첫 번째 이유다.


더군다나 그나마 나가는 물량은 ‘성수기’가 명확한 상품들이다. 제주도에서는 감귤과 무, 양파와 같은 상품들이 많이 육지로 올라가는데, 이 상품들은 ‘월동농산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겨울에만 나온다는 거다. 더군다나 제주도의 인바운드 물류 성수기는 오히려 관광객들이 많이 몰리는 여름이기 때문에 이 불균형은 더 심해진다.

2019년 12월 기준 제주항 물동량 데이터. 출항 데이터를 보면 카테고리가 두 개밖에 없는데 하나가 감귤 및 채소고 다른 하나가 기타다. 제주 감귤의 위엄을 느껴보고 싶지만, 슬픈 것은 점차 제주 감귤 생산지가 지구 온난화로 육지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제주도에도 꾸준하게 공차율을 해소할 수 있는 상품이 하나 있으니 ‘삼다수’다. 이순섭 대표에 따르면 여름에는 차량 두 대가 제주도로 들어오면 한 대는 빈차로 나가고, 나머지 한 대는 ‘삼다수’가 채운다는 설명이다.


그렇다고 삼다수가 차주들이 선호하는 물건이냐면 그것은 아니다. 한 차주에 따르면 삼다수를 한 번 운송하면 받는 돈은 10~20만원인데, 이는 제주도를 건너는 도선료만 못한 돈이다. 물량이 아예 없으니 뱃삯이라도 아끼자는 측면에서 싣는 상품인 것이지 이걸로 돈을 벌기엔 턱 없이 부족하다는 차주측 설명이다.


그래서 많은 제주 물류업체는 제주에 들어온 차주들의 아웃바운드 공차를 채울 수 있는 어떤 것을 발견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업체들의 시도 중 하나가 여름철에 삼다수를 얼려서 ‘얼음’을 만들고 육지로 보내는 거였다. 하지만 삼다수 물 값이 꽤 비싸서 포기했다는 후문이 있다.


제주 물류가 품은 오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있다면 누구든 제주도로 떠나보자. 겸사 한라산에 고등어회 한 점 하면 그렇게 좋은 게 또 없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엄지용 기자> drak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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