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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포함] 인공지능이 만든 영화를 봤다, 재밌을까?

조회수 2019. 7. 2. 11:3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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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영화에서 '유토피아' 세계관 찾기

올해 열린 제 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의 큰 주제(Concept)는 SF다. 공식 포스터와 트레일러 영상은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1982)>를 모티브로 제작했다. 블레이드 러너의 시대적인 배경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019년이다. 영화는 하늘을 떠다니는 무인 이동수단과 인간을 꼭 닮은, 스스로를 인간이라 착각하기도 하는 로봇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현실 세계의 2019년은 <블레이드 러너>의 그 모습과는 다르다. 하지만, 영화 속 이야기는 점차 현실이 돼 다가오고 있다. 당장 레벨4 수준의 완전자율주행 시범운행은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으며, ‘우버에어’와 같은 하늘을 나는 이동수단도 시범 비행을 앞두고 있다. 복제인간은 없어도 사람보다 바둑을 잘 두는 기술은 나온 지 오래다. 기술이 인간의 영역을 하나씩 넘어서고 있다.

출처: BIFAN
유독 SF영화에는 디스토피아 세계관이 많아 보인다. 부천국제영화제 특별전에서 만난 <로봇단편콜렉션>의 상영작 대부분도 디스토피아 세계관에 가깝다. 사진은 제목과 대조적으로 로봇 파괴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세계관을 다룬 단편 영화 ‘아이와 로봇(원제: Robot Will Protect You)’의 스틸컷. 이 영화에서 많은 사람들은 VR로 보는 사이버스페이스에 중독된 폐인이 된 것으로 묘사된다.

기술이 만드는 디스토피아?


인간을 뛰어넘은 기계가 인간의 모든 영역을 대체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때때로 기술의 빠른 발전은 인간에게 ‘공포감’으로 다가온다. 그래서인지 많은 SF영화들이 ‘디스토피아’ 세계관의 미래를 그리고 있다. 인간과 인공지능이 대립하는 <블레이드 러너>나 <터미네이터>, <매트릭스>의 이야기까지 갈 필요 없이, 당장 다가오는 공포가 있다. 기술이 우리 일자리를 사라지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앤드루 스텐튼 감독의 <월-E>는 그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영화는 쓰레기만 남아 황폐해진 지구를 떠나 초호화 우주선에서 생활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인간은 일을 하지 않는다. 모든 교육과 생산 시스템은 로봇이 담당한다. 인간은 그저 계속해서 소비할 뿐이다. 인간은 극단적인 편의에 골격 구조가 바뀌어서 로봇의 도움 없이는 몸을 일으키지도 못하는 모습으로 전락했다. 황폐화된 지구와 대조적으로 화려한 우주선 내부의 모습은, 결코 유토피아처럼 보이지 않는다.

출처: Images courtesy of Park CircusDisney, 부천국제영화제 제공
<월-E>도 BIFAN 2019 특별전 상영작이다. 과소비로 황폐해진 지구를 떠나 우주선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다. 사람들은 자율주행 의자에 올라서 생활한다. 음식이 먹고 싶으면 먹고 싶은 음식을 말하면 로봇이 만들어서 갖다 준다. 스타일을 바꾸고 싶으면 의자에 앉아 한 마디만 하면 입고 있는 옷의 색깔이 바뀐다. 주인공인 월-E(Waste Allocation Load Lifter Earth-Class, 지구 폐기물 청소 로봇)와 이바(EVE, 탐사용 로봇)도 인간을 대신해 일을 하는 인공지능 로봇이다.

그나마 <월-E>의 미래인간들은 소비만 하더라도 먹고 살 수 있는 ‘재력’ 혹은 다른 무엇인가를 가진 사람들이다. 영화에서 별도로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특권층’일 가능성이 높다. 최소한 그들은 ‘일자리’에 절박하지 않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는 일자리에 절박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있다. 당장의 ‘삶’의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시나리오 작가 대체할까


오스카 샤프 감독의 <선스프링(2016)>은 그런 시대 배경에서 만들어진 영화다. 인공지능 기술이 세계 최고의 바둑 기사를 이긴 시대에, 컴퓨터는 과연 세계 최고의 감독보다 좋은 시나리오를 쓸 수 있을까. 종국에는 인공지능 기술이 시나리오 작가를 대체할 수 있을까. 그 호기심, 어찌 보면 기술로 인해 일자리를 위협 받을 수 있는 시나리오 작가들의 고민에서 출발한 작품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선스프링>은 ‘젯슨(학습 과정에서 인공지능이 스스로를 ’벤자민‘이라 불러달라고 한 뒤로 이름이 벤자민이 됐다.)’이라 불리는 인공지능이 모든 시나리오를 쓰고 사람이 연출한 첫 번째 단편영화다. 오스카 샤프 감독의 제안을 받은 프로그래머 로스 굿윈(Ross Goodwin)이 각본을 쓸 수 있는 ‘젯슨’을 개발했다. 젯슨은 ‘고스트버스터즈2’, ‘스타워즈’ 등 수백개의 SF영화와 TV 프로그램 대본 데이터를 학습했다. 젯슨이 작성한 시나리오를 촬영, 편집하고 영화를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은 48시간이다. 영화는 담백하게 인공지능이 만든 시나리오를 연기하는 배우들의 모습을 전한다. 영화는 유튜브에 공개돼 있으니 궁금하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하자.

인공지능이 만든 영화 <선스프링>이 정말 재밌는지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겠다. 확실한 것은 <선스프링>을 본 관객들이 ‘공포’를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뺏더라도, 시나리오 작가는 안전할 것 같다”는 농담 섞인 이야기를 꺼낸다. 유튜브에서 세 번째로 많은 추천(298개)을 받은 댓글의 내용이 이렇다.


이 영화를 한 줄 요약한다.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I don’t know what you’re talking about”, Sums up the whole movie)

출처: 선스프링 대본 캡처
기자도 BIFAN 2019에서 이 영화를 봤는데, 한 줄 평 하자면 ‘인공지능 스피커끼리 대화하는 느낌’이다.

기술은 일자리를 사라지게 만들까


오스카 샤프 감독은 <선스프링> 제작 1년 후 <노게임(It’s no Game, 2017)>이라는 이름의 후속작을 공개한다. 이 영화의 각본 작성도 인공지능 프로그램 ‘벤자민’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차이점이 있다면 전작인 <선스프링>의 시나리오는 모두 인공지능이 썼다면, <노게임>은 인간 시나리오 작가와 협업을 해서 만들었다는 점이다.

출처: BIFAN
기자는 사전정보 없이 <노게임>을 봤는데, <선스프링>을 풍자하고자 다른 감독이 만든 영화인 줄 알았다. 사진은 영화 <선스프링> 스틸컷

결과는 이전 작품인 <선스프링>과는 사뭇 다르다. 한결 스토리텔링이 매끄럽다. 영화 줄거리를 잠깐 소개하자면 이렇다. 영화사 관계자로 보이는 여자는 “인공지능 벤자민이 만든 영화 <선스프링>이 100만 히트를 달성했다”며 “이제 더 이상 허구한 날 파업이나 하는 시나리오 작가는 필요 없다”고 이야기 한다. 이 이야기를 듣는 시나리오 작가로 보이는 사람들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영화에는 로봇도 나오는데, 여자의 지시에 따라 셰익스피어의 구절을 읊기도 하고, 헐리웃 스타일을 연기하기도 한다. 그 모습이 사뭇 우스꽝스럽게 묘사된다. 영화 <노게임>도 유튜브에 공개돼 있으니 궁금하다면 링크를 클릭하자.

결국 <선스프링>과 <노게임>은 인공지능의 일자리 침탈을 이야기하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과 인공지능의 협력을 이야기한다. 애초에 각본을 쓰는 인공지능 프로그램 벤자민의 개발 목적부터가 인간의 영역을 대체하고자 만든 것이 아니었다. 인간의 창작을 돕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실제 샤프 감독은 <노게임>을 만들면서, 벤자민이 사용하는 단어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알려졌다. [참고 콘텐츠 : “AI는 콘텐츠 창작의 조력자 일뿐”, 매일경제]


생각해보니 그렇다. 인공지능이 기사를 쓰는 시대는 이미 왔다. 네이버만 검색해 봐도 인공지능이 작성한 기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인공지능이 기자의 일자리를 사라지게 만들었는가 하면 아니다. 이유는 아마도 ‘인간’이 인공지능 기술보다 잘할 수 있는 영역이 더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예컨대 콘텐츠의 맥락을 읽고 깊이 있는 내용을 해석하는 것은 인간이 더 잘하는 영역이다. 단적인 예로 인공지능이 <블레이드 러너>의 줄거리 요약을 기자보다 잘할 수는 있겠지만, 지금 기자가 쓰고 있는 글을 인공지능이 쓰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주가 변동 데이터를 빠르게 수집해서 그것을 지정된 규칙에 맞춰 기록하는 것은 기계가 잘하는 것이 맞다. 인간이 그것을 일일이 못할 것은 아니지만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이 때 언론사는 사람이 썼을 때 기계보다 속도가 떨어지는 콘텐츠는 기계에 맡기고, 기계가 하기엔 어려운 가치 있는 일을 사람에게 집중시킬 수 있겠다.


유독 SF영화에서 유토피아 세계관을 찾기 어렵다. 그 이유를 찾아보자면 기술은 우리 삶에 이미 녹아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영화 주인공이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것을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것처럼, 이미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그렇기에 기술은 굳이 ‘유토피아’처럼 거창한 모습으로 묘사되는 것 같지 않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엄지용 기자> drak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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